본문 바로가기

조선 오피니언

[조선'신문화']'로-타리' 때문에 되레 '발 동동'/구) 서울역사 6장

[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71] '로-타리' 때문에 되레 '발 동동'

조선일보 문화 김영철 디지털뉴스부 편집위원

 

 

입력 : 2012.09.05 22:55

처음으로 로터리가 등장한 서대문 네거리 모습(1938년 5월 19일자).
"동경(東京) 대판(大阪)의 선진 도시를 본바다, 지금까지의 단속적 교통정리를 '로-타리'식 정리체게로 개량… 이것이 실현되면 록지대(綠地帶) 엽흐로 차량이 조곰도 쉬일새 업시 자동적으로 선회하야 교통의 원할이 완전하게…."

조선일보 1937년 11월 11일자는 경성의 교통 정체를 막기 위해 '교통정리기'를 통한 '꼬' '스톱'식 단속적(斷續的) 교통정리를, 끊임없이 이어져 회전하는 로터리식으로 바꿀 계획임을 전했다.

경성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은 남대문과, 황금정(을지로), 종로 네거리. 그러나 로터리가 처음 등장한 곳은 서대문 네거리(四街里)였다. 서대문 도로확장 공사의 완공을 전하면서 조선일보는, "중앙에다 경성 최초의 '로-타리'를 만들어 노아, '신호'와 교통순사의 필요업시, 인마와 수레가 모두 좌측 통행만 하면 상시통행을 하게되엿는 데, 이로 말미아마 교통사고도 적어질뿐 아니라, 도회인의 지친 신경도 피로가 적어지게 되리라"며, '꼬·스톱 무용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1938년 5월 19일자).

그러나 로터리는 상당한 혼란을 준 모양이다. 조선일보의 지역 민원을 소개하는 '우리동리 통신' 난에, "편리하라고 맨들어 논 것이건만, …건너가도 조흔 것을 신호소리만 기다리고, 업는 교통순사 차즈며 멈추고 잇는 사람, 왼쪽으로 가라는 것을 바른쪽으로 것다가 몰려오는 자전거에 쫏겨 어쩔줄 모르는 사람 등등", '꼬·스톱'에 익숙한 장안 사람들이 '떫은 입맛'을 다신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1938년 9월 10일자).

그럼에도 로터리는 "약진하는 대경성의 길을 피로 물드리는 참담한 교통사고"를 막는 방안으로 계속 확대됐다. "조선은행 압, 동소문, 삼각지, 원남정의 네군데는 지금 공사중"이고, "명년도에는 봉내정과 영등포역 아페 실시하기로 되엿는데, 가장 교통이 복잡한 종로 네거리 남대문 네거리, 경성역 아페는 예산 관계로 명년도에도 착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유감"이라는 불만도 터져나왔다(1938년 12월 4일). 로터리는 "최신식 교통정리 법으로, 가장 이상적 시설"이었기 때문에(1939년 5월 21일자), 조선은행 앞 로터리도 이듬해 3월부터 본격 공사에 착수했고(1939년 4월 11일자), 7월부터는 경성역 앞도 '줄'을 처 로터리 식으로 교통 정리를 했다(8월 1일자). 1940년엔 안국동과 돈화문으로도 확대됐다(1939년 12월 16일자).

'이상적'이라던 로터리는 1980년대 들어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애물단지'란 지적이 나오며 철거당하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으나, 최근 들어 차량 속도가 낮은 곳을 중심으로 부활되는 곳도 있다.

 

그랬구나 로터리가 처음 등장한 곳은 서대문 네거리(四街里)였다...서대문 도로확장 공사의 완공을 전하면서 조선일보는, "중앙에다 경성 최초의 '로-타리'를 만들어 노아, '꼬·스톱 무용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1938년 5월 19일자).

 

로터리는 "약진하는 대경성의 길을 피로 물드리는 참담한 교통사고"를 막는 방안으로 계속 확대됐다...ㅎㅎ...^-^

 

7월부터는 경성역 앞도 '줄'을 처 로터리 식으로 교통 정리를 했다(1939년 8월 1일자)...ㅎㅎ...줄을 처 로터리식으로 했다고 하네...ㅎㅎ...^-^

 

 

- 2012년 10월4일 시청 앞 싸이의 공연이 있다고 하는 날 오후 10시40분...수산나 - 


 

구) 서울역사 1

 

구) 서울역사 2

 

구) 서울역사 3

 

구) 서울역사 4

 

구) 서울역사

 

[서울역]

도심과 가까운 기존의 남대문정거장을 경성역으로 개량하기로 하여 1922년 역사 건설이 시작되게 된다. 그 뒤 1923년 1월 1일 경성역(京城驛)으로 역명을 바꾸고[6] 본격적인 경성부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도쿄 역에 이은 동양 제2의 규모로 지어진 역사는 1925년 완공되었고, 이후 만주 방면의 국제 열차를 취급하는 등 한반도의 철도 교통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경성역은 광복 이후 1947년에 현재의 역명인 서울역으로 개명하였고, 한국 전쟁을 거치며 대한민국의 최대 역으로 발돋움하였다. 1957년에는 서울역 서쪽에 경의선만 취급하는 서부역사를 신설하여 지역 주민들의 여객 이용을 도왔다. 1960 ~ 1970년대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여객 규모가 커져 기존 역사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송량을 보이게 되어, 서울 올림픽에 발맞춰 1988년에 서울역사와 서부역사를 연결하는 선상역사를 준공하였다. 이후 KTX 운행이 가까워 오자 다시 신역사를 착공, 2003년에 현재의 역사를 새로 건설하여 2004년 4월 1일KTX를 취급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경부선·호남선·전라선·장항선 등 모든 장거리 열차가 운행되었으나, 2004년 4월 1일 KTX가 개통된 이후 선로 용량의 문제로 모든 열차를 서울역에서 처리가 어렵게 되어 호남·전라·장항선 열차는 서울역 대신 용산역에서 여객 업무를 취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2009년 7월 1일에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 그리고 2010년 12월 29일에는 인천국제공항철도 2단계 구간(김포공항 - 서울역)이 개통되어서 이 역은 3개의 전철 운행 계통이 다니는 역이 되었다.

[편집] 연혁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