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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산책·성화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8] 베르메르의 위작- '물주전자를 쥐고 있는 여인'/ 네델란드 민속의상 2장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8] 베르메르의 위작

조선일보/사외칼럼/김영나 서울대교수.서양미술사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영화가 있다.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활약한 화가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을 주제로 한 픽션이다. 19세기 중엽에야 진지한 연구가 시작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생애는 영화와는 달리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동안 베르메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화가이면서 화상(畵商)이어서 작품을 많이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르메르는 창문이 있고 지도나 그림이 걸려 있는 방에서 여성의 일과나 남녀가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들을 즐겨 그렸다. 차갑고 섬세한 빛의 흐름은 물체의 구조와 색채의 변화를 미묘하게 포착한다. 친밀한 공간 속의 인물들은 세속의 일상에서 벗어나 꿈과 같이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준다. 대부분 소품이지만 완벽한 질서와 시각적 화음은 그를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로 인정받게 하였다.

베르메르의 ‘물 주전자를 쥐 고 있는 여인’
현재 알려진 베르메르의 작품은 36점이다. 미술사학자들은 그의 작품이 더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희망을 이용한 사람이 바로 한 반 미게렌이었다. 사실 묘사에 탁월했던 이 화가는 20세기 초 추상미술이 대세가 되자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베르메르의 물감과 터치를 연구했다. 그런 다음 17세기 무명화가의 그림을 사서 물감을 벗겨내고 그 위에 베르메르처럼 그리고 사인을 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들이 모두 속아 넘어가 이 위작들은 대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미술관에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고백을 하고 말았는데, 위조작품 한 점이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괴링의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국보급 작품을 적에게 팔았다는 반역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위작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미술 작품의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른 오늘날에는 전문적인 위조자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유명한 미술사학자이자 뛰어난 감식가였던 막스 프리드먼은 90세가 넘어 눈이 어두워졌어도 작품 앞에 서면 직감으로 진품인지 아닌지 알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학자들의 전설은 끝나고 만 것일까?

   꺅'한 반 미게렌'...17세기 무명화가의 그림을 사서 물감을 벗겨내고 그 위에 베르메르처럼 그리고 사인을 했다...모두들 속아 넘어가 대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미술관에 걸리게 되었다...그러나 위조작품 1점이 히틀러의 오른팔 '괴링'의 손에 들어가 반역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므로...위작 임을 고백했다고 한다...ㅠㅠ...^-^

 

- 2012년 11월9일 금요일 수능 다음 날 오전 8시...수산나 -

 

 

2012 안성세계민속축전 중부유럽 민속의상

 

2012 안성세계민속축전 네델란드 민속의상

 

네덜란드는 조선 시대에 벨테브레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들어온 일, 헨드릭 하멜도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도착한 일 등으로 대한민국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유럽 국가이다. 네덜란드는 1949년 7월 25일, 대한민국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으며, 한국 전쟁 때에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을 지원하였다. (보병 1개 대대, 군함 1척) 헤이그에 대한민국 대사관(주 헤이그 국제기구 대표부 겸임)이 개설되어 있다. 서울에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대(對)네덜란드 수출은 46억2698만USD, 네덜란드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44억2550만USD(각 2011년)에 달하여, 네덜란드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27위의 수출국이자 제25위의 수입국이다.[9] 모두 1,771 명(재외국민 1,663명, 시민권자 108 명)의 한민족들이 네덜란드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 [10] 한국과 네덜란드는 KLM대한항공의 노선으로 운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