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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문인

[김석종의 만인보]아직 ‘부러지지 않은’ 정지영 감독/영주 선비촌 닭장 속의 닭 4장

 

[김석종의 만인보]아직 ‘부러지지 않은’ 정지영 감독

경향신문/테마칼럼/김석종 선임기자/입력 : 2012-03-07 21:10:53

 

 

만인보’에 영화감독 정지영(66)을 불러낸 이유가 <부러진 화살>의 떠들썩한 흥행 때문만은 아니다. 1990년대 충무로(‘충무로’는 영화사가 몰려 있는 동네 이름이자 ‘영화계’를 뜻하는 대명사로 통했다)에 ‘영광회(映狂會)’라는 모임이 있었다. ‘영화 미치광이’들끼리 술추렴이나 하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자타 공인의 영화 마니아인 소설가 안정효가 1992년 장편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출간했을 때다. ‘걸어 다니는 영화사전’이라는 말을 듣던 영화연구가 정종화는 소설에 나오는 수백편 영화의 제목과 내용 가운데 스물 네 군데의 ‘착오’를 지적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는 소설 주인공을 빼다박은 듯한 못말리는 영화광이다. 영화의 제작연도, 감독, 배우는 물론 ‘부스러기’ 에피소드까지 뚜르르 꿰는 데다 영화포스터, 전단, 극장입장권, 스틸사진 등 영화와 관련된 자료만 수만점을 갖고 있다.

충무로의 한 맥줏집에서 처음 만난 두 ‘고수’는 대번에 상대방의 내공을 인정했다. 초저녁에 시작한 술자리는 서로간의 흥미진진한 영화 추억 공방으로 다음날 아침에야 끝났다. 때마침 또 한 명의 ‘씨네 키드’ 출신 영화감독 정지영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겠다며 안정효를 찾는다. 그는 충북 청주에서 아버지가 사촌형에게 내준 헌책방의 책을 다른 헌책방에 몰래 팔아넘겨 영화를 보러 다녔을 정도로 ‘영화에 미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안정효·정종화·정지영이 만나는 자리에 박건섭(영화기획자)·정건섭(소설가)·이세룡(영화감독)·이헌익(신문기자·작고)·김일우(배우·작고) 같은 동년배들이 가세했고, 영광회라는 이름으로 판이 커졌던 거다. 하나같이 영화 한 편은 넉넉히 될 만한 ‘인생 파란만장’을 껴안은 사람들이다.

필자는 영광회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인 1980년대 중반부터 정종화·이세룡· 이헌익과 알고 지냈었다. 영화사, 극장, 영화잡지사를 직장으로 전전하던 정종화는 충무로 포장마차 같은 데서 만나 영화 이야기를 지겹게 들었다. 기자, 시인, 영화평론가였다가 나중에 <내친구 제제>로 데뷔한 영화감독 이세룡은 한때 나의 직장 상사였다(그는 영화 준비 중 뇌출혈로 쓰러져 10년 넘게 투병 중이다).

 

또 이웃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였던 이헌익(주로 영화와 문학, 종교, 인터뷰를 담당했다)을 ‘허니기형’이라고 부르며 자주 어울렸다. 그는 ‘문장’에도, 술자리의 낭만(취했다 하면 동서고금의 시를 줄줄이 외우고, 배호 노래를 분위기 삼삼하게 불러제끼고, 여자들에게는 순식간에 쓱쓱 프로필을 그려 고추장 낙관까지 찍어주곤 했다)에도 한 경지를 이룬 ‘기인’이었다.

그러니 정지영의 술자리(취재와는 아무 상관없이)에도 여러차례 얼굴을 내밀었다. 당시 정지영은 <남부군>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박철수 장선우 장길수 신승수 곽지균 등과 함께 ‘오영감’(‘오늘의 영화감독’을 줄인 말)의 멤버이기도 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사정이 확 달라진 거였다. 대기업들이 영화제작과 투자, 영화관을 독점하면서 영화계는 젊은 감독들로 빠르게 재편됐다. 잘 나가던 오영감들은 ‘한영감’(한때는, 혹은 ‘한물간’ 영화감독)이라는 비아냥을 듣거나, ‘어영감’(어제의 영화감독)이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신세가 됐다. 대신 스크린 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 수호 등 ‘투쟁’의 선봉에는 늘 정지영이 있었다. 1998년 <까> 이후에는 준비 중인 영화마다 제작비 문제로 번번이 ‘엎어졌으니’ 맘 고생도 심했을 거다.

자칭 ‘전 영화감독’ 정지영과 조우한 것은 이헌익의 빈소였다. 이헌익은 2007년 봄날 새벽, 술 취해 귀가하다가 아파트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쉰 다섯의 젊은 나이로 불귀의 길을 가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 한 화가의 전시회가 열린 갤러리에서 우연히 정지영을 다시 만났다. 그는 <부러진 화살> 말고도 ‘낭만시대 마지막 기자’ 이헌익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어놓고 있었다.

이장호·변장호·이두용·박철수 감독이 함께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이 영화는 요즘 각종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있어서 국내 개봉이 미뤄지고 있다)에 들어 있는 <이헌의 오딧세이>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부러진 화살>을 본 이헌(이헌익) 기자가 감독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생전의 이헌익은 작품을 못하고 있는 정지영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형이 영화를 찍어야 내가 인터뷰를 할 텐데….” 호방하고도 넉넉했던 허니기형의, 이취(泥醉)에서 비롯된 실제 기행담이라니, 어서 빨리 보고 싶다.

그날 정지영은 <부러진 화살> 개봉을 앞두고 굉장히 초조해보였다. 영화가 망하지 않기만을 빌고 있다는 말도 했다. 실로 오랜만에,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로 천신만고 끝에 찍은 영화였으니 오죽 절박했을까. 그런데 웬걸, 이 영화가 관객 350만명의 ‘대박’을 터뜨린 거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날린 직설의 ‘화살’이 적중한 셈이다.

얼마 전에는 대학로의 한 대형주점을 통째로 빌려 영화 흥행 자축 파티를 열었다. 뒤늦게 도착해보니 안성기를 비롯한 영화 출연진과 영화계 선후배, 지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늘 심각한 표정인 정지영도 이날만큼은 만면에 기분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지영의 ‘귀환’과 통쾌한 반전 스토리가 실감나는 파티였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게다. 정지영에게는 디지털 세대가 따라올 수 없는 묵은 장맛 같은 ‘영화 오딧세이’가 있다. 아직도 디지털 장비가 아닌 필름작업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그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나이 들수록 노련하고 성숙한 영화가 나온다. 늘그막에 감독을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봐라. 그런데 한국 영화계가 젊은 감독들의 감각적인 영화만 선호하니 인재들이 데뷔작만 내놓고 사라지는 거다.”

이 가볍기만 한 시대에 아날로그 영화광 세대 ‘명장’의 도저하고 웅숭깊은 ‘인생 영화’를 만나고 싶다.

영화한판고고  <부러진 화살>의 영화감독 정지영(66)...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날린 직설의 ‘화살’이 적중하여 관객 350만명의 ‘대박’을 터뜨린 거다...한때 그는 <남부군>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스크린 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 수호 등 ‘투쟁’의 선봉에는 늘 정지영이 있었다....ㅎㅎ...^-^

 

‘영화 미치광이’들끼리 술추렴이나 하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영광회(映狂會)’... ‘오영감’(‘오늘의 영화감독’을 줄인 말)...‘한영감’(한때는, 혹은 ‘한물간’ 영화감독)... ‘어영감’(어제의 영화감독)...ㅋㅋ...^-^

 

가볍기만 한 시대에 아날로그 영화광 세대 ‘명장’의 도저하고 웅숭깊은 ‘인생 영화’를 만나고 싶다...ㅇㅇ...^-^

 

 

- 2012년 11월26일 오전 10시...수산나 -
 

 

 

영주 선비촌 닭장 1

 

영주 선비촌 닭장 2...장닭입니다...ㅎㅎ...^-^

 

영주 선비촌 닭장 3...암닭입니다...ㅎㅎ...^-^

 

영주 선비촌 닭장 4...장닭과 암닭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