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오피니언/테마칼럼/입력 : 2004-08-19 15:53:13
아이들의 깔깔거리던 웃음이 떠난 자리에 황혼이 깃들었다. 웃음소리와 물장구에 덩달아 깔깔거리던 물방울도 지금 묵언 중이다. 파라솔들도 날개를 접고 쉬면서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고 있다.
지난 여름은 무덥고 무더웠다. 이 나라 바다와 계곡, 수영장마다 넘치던 열기가 시원한 빗줄기에 가을 속으로 떠났다. 여름의 잔해들이 도처에 패잔병처럼 널브러지고, 성급한 가을이 도처에서 얼굴을 내밀며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동해바다 철지난 바닷가엔 홀로 남은 상인들이 거대한 쓰레기더미를 보고 한숨짓고 있으리라. 뒤늦게 바다를 찾은 여인들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깔깔거리는 동안 갈매기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바닷가를 배회할 것이다.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시원하게 떨어지던 계곡물도 이젠 숨을 고르면서 제 빛을 찾아갈 단풍나무를 위해 맑디 맑은 거울을 준비할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 여름 붉게 물든 황혼 속으로 걸어들어간 연인들. 수영장에서 연방 선텐오일을 바르면서 붉디붉은 오디처럼 익어간 처녀들. 이 여름이 못내 아쉽다는 듯 계곡에 발 담그고 먼 하늘 바라보던 노부부들. 다시 돌아간 일상의 숲에서 다들 안녕하신지.
이제 ‘즐거운 지옥’ 같았던 피서지에서의 추억을 곱씹으며 이제 또 한 해를 너끈하게 견딜 일이다.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던 삼겹살이 어른거리고 수영장에서 만난 늘씬한 여인의 봉긋한 젖가슴이 눈앞에 선해도 참고 견뎌야 한다. 길고 무더웠던 이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우리들 사랑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웃음소리와 물장구에 덩달아 깔깔거리던 물방울도 지금 묵언 중이다.파라솔들도 날개를 접고 쉬면서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고 있다.
여름의 잔해들이 도처에 패잔병처럼 널브러지고, 성급한 가을이 도처에서 얼굴을 내밀며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시원하게 떨어지던 계곡물도 이젠 숨을 고르면서 제 빛을 찾아갈 단풍나무를 위해 맑디 맑은 거울을 준비할 것이다.
길고 무더웠던 이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우리들 사랑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 2012년 12월8일 토요일 오전 7시20분...수산나 -
양평 용문사 계곡 1
양평 용문사 계곡 2
양평 용문사 계곡 3
양평 용문사 계곡 4
양평 용문사 계곡 5
양평 용문사 계곡 6
양평 용문사 계곡 7
'포토·펜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토에세이]거리의 ‘코리안 드림’/명동성당 4장 (0) | 2012.12.09 |
---|---|
[포토에세이]물속의 평화를 건지고 싶다/아차산 생태공원 물레방아 2장 (0) | 2012.12.09 |
[포토에세이]절망 끝의 저 눈빛 한없이 슬프다/우리집 망치 4장 (0) | 2012.12.08 |
[포토에세이]풀섶 떠난 청개구리의 피서/청개구리 3장 (0) | 2012.12.07 |
[포토에세이]고추잠자리 잡던 여름방학 추억속으로/잠자리 등 4장 (0) | 2012.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