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물속의 평화를 건지고 싶다
경향신문/오피니언/테마칼럼
입력 : 2004-08-26 16:14:36
어린시절 신문에서 ‘고정간첩 일망타진’이라는 기사를 접할 때면 천렵에 나선 어른들의 투망질을 떠올렸다. 어린 마음에 ‘고정간첩’은 온 몸이 빨갛게 생긴 물고기쯤으로 여겼다. 그물에 걸려들어 허우적대던 물고기들이 꼼짝없이 잡혀올라오는 건 곧 ‘일망타진’인 셈이었다.
그랬다. 허공을 향해 투망을 던져 수십마리 고기들을 한꺼번에 잡아올리는 어른들의 솜씨는 한마디로 신기(神技)였다. 종일 뜰채를 들고 풀숲을 쑤시고 다녀야 피라미 몇 마리 잡는게 고작인 아이들의 천렵솜씨로는 어림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존경스런 어른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건 속까지 빨간 빨갱이와 괴물처럼 생겼다는 괴뢰군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목청껏 불렀던 노래들과 6·25기념 웅변대회에 나가 타온 상장들. 왜곡되게 배워온 역사가 내 안에서 무게중심을 갖고 바로 서는 데는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문 속 무장간첩들이 독재에 항거하며 자신을 희생한 민주투사였음을 아는 데도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저 사정없는 투망질을 보면서 이처럼 엉뚱한 상상을 하게된 건 어쩔 수 없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를 살면서 여전히 친일이니 용공이니 하는 단어에 시달려야하는 기막힌 현실 탓이다.
참붕어, 모래무지, 어름치, 버들치야. 쏘가리, 꺽지, 열목어, 미꾸라지야. 올 여름 안녕했는지. 설령 부챗살로 퍼지는 투망에 일망타진 당해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네가 숨쉬는 물 속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니. 가끔씩 사람들이 재미삼아 던지는 투망질이나 심심풀이 낚시바늘에만 안걸린다면 신랑붕어 각시붕어 한 세상 알콩달콩 즐겁게 살아가리니. 부디 행복하거라. 하늘은 저리 파랗고 물결은 더욱 잔잔하게 반짝이는 가을 아닌가.
참붕어, 모래무지, 어름치, 버들치야. 쏘가리, 꺽지, 열목어, 미꾸라지야. 올 여름 안녕했는지. 설령 부챗살로 퍼지는 투망에 일망타진 당해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지는 않았겠지?
- 2012년 12월9일 오전 8시2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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