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오피니언/테마칼럼/입력 : 2004-09-02 16:23:26
‘공장 뒤켠 허름한 방 입식 부엌/아침 조리당번은 방글라데시 요리사 노만/가스레인지 위 냄비에 식용유 쏟아붓고/어젯밤 사장 몰래 딴 호박과 가지 썰어/번갈아 볶으며 아침식사 준비한다//사장이 빈손으로 시골 와서 차린 가구공장/(중략)/저녁 조리당번은 방글라데시 중학교 교사 라흐만/대학 졸업하고 과학 가르치다 왔는데/텃밭 좋아해 근무시간 후면 고랑에 앉아서/돈 모아 고향 가면 사장보다 더 잘산다 생각하다가/사장이 보면 고추 따며 싱긋 웃는다’ -하종오 ‘코리안 드림 4’ 일부
코시안의 유행어였던 ‘코리안 드림’이 명동성당 ‘천막농성’으로 남았다. 합법과 불법, 이상과 현실, 기존질서와 신질서 사이에 놓여있는 서울 한복판의 중립지대 명동성당. 한때 민주화의 성지로 불렸던 그곳에 민주화를 요구하던 투사들 대신 강제추방에 항의하는 코시안 투쟁자들이 자리 잡았다. 농성투쟁 287일째. 국자와 주걱, 된장과 고추장이 있어야 한 끼가 해결되는 코시안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을 벌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의 고용허가제와 강력한 단속추방에 항의하는 그들의 투쟁 뒤엔 우리들의 잘못이 숨어 있다. 산업연수생의 이름으로 한국을 찾은 그들에게 주인으로서 한 번이라도 따뜻한 적이 있었던가. 모두가 3D업종이라고 외면하는 험한 일터에서 그들이 절단기에 손이 잘리고, 화학약품에 화상을 입어 신음할 때 자만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았는가. 중앙아시아의 벌판 한가운데 버려졌던 고려인으로부터 아메리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한인들,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서 이글거리는 태양과 싸웠던 건설역군과 이역만리 독일로 가야 했던 광부나 간호사들까지. 우리에게도 신산(辛酸)했던 시대의 슬픈 역사가 있었다. 오늘, 내걸린 밥주걱과 첨탑 위 저 십자가 사이에 놓인 푸른 하늘을 사랑이라 부르자. 사랑이라는 이름의 하늘 아래서 저들의 손을 꼭 잡아줄 일이다. 첫눈이 오기 전에 성당에 오르는 저 길을 사랑을 서약하는 연인들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사진 노재덕 포토에디터|글 오광수 주말팀장 photoroh@kyunghyang.com〉
농성투쟁 287일째. 국자와 주걱, 된장과 고추장이 있어야 한 끼가 해결되는 코시안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을 벌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 2012년 12월9일 일요일 오전 8시30분...수산나 -
명동성당 정면 우측
명동성당 정면 좌측
명동성당 후면
명동성당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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