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타임스] [18] 담배는 언제나 국고의 중요한 수입원… 국가 걱정은 '건강' 아니라 '돈'이었다
조선일보/오피니언/허동현 경희대교수 역사학
입력 : 2012.07.30 23:29
- 광복의 기쁨도 흡연과 함께… 1948년 8월 15일 광복 3주년 기념식장에서 한복 차림의 노인이 입에 문 장죽에 양복 입은 하이칼라 청년이 라이터로 불을 댕겨주는 모습이 이채롭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 때 "2000만 동포가 석 달만 연초를 끊고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1300만원이 될 터이니 국채 갚는 것이
어찌 걱정이랴"라는 셈법이 웅변하듯, 그때 전개된 단연(斷煙) 운동의 목적도 재정 확보를 통한 국권 수호에 있었다. 1921년 일제 총독부가
전매 제도를 실시한 이래 담배는 광복 이후까지 국고를 불리는 훌륭한 수입원이었다. 1975년에도 한국은 여전히 흡연자 한 사람이 하루에 프랑스의
3배인 14.9개비를 피워댄 골초 국가였다. 하지만 1976년 세계보건기구의 종용에 밀려 전매청이 담뱃갑에 써넣은 "건강을 위해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모호한 표현의 유해 경고문이나 양담배 시판이 허용된 1986년 YMCA가 내건 "양담배 연기 속에 한숨짓는 농민 얼굴"이란 표어가
웅변하듯, 압축 성장 시대에는 국가나 시민단체 모두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담배의 해악에 눈감았다.
흡연자는 자기 건강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까지도 병들게 하는 '비문명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혀 공공장소는 물론 가로의 흡연까지 단속 대상이 된 오늘도 골초들의 흡연
의지만큼이나 담배와 권력의 유착 관계도 여전하다. 담배가 이 땅에 전래한 이후 국가권력이 염려한 것은 사람들 건강이 아닌 재정 악화였다.
임진왜란 무렵 우리나라에 들어온 담배는 충치를 예방하고 소화를 촉진하는 약초로 여겨졌다...ㅜㅜ...^-^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1614)이 "가래도 삭혀주는 효능이 있다"고 적을 정도였다....ㅜㅜ...^-^
"네다섯 살이면 담배를 배워 남녀 모두 피우지 않는 이가 없다"는 '하멜(Hamel) 표류기'(1668)의 증언...ㅜㅜ...^-^
그 시대의 세상이 말하는 것...모두 믿으면 안된다!!...한~ 세상 흐르면 또 다른 말이 나오니 말이다...ㅋㅋ...^-^
1907년 국채보상운동 때 "2000만 동포가 석 달만 연초를 끊고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1300만원이 될 터이니 국채 갚는 것이 어찌 걱정이랴"라는 셈법이 웅변하듯, 그때 전개된 단연(斷煙) 운동의 목적도 재정 확보를 통한 국권 수호에 있었다....ㅠㅠ...^-^
흠흠...이래서 국채보상운동-단연운동이 나왔구나...ㅎㅎ...^-^
- 2013년 3월16일 토요일...수산나 -
대구 중구 골목투어...서상동 고택 앞 쉼터의자에 새겨진 '국채보상가'...^-^
".....1천3백만원 국채 갚자고 보상동맹단연회 설립했다네...."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민족운동가 '서상돈' 이력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문화로'...이상화 시인/서상돈 민족운동가 타일벽화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문화로' 이정표...서상돈 고택도 있네요...ㅎㅎ...^-^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문화로' 이정표...서상돈 고택 안내문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문화로' ...서상돈 고택 출입구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문화로' ...서상돈 고택 사랑채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문화로' ...서상돈 고택 별채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문화로' ...서상돈 고택 안채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문화로' ...서상돈 고택 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