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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꽃들의 전쟁, 주화파 vs 주전파/남한산성 행궁 좌전 2장

 꽃들의 전쟁, 주화파 vs 주전파

24일 방송된 JTBC 새 주말극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극본 정하연,연출 노종찬) 2회는 병자호란 당시 격돌했던 주화파와 척화파가 청나라 군사들이 물러간 뒤에도 논쟁을 계속하고, 인조는 부끄러움과 회한에 빠져 방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절도에 유배된 김자점(정성모)의 처절한 몸부림과 훗날 소용이 되는 얌전이 서출로 태어난 탓에 겪게 되는 설움도 화면에 담겼다.

삼학사(三學士)로 일컬어지는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등 3인이 청나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1636년(인조 14년) 12월 청 태종이 대군을 거느리고 조선을 침공, 인조가 피란해있던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성문을 열라고 위협할 때 조선의 신하들 중 최명길(崔鳴吉)을 중심으로 한 주화파(主和派)는 청나라와 화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김상헌(金尙憲)을 중심으로 한 주전파(主戰派)는 결사 항전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었다.

인조는 결국 주화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성 밖으로 나가 청나라에 항복하였고, 홍익한 등 세 사람은 척화(斥和)의 주모자로 심양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 척화의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참형에 처해졌었다.

나중에 조정은 이들의 충절을 기려 세 사람에게 충정(忠正), 충정(忠貞),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모두 영의정을 추증했었다.

이제부턴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사실과는 다르게 그려진 몇 가지를 짚어본다. 거듭 강조하지만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에 시비를 걸어보거나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알고 보자는 순수한 뜻으로 쓰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주었으면 한다.

1) 얌전의 아버지 조기가 드라마에선 반정공신으로, 부원수로, 그리고 대감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왕조실록엔 趙琦와 趙錡 두 가지로 표기되고 있는 조기는 회령부사(會寧府使 종3품) 시가자(加資)됐지만 그래봤자 정3품이다. 대감은 정2품 이상의 당상관을 높여 부르는 칭호이니 맞지 않은 것이다.

조기는 곧 경상 우병사로 자리를 옮겼고, 그의 휘하에 있던 사포(射砲) 1백여 명이 일시에 무너져 흩어진 일로 간관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는 등의 기록은 있지만 정2품 이상의 벼슬을 살았다는 기록은 물론 조기가 반정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부원수를 지냈다는 기록도 없다.

2) 드라마에선 영의정 김류가 사임한 뒤 주화파를 이끌었던 최명길이 곧바로 영의정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사실은 김류의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된 사람은 이홍주이고, 최명길은 1937년 4월9일 우의정이 됐다가 이듬해 4월엔 좌의정, 그해 9월에야 영의정이 됐었다.

굳이 이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이조판서였던 최명길이 갑자기 영의정이 되다니, 좀 이상하다고 여기는 시청자가 적지 않을 것 같아서다.

3) 절도에 유배된 김자점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결하려다 문득 '내가 왜 죽어. 내가 왕이 되면 되는 거지'라고 중얼거리며 훗날을 기약한다. 그뿐 아니라 이 드라마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패전 후 인조로부터 매를 맞고 절도로 유배된 것에 독을 품고 이씨왕조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왕이 돼 김씨 왕조를 세우기 위해 얌전을 궁에 들여보내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내가 아는 한 사실이 아니다. 정하연 작가가 드라마적 재미를 위한 설정으로 그렇게 꾸며낸 게 아닌가 싶다.

먼 훗날 김자점은 청나라에 조선의 기밀을 누설하는 등 반역을 도모하다 처형되긴 했지만 일찍이 역성혁명을 꿈꾸었다는 근거는 없다.

그건 그렇고...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가 '꽃들의 전쟁' 첫회의 시청률을 조사한 결과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 3.058%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종합편성채널 사상 최고 기록이다.

꽤 높은 인기를 모았던 김수현의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첫회 시청률이 1.432%였는데 그 배 이상인 1.626% 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남한산성 행궁 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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