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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야기·꽃말

[김민철의 꽃이야기] '이름 모를 꽃'이 어딨노! /4대 길거리꽃과 7대 가로수 14장

[김민철의 꽃이야기] '이름 모를 꽃'이 어딨노!

조선일보/사내칼럼/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입력 : 2013.06.04 03:06

김동리·김정한, 후배들 글 읽다가
'이름 모를 꽃' 표현에 원고 던져 "당연히 꽃이름 알아야지" 꾸짖어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좋은 책 많아져 꽃이름 찾기 편리 풀꽃 이름 알면 세상이 환해져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1978년 가을 천리포수목원 설립자인 고(故) 민병갈(Carl Miller) 원장의 눈이 반짝였다. 전남 완도에서 수목원 직원들과 자생식물을 탐사 중이던 그의 앞에는 붉은 열매에 작은 가시 잎사귀가 달린 특이한 호랑가시나무가 있었다.

"가만있자…. 이 나무들 이파리가 좀 희한해."

그는 평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식물도감을 뒤져본 57세 신사는 희색이 만연했다. 새로운 발견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는 여러 경로로 체크해 신종임을 확인하고, 새로운 식물에 학명과 '완도호랑가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완도호랑가시는 호랑가시나무와 감탕나무가 자연 교잡해 만들어진 나무로, 우리나라 완도에서만 자라는 희귀 품종이었다.

고인은 생전에 이 발견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완도호랑가시 이야기만 나오면 "식물학도에게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영광"이라며 "후손이 없는 나에겐 영원히 살아 있을 자식을 하나 만든 것과 다름없다"며 좋아했다.

우리나라 식물학자 중 신종을 발견한 경험이 있는 학자는 50여명에 불과하다. 바꾸어 생각하면 이 땅의 식물 거의 전부는 이미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알아보면 풀과 꽃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은 일반인 글에는 물론, 문인들의 글에도 흔하디흔한 것이 현실이다.

소설가 문순태는 1970년대 소설 습작을 완성하면 서울 동대문구장 뒤편 김동리 선생 댁으로 달려갔다. 선생은 원고를 읽다가 '마을에 들어서자 이름 모를 꽃들이 반겼다' 같은 표현이 나오면 원고를 던져버렸다. "이름 모를 꽃이 어디 있어! 네가 모른다고 이름 모를 꽃이냐!"는 호통이 이어졌다. 선생은 "작가라면 당연히 꽃 이름을 물어서라도 알아야지. 끈적거리는지 메마른지 꽃잎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봐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야지"라고 나무랐다. 자신도 농부들에게 이름을 물어가며 '패랭이꽃'이라는 시를 쓴 일화도 알려주었다. 문순태는 "그 말씀을 듣고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식물도감을 샀다"며 "그 후로는 물가 습지식물인 물봉선이 '산꼭대기에 피어 있었다'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사하촌', '모래톱 이야기'의 작가 김정한도 후배 문인들이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을 쓰면 "세상에 이름 모를 꽃이 어딨노! 이름을 모르는 것은 본인의 사정일 뿐. 이름 없는 꽃은 없다! 모름지기 시인 작가라면 꽃 이름을 불러주고 제대로 대접해야지!"라고 꾸짖었다. 선생의 문학과 생애를 기리는 요산문학관에는 선생이 손수 익모초·광대나물·배초향·꿀풀 등 주변 식물들을 그려가며 정리한 식물도감이 남아 있다. 김동리는 순수문학, 김정한은 참여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는데, 풀꽃 이름을 정확히 쓰라는 면에서도 놀랍게도 비슷한 일화를 남긴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의 작가 고 이청준 선생도 '식물 박사'였다. 그와 답사를 가면 풀과 나무 이름을 끝없이 들을 수 있었다. 식물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한 소설가 홍성원이 식물 얘기를 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막히거나 틀린 부분이 나오면 지적할 정도였다. 이청준추모사업회 김병익 회장은 "선생의 글에는 생생하고 정확한 식물 표현들이 가득하다"고 회고했다.

대가들의 지적이 없더라도, 대상의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분명하다. 전 국민의 애송시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영변의 약산 이름 모를 꽃'이라고 했으면 지금처럼 사랑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문인들은 몰라도 일반인들이야 꽃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풀꽃 이름을 알고 바라보는 것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름을 아는 것은 대상과 '아는 사이'가 된다는 뜻이다. 도심에 많은 팬지·피튜니아·마리골드·베고니아 등 '4대 길거리 꽃'과 은행나무·버즘나무·느티나무·벚나무·이팝나무·회화나무·메타세쿼이아 등 7대 가로수 정도만 알아도 거리를 걸을 때 느낌이 다를 수 있다.

더구나 이름을 알면 풀꽃 특징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늘말나리라는 꽃 이름을 알면 꽃이 하늘을 향해 피고, 잎은 줄기를 빙 돌려 달린다는 특징을 좀 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돌단풍이라는 이름에서 돌 사이에 피고 잎이 단풍 모양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도 있다.

이름 모를 풀꽃을 보고 그냥 지나치면 영영 이름을 알 수 없다. 요즘은 꽃 이름 알기가 전보다 수월해졌다. 전에는 도감류를 뒤지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좋은 야생화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 그냥 도감이 아니라 계절별·색깔별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책이 많고, 꽃 사진을 올리면 '고수'들이 즉각 이름을 알려주는 사이트도 많다. 풀꽃 이름을 아는 만큼 세상이 환해진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1978년 가을 천리포수목원 설립자인 고(故) 민병갈(Carl Miller) 원장의 눈이 반짝였다....그는 여러 경로로 체크해 신종임을 확인하고, 새로운 식물에 학명과 '완도호랑가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완도호랑가시는 호랑가시나무와 감탕나무가 자연 교잡해 만들어진 나무로, 우리나라 완도에서만 자라는 희귀 품종이었다....고인은 생전에 이 발견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완도호랑가시 이야기만 나오면 "식물학도에게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영광"이라며 "후손이 없는 나에겐 영원히 살아 있을 자식을 하나 만든 것과 다름없다"며 좋아했다.

우리나라 식물학자 중 신종을 발견한 경험이 있는 학자는 50여명에 불과하다. 바꾸어 생각하면 이 땅의 식물 거의 전부는 이미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 문순태는 1970년대 소설 습작을 완성하면 서울 동대문구장 뒤편 김동리 선생 댁으로 달려갔다. 선생은 원고를 읽다가 '마을에 들어서자 이름 모를 꽃들이 반겼다' 같은 표현이 나오면 원고를 던져버렸다.

 

'사하촌', '모래톱 이야기'의 작가 김정한도 후배 문인들이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을 쓰면 "세상에 이름 모를 꽃이 어딨노! 이름을 모르는 것은 본인의 사정일 뿐. 이름 없는 꽃은 없다! 모름지기 시인 작가라면 꽃 이름을 불러주고 제대로 대접해야지!"라고 꾸짖었다. 선생의 문학과 생애를 기리는 요산문학관에는 선생이 손수 익모초·광대나물·배초향·꿀풀 등 주변 식물들을 그려가며 정리한 식물도감이 남아 있다.

 

'당신들의 천국'의 작가 고 이청준 선생도 '식물 박사'였다. 그와 답사를 가면 풀과 나무 이름을 끝없이 들을 수 있었다. 식물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한 소설가 홍성원이 식물 얘기를 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막히거나 틀린 부분이 나오면 지적할 정도였다. 이청준추모사업회 김병익 회장은 "선생의 글에는 생생하고 정확한 식물 표현들이 가득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풀꽃 이름을 알고 바라보는 것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름을 아는 것은 대상과 '아는 사이'가 된다는 뜻이다. 도심에 많은 팬지·피튜니아·마리골드·베고니아 등 '4대 길거리 꽃'과 은행나무·버즘나무·느티나무·벚나무·이팝나무·회화나무·메타세쿼이아 등 7대 가로수 정도만 알아도 거리를 걸을 때 느낌이 다를 수 있다.

풀꽃 이름을 아는 만큼 세상이 환해진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ㅎㅎ...^-^

 

- 2013년 6월4일 화요일...수산나 -

 

팬지

 

폐츄니아

 

프렌치 메리골드(공작초)

 

베고니아

 

은행나무...잎과 수꽃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수꽃...ㅎㅎ...^-^

 

양버즘나무(프라타너스)...잎과 열매...^-^

 

느티나무...잎...^-^

 

산벚나무...잎과 열매

 

 

이팝나무...잎과 꽃...^-^

 

회화나무...잎과 꽃...^-^

 

회화나무...열매...^-^

 

메타세콰이어

 

메타세콰이어...새로 나는 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