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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박물관·사당

수원화성박물관 사진 118장을 블로그에 올린 소감(2013.12.3.화)-27장

[수원화성박물관 사진 118장을 블로그에 올린 소감]

 

2013년 11월22일 금요일에 계모임 회원 4명이 수원의 화성을 탐방했다...^-^

일정은 <화성행궁→ 서장대→화성순환열차 타기→화성성곽길 답사→수원화성박물관 관람> 이었다...^-^

 

화성성곽길을 답사 하고...회원 중 1명이 수원화성박물관을 들르자는 의견에 따라 안내지도를 보고...

성곽길의 '창룡문'을 거쳐 박물관을 찾아갔는데...박물관이 있음직(?)한 지점이 공사중이었다...ㅠㅠ...^-^

공사 중이라 박물관 관람이 불가한 것 같으니...집으로 귀가하느냐 마느냐 설왕설래 하였다...ㅎㅎ...^-^

 

안내리프렛을 보고 전화상담을 해보니...공사 중인 건물은 팔달구청 건물이고...그 뒤에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ㅎㅎ...^=^ 

박물관에서 사진촬영을 한 것을 블로그에 올리니... 축성실-68장, 문화실-50장 이다...ㅎㅎ...^-^

118장 사진내용 중 중요한 것 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ㅎㅎ...^-^

 

【축성실】

① 세계문화유산-『수원 화성』/ 세계기록유산-『화성성역의궤』등재

② 정조가 그린 국화그림(보물 744호) / 파초(보물 743호-복제본)

③ '개혁의지를 천하에 알리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정조의 즉위 첫날 선포...^-^

④ '묘에서 원으로 격을 높이다' -사도세자 무덤

⑤ '축성을 계획하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의 영향을 정조가 받았으며... 규장각의 신진관료 '정약용'에게 축성계획을 지시...^-^

⑥ '조직운영의 묘를 살리다' ...완벽한 '공사실명제'의 실시...^-^

⑦ '효율적인 관리체제로 완성되는 화성' ...임금, 보상 등으로 운영일꾼들의 사기를 붇돋우다...^-^

⑧ '거중기, 화성건설에 이용하다' ...정약용이 저술한 「기중도설」에 거중기 설명...^-^

⑨ '국왕, 행궁에 머물다' ...340칸에서 576칸으로 확대증축...^-^

⑩ 낙성연 재연모형...정조가 낙성연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숙선옹주가 홍역에 걸리자 정조는 원자를 데리고 규장각 옆 '이문원'으로 피신을 갔다...ㅠㅠ...^-^

⑪ '시전' 재연모형...화성 중앙 십자로 주변에 형성...^-^ 

 

【문화실】

1795년 정조의 행차와 군사 개혁의 핵심인 장용영, 초대 화성유수이자 화성성역 총리대신인 채제공 기증유물을 보여주는 공간 

② 화성원행도...화성성묘전배도/낙남헌방방도 /서장대성조대/봉수당진찬도/낙남헌양로연도/득중전어사도/시흥환어행렬도/노량주교도섭도...8개의 병풍(?)그림

② 백성과 하나 되다..." 신풍루사미도 / 낙남헌양로연도 " 안내문

③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빌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진찬연) 재연모형

④ 번암 '채제공'의 초상화... 임금이 하사한 부채와 선추, 군주의 은혜에 감격하는 번암 자필의 찬문 있음...^-^

⑥ 화성공심돈 전투상황 재연모형...장용영 군사....^-^

⑦ "화성은 1997년 12월6일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⑧「원행을묘정리의궤」에 의거한 정조의 8일간의 행차를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 추진 예정이다.

 

- 2013년 12월3일 화요일...수산나 -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화성은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된 수원의 읍성입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산 아래 있던 관청과 민가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시키고 이곳에 화성행궁과 함께 화성을 축성하였습니다.
화성은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이 잘 반영되어 있으면서 방어기능이 뛰어나, ‘성곽의 꽃’이라도 불립니다. 또한 축성에 관한 모든 기록을 『화성성역의궤』에 남겨 이 책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 화성성역의 궤 화성전도 사진                       화성성역의 궤 사진
  • 화성성역의궤 화성전도                                                             화성성역의궤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정조가 그린 국화그림(보물 744호) / 파초(보물 743호-복제본)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개혁의지를 천하에 알리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안내문...^-^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즉위 첫날인 1776년 3월10일 정조가 한 말이다.

이는 친아버지 사도세자의 정통성을 복권시키기 위한 준비이자, 반역죄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처지 때문에

발생할지도 모를 왕위의 정통성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였다.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묘에서 원으로 격을 높이다' 안내문

 

양주 배봉산(현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 시립대학교 뒷산)에 있던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은 '수은묘'로 불리며 세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정조는 1776년 3월에 즉위하면서 사도세자의 무덤을 '영우원'으로 격상하여 세자의 지위를 회복시켰고,

경모궁(현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자리)이라는 사당도 만들었다.

그로부터 13년의 세월이 흐른 1789년, 정조는 다시금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의 읍치가 자리잡고 있던 '화산'으로 옮기고

이름도 현명하신 분을 융성스럽게 받든다는 의미를 담은 '현륭원'으로 바꾸면서 정통성 회복을 꾀하였다.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축성을 계획하다' 안내문

 

정조는 규장각 소속인 신진 관료인 정약용에게 축성계획을 지시하였다. 정약용은 정조의 의중을 꿰뚫고 중국과 일본의 성제는 물론

중국을 통해 입수한 서양 과학 기술 서적을 연구하여 1792년 성을 쌓기 위한 이론과 기술을 정리한 「성설」을 정조에게 올렸다.

정조가 축성의 기본 방향을 밝힌 「어제성화주략」에는 그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조직운영의 묘를 살리다' 안내문

 

정조는 화성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건설하여 비용과 노력을 줄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공사 총 책임자인 '채제공'과 화성유수 '조심태'를 비롯하여 약 347명으로 이루어진

'성역소'라는 임시기구를 만들어 현장을 관리 감독하게 하였다. 

 

"완벽한 공사실명제의 추진으로 공사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다"

기술적 지식을 가진 장인을 직접 통제하는 '패장'이라는 직책을 두어 공사의 질을 높이고,

또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을 하던 석수와 목수는 '편수'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지휘하게 하였다.

팔달문, 장안문 등 화성의 각 성문에는 공사책임자, 중간간부, 기술자의 이름을 새겨 공사에 대한 책임감을 높였다.

더불어 축성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세계기록문화유산)에는 참여한 기술자와 막일꾼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 놓아 완벽한 공사실명제를 추진하였다.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효율적인 관리체제로 완성되는 화성' 안내문

 

『화성성역의궤』(세계기록문화유산)~ 화성 축성 당시 전국에서 동원된 석수, 목수, 미장이와 같은 장인들이 직종별, 지역별로 나뉘어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장인들의 이름, 일한 곳, 날자, 능력에 따라 다르게 주어졌던 임금과 관련된 정보도 담겨있다.

또 화성 건설 과정에서 수용된 집이나 논밭에 대한 보상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 일꾼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가 본래 10년으로 계획된 작업 기간이 33개월로 단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튼튼한 성이 완성되었다....good!..ㅎㅎ...^-^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거중기, 화성건설에 이용하다' 안내문

 

정약용이 저술한 「기중도설」에 거중기에 대하여 그림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실려있으며 1794년 화성을 건설할 때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거중기를 만들게 된 것은 정약용의 창의적인 생각과 정조가 왕실에 있던 서양과 중국의 기술서적을 연구하게 한 결과였다. 

명나라 때 중국에 온 선교사 겸 과학자 요한네스 테렌즈(중국이름:등옥함)가 지은 「기기도설」이 참고가 되었다.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국왕, 행궁에 머물다' 안내문

 

처음 화성행궁은 1790년에 340칸으로 완성되었으나 화성 축성과정에서 대대적인 증축을 하여 576칸으로 확대되었다.

정문이름은 '신풍루'...중심건물은 봉수당...행사용 건물은 낙남헌...^-^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화성행궁에서의 낙성연 모형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낙성연, 다 함께 화성행궁 완공을 축하하다' 안내문

 

정조가 낙성연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궁중에 홍역이 돌아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가 홍역에 걸리자 정조는 원자를 데리고 규장각 옆 '이문원'으로 피신을 갔다...ㅠㅠ...^-^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시전' 모형 

 

수원화성박물관 축성실...'시전' 안내문

 

신도시 화성 중앙에는 십자로를 생성...남쪽으로 팔달문, 북쪽으로 장안문, 서쪽으로 화성행궁, 동쪽으로 창룡문이 연결된다.

시전은 십자로 주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여 수도권 상업 유통의 중심을 이루었다.

 

 

문화실 문화실 내부 모습

 

1795년 정조의 행차와 군사 개혁의 핵심인 장용영, 그리고 초대 화성유수이자 화성성역 총리대신인 채제공 기증유물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화성에서 거행함으로써 드러냈던

  부모에 대한 효, 왕조의 권위회복, 그리고 애민정신을 패널과 모형을 통해 전시됩니다.
왕권강화를 위해 창설된 장용영 군사들의 무기와 무예, 서북공심돈에서의 가상전투 장면을 통해 수도 남쪽을 방어하는 화성의 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유물보기
  • 봉수당진찬연 사진          체제공초상 시복본 사진         선추 사진        화성의 무예 사진         화성부성조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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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화성성묘전배도/낙남헌방방도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서장대성조대/봉수당진찬도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낙남헌양로연도/득중전어사도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시흥환어행렬도/노량주교도섭도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백성과 하나 되다' 안내문

  

" 신풍루사미도 / 낙남헌양로연도 "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빌다' 안내문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천년 만의 경사, 혜경궁 회갑잔치' 안내문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봉수당 진찬연' 모형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원행...봉수당 진찬연 안내문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체재공의 초상화'

  

1791년 채제공 73세 때에 그린 초상화로, 화사 이명기가 41세의 정조 어진을 그린 후 정조의 명을 받아 그렸다.
초상화는 번암이 오사모에 분홍빛 단령을 입고 화문석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좌측 눈의 사시 기운까지 표현되고 있는 점에서 매우 사실적임을 알 수 있다.
좌측에는 ‘임금이 하사한 부채와 선추는 물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 군주의 은혜’라고 감격하는 번암 자필의 찬문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 독특하게 손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정조의 하사품인 부채를 드러내 보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화성공심돈 전투상황 재연모형...클로즈업

 

화성의 무기들

 

수원화성박물관 문화실...'영원히 기억될 꿈' 안내문

 

"화성은 1997년 12월6일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의거한 정조의 8일간의 행차를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 추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