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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산책·성화

성화 감상-{파올로 베로네세,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만찬>}(2014.5.10.토)/2013년 바티칸 박물전 액자그림 4장

 

작성일   2011-04-24 오전 10:47:54 조회수   486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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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66) 그레고리오 대교황
 
교황 · 예수 · 열 두 제자 함께하는 만찬
 
고종희(한양여대 교수 · http://blog.naver.com/bella4040)
 
 
- 파올로 베로네세,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만찬>, 1572, 477 x 862 cm, 베네치아, 몬테 베리코 성당.
 
 
‘대교황’ 칭호 받은 그레고리오 교황
교회 음악 · 미술 발전에 큰 획 그어
 
 
그레고리오 대교황(540~604)은 위대한(Magnus)이란 의미의 대교황 칭호를 받았는데 역대 교황 중에서 이 칭호를 얻은 교황은 세 분뿐이다.
 
그는 이미 2명의 교황을 배출한 로마의 명문가 출신으로 부친 조르다노는 원로원 의원이었다. 법학을 공부했고,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했으며, 일찍부터 당대 최고 지성인의 소양을 갖추었다. 573년에는 로마 시장이 되었는데 이때의 통치 경험은 이후 교황으로서의 업무에 도움이 되었다.
 
573년 부친이 사망하자 물려받은 유산의 대부분을 교회에 봉헌했으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사업을 했고, 시칠리아에 5개, 로마에 1개의 수도원을 지었으며, 자신이 로마에 지은 성 안드레아 수도원에 들어가서 엄격한 수도자의 길을 갔다.
 
그레고리오는 578년 교황 베네딕토 1세(575~579)에 의해 부제(diacono)로 임명되었다. 579년 12월 로마가 당시 야만족이라 불리었던 롱고바르도 족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교황 펠라지오 2세(579~590)는 그를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교황사절로 파견하여 군사적, 경제적 지지를 받아오게 했다.
 
590년 그레고리오는 로마 시민과 로마 원로원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로마를 침략한 롱고바르도 족을 방어하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그리스도교인으로 개종시켰고, 영국 땅에 자리잡은 이교도인 앵글로색슨 족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것도 그였다. 그의 첫 전기가 그가 선교한 땅 영국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교회 음악과 교회 미술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성화가 우상숭배의 빌미를 제공한다며 교회 미술을 반대했던 이들에게 그림은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알게 해주는 최상의 매체라며 성화 제작을 지지했는가 하면, 오늘날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불리는 성가를 제정한 것도 이 교황의 업적이다.
 
모두 854편의 서간문을 비롯하여 <사목지침>, <그레고리오 전례서>를 비롯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604년 3월 12일 75세의 생을 끝으로 로마에서 영면했다.
 
파올로 베로네세가 그린 이 그림은 그레고리오 교황이 자신의 저택에서 12명의 가난한 이들에게 식사를 베풀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의 붉은 옷을 입은 인물이 교황이고, 그 옆의 검은 옷을 입은 이가 예수님이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자신의 식사에 초대된 가난한 이들로 그린 것인데 당시 베네치아의 화려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이 도시의 주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베로네세는 티치아노, 틴토레토와 더불어 베네치아 르네상스를 이끌어간 3대 화가의 한 사람인데 특별히 교회 역사상 최초로 종교재판소에 회부되어 심문을 당한 화가로 유명하다.
 
사건의 발단은 1572년에 그린 <최후의 만찬>에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난장이를 비롯한 당대인들과 개 등을 등장시킨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자 그는 작품의 제목을 <최후의 만찬>에서 <레위 집에서의 만찬>으로 바꾸는 기지를 발휘했다. 예술가의 자율성과 교회의 입장이 충돌한 첫 사건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서슬 퍼렇던 종교 재판소조차도 작품 제목을 바꾼 것을 용납함으로써 사건을 마무리했다. 최고의 예술은 정치적 목적을 초월하여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역사는 말해주는 듯하다.
 
[가톨릭신문, 2011년 3월 27일]

 

 

 

[성화 감상 {파올로 베로네세,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만찬>}]

 

매일 아침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카톨릭 굿뉴스의 매일미사와 우리들의 묵상'을 읽는 것이다...^-^

읽다가 좋은 글은 발췌하고...발췌글은 다시 짧은 요약글로 추리고...마지막에 기도문을 작성한다...^-^

기도문을 네이버블로그에 올릴 때는 '이미지'를 삽입하는데...

요즘은 카톨릭 굿뉴스-자료실의 '이콘, 성화해설' 란을 검색하여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여 올린다...ㅎㅎ...^-^  

공부하는 재미로, 나의 신앙을 무럭무럭 성장시켜주는 기분이 들어 즐겁게 한다...ㅎㅎ...^-^

 

어제는 ①미켈란젤로의 '부활' 드로잉을 감상했고,

오늘은 ②파올로 베로네세의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만찬> 그림을 감상했다.

 

카톨릭 굿뉴스-우리들의 묵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이 올라온다...^-^

오늘은 로마의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강론하신 글이 번역되어 올라왔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먼 나라 로마 교황청의 말씀이 하루~이틀만에 번역과 함께 올라오다니...

비용도 내지않고 무료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이지 감사하다...ㅎㅎ...^-^ 

 

2014년 5월8일(목)요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강론하신 요지는 다음과 같다...^-^

복음화의 세가지 요소들 첫번째; 복음전파를 위한 순종,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두번째; 사람들과의 대화, 그러나 이 대화에서, 여러분은 그 사람들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주님의 은혜을 신뢰할 것, 은총은 모든 관료주의 보다 중요합니다. 무엇이 이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너무도 많은 경우, 우리 성교회의 사람들은 장애물을 만들어내는 공장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은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강론한 말씀 중 나에게 감동을 준것은...

"세번째; 은총은 모든 관료주의 보다 중요합니다. 너무도 많은 경우, 우리 성교회의 사람들은 장애물을 만들어내는 공장입니다."

 

성교회의 사람들이 '장애물을 만들어내는 공장!!'...관료주의로 변질되는 각종 규제들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적극 동의한다...ㅠㅠ...^-^

 

성당의 성물방 판매자가  "대성전에 들어갔다 나온 선물은 '성물'로 변질되므로...다른 사람에게 되팔수없는 성스러운 물건이라서 교환해줄 수 없다."는...

논리는 성교회법 몇조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ㅠㅠ...^-^

목소리 깔고 점잖은 자세로 단호하게... 성교회법(?)이 이렇다면서 아랫사람 훈계하듯 훈장질(?) 하는데...별 수가 없다...ㅠㅠ...^-^

2중 3중 겹겹이 '장애물을 만들어내는 공장!!' 성교회의 각종 규제와 규칙때문에...

자유를 찾으려고 갔다가...자유를 옭아매는 감옥을 체험하고...상처받고 돌아선 신자가 한둘이 아니리라...ㅠㅠ...^-^

 

프란체스코 교황의 '장애물의 만드는 공장!! 성교회!!' 말씀에 감동받아...기도문을 작성하고...찾아낸 이미지가...

②파올로 베로네세의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만찬> 성화 이다...ㅎㅎ...^-^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교회 음악과 교회 미술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성화가 우상숭배의 빌미를 제공한다며 교회 미술을 반대했던 이들에게 그림은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알게 해주는 최상의 매체라며 성화 제작을 지지했는가 하면, 오늘날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불리는 성가를 제정한 것도 이 교황의 업적이다.

 

파올로 베로네세가 그린 이 그림은 그레고리오 교황이 자신의 저택에서 12명의 가난한 이들에게 식사를 베풀고 있는 모습이다.

베로네세는 티치아노, 틴토레토와 더불어 베네치아 르네상스를 이끌어간 3대 화가의 한 사람인데 특별히 교회 역사상 최초로 종교재판소에 회부되어 심문을 당한 화가로 유명하다.
 
사건의 발단은 1572년에 그린 <최후의 만찬>에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난장이를 비롯한 당대인들과 개 등을 등장시킨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자 그는 작품의 제목을 <최후의 만찬>에서 <레위 집에서의 만찬>으로 바꾸는 기지를 발휘했다. 예술가의 자율성과 교회의 입장이 충돌한 첫 사건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서슬 퍼렇던 종교 재판소조차도 작품 제목을 바꾼 것을 용납함으로써 사건을 마무리했다.

 

최고의 예술은 정치적 목적을 초월하여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역사는 말해주는 듯하다.

 

2014년 4월17일 목요일 성만찬일에 프란체스코 교황이 12명의 사람들에게 세족례를 하셨다는 소식을 보았다...^-^

이날은 내가 죽어도 아마 잊지 못할 날인데.....

이유는 그 전날인 2014년 4월16일 수요일...사순시기의 마지막날에 '세월호' 침몰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교황청의 관례에 의하면 교황의 세족례 대상자는 12사도를 표징하는 남자만을 하는 것이 원칙이나...

프란체스코 교황은 파격적으로 여자와 이교도를 포함하는 12명의 대상자에게 세족례를 했다는 소식이 올라와 감동받았는데...

오늘 ②파올로 베로네세의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만찬> 성화에 난장이와 개를 등장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종교재판소에 회부되어 베로네세는 심문을 당했다...^-^

다행히 <최후의만찬>을 <레위 집에서의 만찬>으로 제목을 바꾸어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ㅎㅎ...^-^

 

예술가의 자율성과 교회의 입장이 충돌한 첫 사건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서슬 퍼렇던 종교 재판소조차도 작품 제목을 바꾼 것을 용납함으로써 사건을 마무리했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이 있어 사회와 문화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쪽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니 예술가들이 존경스럽다...ㅎㅎ...^-^

 

                                                                         - 2014년 5월10일 토요일...부활제3주간 토요일...수산나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2013년 바티칸 박물전' 아트샵 액자그림 1

 

"프라 안젤리코'의 <성 도미니코,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예수>"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2013년 바티칸 박물전' 아트샵 액자그림 2

 

"라파엘로 산치오' 의 <아테네 학당>"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2013년 바티칸 박물전' 아트샵 액자그림 3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의 <난파하는 배를 구하는 성 니콜라스> 142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2013년 바티칸 박물전' 아트샵 액자그림 4

 

"주세페 체사리'의 <주님 탄생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