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여행]
한달에 한번 세번째 화요일에 트레킹을 하는 고등학교 동창모임이 있다...
일명 '삼화회'라고 하는데...2014년 올해 3월 부터 시작하여 10월이 8차 모임이다...ㅎㅎ...
10월 8차모임에는 비오는 날...충주로 여행을 떠났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충주에 있는 동창네 '양의문 교회'를 방문하여 비빔밥 점심식사→ 충주댐, 충주호변 산책→충주댐 물문화원 주변 카페 '솔뱅'에서 커피와 차, 담화
→탄금대(명승 제42호) 관람→동창네 글로텍(주) 방문→명성가든, 저녁식사→귀가
28인승 리무진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 버스 또한 동창친구가 여러번 거래하여...운전기사님과 더불어 서비스와 친절 등이 검증된 버스라고 한다...ㅎㅎ...
죽전정류소에서 오전 10시 쯤 리무진 버스를 탑승하게 되었는데...
탑승하자마자...청양고추가 들어간 맛있는 김밥, 따끈따끈한 홍설기(?)떡. 귤, 작은 사과 등 먹거리가 분배된다...ㅎㅎ...
김밥 도시락은 동창 중 한 친구가 희사한 것이라고 한다...ㅎㅎ...
일단 김밥 도시락 1개를 해치우고나니...배가 불러 다른 것은 먹을 수가 없어 가방 속에 일단 보관을 했다...ㅎㅎ...
충주에 있는 '양의문'교회를 방문하여...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원주에 있는 친구가 공수해왔다는 귀한 싸리버섯과 고사리. 호박채나물, 콩나물, 무채나물 등과 계란후라이가 들어간 비빔밥이다...
아욱국과 겉절이 김치가 함께 나왔는데...베가 불러 못 먹을 줄 알았는데...맛이 좋아 그런지...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ㅎㅎ...
점심식사 후 친구들의 인증샷을 촬영하고...2층 성전 내부 촬영도 하고...스트레칭 운동하는 친구들 모습도 촬영했다...
얼마 후, 동창 중 한명이 고창에 있는 땅에서 공수해온 고구마를 1인 1보따리씩 가져가라고 비닐봉지를 나누어준다...ㅎㅎ...
비닐봉지에 담뿍 고구마를 담아 가져가게 되니...이 아니 기쁠손가....ㅎㅎ...
충주댐,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충주댐을 관람하고...충주호변을 걷는데...비가 부슬부슬 내리므로 우산 쓰고 산책이다...
우중에도 울긋불긋 가을의 색이 완연하고 찬란하게 빛나는데...붉은색 단풍이 단연 으뜸으로 맑은 공기를 자랑하는 듯 하다...ㅎㅎ...
충주호변 산책을 한 후...충주댐 물문화관 주변에 있는 카페 '솔뱅'으로 이동을 했는데...
카페로 올라가는 경치가 찬란한 가을색으로 아름답고...카페 내부 분위기도 좋고...카페에서 바라다보는 충주호 경치도 끝내준다...ㅎㅎ...
카페에서 인증샷 사진촬영하고...오랜시간 촉촉(?)하게 대화를 나누며...하하호호 힐링 시간을 가졌다...ㅋㅋ...
아쉬운 시간을 뒤로하고 탄금대(명승 제42호)로 이동했다...
"탄금대는 대문산을 중심으로 남한강 상류와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으며...
신라 552년(진흥왕 13) 가야국에서 귀화한 악사 '우륵'이 이곳에서 금(琴)을 탔다는 것에서 '탄금대' 지명이 유래되었다...^-^
‘달천’은 일명 ‘달래강’이라고도 하는데...여기에는 남매간의 근친상간(近親相姦)에 고민하다 죽은 남매의 슬픈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경기도 성남시 상적동과 금토동을 잇는 달래내 고개... 훼이크.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최초의 고개이자 사실상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 '달래내 고개'도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웃음이 저절로 난다...ㅎㅎ...
탄금대에는 또한 <달천 팔천고혼위령탑>이 충장공 신립장군 동상과 같이 건립되어 있다...<달천 팔천고혼위령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ㅜㅜ...
-달천 팔천고혼위령탑(達川八千孤魂慰靈塔):
신립장군은 23세로 무과에 급제 한 뒤 북방의 야인(野人), 나탕개 등을 정벌하며 혁혁한 공을 세워 조정과 백성들의 신망이 두텁던 명장이었다.
임란이 일어나자 왕은 보검을 하사하며 신립을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에 임명하여 충주로 떠나게 하였다.
이때 경상도 상주 전투에서 대패하고 돌아온 이일(李鎰)이 신립장군과 함께 내려간 종사관 김여물과 함께 왜군은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대군이라지형이 험한 조령(鳥嶺)에 잠복하여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신립 장군은 이를 듣지 않았다.
신립 장군은 “야인(野人)을 물리칠 때 크게 활약한 그의 500 정예 기병만을 믿어서이기도 했지만자기가 거느린 8,000명이 군사는 여차하면 도망가 버리고 말 훈련 받지 못한 농군(農軍)이므로
탄금대에서 배수진(背水陣)을 쳐야 죽기로 싸울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탄금대 전투에서 8,000명의 군인이 모두 전멸당하고 말았다.
적이 예상 되는 길이 아닌 우회하여 쳐들어 왔고, 푹푹 빠지는 논 밭은 기마전을 벌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서였다.
이에 신립 장군과 그 예하 김여물 장군을 비롯하여 8,000여명의전사한 농군들의 넋을 달래고자 2003년에 건립한 위령탑이 달천팔천고혼위령탑(達川八千孤魂慰靈塔)이었다.
이에 충주시에서는 매년 음력 4월 28일 위령제로 외롭게 간 신립 이하 8천 농군의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신립장군이 부하들의 조언을 무시하고...탄금대에서 기마병 500여명을 믿어...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는 바람에 농민병 8,000여명이 전멸되어...
-달천 팔천고혼위령탑(達川八千孤魂慰靈塔)이라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코가 막힌다...ㅜㅜ...
임란 당시에도 백성들이 그 사실을 믿지 못해서인지...처녀귀신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ㅜㅜ...
신립이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밤 늦개 산속의 어느 인가에서 유하게 되었다.
이 집에는 매일 밤 괴물이 나타나서 가족을 하나 하나 잡아다가 죽여 왔는데, 오늘이 마지막으로 그 집 처녀를 잡아갈 차례였다.
이에 신립이 무술로써 그 괴물을 처치하여 처녀를 구해 주었다.
다음 날 신립이 길을 떠나려 할 때 처녀가 함께 따라 나서기를 간청하다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슴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뒤로부터 신립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처녀의 암시(暗示)의 도움을 받아왔다.
신립이 부하들의 조언을 받아 새재에 진(鎭)을 치려할 때였다.
처녀의 원귀기 나타나 권하는 것이었다.
“신 장군님, 대명(大命)을 받들어 왜적을 격멸하러 오셔서 어찌 이와 같이 협착한 새재에 포진하여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려 하시나이까.생각하신 대로 충청도 달천 탄금대에서 배수진(背水陣)을 치시면 크게 대승리다.”
"수산나가 하는 말...귀신도 믿을 것이 못 되네...나쁜 귀신이다...ㅠㅠ..."
탄금대로 가는 진입로는 양쪽으로 소나무가 무성한데...모두 미국 북미지역에서 수입해온 '리기다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조림사업용으로 1959년 집중적으로 식재된 결과라고 한다...ㅜㅜ...
탄금대 관람을 끝내고...동창 남편이 운영하는 글로텍(주) 회사를 방문했다...
회사소개를 받고...공장을 둘러보았는데...기념품으로 종로떡집의 고급떡 1상자를 희사하고...
동창회 기금으로 금일봉을 희사하며...저녁식사도 제공하신다고 한다...ㅎㅎ...
명산가든에서 훌륭한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는데...동창친구를 잘 둔 덕에 넘치는 대접을 받은 듯 하다...ㅎㅎ...
푸군하고 충만한 사랑을 받았으니...받은 사랑을 베풀도록 노력해야겠다...ㅎㅎ...
- 2014년 10월15일 토요일...오후 9시20분...수산나 -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충혼탑 1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충혼탑 2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충혼탑 3...안내문
1955년 11월 충혼탑 건립(현존 충혼탑 중 가장 오래됨)...광복 이후 전사한 충주 중원지역의 2838 위의 넋을 추모하고자 건립...
2004년 5월 충주시에서 호국영령의 위패 추가...2910 위의 위패가 봉안...
매년 6월6일 현충일에 이곳에서 향사를 지낸다...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충혼탑 4...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충혼탑 5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충혼탑 6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충혼탑' / '팔천고혼위령탑 및 충장공 신립장군 동상'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팔천고혼위령탑 및 충장공 신립장군 동상' 1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팔천고혼위령탑 및 충장공 신립장군 동상' 2
-달천 팔천고혼위령탑(達川八千孤魂慰靈塔):
신립장군은 23세로 무과에 급제 한 뒤 북방의 야인(野人), 나탕개 등을 정벌하며 혁혁한 공을 세워 조정과 백성들의 신망이 두텁던 명장이었다.
임란이 일어나자 왕은 보검을 하사하며 신립을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에 임명하여 충주로 떠나게 하였다.
이때 경상도 상주 전투에서 대패하고 돌아온 이일(李鎰)이 신립장군과 함께 내려간 종사관 김여물과 함께 왜군은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대군이라
지형이 험한 조령(鳥嶺)에 잠복하여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신립 장군은 이를 듣지 않았다.
신립 장군은 “야인(野人)을 물리칠 때 크게 활약한 그의 500 정예 기병만을 믿어서이기도 했지만
자기가 거느린 8,000명이 군사는 여차하면 도망가 버리고 말 훈련 받지 못한 농군(農軍)이므로
탄금대에서 배수진(背水陣)을 쳐야 죽기로 싸울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탄금대 전투에서 8,000명의 군인이 모두 전멸당하고 말았다.
적이 예상 되는 길이 아닌 우회하여 쳐들어 왔고, 푹푹 빠지는 논 밭은 기마전을 벌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서였다.
이에 신립 장군과 그 예하 김여물 장군을 비롯하여 8,000여명의전사한 농군들의 넋을 달래고자 2003년에 건립한 위령탑이 달천팔천고혼위령탑(達川八千孤魂慰靈塔)이었다.
이에 충주시에서는 매년 음력 4월 28일 위령제로 외롭게 간 신립 이하 8천 농군의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팔천고혼위령탑 및 충장공 신립장군 동상' 3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팔천고혼위령탑 및 충장공 신립장군 동상' 4
신립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逸話)가 전하여 온다.
-신립이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밤 늦개 산속의 어느 인가에서 유하게 되었다.
이 집에는 매일 밤 괴물이 나타나서 가족을 하나 하나 잡아다가 죽여 왔는데, 오늘이 마지막으로 그 집 처녀를 잡아갈 차례였다.
이에 신립이 무술로써 그 괴물을 처치하여 처녀를 구해 주었다.
다음 날 신립이 길을 떠나려 할 때 처녀가 함께 따라 나서기를 간청하다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슴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뒤로부터 신립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처녀의 암시(暗示)의 도움을 받아왔다.
신립이 부하들의 조언을 받아 새재에 진(鎭)을 치려할 때였다.
처녀의 원귀기 나타나 권하는 것이었다.
“신 장군님, 대명(大命)을 받들어 왜적을 격멸하러 오셔서 어찌 이와 같이 협착한 새재에 포진하여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려 하시나이까.
생각하신 대로 충청도 달천 탄금대에서 배수진(背水陣)을 치시면 크게 대승리다.”
"수산나가 하는 말...귀신도 믿을 것이 못 되네...ㅠㅠ..."
탄금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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