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든 시 한 줄]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중앙일보] 입력 2015.01.07 00:05 / 수정 2015.01.07 00:06
아무 일도 너희에게 일어나지는 않으리./안에 오랜 피가 서려 불길 일으켜/멸하라 멸하라고 분노했어도,/ 두 골짝 고루 비춰 해를 주시는/하느님은 너희들도 사랑하시는 것을,/-악한 자가 어찌 길이 형통하며/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삼 연고니이까?
- 박두진(1916~1998) ‘예레미야는’
악인이 더 잘되는 모순된 세상
신의 뜻에 인간행동이 더해져야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은 신(神)을 바라본다. 그러나 신이 주재한다는 세상도 인간이 주재하는 세상 못지않게 이(利)가 의(義)를 누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80년대 초 대학에 입학해 이런 세상의 모습에 번민하던 젊은 시절, 시인 박두진은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로 시작하는 예레미야의 항변(예레미야 12장 1절)을 화두로 던져주었다. 이는 예레미야의 질문이자 박두진의 질문이었고, 또한 나의 물음이었다. 신이 직접 다스렸다는 예레미야의 시대, 즉 구약(舊約) 시대도 세상은 정의롭지 못했고, 신이 직접 내려왔었다는 신약(新約) 시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예레미야의 질문 위에 녹두장군 전봉준을 추모한 시인 김남주의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를 덧대었다.
“보아 다오, 그들은/강자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자유를 위해 구걸 따위는 하지 않았다/…/성단의 탁자에 손을 얹고 선을 구걸하지도 않았고/돈뭉치로 선을 사지도 않았다”
그렇게 신의 뜻에 인간의 행동이 더해질 때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나를 흔든 시 한 줄]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오늘 아침 중앙일보 [나를 흔든 시 한 줄]에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추천한 시를 소개한다.
박두진(1916~1998)의 [예레미야는’]이 소개되었다...
"멸하라 멸하라고 분노했어도,/ 두 골짝 고루 비춰 해를 주시는/하느님은 너희들도 사랑하시는 것을,/-악한 자가 어찌 길이 형통하며/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삼 연고니이까?"....ㅠㅠ....악한 자가 형통하며, 패역한자가 안락함은 무삼 연고니이까? ...울부짖는 듯한 시이다...ㅠㅠ...
신이 직접 다스렸다는 예레미야의 시대, 즉 구약(舊約) 시대도 세상은 정의롭지 못했고, 신이 직접 내려왔었다는 신약(新約) 시대도 그 모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ㅠㅠ...악인이 더 잘 되는 모순된 세상...ㅠㅠ...
성남행복아카데미 강연이 성남시청 1층 한누리홀에서 진행되는데...
작년 11월27일 목요일 오전 10시30분~12시...<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강연을 그 때 처음 들었다.
주제는 <21세기 한국사의 새로운 길>이었다...
강연을 들으며 기억에 남는 것은...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근거가 없다...ㅜㅜ...
'이인직'의 '혈의누'...최초의 신소설을 써서 선각자로 알고있는 '이인직'은 매국노인 이완용의 비서였고...
나라 팔아먹은 비밀협상의 주인공 이었으며...'혈의 누' 는 1906년 발표한 정치소설인데...
청일전쟁 때 청나라 군인이 조선인을 겁탈하려 할 때... 일본군인이 구해주었다는 내용으로...
"일본이여! 빨리 조선을 먹어(?)주시오!"하는 일본의 선전전술을 위한 책이라고 한다...ㅠㅠ...
강연에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해방후 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교현장에서 가르치는 한국사가 '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현재도 '식민사학자'들이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어서...수정이 힘들다고 하면서...
몸은 해방되었는지 몰라도 정신이 독립되지 않았다고 개탄(?)하였다...ㅠㅠ...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안타까워하고...개탄(?)하는 모습을 강연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와서인지...
오늘 중앙일보 [나를 흔든 시 한 줄]에 이덕일 소장이 소개한 시...'예레미야는'의 공감도가 높다.....
{악인이 더 잘되는 모순된 세상....신의 뜻에 인간행동이 더해져야}한다고 그는 말한다...
필자는 예레미야의 질문 위에 녹두장군 전봉준을 추모한 시인 김남주의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를 덧대었다.
“보아 다오, 그들은/강자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자유를 위해 구걸 따위는 하지 않았다/…/성단의 탁자에 손을 얹고 선을 구걸하지도 않았고/돈뭉치로 선을 사지도 않았다”
자유를 위해 구걸 따위는 하지 않고...선을 구걸하지도 않고...돈뭉치로 선을 사지도 않겠다....
그렇게 신의 뜻에 인간의 행동이 더해질 때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ㅇㅇㅇ...
- 2015년 1월8일 목요일...오후 6시50분...수산나 -
백야기념관
백야기념관...김좌진 장군 흉상
백야기념관...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 안내문
[김좌진장군생가지]
충청남도기념물 제76호. 김좌진장군 생가지 성역화사업은 1989년부터 시작하여 10년 만인 1998년 1월 생가지 및 기념관까지 완공되어 충의정신(忠義精神)의 계승 발전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김좌진장군은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였다. 이듬해에는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설립하여 근대화에 앞장섰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후 대한협회(大韓協會)ㆍ기호학회(畿湖學會)ㆍ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등의 간부를 지냈다.
1913년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 후 13년간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바쳤다. 3ㆍ1운동 후에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총사령관이 되어 1,6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20년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있었던 청산리전투를 총지휘하여 일본군 제19ㆍ21사단을 상대로 격전을 벌여 3,300여 명의 일군을 섬멸시키는 독립군 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그 뒤 부대를 흑룡강 부근으로 이동,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여 부총재를 지냈다.
1925년에는 영안(寧安)에서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여 군사집행위원장이 되었다. 또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세워 부교장을 지내면서 정예군 양성에 주력하였다. 1929년에는 한족연합회(韓族聯合會)를 조직하여 주석이 되어 황무지개간ㆍ문화계몽사업, 독립정신고취와 단결을 호소하였다.
그러던 중 고려공산청년회의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박상인에게 암살당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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