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갖고 있는 것(탈 벤 샤하르, ‘행복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중증 장애인의 몸으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업적을 이루었다. 호킹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크게 절망했다. 의사는 앞으로 2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2년 뒤에도 병세는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 그는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사망하는 환자를 보며 자신이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위로했다. 게다가 그는 열일곱 살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 합격할 정도로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호킹은 사랑하는 가족과 꿈을 위해 ‘움직여 보기로’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불치병이 자신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고 썼다. 매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고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일반인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또한 삶에 낙관적이고 유쾌한 태도를 취했다. 병에 걸리고 나서 여섯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지만 언제나 활기찼다.
하루는 연설을 마친 그에게 기자가 물었다.
“병마가 당신을 영원히 휠체어에 묶어 놓았는데 운명이란 녀석이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호킹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세 개의 손가락을 이용해 타자를 두드렸다. 화면으로 그의 말이 전해졌다.
“내 손가락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고, 두뇌로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꿈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대답을 마친 호킹은 힘겹게 다음 문장을 완성했다.
“아, 그리고 나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순간 현장엔 벅찬 감동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불평불만을 던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입니다.
(요점)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중증 장애인의 몸으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업적을 이루었다. 호킹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크게 절망했다. 의사는 앞으로 2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그는 열일곱 살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 합격할 정도로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불치병이 자신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고 썼다. 매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고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병에 걸리고 나서 여섯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지만 언제나 활기찼다.
“내 손가락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고, 두뇌로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꿈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대답을 마친 호킹은 힘겹게 다음 문장을 완성했다.
“아, 그리고 나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순간 현장엔 벅찬 감동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임마누엘 칸트 여담 ¶
칸트의 무덤 |
[출처]엔하위키미러
(요점)
평생 자기가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반경 30km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키가 작고(150cm 가량) 등이 굽어 꼽추처럼 보였다고 한다.[18] 용모가 추했지만 가보지도 않았던 다리의 어느 부분에 나사가 몇 개 박혀있는지를 맞출 정도로 박식하고 기억력이 좋았다. 매일 3시 30분이 되면 산책을 해서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딱 두 번, 한 번은 루소의 책 에밀을 읽다가, 그리고 또 한 번은 프랑스 혁명을 보도한 신문을 읽다가 산책을 빼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지만 다년간에 걸친 학문활동의 결과 대학에서 수많은 과목을 맡아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하며, 마음먹고 이빨을 까면 어디 가 보지도 못한 지역이나 본 적도 없는 동식물들에 대해 떠들어대는데도 학문적으로 하자가 없고 너무도 흥미로운 나머지 학생들은 눈과 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강좌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강좌는 세계지리. [19]
체구가 왜소하고 용모가 추했기에 나이를 많이 먹을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어떤 여인이 청혼을 하게 된다. 칸트는 그녀에게 '생각을 좀 해볼테니 기다려 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도서관에 가서 사랑과 관련된 책을 모두 읽은 후 결혼을 해야할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모두 썼다. 결국 결혼을 해야할 이유가 4개 더 많아서 결혼을 승낙하려고 했는데...7년이 지나있었다. 물론 그 여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서 망했어요.
맙소사
죽기 직전 칸트는 집안인을 오랫동안 봐온 늙은 하인에게 와인 한잔을 청해 마시고는 "아, 좋다!(Et ist gut!)"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사망했는데 장례식날 고향인 콰니히스베르크 시 전체가 휴무에 들어가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으며 수천명의 사람들이 운구행렬의 뒤를 따르고 시내의 모든 교회가 같은 시간에 조종을 울리는 등 위대한 철학자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임마누엘 칸트의 어록...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1][2]
모든 것은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경험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3]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 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법칙)이다.[4]
[스티븐 호킹과 임마누엘 칸트의 내적 탐구심]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불치병에 걸린 스티븐호킹...의사는 앞으로 2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선고했지만...
매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고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병에 걸리고 나서 여섯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지만 언제나 활기찼다.
“내 손가락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고, 두뇌로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꿈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나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임마누엘 칸트...
평생 자기가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반경 30km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키가 작고(150cm 가량) 등이 굽어 꼽추처럼 보였다고 한다.[18] 용모가 추했지만 가보지도 않았던 다리의 어느 부분에 나사가 몇 개 박혀있는지를 맞출 정도로 박식하고 기억력이 좋았다. 매일 3시 30분이 되면 산책을 해서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딱 두 번, 한 번은 루소의 책 에밀을 읽다가, 그리고 또 한 번은 프랑스 혁명을 보도한 신문을 읽다가 산책을 빼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지만 다년간에 걸친 학문활동의 결과 대학에서 수많은 과목을 맡아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하며, 어디 가 보지도 못한 지역이나 본 적도 없는 동식물들에 대해 떠들어대는데도 학문적으로 하자가 없고 너무도 흥미로운 나머지 학생들은 눈과 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강좌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강좌는 세계지리....
모든 것은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경험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칸트)
스티븐호킹...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일반사람들이 겪는 체험이나 경험이 절대다수로 부족했지만 자기만의 내면세계에 빠짐으로 불후의 업적을 남기지 않았는가?
임마누엘 칸트...평생 자기가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를 떠나지 않았다. 반경 30km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박학다식하여
어디 가 보지도 못한 지역이나 본 적도 없는 동식물들에 대해 강의하는데도 학문적으로 하자가 없고 너무도 흥미로운 나머지 학생들은 눈과 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강좌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강좌는 세계지리....ㅋㅋㅋ...
경험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내재화 하는 능력도 중요하리...ㅎㅎ...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칸트이지만...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세계지리 강좌를 했다고 한다...ㅋㅋ...
책이나 대화에서 습득한 간접경험을 이용했었으리라...ㅎㅎ...
요즘 세태는 해외여행이 대세다...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 생활상, 인간군상, 우리나라와의 비교 등' 체험담을 들려주면... 체험기부 내지 체험나눔이 되어 듣는 사람도 득템이 될텐데...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이런 사람 꼭~ 있다...
"(당신) 그곳에 가보았어. 꼭 한번 가보아. 정말 좋아..." 하면서 가보았는지 확인사살(?)하면서 가보기를 종용한다...한번 혹은 두번의 종용은 그런대로 넘어간다...
3번째를 넘는 종용을 하면...나도 뚜껑이 열려 머리에서 김이 나기 시작한다...(♨물론 속으로만 열받아 김이 나는 것)...
요즘 아이들 4세대의 말처럼 "헐"소리가 난다.......(♥ 내가 해외여행을 가든말든 무슨 간섭이란 말인가 하면서 속으로만 '헐' 한다.)
(※헐...어이없다 의미의 한숨소리)
그러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임마누엘 칸트 / 스티븐호킹' 이지만...
해외여행을 해보라고 3번이상 종용하는 사람에게 그 말을 해본들...구차하게 내가 변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으므로...
너와 나의 생각의 차이...다름의 차이가 '틀림의 차이'는 분명 아닐 것이므로...그냥 말없음으로 넘어간다...ㅎㅎ...
스티븐호킹의 자기세계로의 빠짐으로 인한 내적여행......
임마누엘 칸트의 책속으로 빠짐과 내면세계로의 여행.....
야생화 꽃 속에 있는 암술, 수술, 꽃가루, 씨방의 모습 등 그 내밀한 모습으로의 여행....
이 또한 해외여행 만큼 멋지지 않은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가 생각난다...ㅎㅎ...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ㅎㅎ...
- 2015년 3월5일 목요일...오후 2시30분...수산나 -
(사족 ※헐...어이없다 의미의 한숨소리)
부천 원미산 진달래꽃 풍경 1
부천 원미산 진달래꽃 풍경 2
부천 원미산 진달래꽃 풍경 3
부천 원미산 진달래꽃 풍경 4
부천 원미산 진달래꽃 풍경 5
부천 원미산 진달래꽃 풍경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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