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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성서

[그룹성서 요한반 제3차 수업] (2019.3.25.월)/일만위성지 성모칠고 등 10장


[그룹성서 요한반 제3차 수업] (2019.3.25.월)
일시: [2019년 3월25일 월요일. 10시~12시]
장소: 분당 요한성당 B230

참가자: 11명+말씀봉사자=12명 / 2명 결석(김**안나, 이순*)

기도 및 간식: 양** 요안나 보스코


입강: 성가 34장, 기도 '사순절 기도 시/이해인'


본강: 제1과 서곡: 말씀 찬가...묵상과 생활 1번~4번


묵상과 생활 1. 말씀 찬가(1,2-18) 가운데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구절이나 단어는 무엇이며 왜 그렇습니까?


마음에 닿는 구절은? 1장12절

-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마음에 와닿는 단어는? 1장13절의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


왜 그렇습니까?

1장18절의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신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그분의 신성을 부여받게 되므로 은총 중의 은총이다.


묵상과 생활 2.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어둠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은 무엇이며, 이 공동체적인 어둠이 빛으로 밝혀지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작년에 그룹성서 마르코복음을 배웠다. 작년 지리신 피정의 집에 갔을 때, 조진무 관장 신부님께서 반갑게도 마르코복음에 대한 강의를 하셨다. 그분께서 마르코복음에서 화두로 생각해야 할 주제는 '이미'와 '아직'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귀에 쟁쟁하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있다. 그러나 아직 충분한 것이 아니다.'...'하느님 사랑은 이미 와있다.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며 살 것을 당부하셨다.


수지성모교육원에서 마르코복음 종강연수를 했다.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 원장이신 김효준 신부님이 강사이셨다. 그분께서 마르코복음의 주제는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셨다.

어둠이라 할 수 있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빛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아직 그 빛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이 세상이다.


지난 월요일(2019.3.18)에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에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사순절 담화문이 올라왔다. '일상생활의 위선'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자기 자신을 실천하는 카톨릭신자라고 부르는 카톨릭 신자들 조차도 사람들을 착취합니다." 교황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너무나 자주 그들은 여름이 시작될 때, 자신들의 일꾼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고 그들이 연금을 받을 자격이 없도록 결국 돌려 보내면서 그들에게 굴욕감을 주고 착취합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자기 자신을 카톨릭 신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주일마다 미사에 갑니다. 이런 종류의 행동은 매우 심각한 죄 입니다." 교황이 말했습니다.


이러한 어둠의 상황이 죄임을 인지하고 깨닫기 위해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순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착취받고 있는 이들을 보시면서...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슬피 탄식하실 것을 생각하면서...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어린이, 소외된자, 병든자, 죽은자, 착취받는자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면...예수님의 마음으로 깨어있는 사람이 된다면...그것이 세상의 어둠을 빛으로 밝혀내는 일이고,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묵상과 생활 3. 당신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습니까? 확실히 믿는다. 어느정도 믿는다. 형식적으로 믿는다.

당신 삶의 구체적인 현실에 그 믿음은 어떻게 작용합니까?


- 확실히 믿는다 -


인류역사에 개입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확실히 믿는다."


모세가 십계명을 율법으로 받아들인 시대의 '여자'는 한낱 재물의 일부였다. 그러나, 오늘 날 완정하지는 않지만 남녀평등이 이루어져 참정권과 투표권 등 여자도 남자와 비슷하게 그 권리를 인정 받았다.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양반, 중인, 상놈 등의 계급차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백정, 상놈 등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또 다른 형태의 바벨탑이 쌓아져 새로운 차별이 생겨나는 조짐의 우려가 있긴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여 단연코 바벨탑을 무너뜨리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믿음은 나의 경우 희망이다.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인류 역사에 작용하여 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희망하는 한 믿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묵상과 생활 4. 요한 복음서 공부를 하는 중에 혹은 마친 다음에 당신은 어떤 은총을 받고 싶습니까?


수지 성모교육원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이애리 마리베로니카 수녀님으로 부터 입문강의를 들었다.

로고스찬가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은 '어린이도 건널 수 있는 얕은 시냇물이면서도, 코끼도 빠져 죽을 수 있는 깊은 강'이라고 한다.


창세기를 1년간 배우면서 나는 '자비'의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악인이나 선인 모두에게 비를 내리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떠올리면서, 선과 악의 기준으로 무언가를 판별하려는 마음을 비우기로 노력한다.


탈출기를 1년간 배우면서 '탈출(엑소도스)', '파스카(건너감)'의 단어를 접하면서 '변화'의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소심하여 안주하고자 하는 습성이 강한 나를 <변화>하는 새 사람으로 탈피하려고 노력한다. 패턴화될 때 그 안에서 죄가 싹튼다는 말에 동의한다. 미인대회의 기준이 만들어져 공고해진다면, 그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은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 내 마음 속에 인간이 만든 기준을 무너뜨리고, 하느님이 만든 기준으로 나를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게 한 것이 탈출기에서 배운 은총이다.


마르코 복음에서의 은총은 '이미'와 '아직'이다. 지리산 피정 마지막 미사를 하시고, 4일 후 11월8일 목요일에 교통사고로 선종하신 조진무 도미니코 신부님의 화두, 나에게 유언같은 말씀의 은총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이미 나에게 왔다. 그러나 충분한 것이 아니다."라는 그분의 화두를 떠올리며 '하느님의 사랑을 충분하게 느끼는 세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하느님의 뜻과 상반되는 길을 내가 가고 있다면 회개하여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는, 지속적인 점검의 태도, 평생 학인의 자세,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의 시간을 많이 가지리라 생각을 했다.


올해 1년, 요한복음에서 나는 과연 어떤 은총을 받아야 하는가? 떠올려 봅니다...입문강의 시간에 필기한 노트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어느 부분이 가장 나의 마음을 울리는가? '영광'이란 단어가 가장 솔깃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을 모두 하나의 연속된 사건으로 보며, 이 전체를 하느님의 영광으로 표현하였다.'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영적인 삶이 판가름 난다고 한다.

나의 취미는 성지순례가서 '십자가의 길'기도를 봉헌하고, 사진촬영 하는 것이다. 성지순례 가서 순교를 영광으로 받아 들였던 순교자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배우고 떠올린다. 그들의 인간적인 고통과 아픔, 사회적인 압박,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게 하는 면면히 이어져 오는 강인한 정신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십자가의길 기도를 봉헌하면서...예수님이 가신 영광의 길을 떠올린다....3번이나 넘어지시고...시몬의 도움을 받고...베로니카의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시고...못 벗김 당하시며...십자가에 못 박혀서 결국은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내 앞에 닥친 그 어떤 고통도 영광된 삶으로 받아 들일 수 있으리라...영광의 은총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룹성서 요한반 간식



일만위성지...성모칠고


일만위성지...성모칠고...1. 시메온의 예리한 칼날 예언


일만위성지...성모칠고...2. 에집트 피난


일만위성지...성모칠고...3. 성전에서 아들을 잃음


일만위성지...성모칠고...4.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만남


일만위성지...성모칠고...5. 십자가에 달린 아드님을 바라봄


일만위성지...성모칠고...6. 십자가에서 아드님의 시신을 받음


일만위성지...성모칠고...7. 아드님을 무덤에 묻음


일만위성지...성모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