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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성서

[그룹성서 요한반 제11차 수업] (2019.6.3.월) / 요당리성지 소성당 9장

[그룹성서 요한반 제11차 수업] (2019.6.3.월)
일시: [2019년 5월27일 월요일. 10시~12시]
장소: 분당 요한성당 B230호

참가자: 11명+말씀봉사자=12명 / 2명 결석(이** 아녜스, 채* 로마나)


간식 및 기도: 석** 수산나

성가: 2번 '주 하느님 크시도다'

기도: 성경을 읽기 전에 드리는 기도


성경을 읽기 전에 드리는 기도

성경 안에서

저희를 친절히 만나 주시는 아버지,

넘치는 성령의 빛으로,

제 눈을 열어 주시어

 당신의 빛을 보게 하시고,

제 귀를 열어 주시어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시며,

제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의 생명을

받아 안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말씀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높고 깊은지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뜨거운 감동으로,

저의 모든 일상생활 가운데

새로운 기쁨과 당신의 능력이

빛나게 하여 주시며,

저의 모든 형제 자매들과 함께

당신의 영광을 찬미하게 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본강: 제5과 삼십팔 년 동안 앓아 온 병자를 고치신 표징....묵상과 생활 1~3번


묵상과 생활 1.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일으키고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은혜 입은 병자가 치유된 후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행동에서, 사람의 허약함과 참으로 건강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벳자타 연못에서 38년 앓았던 병자를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말씀하시며 치유해주셨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다인들이 "안식일에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하고 말하였다. 이에 "나를 건강하게 해주신 그 분이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였소."하며 변명을 한다. 자신을 낫게 한 이의 명령을 따랐을 뿐,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는 '면피'의 말을 한다. (☞ 이 환자의 변명을 들으면서 내 모습을 본다. 나도 이런 변명을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았다...ㅠㅠ...)


유다인들은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유다인들은 38년이나 앓은 사람의 병이 나음을 기뻐하기 보다는 안식일에 자신들이 정해놓은 규례를 어긴 것에 대해서 신경을 날카롭게 세워 반응한다. 아마 고압적인 자세로 질문을 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자리를 피하셨으므로 치유받은 병자는 예수님을 처음에는 잘 몰랐다. 나중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께서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하셨는데...그는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고발했다.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였다.


38년 병을 앓은 환자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준 분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이 유다인들로 부터 안식일을 범한 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더 두려워 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유다인에게 고발했다. 세상의 규례, 관습을 앞세워서 사랑없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겁박하는 유다인 같은 갑질의 사람들도 문제지만, 그들의 겁박이 두려워서 변명하고 고발까지 하는 을에 해당하는 사람의 허약함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존재는 항상이 없다는 뜻 이다. 인간이 정해놓은 규례, 율법, 관습 등이 항상 변화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건강하다는 생각을 한다. 변할 수 있는 법과 규례, 관습의 정글에 빠져서, 갑과 혹은 을의 입장에서 허우적대지 않도록...늘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묵상과 생활 2.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라면 예수님을 위해 어떤 증언을 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이를 신성모독죄라고 하였다. 하느님에 대한 불경이라고 여겼다. 유다인들은 감히 하느님을 쳐다볼 수 도 없었다. 하느님은 너무나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하느님이 계시는 지성소 앞에 휘장이 쳐져 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휘장이 찢겨진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아버지신데, 유다인들이 잘못 이해해 그 앞에 휘장을 쳐 놓았다. 왜 그렇게 했는가? 유다인들은 하느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 휘장을 없애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죽은 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분으로...돌아온 탕자인 둘째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푸시는 분이며...99마리의 양들이 들에 있지만,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애타게 찾으시는 그런 자비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해타산 잘 따지고, 손해보고 싶어 하지 않는 지극히 인간적인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 큰 아들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어, 불평불만이 올라온다면...자비하신 하느님의 신성을 생각하여, 나 자신을 정화하려 노력했다는 그런 증언을 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 마리 잃어버린 어린 양을 애타게 찾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면서...사회에서 소위 성공하는 사람들을 우대하고 공경하는 풍토가 예로 부터 있어 왔지만...앞으로는 사회에서 별로 성공하지 못하여...자화자찬 할 수도 없고, 자만자족할 수도 없고,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과대평가할 수도 없는 못난이를 사랑하는 그런 증언을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해봅니다.


묵상과 생활 3.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곰곰이 헤아려 보고(배움 2 참조), 하느님에게서 세상으로 파견된 내가 협력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 예수님의 사명이란?

예수님을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 세상으로 파견된 내가 협력할 수 있는 것은?

2019년 5월5일 주일, 부활 제3주일, 프란체스코 교황님 미사 강론을 인용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3가지 일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 놀라게 하십니다. / 사랑하십니다."


제자들이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아 낙담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시몬아"하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물을 던지라고...이상한 어떤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인 어부들이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해 왔어."라고 말하는 사고방식에 반대되는, 놀라운 어떤 일을 하라고 인도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기적을 봅니다. 그분께서는 놀라운 어떤 일을 하라고 인도하시면서...우리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시는 분 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이끌리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두기만 하면 말 입니다. 부활을 증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소박한 믿음과 위대한사랑으로 영감을 받아 참으로 아름다운 걸작들을 창조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내어주면서, 그들은 하느님의 살아있는 징표들이 되었고, 용감하게 무관심을 극복하면서...그리고 그들이 대면했던 근심들에 그리스도의 응답을 주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께서 과거에 해오셨던 일들을 감사하라고 부르심을 받고...그리고 우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우리의 그물을 던지라고 계속 말씀 하시면서...영감을 주는 사랑을 증언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으십시오. / 놀라운 어떤 일을 하십시오. / 그리고 사랑을 위해 파견되십시오."




요당리성지...소성당 내부...십자가의 길 제11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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