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성서

[그룹성서 요한반 제10차 수업] (2019.5.27.월)/고초골성지 경당 내부 6장


[그룹성서 요한반 제10차 수업] (2019.5.27.월)
일시: [2019년 5월27일 월요일. 10시~12시]
장소: 분당 요한성당 B230호

참가자: 10명+말씀봉사자=11명 / 3명 결석(이** 율리아따, 이** 아녜스, 양경* 요한보스코)


기도 및 간식: 김경* 세노비아


복음성가:  날마다 숨쉬는 순간이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 마다 내앞에 어려운 일보네
주님앞에 이몸을 맡길때 슬픔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날마다 주님 내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주시네
주님앞에 이몸을 맡길때 힘주시네 위로함 주네

 

어린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맘속에 믿음잃지 않고 말씀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 마다 주님 약속 세겨 봅니다



기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어떤 결심 / 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아플 때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 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본강: 제5과 삼십팔 년 동안 앓아 온 병자를 고치신 표정....읽기: 5,1-47


배움 1. 벳자타 못 가의 병자는 어떻게 해서 건강하게 되었으며, 이 일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5,1-17)


- 어떻게 해서 건강하게 되었나?

예수님께서 "건강해지고 싶으냐?" 물으시고...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 가거라." 말씀하시자. 그 사람은 건강하게 되어 들것을 들고 걸어 갔다.


-  이 일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건강해진 이는 자기를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였다고 예수님을 박해하였다.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유다적 사고에 의하면 하느님은 안식일에 쉬지 않으셨다. 그 의미는 안식일에도 창조가 계속되어 사람들은 죽고 심판받았으며, 아이들은 태어났고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 38년 앓은 사람의 상징

에집트 탈출 2년만에 카데스·바르네아에서 장기 체류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카데스·바르네아는 바란광야와 신광야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민수32,8 신명1,2) 브엘세바 남방 8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 족장시대 성조 아브라함이 이 근방까지 와서 체류한 일이 있었다.(창세25,11참조)

카데스·바르네아는 사막의 오아시스로  맑은 물이 있고 녹지로 이루어진 푸른초장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여장을 풀고 잠시 쉴 줄 알았던 그들이  38년이란긴 세월을 이 근방에서 보낸 후 거의 여기서 다 죽었다. 신성한 장소 카데스·바르네아에서 불신앙의 행위로 인한 나쁜 보고 때문에 죽었던 것이다.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정보가 필요했다.

시나이는 모세가 옛날 망명한 땅으로 지도자적 자질을 기른 곳이지만 가나안은 미지의 나라이다.지형, 기후, 수원, 토지의 비옥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 정찰대파견을 구상했다.그리하여 각 지파가 선정한 12명을 파견하였다.(민수13,17-20) 그들이 정찰한 곳은 카데스·바르네아를 출발하여  아랏 헤브론을 지나 에루살렘을 서쪽으로 빠져 세겜 갈릴리 북쪽에 있는 하솔을 통과하여 르보- 하맛까지 다녀왔다. 가나안 땅 깊숙이 오늘의 레바논 북쪽까지 올라 간 셈이다.

40일간에 걸쳐 정찰은 치밀하게 잘했다. 둘이 메고 올 정도의 탐스러운 포도송이(헤브론산(産))도 맛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헤브론 근방에 거주하는 아나킴 자손(거인이라는 뜻)을 보고 공포에 빠져 전의를 상실했다.그러나 유다 지파의 갈렙과 여호수아만은 신념의 보고를 했다. 이미 하느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땅이니 얻을 것을 전제로 해서 입주 후 정착할 곳을 살피고 온 것이다.

한 편 10여명의「나쁜 보고」는 온 지파를 크게 실망시켰다.「가나안의 원주민은 장대한 자들이며 특히 아나킴의 자손들을 보았더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했다. 그리고 에집트 탈출을 후회했으며 땅은 좋은 땅니나 점령은 불가능하니 새 지도자를 선정하여 다시 에집트로 돌아 가야 산다고  선동을 했다.

하느님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비하시켜 광야에서 사는 메뚜기 같다고 할 때 하느님께서는 이 불순종의 자식들을 그들의 표현대로 메뚜기 같이 광야를 헤매다가 모두 죽어 버리게 하셨다.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느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니 들어 가 차지 하자는 신앙의 결단을 촉구 했으나 10여명의나쁜 보고는 자기들의 힘으로 들어갈 줄 알았다.이것이 원인이 되어 천추의 한을 남긴 것이다.

투철한 지도자 모세가 12명의 보고를 자기  장막에서 은밀히 듣고 그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진군 했었더라면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 앞에서 공개 청문을 했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백성들을 지도한 것이다. 이 나쁜 보고로 노예생활에 힘을 잃고 비굴해진 백성들이 자유인이 될 수 없는 가운데 모두 여기서 죽었고,광야에서 태어난2세들이 성장하여 자유인으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가 이스라엘을 세운 것이다.

전의를 상실한 민족을 데리고 북진할 것을 결심한 모세는 네겝을 통과 휴다 산지를 향해 출발했다.그러나 헤브론 남쪽에 있는 아랏 왕이 아다림 길에서 이스라엘에게 참패를 주었다.「남방에 자리잡은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이 이스라엘이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민수21,1). 이 전투의 실패로 광야생활 40년을 보내게 된다. 헤브론과 브엘세바를 눈앞에 두고 정복의 실패로 모두 죽고 말았다.

가나안의 강적 앞에 자주정신과 신앙이 없는 그들, 한 노예출신들은 모두 죽은것이다.  노예가 아닌 어린아이들이 성년이 되어 그들에 의해서 가나안이 정복되었다. 출애굽 2년간의 단련, 종교, 계약관계 그리고 짧은 훈련으로서는 안 되는 것을 모세는 알았다. 그래서 카데스·바르네아에 머물면서 노예출신의 이스라엘 민족을 계약의 백성, 선민으로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40년의 미디안 광야훈련이 필요했듯이 한민족을 형성시키는데도 40년의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세는 비로소 마음을가다듬고 백성을 훈련하고 행정권을 장악했으며 종교법전을 발전시켰고 시민법도 제정했다. 그리고 야훼께 제사드리는 종교제의를 제정했다.

카데스·바르네아는 노예 근성의 비굴한 자에게 있어서는 죽음의 장소였으나 하느님의 법을 아는 자 즉, 자유, 주체, 책임, 인격체의 새 세대에 있어서는 비록 험난한 길 이기는 하지만 좋은 훈련의 장소요 가나안 땅에 들어 가는 희망의 장소이기도 했다. 카데스·바르네아는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고난의 장소이자 훈련의 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느님의 위대한 백성을 만드는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  벳자타 연못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요한복음 5장 2절에만 등장하는 연못의 이름으로 이 연못에는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하였는데, 물이 출렁거린 후에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건강해진다”는 전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맨 먼저 연못에 들어갈 수 없다고 호소하는 어느 병자를 고쳐 주셨다(요한 5,5-8). 벳자타라는 지명은 각 사본에 따라 다르게 표기되어 정확한 이름과 위치를 알기는 어렵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벳자타는 ‘올리브의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그 위치 또한 예루살렘을 4등분한 것 중 한 부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의 남동쪽 모퉁이 근처라고 한다. 현재 예루살렘 옛 도시의 스테파노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십자군 시대에 설립된 성 안나 성당이 있는데, 성당 후원 서쪽에 벳자타 연못이 있다. 이 성당 일대는 1856년 이래로 프랑스 정부의 소유로 되어 잇으며, 백의의 선교사회(White Fathers)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성당 유적과 십자군 시대에 만들어진 주랑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 5권 베짜타 항목에서 발췌]


성안나 성당에서 나와 정원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오래된 연못 터가 있었다.

 이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38년 동안 누워있던 병자를 치유하신 기적(요한 5,1-9)을 베푸신 벳자타 연못 터였다.

원래의 벳자타 못 터는 땅 밑에 있었다고 한다.

그럴 것이 원래는 빗물을 받는 저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저수지의 규모가 점점 커져서 위, 아래 저수지로 나뉘게 되었다고 한다.

연못은 4개의 주랑이 모서리에 있고 5번째의 주랑이 연못을 둘로 나누어진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이 연못에 다섯 개의 주랑이 있다고 한 요한복음서의 말을 확인해준다.

이 연못 중의 하나는 성전의 제물로 바칠 양을 씻는 곳이었기 때문에 ‘양의 우물’이라고도 불리었다.

 

옛날 십자군들은 이 벳자타 연못 위에 예수님의 기적을 기억하는 작은 경당과 기념성전,

그리고 거대한 수도원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아마도 여러 가지 유적들의 복합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해도 고풍스러운 기둥과 돌의 모형을 보면 벳자타 못은 멋지고 큰 연못이었을 것 같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이 벳자타 못가에 있던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비틀어진 이 같은

많은 병자 중에서 38년간을 누워 지낸 병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다.

예수님은 그의 무기력함 안에서 치유 받고자 하는 열망이 살아 있는 것을 보셨던 것이다.

나는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영적 게으름과

좋지 않은 습성을 떨치지 못하는 약한 의지를 지닌 내 모습을 보곤 했다.

그러면서 주님의 은총만이 나를 변화시켜 주심을 깨닫고 주님께 의지하며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끼가 끼고 오래된 건물의 흔적을 내려다보니

그 옛날 넓은 주랑에 앉아 물에 몸을 담그려는 많은 병자와 가족들이 모여 있던 광경이 그려졌다.


※양문

베데스다의 기적


요한복음의 5장 서두는 38년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고침을 받은 내용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주전 8세기 구약시대 때부터 있던 것으로 샘이 아니라 내린 빗물을 모으기 위한 못이었습니다.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을 의미하는 ‘베이트 하스다’를 헬라어로 표기한 것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온천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주전 200년경 옛 못 아래로 다른 못이 만들어져 남북으로 2개의 못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연못의 길이가 150 미터, 폭이 50 미터, 그리고 깊이가 13-15 미터 정도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5장 2절은 베데스다 못이 양문 곁에 있었다고 전하는데 양문이라는 이름은 구약시대부터 이 근처에 양이나 염소등을 사고 파는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입니다.


그래서 베데스다 못의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양못’(히브리어 ‘브레호트 하-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곳은 성전에서 사용될 양을 키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제물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드려지고 수많은 피가 뿌려졌습니다. 이곳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해 양을 준비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들의 해석처럼 베데스다 연못이 가끔 물이 동하는 신비한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 샘이 아니라 내린 빗물을 모으는 정도의 못이라면 왜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서 병 낫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양이나 다른 짐승을 사서 가까이에 있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는데 그 번제물을 이 베데스다 못에서 깨끗이 씻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제물을 씻은 곳이기에 병자들이 자기들의 몸도 이 곳 물로 씻으면서 병 낫기를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못에서 병자들이 모여 병 낫기를 기대하며 기다렸다는 사실은 신약성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기록에도 나옵니다. 요한복음 5장 3절 후반과 4절의 ‘동한’ ‘병’이라는 헬라어는 신약성서전체를 통틀어 여기에만 나오는데 이것은 이를 몰랐던 후대 사람들이 베데스다 못가에서 병자들이 모여서 병 낫기를 기대하고 기다린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첨부한 것으로 보입니다.(정순혁 ‘성지와 성서’ 참고)


후대 역사가들이 첨부한 오늘 본문에 의하면 베데스다 못에는 천사가 가끔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물을 동하게 했습니다. 물이 동할 때 그 물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병 고침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늘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 각종 병든 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의하면 그들의 질병으로 인해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이었기에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곳을 지나가시다 이 병자를 발견하고 가까이 가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질문은 사실 단순한 질병에서 고침만 받기를 원하시는 것보다 죄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이셨습니다. 이 병자는 일생의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가는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5:7)”라고 대답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지체없이 순종합니다. 그 결과 그의 38년의 질병에서 깨끗이 나음을 입게 된 것입니다.



배움 2.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는 일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으며,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5,17.19-21)


-  당신이 하시는 일의 근거는?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구약성경에 의하면 오직 하느님만이 죽은 이를 일으키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이해되었다. 이 전승이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신다고 하는 예수님의 선언 뒤에 놓여 있다. 아버지께서 살리시는 것처럼, 그렇게 아드님도 살리신다. 그리고 아드님은 주권을 행사하신다.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리신다.


※ 유다인들에게 비교급, 최상급 언어가 없다. 아멘, 아멘 반복하면 비교급, 3번 반복하면 최상급이 된다.


배움 3. 요한복음은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거듭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까?(5,22-30)


-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예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출발점이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믿게 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듣다 동사가 반복되어 나타나며 강조되었다. 곧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삶의 관건이다. 예수님 말씀을 통해 영생을 얻고 심판을 피하게 된다.


※ 공관복음은 하느님 나라, 요한복음은 영원한 생명

아우구스티노 성인 "믿기 위해서 알려고 하는 것은 인간적,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은 신적이다."


배움 4. 예수님을 증언하는 세 가지를 찾아 보시오(5,31-40)


-  예수님을 증언하는 세 가지는?

1.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2.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기적을 통해서, 세례받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말, 예언자들의 말을 통해서)

3.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고초골성지 경당 내부 1


고초골성지 경당 내부 2


고초골성지 경당 내부 3...십자가의 길 제8처


고초골성지 경당 내부 3...십자가의 길 제9처


고초골성지 경당 내부 3...십자가의 길 제11처


고초골성지 경당 내부 3...십자가의 길 제12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