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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0년 8월 11일 화요일[(백)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성녀 클라라와 성녀 수산나 성화 및 해설 2점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518번 선한 사람 아흔 아홉 영성체 성가  506번 사랑으로 오신 주여
예물준비 성가  340번 봉헌 영성체 성가  182번 신묘하온 이 영적
예물준비 성가  219번 주여 몸과 맘 다 바치오니 영성체 성가  166번 생명의 양식
파견 성가  62번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클라라 성녀는 1194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복음적 생활에 감명을 받은 그녀는 수도 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클라라 수도회를 세웠다. 수도 생활에 대한 집안의 반대도 심했으나, 오히려 동생 아녜스마저 언니의 뒤를 따라 수도자가 되었다. 클라라 성녀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철저하게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계속하였다. 1253년 선종한 그녀를 2년 뒤 알렉산데르 4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입당송

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동정녀는 등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갔네.

<또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님의 화관, 영원한 동정의 화관을 받았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클라라를 자비로이 이끄시어 가난을 사랑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가난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다가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 두루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시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8─3,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2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3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4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14.24.72.103.111.131(◎ 103ㄱ 참조)
◎ 주님, 당신 말씀 제 혀에 달콤하옵니다.
○ 온갖 재산 다 얻은 듯, 당신 법의 길 걸으며 기뻐하나이다. ◎
○ 당신 법이 저의 즐거움, 그 법은 저의 조언자이옵니다. ◎
○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
○ 당신 말씀 제 혀에 얼마나 달콤한지!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 다옵니다. ◎
○ 당신 법은 제 마음의 기쁨, 영원히 저의 재산이옵니다. ◎
○ 당신 계명을 열망하기에, 저는 입을 벌리고 헐떡이나이다. ◎

복음 환호송

마태 11,29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3,8-14)와 복음(마태 19,27-29)을 봉독할 수 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동정녀 클라라를 기리는 저희가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앞에 엎드려 청하오니
그의 공로를 기꺼워하셨듯이
저희가 바치는 제사도 기쁘게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25,6 참조
보라, 신랑이 오신다. 주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라.

<또는>

시편 27(26),4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천상 선물을 나누어 받고 비오니
저희가 복된 클라라를 본받아
예수님의 수난을 깊이 새기며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마태오는 복음서 전체의 구성을 천을 짜듯 치밀하게 다듬으면서, 독자들에게 올바른 그리스도의 모습을 일관성 있게 보여 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말씀을 주제별로 모아 다섯 개의 담화문으로 정리합니다. 복음적 담화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산상 설교(5―7장), 제자들에 대한 파견 설교(10장), 하늘 나라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를 모아 놓은 설교(13장), 예수님께서 교회에 관하여 하신 말씀만 모아 놓은 교회 설교(18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말론적인 담화문인 심판 설교(23―25장)입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 설교 가운데 두 부분을 전해 줍니다. 곧 ‘겸손하여라.’로 시작하여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로 이어진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부르시어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잘난 신자들에게 공동체 안에서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도 이르십니다.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되찾은 양의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아무리 못난 신자라도 구원을 받도록 공동체 모두가 돌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입니다.

1210년,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를 듣고 감동한 클라라 성녀는 2년 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밤에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속의 수도복’을 받아 입고 순명을 서약한 뒤, 복음적 가난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은 절대적 가난 속에서 인간 존재의 가난이 참으로 무엇인지를 삶으로 밝혀 준 성녀야말로, 오늘 복음이 말하는 잘난 체하는 마음으로 작은 이들을 쉽게 업신여기는 우리에게 겸손의 참본보기가 됩니다. 클라라 성녀는 말합니다. “그대는 다른 이들이 바라보고 따를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 가고 있는가?” 답은 오늘 복음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조세파 데 오비도스 <아기예수를 경배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성녀 클라라>

 

 

<굿뉴스 게시판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니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강론]

 

순수한 동심童心의 회복

-말씀과 회개-

 

오늘은 성녀 클라라 기념일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면 떠오르는 분이 성인의 평생 영적 도반인 성녀 클라라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은총을 통해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자가 되어 작고 가난한 삶을 살았더 참 아름답고 사랑스런 성녀입니다.

 

클라라, ‘빛’이란 이름 뜻대로 어둔 세상을 밝히며 별빛으로 살았던 성녀입니다. 특히 성녀 클라라는 병약한 몸으로 만 61세까지 사셨고, 성모 마리아처럼 주님의 가난을 실천하며 40년 동안 공동체를 지도하면서 다정한 자매요 어진 어머니로서 늘 자매들의 뜻을 경청하며 겸손하게 섬기며 살았습니다. 성녀의 마지막 임종어도, 선종 2년만인 1255년에 클라라를 시성한 교황 알렉산델의 언급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저를 지어내시어 이 삶으로 부르셨으니 주님, 찬미받으옵소서.”

 

“클라라는 숨어 살았지만 그 생애는 모든 이에게 알려졌고, 침묵하였으나 그 명성은 세상 끝까지 자자했다. 봉쇄 담장 안에 자신을 숨겼으나 곳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게 됐다.”

 

순수한 동심은 누구나 소망하는 바이며 나이에 상관없이 이런 사람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진정한 매력은 순수한 마음에 있습니다. 수도생활의 직접적 목표는 ‘마음의 순수’에 있고 ‘하늘 나라’를 궁극의 목표로 합니다. 어제는 뜻밖에 저녁 휴게 시간에 수도형제와 동요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잠시 선을 보여 불러 주기도 했습니다. 후에 수도형제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입니다.

 

“요즘 산책시 동요 부르는 행복으로 삽니다. 가사 내용도, 곡도 좋고 쉬우니 불러 보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내 좋아하는 동요는 ‘푸른잔디’ ‘파란마음 하얀마음’ ‘시냇물’ ‘송아지’이고, 옛 가곡 ‘금강에 살으리랐다’와 50년대 민요풍 노래 ‘일터로 가자’이지요. 가사도 곡도 참 좋지요. 예전에도 좋았했는데 지금은 더 좋아지네요.”

 

정말입니다. ‘일터로 가자’는 후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요즘은 산책 때 마다 동요 부르는 재미로, 행복으로 삽니다. 아무도 없으니 혼자 맘껏 큰 소리로 부릅니다. 주님과 함께 걸으며 기도해서 좋고, 노래해서 좋고, 묵상해서 좋고, 운동해서 좋으니 참 좋은 산책시간입니다. 요즘 장마철에 흐르는 물이 좋아 시냇물을 보며 물오리들 보는 기쁨과 함께 동요를 부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순수한 동심은 누구나 지닌 하느님 주신 선물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동심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 안에는 온유, 겸손, 자비, 지혜가 그대로 함축되었습니다. 그냥 천진무구한 마음만은 아니며 그대로 예수 성심을 닮은 순수한 동심입니다.

 

다음 아들 사제를 위해 기도를 청하는 어머니의 정성 가득 담긴 예물 봉투 겉면에 쓰여진 기도 글도 감동스러웠습니다. 바로 끝까지 순수한 사제가 되게 해달라는 열망이 담긴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모든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세례자 요한 사제를 더욱 축복하시어 죽기까지 하느님만 사랑하고, 하느님 뜻에 맞는 사제로써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 지식, 겸손, 온유, 사랑과 필요한 모든 은총을 주시어 하느님의 도구로 겸손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소서.”

 

참 간절한 소망이 담긴 어머니의 순수한 기도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기도가 끊임없는 회개에로 이끌어 더욱 성덕에로 나아갈 아들 사제입니다. 답은 말씀과 회개에 있습니다. 끊임없는 말씀 사랑과 말씀 공부와 실천의 수행은 회개의 사랑으로 이끌어 순수한 동심을 회복하게 합니다.

 

‘순수한 동심의 회복-말씀과 회개’, 자연스럽게 도출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순수한 동심의 회복에 회개가 결정적임을 보여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결코’란 말마디가 엄중합니다. 회개가 하늘 나라의 순수를 사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노력해서가 아니라 회개의 은총으로 어린이처럼 될 때 저절로 자기 낮춤과 자기 비움의 겸손한 작은 자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회개의 사람은 오늘 지금 여기서 이미 하늘 나라를 삽니다.

 

사랑의 회개가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게 합니다. 이런 이들은 저절로 작은 이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임으로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됩니다. 바로 작은 이들을 환대함이 주님을 환대함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환대입니다. 회개로 순수해진 사랑의 사람은 환대의 사람이 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 여지기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작은 이들 하나라도 업신여김이 바로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대죄임을 깨닫습니다. 회개로 순수해진 사람들은 저절로 하느님의 마음이 되어 작은 이들을 아낍니다. 작은 이들 하나하나를 돌보는 그들의 수호천사가 늘 하느님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도 어머니에겐 우주와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아들이듯 작은 이들 하나하나도 하느님 아버지께는 그러합니다. 하느님이 작은 이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다음 구절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기뻐한다. 이와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 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아, 바로 이것이 예수 성심이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순수해질 때 이런 예수성심의,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닮아갑니다. 그러니 끊임없는 회개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끊임없는 회개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은 하느님 말씀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의 은총은 저절로 회개를 촉발시킵니다. 제1독서의 에제키엘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 말씀의 두루마리를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합니다. 바로 화답송 시편들이 이런 말씀의 맛이 얼마나 좋은지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 말씀이 회개를 촉발시키며, 말씀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말씀의 맛은 하느님의 맛이며 비로소 세상맛, 돈맛으로부터 초연한 자유를 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 모두에게 말씀 맛과 더불어 순수한 동심을 회복시켜 주시어 하늘 나라의 행복을 살며 전하게 하십니다. 아멘.

 

2.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어른이 미각을 끊으면 어린이처럼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이처럼 된다는 말은 자신을 낮춘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어린이처럼 되라는 말씀은, ‘겸손’하여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낮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라고 하시며,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교만해지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좋아하지만, 겸손하면 모든 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응웬 차우 로안’은 ‘골형성부전증’이란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베트남 여성입니다. 이 병은 특별한 원인 없이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 질환입니다. 뼈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키가 매우 작고 허리가 굽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조롱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응웬 반 부옹’이란 청년이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겉모습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누구보다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옹은 로안과 결혼을 하고 함께 평생을 기약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로안은 부옹에게 평생 짐이 될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4월 4일, 로안은 지인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초대받아 휠체어를 이끌고 결혼식장으로 향했습니다. 결혼식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때 로안의 앞에 예쁘게 차려입은 소녀들이 등장했고, 소녀들은 로안을 결혼식장 한가운데로 이끌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로안을 환영했습니다. 로안은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신랑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바로 자신의 남자친구 부옹이었습니다. 이것은 부옹이 로안을 위한 깜짝 결혼식이었습니다. 상처가 많아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로안을 위해 부옹이 준비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실을 안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결혼식 7개월 만에 부옹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로안도 병세가 악화하여 이듬해인 2015년에 남편을 따라 하늘나라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쪽 얼굴에 붉은 모반을 가지고 태어났고 다른 쪽 얼굴은 암이 들어 뼈까지 깎아내는 수술을 해야 했던 김희아씨를 사랑해 결혼한 남편이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에서 이런 분들이 진정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여겨집니다. 받아들임이 곧 겸손입니다.

 

왜 어린이와 같은 이들은 세속적으로는 전혀 매력이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어린이들은 세속적인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예전에 청년이었다가 결혼하여 아기들을 데리고 나오는 신자들을 만납니다. 아기들은 식당 밥을 먹지 못합니다. 엄마가 미리 이유식을 준비해 오는데 저는 거저 줘도 안 먹을 전혀 간이 되지 않은 보기만 해도 맛이 없어 보이는 음식입니다. 그러면서 어른이란 세상의 맛에 길든 사람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에 길들었다면 그 사람은 어른이고 그러면 예쁘지 않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눈은 잃습니다. 자신은 예쁜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만은 사람을 받아들일 그릇을 좁힙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어린이처럼 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바로 세상의 맛을 끊으면 됩니다.

 

요즘 좀비 영화가 한창입니다. 좀비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람을 먹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람을 음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비는 인간이 아닙니다. 어린이의 마음을 잃은 사람들은 좀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맛볼 무언가를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실 선물을 바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니 그 찾는 맛을 더는 발견할 수 없게 되면 곧 이혼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서 그 허기를 채우려 합니다. 그렇게 누구와도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 초등학교 3학년부터 사춘기가 시작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부모님과 세상이 빨리 아이들을 성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만들까요? 바로 스마트폰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세상의 맛을 빨리도 맛보게 만듭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투와 표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말투를 따라 합니다. 유아용 방송이라고 해서 세상의 맛이 없을까요? 교묘하게 숨겨진 유혹이 더 많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방송과 게임 등을 통해 세속-육신-마귀의 맛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깊이 각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스마트폰을 빼앗는 엄마까지도 미워하게 됩니다. 엄마도 이제 스마트폰이라는 맛을 주는 도구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절대 7살 이전에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쥐여준다는 것은 아기들을 빨리 어른으로 만들어 자신들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렸을 때 맛 들인 것들을 끊는 것은 매우 힘이 듭니다. 10분에 맛 들인 맛을 끊는 데 1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나면 아직도 영화를 보는 게 낫지 따분한 활자들의 조합인 책을 읽으려 하지 못합니다. 억지로 노력하는데도 아직 잘 안 됩니다. ‘어렸을 때 TV를 보지 않고 책을 읽는 습관을 들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함이란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크기는 세상의 맛을 알수록 줄어듭니다. 겸손은 세상의 맛을 끊는 것과 하나입니다. 그 맛 때문에 사람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의 맛을 끊어가야 하는 이유이고, 어린이처럼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3.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염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우분이 제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왜 염색 하지 않으세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염색 하지 않아도 미남이라서요.’ 현문우답(賢問愚答)이었습니다. 웃으면서 한 이야기입니다. 염색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변화(變化)’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변화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인 변화입니다. 염색을 하는 것도 변화입니다. 체중을 줄이는 것도 변화입니다. 점을 빼거나, 성형 수술을 하는 것도 변화입니다. 여성들의 화장도 변화의 한 모습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도 외적인 변화를 많이 추구했습니다.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변화를 맞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타볼 산에서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외적인 변화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다른 하나는 내적인 변화입니다. 내적인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잘 알기 어렵습니다. 내적인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이기 때문에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적인 변화는 익숙했던 세상과의 단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내적인 변화는 목숨을 바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적인 변화는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다락방을 열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처럼 표징을 보여주었고, 한 번의 설교로 수천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 사도는 길 위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내적인 변화는 오랜 침묵과 수양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돈오점수(頓悟漸修)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사막이나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수행하는 은수자들이 있었습니다. 은수자들은 단식, 극기, 묵상, 침묵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깨달으려 하였습니다. 이런 은수자들을 통하여 수도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전통이 교회의 영성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글라라 성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글라라’라는 말은 ‘빛’이라는 뜻입니다. 빛은 어둠을 밝힐 수 있듯이, 글라라 성녀는 기도와 관상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글라라 성녀는 그녀의 기도와 관상으로 외로운 사람들에게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위로의 불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는 좌, 우의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날 수 있듯이, 자동차는 4바퀴가 균형을 이루어야 잘 달릴 수 있듯이 신앙인은 활동과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면, 글라라 성녀는 그 활동이 잘 될 수 있도록 기도와 관상을 하였습니다. 마치 마리아와 마르타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듯이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역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였습니다. 우리들 역시 활동과 기도라는 날개를 달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예수님께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어린이처럼 겸손한 사람,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끝까지 찾아 돌보는 사람,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 가족과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를 이루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적인 변화를 이루는 사람은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4.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강론]

 

8.11.“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관심은 ‘큰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르코복음>의 병렬구문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를 묻는데 여기서는 “하늘나라에서”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제자들의 물음을 영성적인 관심으로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보다는 누가’ 큰 사람인지에만 관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임을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가장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

 

예수님께서는 이 물음에 세 가지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는 먼저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밝히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여기서 ‘어린이’란 열두 살이 되기 이전의 아이를 가리는데, 고대인들은 ‘어린이’가 천진무구하다고 여기지 않고, 손이 많이 가고 책임감도 없으며, 늘 어른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하찮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된’ 사람이란, 어린이가 어른에게 의지하고 지시에 따르듯이, 어린이처럼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겸손한 태도를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어른처럼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력함을 받아들이고, 주인께 신뢰로 의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를 산상설교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마태 5,3)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늘나라는 자신이 주인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께 의탁하고 사는 사람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둘째>는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인지’를 밝히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하늘나라에서는 명예나 권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 낮추어 섬기는 이가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주님을 예배하는 이가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가장 작은 계명이라도 스스로 지키고 가르치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마태 5,19)이라고 제시하시는데, 여기서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누가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일’, 곧 무력함을 받아들이는 일, 미천한 이를 받아들이는 일, 바로 그것이 ‘당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사실, 당신께서는 먼저 당신 제자들, 곧 미천하고 무력한 이들을 당신 제자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시며,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뜻”이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마태 18,1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작은 것 하나마저도 귀중하게 여기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말해줍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지 않고 사랑하게 하소서!

작은 이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주님!

무엇을 하든 당신을 지향하여 일하게 하소서!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당신의 이름으로 하게 하소서!

모든 주어진 것을 당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이름으로 드리는 감사가 되게 하소서!

나의 모든 삶이 당신께 바치는 기도가 되게 하소서아멘.

 

5. [매일미사 묵상 결론 기도문]

 

2020년 8월 11일 화요일[(백)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복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아멘.

 

로마의 성 가비노와 성녀 수산나의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