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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성서

[그룹성서]이사야반 2회기 줌 강의(2021.3.15.월)

[그룹성서]이사야반 2회기 줌 강의
일시: 2021년 3월15일(월) 10시~11시30분
출석: 8명

주제: 제1과 이사야서 입문

일정:
1. 문제집 '이사야서의 전체 윤곽' 괄호넣기 문제 풀이
2. 말씀봉사자의 설명  

 

문제집 '이사야서의 전체 윤곽' 괄호넣기 문제 풀이


1. 이사야서는 몇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66장)

2. 이사야 예언자는 어느 시대에 활약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전했습니까?(1,1; 참조 2열왕 16,1-20;18-20장)

남쪽 (유다) 왕국에서 (우찌야),(요탐),(아하즈),(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활동을 하였습니다.
특히 (아하즈) 임금의 치세 초기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며
다시 (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정치 무대에 나섭니다.

3. 이사야서의 내용에세 나타나는 시대를 알 수 있는 구절을 찾아보고, 그때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알아봅시다.

기원전 8세기
(아하즈) 임금(7,1)
- 시리아(아람) - 에프라임 전쟁:
북(이스라엘)임금 페카와 아람임금 (르친)이 동맹을 맺고 남유다(예루살렘)을 공격한 사건

(히즈키야)임금(36,1)
- 산헤립의 침공:
히즈키야 임금 제(14)년에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침략하여 유다의 성읍들을 점령한 사건
(49개 성읍을 점령, 예루살렘 성읍만 살아남음(열왕기하 10장 참조)

기원전 6세기
(기원전 539-8)년(40,2;44,28;45,1)
- 유다인들의 귀환: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던 이스라엘이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에 의해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사건

4. 이사야서는 이사야 예언자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엮어진 책입니다. 그러나 시대적인 배경과 유배 전, 유배 중, 유배 후의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여 선포한 내용(심판, 위로와 구원의 약속, 종말론적 희망)을 기준으로 살펴볼 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39장)을 제1이사야서라고 부릅니다............유배전
40-(55장)을 (제2)이사야소ㅓ라고 부릅니다.............유배중
56-(66장)을 (제3이사야)서라고 부릅니다.............유배후 

 

말씀봉사자님 설명

이사야서 1장은 이사야서 전체의 서문이기도 하지만 예언서 전체의 서문이기도 하다.

역대기의 우찌야 임금=열왕기의 아자르야왕=같은 임금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이사야 예언자가 불림을 받아 활동을 시작함.
우찌야 임금은 남유다 40년간 통치. 잘 나가던 시대. 이집트, 앗시리아 강대국이 자기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약소국을 건드리지 않아서 남유다가 번성할 수 있었다.

<기원전 8세기>
아하즈 임금 때에 '시리아(아람) - 에프라임 전쟁'으로 남유다 예루살렘을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아하즈 임금은 앗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앗시리아는 오리엔트를 최초로 통일한 강성한 군대를 가진 나라이다.
732년 아람 멸망, 722년 북이스라엘이 멸망했으나, 유다는 앗시리아에 조공을 바치고, 내정간섭을 받게 되었다.
(필리스티아 등 도시국가들이 아스돗동맹으로 봉기했으나 711년 전멸되었다.)


히즈키야 임금 제14년에 산헤립을 침략. 49개 성읍 점령했으나 예루살렘 성읍이 살아남음.
히즈키야 임금은 아하즈의 아들로 요시야 임금과 더불어 이스라엘 역사에서 훌륭한 임금으로 여겨진다.
(금송아지 우상숭배 몰아내고, 특히 구리뱀(느후스탄)을 조각내어 우상숭배를 몰아낸 임금)

<기원전 7~6세기>
- 요시야 임금이 므기또 전쟁터에서 전사. 이집트 정복자 '느코'가 여호아하즈'를 이집트로 데려가고, 여호야킴'을 유다 왕으로 앉힘.

- 페르시아의 네부카드네자르가 이집트를 격퇴, 네부카드네자르왕에게 3년간 충성을 하다가 반역하므로, 598년 페르시아가 예루살렘성을 포위. 여호아킴이 죽음. 

- 바빌론 제1차유배 - 기원전 597년
여호야킨이 어머니와 신하들과 함께 페르시아 느브갓네살에 항복. 여호아킨 끌고 가고, 에제키엘 예언자 끌고가고, 유다에는 치드키야를 왕으로 세움. 기원전 597년 3032명이 끌려가서 유배.

- 바빌론 제2차 유배
기원전 586년 832명 / 587년 치드키야를 사로잡아 갔다. 사상초유의 고통을 당했다. 치드키야의 눈을 도려내어 장님으로 만들어 끌고 갔다. 

- 바빌론 제3차 유배
기원전 582년 745명 /......총 4600여명 유배

- 기원전 539/8 페르시아 키루스 칙령  -예루살렘 귀환 - 제2이사야서 

- 페르시아 침공 - 성전파괴, 멸망. 18개월간의 고통이 애가에 자세히 기록.

제1이사야서(유배전):
심판선고 하다가 구원이야기 하는 것을 8번 반복해서 번갈아 가면서 함.

제2이사야서(유배중):
위로와 구원의 약속 이야기

제3이사야서(유배후):
종말론적 희망 이야기-새로운 창조, 새하늘 새땅 이야기
유배갔던 지도층, 사제, 지식인이 바빌론에서 잘 살았다. 50년만의 귀환이다. 모두 돌아오지 않고 10%만이 귀환했다. 
(에즈라 예언자와 느헤미야 예언자 등이 돌아오라! 이야기를 했어도 10%만 귀환)

유배후 백성들의 생각이 갈라져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바알신의 우상숭배에 젖어있는 부류 등이 있었다)

&&&
앗시리아와 바빌론의 유배민족에 대한 통치방법이 달랐다.
앗시리아는 유배민족을 여러 지역에 흩어지게 하여 민족을 혼혈종으로 만들고, 종교도 섞여 사라지게 하였다.
바빌론은 유배민족을 한곳에 모여 살게 했다. 1차유배때 에제키엘 에언자 등이 니프에 모여살아서 정체성유지가 가능했다.
유배중에 이스라엘 민족이 재탄생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하느님이 누구인지?"묵상했다. 아픈만큼 성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귀환하여 성전, 제단 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상초유의 고통을 당한 제2차 유배때부터 시작하여 50년 유배라고 말을 한다. 즉 기원전 587년-537년 약 50년간 유배를 했다. 

 

미켈란젤로의 예언자 이사야

 

- 미켈란젤로, 회벽에 프레스코, 1510년 경,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미켈란젤로가 장식한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에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중 이 이사야 예언자를 포함한 일곱 분이 그려져 있다. 프레스코(회칠이 마르기 전에 채색하는 르네상스기의 회화 기법)이므로 회벽이 노후함에 따라 색상의 선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 1980년부터 1994년까지 복원 작업을 통해 원래의 색채를 되살렸다. 그 결과 매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였던 시스티나 경당이 화려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되살아났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2000년 대희년을 선포하시면서 복원된 경당을 공개하셨다.

[2012년 9월 9일 연중 제23주일 대구주보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