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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2년 8월 18일 목요일[(녹) 연중 제20주간 목요일]/정용진-전삼용-이수철-조재형 신부 강론

[매묵]2022년 8월 18일 목요일[(녹) 연중 제20주간 목요일]/정용진-전삼용-이수철-조재형 신부 강론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어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 주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길 수 있다시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영을 넣어 주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6,23-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3 “나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곧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24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1(50),12-13.14-15.18-19(◎ 에제 36,25 참조)
◎ 정결한 물을 뿌려 모든 부정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라.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저는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복음 환호송

시편 95(94),7.8
◎ 알렐루야.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알렐루야.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오늘의 묵상

1. 2022년 08월 18일 목요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예수님의 비유의 중심 주제는 늘 하느님 나라이고이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잔치로 비유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 속의 혼인 잔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저녁 식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언제나 문을 잠그지 않고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의 잔치는 기쁨과 무상성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잔치에서 이런 무상성의 특성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잔치를 연다고 초대하면 벌써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무엇을 들고 가야 하나?’ ‘얼마쯤 넣어 가야 하나?’ 나아가 꼭 가야 하나?’ 등의 별의별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요즘 세상에서 공짜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공짜라고 해 놓고 실제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입니다.

무상의 초대가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초대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성의 초대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모두 불러오라는

비유 속 주인의 말은 속상할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로마 5,6)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이가 초대받아 풍부하게 나누고 먹을 수 있는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잔치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예복을 마련하는 문제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초대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하느님 나라의 삶의 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잔치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거기서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 욕심만 차리고 저만 위하여 사는 사람이 내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만 아는 이들 속에서 기뻐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옷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 옷곧 하느님 나라에 걸맞은 양식으로 살려고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 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초대받은 자와 선택받는 자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아무래도 얼굴에 검은 가면을 쓴 ‘다스 베이더’일 것입니다. 다스 베이더는 본래 제다이였다가 악의 힘을 이용하여 악의 주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본래 ‘아나킨 스타이워커’입니다. 아나킨은 제다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콰이곤은 아나킨 안에 엄청난 힘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고는 우주의 평화를 이끌어줄 예언된 자라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제다이 수장들에게 그를 소개합니다. 

하지만 요다 스승만은 그의 마음 안에 두려움과 분노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를 못 볼까 봐 두려운 거니? 두려움은 분노를, 분노는 증오를, 증오는 고통을 낳지.”

 

    이 말은 자신들을 따르려면 세상에서 소중한 것을 잃을 걱정도,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분노를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나킨은 이 규율을 어기고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어머니가 나쁜 무리에게 심하게 죽임을 당한 것을 보고 분노에 찹니다. 다시는 사랑하는 이를 잃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의 마음에서 이런 욕망이 꿈틀대는 것을 본 우주 공화국 부의장은 그에게 어둠의 힘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합니다. 아나킨은 처음에 어둠의 힘을 이용하는 공화국 의장을 자기 스승 중 한 명에게 이야기하고 둘이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펠퍼타인 의장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너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선택을 해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메이스 원투가 그를 찌르려고 하자 그를 쳐냅니다. 

 

    펠퍼타인 의장은 아나킨 덕분으로 살아나 공화국을 독재 체제로 이끄는 다스 시디어스가 됩니다. 아나킨은 완전히 악한 사람이 되어 제다이를 모조리 죽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 자기 아내를 갈라놓으려 하는 스승 오비완과 결투하게 되고, 그는 팔다리를 잃고 심한 화상을 입습니다. 그를 다스 시디어스가 다시 살려내 검은 옷을 입힌 것입니다. 

 

    제다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다이가 되도록 부르심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세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하지만 혼인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이는 신랑에게 합당한 신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세례를 받았더라도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마음이 없다면 결국엔 쫓겨나서 부르심을 거부한 이들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인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부른 많은 아이 중 그분을 닮으려고 의사가 된 이들이 많습니다. 그냥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불러주신 이를 닮으려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제자가 됩니다. 제자가 되어야 혼인 예복이 입혀집니다. 혼인 예복은 신랑에게 합당한 순결한 신부가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세례만 받았다고 멈추지 말고 모두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마지막 때 아무도 낙오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3.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신학생 때입니다. 가을이면 북한산으로 교구 신학생들이 소풍을 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산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삼겹살, 김치찌개, 소주 한잔은 산행의 피로를 풀어 주었습니다. 식사 후에 모두 모여서 장기자랑을 하였습니다. 마칠 때는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교가를 부를 때도 있었고, ‘임쓰신 가시관을 부를 때도 있었고,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를 때도 있었습니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공동체가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수들의 공연장을 가면 한국의 관객들은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터를 켜거나 야광봉을 들고 공연하는 가수와 함께 하려고 합니다. 외국의 가수들은 한국 관객들의 떼창에 매료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가수는 노래하고, 관객은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가수와 관객이 공연을 통해서 하나가 되고, 함께 즐기는 것이 한국의 공연문화입니다. 미국에서 야구경기를 두 번 보았습니다. 응원의 열기는 한국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한국은 야구경기에서도 단순히 관람하는 것을 넘어 응원을 통해서 선수들과 하나가 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한국은 미국과 다른 모습을 봅니다. 피정, 교육, 미사와 전례가 있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본당에 다양한 행사가 있습니다. 전 신자 도보성지 순례를 가기도 합니다. 제가 본당에 있을 때도 수리산 성지, 절두산 성지를 전 신자가 걸어서 순례했습니다. 미사를 마치면 구역별로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었습니다. 전 신자가 기차를 타고 성지순례를 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갈 수도 있지만 함께 가면서 친교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금마련 바자회를 하기도 했고, 체육대회를 하기도 했고, 본당의 날 행사를 하기도 했고, 전 신자가 바닷가로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매년 여름캠프를 갔습니다. 구역별로 연도대회, 성가 경연대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장례가 나면 빈소로 가서 함께 연도를 바쳤습니다. 제가 함께하는 부르클린 한인 성당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양한 행사가 있습니다. 장례가 나면 빈소에서 연도를 함께 합니다. 야외미사도 있습니다. 매 주일 미사가 끝나면 친교실에서 음식을 나눕니다. 한국인들은 신앙생활에서도 전례의 엄숙함을 따르기도 하지만 친교와 나눔을 통해서 신앙의 기쁨을 나누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종교는, 신앙생활은 어쩌면 하느님과 사람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베들레헴 구유에서 탄생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선으로 넘어오신 표징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감정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한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을 넘어서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하시곤 했습니다. 등잔에 기름을 잘 준비한 처녀들은 신랑이 오면 기쁘게 맞이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복을 잘 갖춘 사람은 혼인잔치에서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름은 우리가 하늘에 쌓아야 하는 재물입니다. 기도, 자선, 희생, 나눔입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예복은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정결, 가난, 순명입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022.8.16.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에제28,1-10 마태19,23-30

 

하느님 중심의 삶

-밝고, 맑고, 열린, 투명한 삶-

 

누구나의 마음 깊이에서는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修道僧이고 사랑의 시인詩人입니다. 누구나 마음 깊이에는 한 번뿐인 삶을 참으로 살고 싶은, 참 사람답게 살고 싶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훌륭한 사람으로 성인답게 존엄한 품위를 유지하며 살고 싶은 근원적 갈망이 있습니다. 이래야 참으로 행복하고 부유하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답은 단 하나,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입니다. 늘 하느님 앞에서의 삶이라는 자각하에 깨어 사는 것입니다. 밝고, 맑고. 열린, 투명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성생활의 궁극 목표도,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의 삶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이런 삶입니다. 몇가지 사례를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뜻밖에 염추기경님 문자 메시지 받고 감동하여 나눈 글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을 축하합니다. 신부님의 어머니, 신마리아님의 축일을 축하하며 기도를 어머니께 청합니다. 신부님의 성모승천강론을 읽고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염수정 드림”

 

“공경하올 염수정 추기경님, 제 강론을 읽으셨다니 너무 감사하고, 추기경님의 겸손하심에 감동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 축복인사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이수철 올림”

 

메시지와 더불어 흰구름, 푸른 창공을 배경한 수도원 십자로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예수성심상 사진도 선물로 보내드렸습니다. 참 신선한 충격으로 새로운 힘을 받았던 성모승천대축일에 받은 참 좋은 선물의 추기경님 메시지였습니다.

 

지난 8월14일 주일, 가톨릭신문 10-11면은 이승훈 기자의 “교황청에서 만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에 관한 감동적인 내용 가득 담긴 기사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한국을 떠나 교황청에서 성직자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는 추기경님에게 로마에서의 생활을 묻자, 3문장으로 답변하셨고 이에 따른 인터뷰 기사입니다.

 

1.잃어버릴줄을 안다(Sapere perdere)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입니다. 그날그날 형제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면 내가 그동안 해온 경험, 직책을 잃어버리지 않고는 불가능했습니다.”

 

2.매순간을 산다(Vivere l’arrimo presente)

“어제는 이미 지났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면,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순간입니다. ‘지금’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3.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사랑한다(Amare Gesu’ Crocifiddo Abbandonato)

“하루 200-300건 가량의 보고를 검토하고 결재하며, 저를 찾는 각계각층 무수한 사람을 환대해야 합니다. 제게 닥치는 모든 어려움을 십자가 고통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또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1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또 더 많이 봉사하면서 살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주교들을 떠나 보낸 유추기경은 잠시 성직자부 경당에 머물러 기도했다. 눈을 감은 유추기경의 모습에서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이 흘렀다. 유 추기경에게 지금 이 순간이란, 영원이신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인 듯 했다.’로 장문의 기사는 끝을 맺습니다.

 

어제 저는 수도원 정문을 나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 따라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다녀왔습니다. 요즘 몇날 동안 아침 달맞이꽃들에 이어 시냇물을 보는 평범한 기쁨에 행복했습니다. 쓴글을 나눕니다.

 

“조용히 

속삭이며

맑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다.

 

여름 한 철

어둡고 습기찬 아침

청초한 사랑

 

날마다

활짝 꽃피어 내며

샛노란 얼굴 환히 미소지으며

 

지나는

누구나 환대하는

달맞이꽃럼 살고 싶다.”

 

평범한 일상을 시냇물처럼, 달맞이꽃처럼, 깨어 맑고 밝게 환대하며 살고픈 마음을 표현한 글입니다. 어제 주일 미사때의 순간적인 깊은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요근래 제일 많은 신자분들이 참석한 미사전례였습니다. 참 많은 신자분들의 시선이 제대 앞의 사제들에게 집중됨을 보면서의 깨달음입니다.

 

“아, 사제는 공인公人이구나, 은밀한 사생활이 있을 수 없고,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에 참으로 공명정대하고 투명하고 열려있어야 하겠구나. 함께든 혼자든 언제나 하느님 중심의, 하느님 앞에서의 삶이어야 하겠구나.”

 

하는 귀한 충격적 깨달음이었습니다. 이래야 많은 신자들 앞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얼굴을 들고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겠습니다. 

 

인스탄트 시대입니다. 참으로 1회용의 소모품이 많고 나가는 쓰레기들도 많습니다. 쓰레기 시대에 쓸모없다 생각되는 사람들은 1회용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스스로 존엄한 품위를 지니는 책임감이 참으로 막중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시선으로 볼 때는 공동체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보물 창고”처럼 보이겠지만, 교만과 탐욕으로 하느님 중심의 시선을 잃어버리고 세상 잣대로 잴 때 공동체는 “세상 폐물의 쓰레기장”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엄중한지 깨닫게 합니다. 참으로 존엄한 품위를 유지하며 하느님의 살아 있는 보물로 살아가기 위해 날로 깊어져야 할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집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떠날 때 제1독서 에제키엘서의 티로 임금처럼 될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멀게 하는, 내면을 부패하게 하는 무지의 탐욕과 교만입니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 가운데에 앉아 있다.’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에 비긴다. 너는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마음을 부패로 변질되게 하는 교만입니다. 새삼 탐욕과 함께 가는 교만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잃어버릴 때 탐욕과 교만이니 스스로 자초한 심판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변질, 부패로 무너지게 하는 탐욕과 교만입니다. 

 

부자는 하늘 나라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 하니, 부자의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무욕의 이탈의 지혜와 겸손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 바로 탐욕입니다. 그렇다 하여, 가난한 사람의 하늘 나라 통과 역시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없으면 가난한 이의 마음도 무지의 탐욕으로, 교만으로 눈멀어 있거나 부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 놀란 제자들은 주님께 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바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한결같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무욕의 이탈과 겸손의 삶을 살 때,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빈부의 차별없이 모두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보는 무욕의 현자에게 재물은 전혀 위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느님 중심의, 무욕의 부자이자 현자의 자유인은 재물을 아낌없이 이웃과 나눔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에 전념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구원의 삶을, 이탈과 겸손의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살아 있는 참 보물인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 때 저절로 이탈과 겸손에 내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부유한 구원의 삶이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