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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2년 8월 17일 수요일[(녹) 연중 제20주간 수요일]/이수철-정용진-이영근 신부 강론

[매묵]2022년 8월 17일 수요일[(녹) 연중 제20주간 수요일]/이수철-정용진-이영근 신부 강론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똑같은 품삯을 준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들어 하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4,1-11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여라. 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3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4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5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6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7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8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 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 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 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9 그러니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10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3ㄴㄷ-4.5.6(◎ 1)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 환호송

히브 4,12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 알렐루야.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오늘의 묵상

1.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착한 목자 영성

-사제는 사업가(businessman)가 아닌 목자(shephred)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누여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시편23,1-3ㄱ)

 

착한 목자 영성은 비단 교회의 사제뿐 아니라, 신자들은 물론 모든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 대통령 모두에게 해당되겠습니다. 참으로 사랑과 지혜, 온유와 겸손을 겸비한 착한 목자같은 지도자들이 목마르게 그리운 시절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나부터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예전 장상인 아빠스님으로부터 원장 재직시 받은 조언을 잊지 못합니다. 장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목자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규칙서에도 강조되는바, 우선적인 것이 아빠스의 목자로써의 자질입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어제 소개해 드린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을 통해서 착한 목자의 모범을 만납니다. 마르타의 집 청소담당 자매의 증언입니다.

 

-“저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일하면서 교황님을 매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정말이예요. 그분은 결코 혼자 있는 걸 원하시지 않는 듯해요. 어느날 아침, 우리 청소팀은 청소도구를 가득 싣고 엘리베이터에 모두 탓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어요. 

 

우리 앞에 누가 있었는지 아시겠어요? 네, 바로 교황님! 본능적으로 우린 그분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하여 내리려고 하는 찰나에, ‘아녜요. 아닙니다. 그냥 있으세요. 우리 좀 당겨서요. 자 됐어요!’ 교황님과 우리는 모두 목적지에 다가갈 수 있었지요. 제겐 꿈같기도 하였고, 사건 그 자체였어요.”-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의 인터뷰 기사중 감동적인 부분을 나눕니다. “교황님께서 저를 임명하실 때 ‘교황청에 아시아인 장관이 한 사람밖에 없어 새로운 사람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유 주교님의 이름이 떠올랐을 때, ’아, 찾았다!‘라며 기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추기경은 교황청을 거닐면서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자신을 ‘돈 라자로’라 소개한다. 직책이나 신분의 높낮이 없이 그저 한 사람의 신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형제로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교를 나누고자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황청에서 돈 라자로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물론 후에 유추기경이 ‘성직자부 장관’임을 알고 깜짝 놀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착한 목자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배우게 되니, 이렇듯 보고 배우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여기 수도공동체입니다.”(2021.7.20.), 무려 1년전 집무실 게시판에 써붙인 글이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공동체 형제 하나하나에게 좋은 점을 보고 배우니 공동체는 제 스승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 우리는 참 많이 보고 배우며 깨닫습니다. 이 또한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이처럼 착한 목자 영성으로 살 때 실현되는 하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이렇게 살 때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실현되는 하늘 나라입니다. 아니 이런 이들의 삶자체가 하늘 나라입니다. 

 

오늘 복음과는 대조적으로 제1독서 에제키엘서에서 주님의 이스라엘의 고약한 목자들에 대한 개탄이 흡사 하느님의 육성을 듣는 듯 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었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대로 오늘날 본분에서 이탈한 목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참으로 공동체를 책임지고 있는 모든 분들이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이제 착한목자영성이 보편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복음에서 제시되는 착한 목자상은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포도원은 세상을, 포도원에 고용된 이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선한 포도원 주인은 하느님이자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착한목자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착한목자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눈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용된 당신의 백성이요 성소자들입니다. 

 

일한 시간이나 노동량에 상관없이 아침 일찍 온 사람이나 끝무렵에 온 사람이나 모두에게 똑같은 하루 한 데나리온 일당을 지급합니다. 사람마다 다 고유의 사정이 있기에 불림받은 시간이 동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인은 예외없이 똑같은 일당을 지급하니 흡사 요즘 회자되고 있는 '안전 그물망'과도 같은 기본소득제의 실현처럼 생각됩니다. 모두에게 최저 생계비를 지급함으로 모두가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기본적 인간 품위를 누리며 일하며 살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언젠가는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계산법입니다. 산술적 공정과 정의의 잣대가 아닌 사랑의 잣대입니다. 각자 불린 자들은 남과 비교할 것 없이, 하느님 은총의 사랑을 자신의 이기적 잣대로 잼이 없이, 아니 오히려 하느님의 자비를 크게 깊이 깨닫고 배우며 자기 본분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면 될 뿐입니다. 이런면에서 맨 먼저 불림 받아 고용된 자들은 일견 합리적이고 타당해 보입니다만 하느님의 자비를, 자신의 분수를 너무 몰랐습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 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 군요.”

 

일견 맞는 것 같지만 감사가 전무합니다. 다른 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할 시간, 하루종일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늦게라도 일자리를 찾아 적은 시간동안이라도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일한 이들에게도 이들의 내적 처지를 헤아린다면 시간의 양에 관계없이 그대로 일당을 지불함이 자비로운 주인의 마음입니다. 착한목자 주님은 이런 주인처럼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며 지혜롭고 깊으신 분입니다. 이어지는 주인의 답변은 우리에게는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도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바로 하느님의 자비를 헤아리지 못한 무지無知에, 제 분수를 모르는 월권越權의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래서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어 한결같지 못했을 때 첫째가 꼴찌가 될 수 있고, 늘 초심의 자세로 살 때 꼴찌가 첫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지 될 것이다.”(마태20,16)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내적현실을 점검케하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세월 흘러 나이들어도 여전히 내적으로 무너짐 없이, 불림받았을 때 내 본연의 첫째의 초심의 삶에 항구하시기 바랍니다.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내 책임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조용히 속삭이며 한결같이 깨어 맑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하루하루 깨어 평범한 섬김의 일상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나를 따르니리,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시편23,6). 아멘.


2. 2022년 08월 17일 수요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는 일꾼들의 공로 성과에 대하여 

세상의 통념과 다른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주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마 대부분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한 사람과 남들이 일하는 동안

빈둥거리며 놀다가 늦은 시간에 와서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똑같은 액수가 품값으로 지급되는 일을 공평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 말씀에 나오는 주인의 생각은 이런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주인은 이른 새벽부터 일꾼들을 부르러 광장에 나갑니다.

수확에 매진하였던 그는 일꾼들을 더 불러 모으기 위하여 적어도 네 번이나 더 집을 나섭니다.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이고일꾼들은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삶에서 서로 다른 시간에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입니다.

포도밭은 교회입니다교회는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저녁은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순간을 상징합니다.

 

저녁이 되자 주인이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주고자 줄을 세웁니다.

그런데 가장 늦게 와서 일한 이들이 가장 먼저 불려 나가 품삯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생각과 주인의 생각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맨 먼저 나와 열두 시간씩 일한 일꾼들은 겨우 한 시간 남짓 일한 일꾼들이 못마땅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맨 처음 나와 일한 이들에게도 나중에 온 이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주인의 논리에 따르면그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의 행동에는 공로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은 공로가 아니라 일꾼들의 필요에 따라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논리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행하시는 놀라운 방식입니다.

 

우리는 공로의 종교, ‘보상의 종교에 익숙한 나머지,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의 선행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 두고 평가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보상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여기는 공로에 따라 지불하지 않으십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느님 앞에서 자기 공로를 내세워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포도밭에 일찍부터 와서 일한 사람은 복()됩니다.

그들은 수고하며 땀도 많이 흘렸지만,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님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가운데 먼저 부름을 받고 응답한 이들은 맨 나중에 와서 품삯을 받은 이들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주님의 말씀에 따라 충실히 살아간 인생이 최고의 보상이고 감사한 인생이 아닌가?’

비유 속 포도밭 일꾼들의 태도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너그러우심 앞에서

의아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의 포도밭을 일구고 있습니까?


3. 이영근 신부 강론

 

220816. 연중 20주간 화요일.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이 재물 때문에 당신을 따르지 못하고 물러간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마태 19,24) 

 

여기에서, “부자”란 단지 재물을 많이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재물에 의지하는 사람, 재물에 집착하여 하느님을 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물”이란 단지 물질적인 재화 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가정, 재능과 지식, 이념과 신념 등 자신이 애착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재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하느님마저도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에 대한 집착이라면, 버려야 하는 재물이요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은, 곧 재물 때문이라기보다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하느님을 멀리한 까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부와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을, 가난과 빈곤은 하느님의 저주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마태 19,25)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6) 

 

이는 구원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자력으로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가진 재물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부자든 가난한 이든 죄인이든 자신(우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모두가 구원받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마태 19,30).   

 

그러니, 오늘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볼 일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 것에 애착하고 있는가? 혹 나 자신의 몸이나 소유물이나 재능, 지식이나 신념이나 이상, 자기 방식의 사랑이나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공동체 상이나 하느님 상에 애착하고 있지는 아닌지요? 오늘 우리는 내가 바라는 가정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가정과 공동체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바라고 믿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하느님이 되셔야 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주님! 재물이 없어도, 고집과 완고함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는 저는 부자입니다. 힘과 능력이 없어도, 자신의 뜻으로 가득 차 있는 저는 부자입니다. 제 주장과 의견을 앞세워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가늘게 부수고 부수어 당신 바늘귀에 꿰소서! 아멘.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