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28일(월) 오늘의 글 3개
헨리 나웬 신부님(1932.1.24-1996.9.21)의오! 그리고 늘! 11월 28일
<이승을 떠날 우리 몸체는 부활의 씨앗>
Our Mortal Bodies: Seeds for the Resurrection
이승을 떠날 우리 몸체, 그 살과 뼈는 흙으로 되돌아갈 겁니다. 구약성경 코헬렛의 기자가 말합니다· "모두 한 곳으로 가는 것. 모두 흙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흙으로 되돌아 간다."(코헬렛 3,20) 하지만 몸체로 살아온 우리의 모든 건 부활하면 영광을 입어 하느님께로부터 새 몸체을 받게 될 겁니다.
우리가 부활하면 어떤 몸체가 될까요? 바오로 사도는 이승을 떠날 우리 몸체가 부활한 몸체의 씨앗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든 씨앗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그 씨앗에 몸체를 주십니다. 씨앗 하나하나에 고유한 몸체를 주시는 것입니다."(1코린15,36-38) 부활한 몸체도 죽을 몸체처럼 고유한 존재가 될 겁니다. 저마다 고유한 개성으로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몸체를 주시고 그 안에서 하느님과의 둘도 없는 고유한 관계가 영광스럽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렇습니다.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물려받지 못하고,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 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1코린15,50-51)
Our Mortal Bodies: Seeds for the Resurrection
NOVEMBER 28
Our mortal bodies, flesh and bones, will return to the earth. As the writer of Ecclesiastes says: “Everything goes to the same place, everything comes from the dust, everything returns to the dust” (Ecclesiastes 3:20). Still, all that we have lived in our bodies will be honored in the resurrection, when we receive new bodies from God.
What sorts of bodies will we have in the resurrection? Paul sees our mortal bodies as the seeds for our resurrected bodies: “What you sow must die before it is given new life; and what you sow is not the body that is to be, but only a bare grain, of wheat I dare say, or some other kind; it is God who gives it the sort of body that he has chosen for it, and for each kind of seed its own kind of body” (1 Corinthians 15:36-38). We will be as unique in the resurrection as we are in our mortal bodies, because God, who loves each of us in our individuality, will give us bodies in which our most unique relationship with God will gloriously shine.
"I declare to you that flesh and blood can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nor does the perishable inherit the imperishable. Listen, I tell you a mystery. We will not all sleep, but we will all be changed..." - I Corinthians 15: 50-51 (NIV)
--- 어 머 니 --- 내가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우리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6.25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 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지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1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 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 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봐 보자기를 씌워 주셨다. 먹을 것이 없었던 우리는 개천에 가서 작은 새우를 잡아 담장에 넝쿨을 뻗은호박잎을 따서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 3일째 되는 날, 담장 안집 여주인이 나와서 ''(우리가)호박잎을 너무 따서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 다른 데 가서 자라!'' 고 하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을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다음 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서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에는 끈을 매어서 나에게 지우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다시 돌아 오게 되었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 들어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30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져 줄께!''하였다.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 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 갔다.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 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 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내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와!'' 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 보지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첫 마디가 ''쌀자루는 어디 갔니?''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져 준다더니 쌀자루를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 '' 하시며 우셨다. 그날 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 하시면서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 '이라고 칭찬해 주시더니! 그 후 어머니에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 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바보처럼 보이는 나를)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헌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박동규님의 글입니다. 이 글 속의 ''어머니'' 는 시인 박목월님의 아내십니다.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야단이 아니라 칭찬을 해 줄 수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칭찬 한 마디가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리라 믿습니다. 오늘따라 어머님을 불러보고 싶네요 얼마나 아프셨는지요 |
♧오늘의 나눌말 신발시장을 개척하라는 사명을 띠고 두 사람이 아프리카 오지에 도착했다. (A)는 도착한 날 본사로 메일을 보냈다. '다음 비행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현지인은 모두 맨발로 생활합니다. 여기서는 신발이 팔릴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 B)도 즉시 메일을 보냈다. '지금 당장 신발 5만 켤레를 보내주십시오. 이곳은 신발을 팔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지인은 모두 맨발입니다' 사람들 간에는 본래 거의 차이가 없으나 작은 차이가 커다란 차이를 만듭니다. 이 작은 차이는 태도인데 태도가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하는 것입니다.(클레멘트 스톤) 성공을 가르는 한가지 요소만을 고르라면 적극적, 긍정적 사고방식의 소유 여부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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