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월 4일 수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치네.
본기도
천상의 새 빛이신 구세주를 보내시어 세상을 구원하셨으니
구원의 빛으로 언제나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7-10
7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8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10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소리쳐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강들은 손뼉 치고, 산들도 함께 환호하여라. ◎
○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신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이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5-42
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평화를 주셨으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온 마음으로 이 신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성탄을 경축하는 오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시고
영원하신 분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셨나이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만물을 당신 안에 일으키시어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버림받은 인류를 하늘 나라로 다시 불러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생명이 나타나셨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주님의 백성을 온갖 은혜로 다스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덧없는 현세에서도 위안을 받고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더욱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참 아름다운, 행복한 제자의 삶
-주님을 증언하는,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는 삶-
-“신부님,
충전 잘하고 왔습니다. 수도원에서 힘 받아서 속세에서 홧팅하면서 살아가야지요! 약발 떨어질 때쯤 충전하러 또 가겠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멜라니아”
조용히 며칠간 주님의 집, 수도원에서 주님 안에 머물다간 아름다운 분의 카톡메세지입니다. 즉시 수도원 하늘길 사진과 더불어 드린 답신입니다. 이번 수백통 드렸던 성탄 카드 답신의 전형적 사진에 문구입니다. 이름 앞에는 반드시 ‘사랑하는 형제님(또는 자매님)’이란 말이 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자매님)!
새해 수도원 하늘길 축복선물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저뿐 아니라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긴 축복 말씀입니다. 교황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세 말마디가 계속 마음에 긴 울림을 줍니다.
1.“베네딕도 교황님의 마지막 말씀, ‘Lord, I love you!(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전 수십년동안 왜관 수도원에 사셨던 독일 출신의 노수사님의 노동으로 거친 손을 보며 짧은 독일어로 ‘이히 리벤 지(Ich liben Sie;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말하면, 활짝 웃으면서 ‘정말’ 하고 한국어로 대답하던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사랑한다 고백하면 정말 고백대로 이루어지니 우선 용감하게 던져 놓고 보는 것입니다.
2.“We thank God for the gift of Benedict 16”(우리는 베네딕도 16세의 선물에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는 새해 첫날 삼종기도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입니다.
3.“Benedict spent his life seeking the face of Jesus(베네딕도는 평생 예수님의 얼굴을 찾았다)”라는 롬바르디 신부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증언자로 주님의 소명에 충실했던 주님의 제자, 참으로 성인답게 사셨던 베네딕도 16세 전임 교황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한폭의 살아 있는 아름다운 그림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 삶의 귀감이 되는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차례대로 그 중요한 내용을 살펴 봅니다.
1.“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활짝 사랑의 눈이 열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 보며 최초로 자기 제자들에게 주님을 증언하는 참으로 순수한 영혼의 요한 세례자입니다. 정말 제자든, 이웃이든 사랑한다면, 그 최고의 사랑은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예수님께 인도하는 사랑입니다. 요한 세례자의 사심없는 순수한 사랑이 참 반갑고 감사합니다.
때가 되자 미련없이, 집착함 없이 제 사랑하는 제자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떠나 보내는 참으로 자신을 비운 무욕의 겸손한 요한 세례자의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질투심이나 경쟁의식이 전무해 보이니 말입니다. 문득 어제 쓴 “겨울나무가 좋다’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본질(本質)로 서있는 겨울나무가 좋다
하늘만을 향해 살아왔기에 저리도 훌쩍 컸나 보다
별만을 사모(思慕)하였기에 저리도 초연(超然한)가 보다
수도원 하늘길옆 가로수 메타세콰이어 겨울나무들”
침묵과 고독중 겨울 동안거(冬安居)중인 겨울 배나무들이 흡사 기도하는 수도승들 같습니다. 이런 본질로 서있는 겨울나무같은 순수한 영혼의 사람이 바로 요한 세례자입니다.
2.“무엇을 찾느냐?”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자기를 따라오는 요한의 두 제자를 보시며 물으십니다. 아, 이 물음은 주님을 찾는 구도자들인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평생 ‘하느님을 찾는 자’가 수도승입니다. 어찌 수도승뿐입니까! 모두가 내면 깊이에서는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들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그리워, 하느님을 목말라 하느님을 찾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참 사람입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시편의 실존적 고백입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시편63,2)
저절로 연상되는 요한1서 말씀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애타게 끊임없이 찾는 자들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안에는 하느님의 씨가 상징하는 말씀이, 성령이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1요한3,9)
이런면에서 주님을 증언하면서 이웃을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도록 이끄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무죄한 사람들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주님의 증언자들을 일컫는다 생각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자도 그렇습니다.”(1요한3,10ㄴㄷ)
참으로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자기 형제를 진정 사랑하는 주님의 증언자는 요한 세례자처럼 자기 제자나 형제를 자기가 아닌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3.“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예수님의 얼굴을 찾는자가, 무엇보다 그분과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이가 제자입니다. 여기 ‘머물다(stay)’라는 그리스어로 ‘메네인(menein)’은 ‘살다(abide)’ 또는 ‘머무르다(remain)’를 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항구한 관계를 뜻합니다.
바로 제자들의 이 말씀 안에는 스승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보고 배우며, 항구하고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고 싶은 염원이 배어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소명에 응답한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늘 당신 안에 머무르기를 바라십니다.
4.“와서 보아라.”
감격에 벅찬 주님의 환대의 초대입니다. 늘 우리를 “와서 보라”고 초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와서 사랑의 주님으로부터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수도원 팜프렛 사진과 함께 씌어진 성구가 바로 “와서 보라”란 초대입니다.
정말 "와서 보아라"할 정도의 주님 안에 머무르는 우리의 삶인지 성찰하게 합니다. 주님이 없는 집, 정말 얼마나 썰렁하고 쓸쓸하고 공허하겠는지요! 모든 것 다 지녔어도 그 안에 주님의 기쁨이, 주님의 평화가, 주님의 희망이,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빛이, 주님의 생명이, 주님의 영이 없다면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일 것입니다.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의 초대에 감읍하여 응답함으로 마침내 주님의 첫 제자들이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합니다. 참으로 생애에 획기적 회개의 ‘전환점(turning point)’이 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5.“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살아 있는 진리, 메시아 주님을 만난 안드레아는 지체없이 자기 형 시몬을 만나자 주님을 증언, 고백함으로 그를 예수님께 안내함으로 소명에 응답하게 합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진리이신 주님의 체험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는 본능적입니다. 이것이 진정 최고의 이웃 형제 사랑입니다.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눈여겨 보시며 이르십니다.
6.“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번역하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내심 시몬 베드로를 기다려왔음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여 신의 한 수와도 같이 주님의 첫 제자들이 된 축복받은 제자들입니다.
한 두 번으로 끝나는 소명의 응답이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을 증언하는 삶,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다음 제 좌우명 기도처럼 하루하루 날마다 끊임없이 주님과 함께 하느님 바다 향해 맑게 흐르는 사랑의 강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주님과 함께 순례자되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2. 2023년 01월 04일 수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세례자 요한은 다시 한번 증언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제자인 안드레아와 다른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머물고 그분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부르신 제자들이 갈릴래아 호수에 있던 어부들이었다는 공관 복음의 내용과 달리
오늘의 말씀은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무엇을 찾느냐?”
이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처음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요한 복음서를 읽는 모든 이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요한복음에서 무엇을 찾습니까?’ 다르게 해석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와서 보아라.” 이는 모든 이를 향한 예수님의 초대입니다.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업적을 깨닫도록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초대를 받은 모든 이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안드레아와 다른 제자처럼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표현된 “묵었다”의 본뜻은 ‘머물다’입니다.
그리고 머문다는 표현은 요한 복음서에서 믿는다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은 믿음에 대한 표현이고,
이것으로 두 제자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다음에 안드레아는 형인 시몬, 곧 베드로를 찾아가 말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세례자 요한의 증언으로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 안드레아는 다시 베드로에게 증언합니다.
요한복음의 부르심은 이렇게 증언을 통하여 이어집니다.
3.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다큐멘터리 ‘우리들의 우주’를 보면서 지구에 계절이 생긴 이유를 알았습니다. 원시 태양계에는 지구와 가까이에 지금은 없어진 행성 테이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중력 때문에 테이아는 지구와 충돌하였고 그 충격의 여파로 지구는 23.5도 기울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충돌로 떨어진 잔해들이 모여서 지금의 ‘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달은 지구의 회전축이 23.5도 기울어질 수 있도록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달의 인력이 조수간만의 차이를 만들면서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 갯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태양이 빛과 에너지를 지구에 보내고 있어도 45억 년 전에 원시행성 테이아의 희생이 없었다면 그 결과로 달이 생기지 않았다면 지구는 지금처럼 생명이 넘쳐나는 푸른 별이 될 수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우리는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에는 마리아의 순명, 요셉의 순명이라는 선택이 있었습니다. 메시아의 길을 준비였던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머물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강의도 들었습니다. 저도 혈액검사를 하면서 의사 선생님께 콜레스테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콜레스테롤이 조금 높은 편이라고 하였습니다. 콜레스테롤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라고 합니다. 콜레스테롤이라는 이름은 각각 담즙과 고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chole- 와 stereos, 그리고 알코올을 의미하는 -ol 이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콜레스테롤이 많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우리 몸에 염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콜레스테롤은 염증을 없애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콜레스테롤이 적으면 우리의 몸은 영양실조와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콜레스테롤은 세포의 형성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세포의 뼈대를 이룬다고 합니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은 적당한 양의 콜레스테롤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콜레스테롤의 양을 조절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근본적으로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깊어지면 나뭇잎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바람을 탓하는 것은 나뭇잎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탓하는 것도 나뭇잎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동안 충실하게 빛을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바이러스를 탓하는 것은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치료약을 만들고,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여정에도 가라지와 같은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시편 23장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악의 세력을 탓하고, 고통을 탓하는 것은 신앙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악의 세력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통이 걸림돌이 되어서 하느님과 멀어지기 보다는 고통을 디딤돌로 삼아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마음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일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형제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2023년 새해에는 의로운 일을 실천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신앙생활이 되면 좋겠습니다.
4. 이영근 신부 강론
230103.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화요일.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어제 <복음>이 세례자 요한의 신원과 사명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통한 예수님의 신원과 사명을 말해줍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예수님의 언어인 아람어로 ‘양’(탈리야)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어린 양’(하말), ‘새끼 양’, ‘아기’(아들)을 의미하는데, ‘지고 가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곧 나무, 과일 또는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지고 간다.’고 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시 ‘양’은 물건을 실어 나르는 동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어린 양’이란 ‘속죄양’으로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해방절’ 양을 상징합니다(출애 12,1-13).
<둘째>로, ‘어린 양’이란 ‘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야훼의 종의 노래’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라고 하듯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는 ‘종’인 메시아를 상징합니다(이사야 53장).
그러니 ‘어린 양’이란 표징에는 인류의 죄에 대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전제되고 있으며, 동시에 세상의 죄를 없애고 하느님과의 화해를 가져오는 메시아로 증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은 자신이 체험한 환시를 통해, 보고 들은 바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요한 1,32)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요한 1,33)
성령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오신 것은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그에게 돌아와 새 시대를 알렸듯이, 이제 예수님에게서 구원이 시작됨을 알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어린 양의 흰옷을 입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분께서 성령을 통하여 입이신 옷입니다. 속죄양이 되시어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깨끗이 빨아 입히신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어린 양’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은 대속으로 자신을 내어놓기에 억울함이나 원망이 없습니다. 오히려 ‘봉헌’이기에 지향이 있는 삶이요, 향하여 바치는 삶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진정 내 삶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피어나고 있고, 그분을 향하여 바치고 있는 봉헌된 삶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의 권고를 되새겨 봅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주님!
죄를 탓하기보다 스스로 짊어질 줄을 알게 하소서.
허물을 뒤집어쓰고 하늘을 여는 제물이 되게 하소서.
기꺼이 바치는 삶이기에, 그 어떤 억울함도 원망도 없게 하소서.
위하여 내어놓는 제 삶 안에서 당신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아멘.
[1/4(수)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베네딕도 교황님의 마지막 말씀, ‘Lord, I love you!(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이수철 신부)
2.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무엇을 찾느냐?”...“와서 보아라.” 이는 모든 이를 향한 예수님의 초대입니다.(허규 신부)
3. 시편 23장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조재형 신부)
4.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주님!
죄를 탓하기보다 스스로 짊어질 줄을 알게 하소서.
허물을 뒤집어쓰고 하늘을 여는 제물이 되게 하소서.
기꺼이 바치는 삶이기에, 그 어떤 억울함도 원망도 없게 하소서.
위하여 내어놓는 제 삶 안에서 당신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1/4(수)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제 11일 기도문]
하느님!
제가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저를 무한정 사랑하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피로 저의 죄를 대속해주신 하느님!
허물을 뒤집어쓰고 하늘을 여는 제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1월4일(수) 7시1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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