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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2월 7일 화요일[(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2월 7일 화요일[(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95(94),6-7 참조
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본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20―2,4ㄱ
20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2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25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2,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4 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그 생성은 이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4-5.6-7.8-9(◎ 2ㄱㄴ)
◎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 우러러 당신 손가락으로 빚으신 하늘하며,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나이다. ◎
○ 저 모든 양 떼와 소 떼, 들짐승하며,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물속 길을 다니는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복음 환호송

시편 119(118),36.29 참조
◎ 알렐루야.
○ 주 하느님,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1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 하느님,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셨으니
이 예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7(106),8-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또는>
마태 5,4.6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밭에 묻혀 있는 보물입니다. 하느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면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도, 들에 핀 꽃에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서도 하늘나라의 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과달루페 성지에서도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보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과달루페 성지의 시작은 1531년 원주민인 후안 디에고 성인이 성모님을 만나면서입니다. 성모님은 디에고에게 주교님을 찾아가서 성당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디에고의 말을 들은 주교님은 믿지 못하였고, 그렇다면 성모님께 징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디에고의 말을 들은 성모님은 디에고의 틸마(겉옷)에 장미꽃을 담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디에고가 주교님께 장미꽃을 드리면서 디에고의 틸마에는 과달루페 성모님의 성화가 새겨졌습니다. 주교님은 과달루페 성모님의 성화를 보면서 성모님의 말을 믿었고, 과달루페에 성당을 세웠습니다.

 

과달루페 성당에는 과달루페 성모님의 성화가 있습니다. 많은 순례객들이 성모님의 성화를 보면서 기도합니다. 저도 매일 아침 성모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순례를 시작하였습니다. 다음 사람들이 성모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성모님의 성화 앞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습니다. 성당의 뒤편에는 휘어진 십자가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성모님의 성화 앞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폭탄이 터졌지만 기적적으로 십자가만 휘어지고 성모님의 성화는 무사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청원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제단 옆에는 성체조배실이 있습니다. 저도 시간이 나면 성체조배실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성체조배실은 순례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품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매시간 정시에 미사가 있습니다. 과달루페 성지가 다른 성지와 다른 점은 신앙인들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다른 성지에서는 순례자들은 많지만 현지인들이 매시간 미사 드리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과달루페 성지는 매시간 현지인들이 사제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과달루페 성지는 순례자들을 위한 성지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이 함께하는 성지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주, 성단, 은하, 은하계, 태양계, 지구입니다. 역시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전선하십니다. 규모도 크고, 우리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으십니다. 지구에는 특별한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번식하고, 스스로 보존하고, 후손을 남기는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우주를 생각할 수 있는 지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영원을 추구할 수 있는 오성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그렇게 수가 늘어났고,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사람은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은 하느님은 아니기 때문에 역사 앞에서 많은 오류와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사람은 자신만의 명예와 능력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했고, 강한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전쟁의 역사이며, 비극의 역사였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러한 행동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피부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소중한 전통이 파괴당했고, 그들의 전통은 사라져야 했습니다. 우리 민족도 제국주의 역사관에 의해서 희생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의 율법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대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먼저 이야기를 듣고, 왜 그렇게 했는지 묻지도 않고 먼저 단죄를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들 역시 짧은 시간 이 지구라는 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인 것처럼 사는 것은 교만입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옆에 있는 분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비슷한 점은 무엇인지, 그러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존재의 가치가 드러날 것입니다.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강론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복음마르 7,1-13: 조상들의 전통

바리사이는 ‘분리된 자’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는데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루카 18,12 참조), 의례적으로 놋그릇과 접시와

잔을 닦고(참조마태 23,25; 마르 7,4), 십일조를 바치고 맏물을 봉헌했으며(참조마태 23,23; 루카 11,42), 

많은 기도문을 바쳤다(루카 5,33 참조). 

그래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질책하신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6이사 29,13)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즉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관습에 얽매여 있어서 하느님과는 멀다는 의미이다

 

식사 전에 손을 씻는다는 것이 관습을 따르는 것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하느님을 섬기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인간의 전통이나 관습을 하느님의 계명인 양 가르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을 들어 그것을 이행하지 않는 행위를 질책하고 계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4계명신명 5,16).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21,17; 레위 20,9) 하면서 가난한 부모는 자녀에게서 부양받아야 하고

자녀들은 연로한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셨는데“코르반”이라고 하면서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고 하신다

 

코르반 서약문은 물건을 하느님께 바쳐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서약문이다

그 의미는 “제가 제대에서 약속하고 성전에 봉헌하기로 서약한 선물이 당신 영혼에 힘을 불어넣어 줄 터이니

제가 당신을 공양할 필요는 없습니다.(11절 참조)라는 뜻이다

이렇게 인간의 전통을 핑계 삼아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부모와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코르반 서약문을 이용해서 부모의 봉양을 저버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부모가 굶주리는 데도 그 자녀는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게걸스레 먹어 치울 제물을 봉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느님께 바쳤다는 핑계로 부모께 대한 의무를 쉽게 저버리는 썩은 서약이 되어 버렸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형식적인 것을 지적하시면서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이런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

교회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 있다이 법들은 우리의 신앙성숙을 위한 것임을 생각하며 지켜야 한다

외적인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외적인 형식도 중요하지만그 안에 담긴 본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서 율법주의적인 모습을 떨어내고 참된 하느님의 자녀인 신앙인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오늘 <독서>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이고, <복음>은 예수님의 일행이 호수를 건너 온 곳, 곧 겐네사렛 땅에서의 ‘새로운 창조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도 새롭게 창조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이 새롭게 창조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열 두 해 동안 하혈증을 앓고 있던 여인’(마르 5,5-25)처럼, 믿음으로 예수님께 접근해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이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권능으로 새로 태어난 이들입니다. 곧 ‘믿음’으로 창조된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너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요한 20,27)
 
사실, 손을 댄 이는 우리지만, 만지신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우리를 매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더듬은 것입니다. 당신 손으로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쪼물딱거리시고,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낫게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손을 대었을 뿐, 우리를 붙잡으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우리를 당신 심장으로 끌어당기신 분은 그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알아본 이들’이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이 계신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 그들은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분의 옷자락에 손이라도 대게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들어 주셨고, 과연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는 이들의 표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중재하는 이가 되어야 하고, 또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이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그들을 위해 간청하고, 또한 직접 예수님을 만지며 그분 사랑의 손길을 반겨 맞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옷을 만지듯, 말씀 속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져야 할 일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지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흘러들게 해야 할 일입니다(민수 15,37-41 참조)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그렇습니다. ‘말씀’이 구원이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옷자락입니다. 사실, 오늘도 우리는 옷자락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몸을 받아먹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전류가 만땅 충전된 몸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주님!
당신은 옷자락뿐만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십니다.
손을 내미는 이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며
저를 붙드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손을 대기만 하면 먼저 어루만지시고
찾기만 하면 먼저 찾아오시는 분도 당신이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이 항상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귀향歸鄕

귀가歸家의 여정

-예수님이 참고향故鄕이시다-

 

오늘 2월5일은 성 바오로 미키를 비롯한 26명의 신자들이 일본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자카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한 날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시 이들의 영웅적 순교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이들중 예수회 사제였던 성 바오로 미키는 예수님과 같은 나이 33세에 순교하였고 성 바오로 미키를 비롯한 26명 순교자들은 일본인 17명, 프란치스코회 6명, 예수회 3명, 즉 일본인들과 유럽인들이었습니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성 바오로 미키와 23명의 체포된 그리스도인 동료들이 426년전 1597년 1월 3일부터 2월5일까지 27일 동안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1000km 걸어가 모두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걸어가는 동안 교회의 찬양과 감사의 찬송가인 테데움을 불렀습니다. 다른 동료들 25명과 함께 십자가 달려 순교 직전 성 바오로 미키는 당당한 얼굴로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했고 복음이 널리 전파될 것을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마지막 설교를 했고, 그의 스승 예수님처럼 사형집행자들을 용서했습니다.

 

참으로 이들의 영웅적 신앙이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이들은 순교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향임을 믿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영웅적 순교의 죽음도 가능했음을 봅니다. 성 바오로 미키의 영웅적 순교 모습에서 우리의 첫 순교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이 떠오릅니다.

 

저는 믿는 이들의 삶을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의 여정이라 일컫곤 합니다.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아버지 계신 본향집으로 귀향이라는 것이지요. 고향을 찾는 원초적 본능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바로 이렇게 고향을 찾는 귀향본능에 따라 많은 이들이 수도원을 찾습니다. 자매들의 이구동성의 고백은 친정집을 찾는 느낌이고 많은 분들 역시 고향집을 찾는 느낌이라 말합니다. 

 

어제 저를 찾았던 ‘혼인주례 1호 부부’와의 만남도 참 행복했습니다. 고향집을 찾듯이 수도원을 찾은 부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부부가 떠나기 전 성덕聖德 점수를 각자 매겨 보도록 했습니다. 100점 만점에 기본점수 20점, 진복팔단 8개 항목 각각 10점 만점에 80점, 그리고 예수님 보너스 점수 10점으로 했습니다. 각자 후하게 점수를 주라 했습니다. 점수를 확인해 보니 자매님은 99점, 형제님은 94점이었습니다. 

 

“99점, 94점 놀랍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성인부부입니다. 오늘 2월5일은 두 성인부부의 수도원 방문 축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격찬의 덕담과 더불어 크게 웃었습니다. 완전히 주님의 한가족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어제 저는 본기도 서두중 “주님의 가족”인 저희를 자애로이 지켜주십사라는 말마디에서 은혜 받았다 고백했습니다. 특히 영성체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체성가 177장을 부를 때는 주님의 한 가족이 된 느낌을 지니곤 합니다. 

 

제가 산티아고 800km 2000리 순례 여정중 성전聖殿에 들릴 때마다 느낌은 꼭 고향집처럼 편안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수도원이 완전 고향집처럼 느껴져 휴가의 필요성을 잊고 지낸지 수십년이 됩니다. 특히 성체성가 177장 2절은 늘 불러도 새롭고 위로와 힘이 됩니다.

 

“참 기쁨이 넘치는 그곳 내 주님 계신곳, 

 내 모든 근심 슬픔을 다 위로하여 주시네.

 약속한 땅이여 오 아름다운 대지여,

 영원히 머무를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

 이빵을 먹는 자는 그 복지 얻으리,

 아 영원한 생명의 빵은 내 주의 몸이라.”

 

가사도 곡도 은혜롭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신 곳, 바로 거기가 외딴곳이자 고향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원고향입니다. 주님의 한 가족이 되어 예수님을 모실 때 비로소 온전한 치유의 구원입니다. 오늘 복음에 대한 영문 주석에서 얻은 통찰이요 그대로 소개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구원된(were healed)’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에소존토(esozonto)’는 단지 육체적 치유 이상의 뜻을 함축한다. 초대교회 어휘중 그 말은 구원의 전적 체험을 묘사한다. 그말은 단지 ‘복지(wellness)’가 아니라, ‘온전함(wholeness)’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귀향(coming home)’이다.”

 

바로 예수님께 귀향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동창회나 특정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과정을 수료한 뒤에 모이는 모임을 가리키는 표현도 홈커밍, 귀향입니다.  고향집인 예수님께 돌아와 만날 때 비로소 온전한 치유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미사는 귀향의, 커밍홈의 실현이요 구원의 체험인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복음의 고향을 잃어 병든 이들 원고향, 본향집인 예수님께 돌아와 만나니 모두 치유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 청했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6,56).

 

그대로 예수님께 귀향하여 치유 구원받는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오늘부터 창세기의 시작입니다. 말씀으로의 창조과정을 통해 사람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 집을 마련해 주시는 과정이 참 인상적입니다. 창조과정이 일정한 틀에 따라 반복적으로 이뤄집니다. 한 대목만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다-부르셨다-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이런 틀로 계속되는 창세기 창조과정은 내일까지 계속됩니다. 뚜렷이 경계를 지어가며 참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보금 자리 가정 집의 품으로 만들어 주는 과정이 은혜롭고 인상적입니다. 

 

더불어 예전 수차례 인용했던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라는 괴테의 말도 생각납니다. 한계없이 끝없는 욕망대로 살 때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반대도 그대로 성립됩니다. “천국에는 한계가 있다”입니다. 한계가 없는 혼돈 상태를 점차 뚜렷한 경계를 지어 천국같은 살집으로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의 참 섬세한 배려의 창조과정입니다. 

 

그래서 한계限界와 경계境界를 뚜렷이 지어주는 수도원 자연 환경, 삶의 한계를 지어주는 관례서, 하루 삶의 일과표의 균형과 조화가 무질서의 혼돈이 아닌 질서잡힌 지상천국을 살게 합니다. 이래서 참 자유로운 삶을 위해 한계에 익숙해지는 자발적 선택의 ‘한계의 훈련’이 정주생활에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귀가의 여정을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고향입니다. 원고향, 본향집인 예수님께 귀향하여 온전한 치유의 구원을 얻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예수님께 귀향하여 한계와 경계가 분명한 균형과 조화의 지상천국의 삶을 살게 합니다. 아멘.


[2/7(화)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우주를 생각할 수 있는 지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영원을 추구할 수 있는 오성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존재의 가치가 드러날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부모와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코르반 서약문을 이용해서 부모의 봉양을 저버리기도 하였다

율법주의적인 모습을 떨어내고 참된 하느님의 자녀인 신앙인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조욱현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주님!
당신은 옷자락뿐만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십니다.
손을 내미는 이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며
저를 붙드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손을 대기만 하면 먼저 어루만지시고
찾기만 하면 먼저 찾아오시는 분도 당신이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이 항상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4. 오늘 2월5일은 성 바오로 미키를 비롯한 26명의 신자들이 일본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자카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한 날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시 이들의 영웅적 순교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이들중 예수회 사제였던 성 바오로 미키는 예수님과 같은 나이 33세에 순교하였고 성 바오로 미키를 비롯한 26명 순교자들은 일본인 17명, 프란치스코회 6명, 예수회 3명, 즉 일본인들과 유럽인들이었습니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성 바오로 미키와 23명의 체포된 그리스도인 동료들이 426년전 1597년 1월 3일부터 2월5일까지 27일 동안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1000km 걸어가 모두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걸어가는 동안 교회의 찬양과 감사의 찬송가인 테데움을 불렀습니다. 다른 동료들 25명과 함께 십자가 달려 순교 직전 성 바오로 미키는 당당한 얼굴로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했고 복음이 널리 전파될 것을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마지막 설교를 했고, 그의 스승 예수님처럼 사형집행자들을 용서했습니다.(이수철 신부)

 

[2/7(화)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제 45일 기도]

 

하느님!

죽기까지 하느님과 동행하면서 당당하게 살게 하소서.

매사 언제나 늘 어디서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2월 7일(화) 5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