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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5월 10일 수요일[(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매묵]2023년 5월 10일 수요일[(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아빌라의 성 요한 사제 학자

입당송

시편 71(70),8.23
저의 입은 당신 찬양으로 가득 찼나이다. 온종일 당신 영광을 찬미하나이다. 당신께 노래할 때, 제 입술에 기쁨이 넘치리이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니
하느님 종들의 마음을 이끄시어
불신의 어둠에서 벗어난 그들이
언제나 진리의 빛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할례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5,1-6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 1 참조)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5,4.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부활하시어 우리를 비추셨네. 당신 피로 우리를 속량하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저희를 도우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충실히 살아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2021 10 10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16차 정기총회 개막미사를 거행했습니다. 시노드는 지역별, 대륙별 논의 과정을 거쳐서 2024년에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입니다. 시노드의 목적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것입니다. 지금 속한 한국교회와 제가 머물고 있는 미국의 이민자 교회는 장소는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미사 참례율의 감소, 냉담자의 증가, 교회와 멀어지는 청소년들, 수도자와 성직자 성소의 감소, 교회의 급격한 고령화, 가난한 이들에게 높아진 교회의 문턱, 예비신자의 감소, 열정이 식어가는 신앙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지역은 다르지만 세계 교회 역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세속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인간의 탐욕에 의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점점 심화되는 부익부빈익빈의 문제, 전쟁과 독재로 인한 난민의 증가, 신자의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서 문을 닫는 교회의 증가, 성직자들의 스캔들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시노드 개막미사의 강론에서 교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오는 사람을 조건 없이 만나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데리고 온 중풍병자를 만나셨습니다. 자비를 청하는 소경을 만나셨습니다. 마귀가 들린 사람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마귀 들렸다고 모함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도 만나셨습니다.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도 만나셨습니다. 예리고로 가던 제자들도 만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고민하던 부자 청년도 만나셨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두 번째는 경청입니다. 마음에 방음벽을 쌓아 놓는 만남에서는 문제가 해결 될 수 없습니다. 편견을 가지는 만남에서는 문제가 해결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는 편견 때문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전문가라는 방음벽을 쌓아 놓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새로운 권위를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교회의 많은 문제들 역시 방음벽과 편견에 가로막혀서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편견과 방음벽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경청은 공감과 측은지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굳건한 믿음을 보여 주었던 백인대장과 이방인의 여인을 칭찬하시면서 이런 믿음은 어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도 볼 수 없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빚진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했던 자캐오를 칭찬하시면서 오늘 이 집은 구원 받았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자로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며칠 동안 먹지 못했던 굶주린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시면서 먹을 것을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군중들을 향해서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식별입니다. 부정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나도 너의 죄를 묻지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었던 율법학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의 규정으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취급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시대의 징표에 직면했습니다. 음식 나눔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불평과 불만이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본 것처럼 이방인들의 할례에 대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오늘 교회는 첫 번째 시노드를 개최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모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교회는 만남, 경청, 식별의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입니다. 저 역시도 만남, 경청, 식별을 통해서 저에게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은 결국 하느님과 소통을 통해서 풀어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면서 풀어갈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 2.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충격을 받았던 것은 한 신앙심 깊은 자매님의 고백 때문이었습니다. 그분 자녀들은 물론이요, 남편과 자신까지 성당에 잘 다니고 봉사도 잘하고 가정도 부유했고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새벽마다 일어나 앉아 혼자 운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그냥 공허하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분은 영혼을 하느님 아닌 것에 팔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를 위해서 삽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건, 부모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이념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내가 하는 노력의 보상을 해 줄 능력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마치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나에게 관심도 없고 그런 보상을 해 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 살아가니 영혼이 채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영혼은 오로지 성령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엔진이 연료가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느님의 영으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은 1997년 개봉한 미국의 슈퍼 내추럴 법정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케빈 램시(Kevin Lomax)는 젊고 유망한 변호사로, 그의 재능과 치열한 진취 정신으로 승승장구하는 변호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유력한 뉴욕 로펌에서 일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케빈은 아내 메리 앤(Mary Ann)과 함께 뉴욕으로 이사하여 로펌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로펌의 소유주이자 선임 변호사인 존 밀턴(John Milton)은 케빈의 능력과 열정을 인정하여 그에게 많은 지지와 도움을 주며, 케빈은 더욱 빠르게 성공의 길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메리 앤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정신적인 문제를 겪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케빈은 존 밀턴이 악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점점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존은 케빈에게 더 큰 권력과 부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지만, 그 대가로 케빈의 영혼을 요구합니다. 케빈은 점점 더 유혹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아내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은 점점 죽음의 그늘에 묻히게 됩니다. 

 

    공갈 젖꼭지는 아무리 빨아도 영양분 있는 모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노력은 반드시 보상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보상을 줄 수 없는 대상을 위해 일하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사람은 육체적 인간과 영적 인간으로 나뉩니다. 육체적 인간은 육체적 보상을 바라며 일하는 사람이고 영적 인간은 영적 보상을 바라며 일하는 사람입니다. 육체적 인간은 육체적 보상을 바라기에 마음의 평화나 기쁨은 무시합니다. 영적 인간은 마음의 평화를 바라고 일하기에 육체적 노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꽉 찬 마음으로 살고 싶다면 영적 인간이 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육체적 인간에서 영적 인간으로 변화되는 순간이 세례입니다. 내가 누구냐에 따라 육체적 인간, 영적 인간이 바뀝니다. 내가 하늘의 존재라 믿으면 영적 인간이고 내가 단순한 인간으로 믿으면 육체적 인간입니다. 이 믿음이 어떤 보상을 바라며 일하느냐를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늘의 사람이 될까요? 하늘의 뜻에 “Yes!” 하면 됩니다. 성모님께서 가장 먼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일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을 청하는 사람에게 예! 하는 게 맞습니다. 

 

    영화 ‘예스맨’의 줄거리입니다. 칼 앨렌(Carl Allen)은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은행 직원입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피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항상 '아니오'를 택해 별다른 사건이나 변화를 겪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칼은 예전 친구에게 초대를 받아 '예스 세미나'에 참석하게 됩니다. 세미나의 강사 테렌스 번덴(Terence Bundley)는 참가자들에게 인생에서 모든 기회를 포용하고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며 '예'를 말해야 한다고 전한다. 칼은 이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일상생활에서 모든 것에 '예'라고 응답하기 시작합니다.

 

    예스맨이 되기 전의 칼은 삶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를 말하기 시작한 이후로 칼의 삶은 크게 변화합니다. 그는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찾아오며, 언어 수업, 무료 여행, 오케스트라 공연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칼은 긍정적인 생각과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고, 인생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찾게 됩니다.

 

    특히 칼은 앨리슨(Allison), 사랑스러운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칼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는 거절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며, 그를 둘러싼 인생의 균형을 되찾게 됩니다.

 

    내적 인간, 영적 인간, 예스 맨이 되는 길은 모든 것에 예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는 예스 하고 그것과 반대되는 뜻에는 노를 하는 삶입니다. 분별이 없다면 그것은 육적 인간도, 영적 인간도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에 언제나 예스를 하여 내적 평화를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됩시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509.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평화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주님께서는 단지 남기고만 가신 것이 아니라,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고 하시며, 분명히 우리에게 상속재산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평화롭지 못하다면, 무슨 까닭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성경>에서 “평화”란 단지 외적으로 갈등이 없고 내적으로 고요한 상태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는 전쟁이 없는 조약이나 힘의 균형 상태나 평온하고 태평스러운 안정된 상태만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현존의 결과로 나타난 그분 다스림의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는 평화로서,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 있고, 그리스와의 일치 안에 있을 때 충만해지는 평화입니다. 그것은 사랑과 정의와 진리의 실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서 평화를 선물로 받은 우리는 마땅히 평화를 지켜야 하고, 평화의 파괴를 막아야 하고, 평화를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지니게 됩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타인을 위해 자신이 죽음으로써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고 비워짐으로써, 타인을 떠받들고 자신이 낮아지고 작아짐으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주신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기에, 오히려 세상의 평화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기만적인 안전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바란다면, 오히려 하느님의 평화가 우리를 뒤흔들어 놓기를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이처럼, 우리가 평화를 얻는 길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하오니, 주님! 평화를 위해 가시관을 쓰게 하소서.
누르고 빼앗고 장악하고 차지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고 비워져서 평화로워지게 하소서.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음에 평화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바라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주님!
평화를 위해 가시관을 쓰게 하소서.
창에 찔리신 당신 가슴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누르고 빼앗고 장악하고 차지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고 비워져서 평화로워지게 하소서!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음에 평화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바라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


4. 떠남의 여정

-주님과 함께, 주님을 따라, 주님을 향해-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모든 것은 다 떠나갑니다. 우리 삶도 지나갑니다. 우리 삶도 떠나갑니다. 옛 사진들을 보면 얼마나 지나왔는지, 떠나 왔는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니 현재에 지극히 충실하되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래야 초연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대 데레사의 시를 바탕한 “아무것도 너를”이라는 유명한 성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이런 이들이 진정 믿음의 사람들이요 영적부자들이요 참으로 자유로운 이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이 삶의 중심이, 삶의 목표가, 삶의 방향이, 삶의 의미가 될 때, 하루하루 잘 살 수있고, 잘 떠날 수 있습니다. 역시 떠남의 훈련, 떠남의 습관입니다. 하루하루 잘 살아야, 잘 떠나야 마지막 떠남인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갑작스러운 좋은 떠남의 죽음은 없습니다. 문득 떠오른 22년전 선물이란 시입니다.

 

“꽃처럼 환한 웃음보다 더 좋은 선물 있을까

삶은 순전히 선물이다

꽃같은 삶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순식간 사라져가는 꽃들

바로 선물 인생 아니던가

얼마나 그 많고 좋은 선물들 놓쳐 버리고 살았는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대로 꽃인 인생인 거다

어제의 꽃 폈다 지면 또 오늘의 꽃 폈다 지고...

평생을 하루하루 그렇게 꽃으로 사는 거다

끊임없이 폈다 지면서 

떠나는 삶이다

잘 떠날 때 아름답지 않은가

길이길이 향기로 남는다”-2001.4.23.

 

바로 예수님의 삶이, 성인들의 삶이 그러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이런 아름다운 떠남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말 그대로 “파스카의 꽃”같은 삶입니다. 잘 떠나는 죽음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평화와 일치를 남겨 놓고 떠나는 향기로운 떠남의 죽음이 그러합니다. 지난 성소주일 교황님의 강론중 다음 대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목표의 시야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들은 이런 질문들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향해 걸어가는 곳은 어디인가? 무엇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인가?’ 이런 질문들이 없으면 우리 삶은 현재에 매몰되어 길을 잃습니다. 

 

반면 ‘우리의 고향은 하늘입니다(Our homeland is Heaven)’ 이 목표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 이를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됩니다. 특히 곤경에 처할 때 악이 날로 강해짐을 느낄 때, 우리는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가야할 길은 어느 길인지 더욱 자문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답을 찾도록 합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진리 안에서 살기 위해,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 따라야 할 길입니다. 그러니 하늘을 바라보고, 목표를 기억하고, 영원에로, 하느님과의 만남에로 불리었음을 생각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요 행복입니다. 막연히 목표없이 떠남의 여정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주님을 따라, 주님을 향한 떠남의 여정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신,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떠남의 여정입니다. 그러니 영원한 도반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우정의 관계가 얼마나 본질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떠남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죽음에 앞서 참 좋은 평화와 기쁨을 남기고 떠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 떠남의 여정은 늘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 역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도 평화와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가 고백성사 보속시 말씀 처방전으로 자주 드리는 성구이기도 합니다. 흡사 예수님의 유언처럼 들립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 예수님을 통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아버지께 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희망과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에게 ‘떠남의 여정’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의 여정’이 됩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말씀도 우리 삶의 지침이 됩니다. 참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온마음, 온힘으로 사랑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치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그 스승인 예수님께, 그 제자들인 바오로와 바르나바입니다. 이들의 눈부신 복음 선포 활동후에 떠나는 모습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역동적인 떠남의 여정인지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마침내 자기들을 파견한 본거지인 안티오키아 교회에 돌아와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신 것을 보고하고 오래 그곳에 머물으니 말 그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선교 여정입니다. 

 

잘 떠날 때 아름답습니다. 하루하루 주님과 함께, 주님을 따라, 주님을 향해 떠남의 여정에 충실할 때, 마지막 아름다운 떠남의 죽음입니다. 죽음 역시 부활에의 새로운 시작이니 떠남의 여정은 늘 희망과 기쁨이 가득한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떠남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아멘.


[5/10(수)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교회는 만남, 경청, 식별의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입니다. 저 역시도 만남, 경청, 식별을 통해서 저에게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은 결국 하느님과 소통을 통해서 풀어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면서 풀어갈 수 있습니다.(반영억 신부)

 

2. 내적 인간, 영적 인간, 예스 맨이 되는 길은 모든 것에 예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는 예스 하고 그것과 반대되는 뜻에는 노를 하는 삶입니다. 분별이 없다면 그것은 육적 인간도, 영적 인간도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에 언제나 예스를 하여 내적 평화를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됩시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주님!
평화를 위해 가시관을 쓰게 하소서.
창에 찔리신 당신 가슴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누르고 빼앗고 장악하고 차지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고 비워져서 평화로워지게 하소서!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음에 평화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바라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 예수님을 통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아버지께 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희망과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에게 ‘떠남의 여정’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의 여정’이 됩니다.(이수철 신부)

 

[5/10(수)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제 137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진정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2023년 5월10일(수) 6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