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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5월 16일 화요일[(백) 부활 제6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5월 16일 화요일[(백) 부활 제6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묵시 19,7.6 참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 드리세.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이 다스리신다. 알렐루야.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애로우신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저희가
참으로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8(137),1과 2ㄴ.2ㄱㄷ과 3.7ㄹ-8(◎ 7ㄹ 참조)
◎ 주님,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소서.
또는
◎ 알렐루야.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제 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에,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한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 ◎
○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니,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이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
○ 주님은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시나이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리라! 주님, 당신 자애는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손수 빚으신 것들 저버리지 마소서. ◎

복음 환호송

요한 16,7.13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리니 그분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루카 24,46.26 참조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저희를 도우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충실히 살아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협조자이신 성령께서 오시리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오는 국경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이슬람은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과월절이 끝나고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절이 지나고 부활 축제기간 중이었습니다. 요르단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려고 이스라엘로 많이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이라서 국경에 직원들이 평소보다 적었습니다. 부활절이 지나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많이 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것도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1시간이면 충분했는데 이번에는 3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여러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상황이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짜증을 내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짜증을 낸다고 상황이 바뀔 리는 없었습니다. 새치기 하는 분들에 대해서도 짜증을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새치기한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잘 받아들이는 분도 보았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요르단에 왔으니 요르단의 법을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새치기 하는 분들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 주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나는 성지순례를 왔지만 저분들은 생존의 문제가 달린 것이니 기꺼이 자리를 양보한다고 하였습니다. 맞았습니다. 우리는 늦게 이스라엘에 도착해도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분들에게는 기다리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저도 성지순례의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면 해결될 일이었습니다. 저 역시 나가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다리면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마침 강의 내용이 도마복음이었습니다. 평소에 듣고 싶었는데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2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강의를 들으니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이 제게는 기쁨이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습니다.

 

강의 내용이 사자와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이 사자에게 먹히면 불행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자가 인간에게 먹히면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자는 육체의 욕망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육체의 욕망에게 사로잡히면 불행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물이라는 사자가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명예라는 사자가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권력이라는 사자가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모상이었습니다. 재물이라는 사자는 가난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명예라는 사자는 비움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권력이라는 사자는 겸손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요르단에서 넘어오는 이스라엘 국경에서 저는 사자와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분들은 사자에게 물어뜯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감사와 기쁨이 많았던 분들은 사자를 온순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사자를 가난과 비움 그리고 겸손으로 따듯하게 받아들이는 사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욕망, 명예, 권력에 젖어있던 간수는 사도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난, 비움, 겸손의 영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또한 사자의 우리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의 길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2.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데 왜 떠나야할까요? 그것은 사랑이 삼위일체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거름을 받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가지에 성령의 수액을 넘겨줄 수 없습니다. 

 

    이별 영화의 대명사인 ‘카사블랑카’(1942)에서 이러한 상황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 지배하는 모로코의 도시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합니다. 카사블랑카는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통행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릭은 카사블랑카에서 유명한 나이트클럽과 도박장을 소유하고 있는 냉소적인 미국 국외 거주자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유럽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때 파리에서 릭의 전 애인 엘사가 남편과 함께 등장합니다. 그들은 릭이 소유한 ‘통행증’을 얻기 위해 카사블랑카에 있습니다. 이 통행증만 있으면 독일 점령 유럽과 중립 포르투갈을 자유롭게 여행 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탈 수도 있습니다. 릭은 나치가 파리를 침공했을 때 엘사가 갑자기 그를 파리에 남겨둔 것에 대해 여전히 앙심을 품고 있습니다. 사실 엘사는 독일에 대항해 싸우던 남편이 죽었다고 믿어서 릭과 사랑에 빠졌던 것인데 남편 빅터가 살아 돌아와 결국엔 빅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릭과 엘사의 과거 관계를 알고 있는 빅터는 독일군에게 발각되고 잡혀가면서 자기 아내 엘사를 릭에게 부탁합니다. 엘사도 릭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릭은 자신의 친구 고위 경찰에게 자신이 빅터에게 통행증을 전해줄 때 잡으면 더 큰 공을 올리게 될 것이라며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릭이 만든 함정이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독일군 서장의 서명이 있어야 하는데 서장을 권총으로 위협하여 둘을 떠나보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스트라사 소령이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릭은 그를 총으로 사살합니다. 그리고 릭은 빅터와 엘사가 행복할 수 있게 영원히 떠나보내 보내줍니다. 경찰서장 루이는 릭의 친구였기 때문에 웃으며 릭이 피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합니다. 둘은 진정한 우정 관계를 시작합니다. 

 

    릭이 사랑하는 여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카사블랑카에 범죄자로 남아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사랑하니까 떠나야 하는 영화의 대명사입니다. 떠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상징되는 통행증이 엘사와 남편에게 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께 머물러야만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가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엘사의 남편 빅터의 관점에서 봅시다. 그에게 죄는 독일에 저항하지 않는 릭입니다. 그는 독일에 저항함으로써 의로워진다고 여겼습니다. 그가 독일이라는 악을 심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죄는 목숨을 걸고 그들을 보내주려는 릭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일에 저항함으로써가 아닌 자신이 릭의 목숨 값으로 받은 통행증이 바로 의로움입니다. 또한 릭이 독일군 장교를 처단한 것처럼 악의 심판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린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 힘으로 악에 저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께서 교회에 맡긴 성사라는 통행증을 받고 의로워지면 됩니다. 그러면 이미 심판을 이긴 것입니다. 

 

    사랑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신비임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잘 떠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릭은 엘사를 떠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빅터는 죽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릭의 친구 루이가 아니면 통행증은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도 배우자를 위해, 자녀를 위해, 친구를 위해 주님께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주님의 은총을 직접 받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줄 것이 없으면서 붙어만 있으려고 하면 언젠가는 원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성령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에서 흘러오는 수액과 같습니다. 포도나무에서 가지로 수액이 흘러들지만, 사실 포도나무를 가꾸는 농부가 계시고 그분이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성령의 거름으로 포도나무를 키웁니다. 그래야 가지를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우리를 떠난 분을 볼 수 있을까요? 만약 아버지가 매일 집에만 있다면 자녀들은 좋을까요? 불안합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밖에 나가야 돈을 벌어오는지 압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버지가 안 보이는 것을 기뻐합니다. 물론 규칙적으로 만나주기는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주 가버리신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서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그렇게 고생하시며 저를 키우셨다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아버지의 일하는 곳까지 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자리는 그분이 일하는 곳에서 그 일에 참여할 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떠나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하여 당신이 계신 곳에 오도록.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515.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너희(제자들)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박해가 오면, 제자들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증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증언의 확실성인데, 그 확실성의 근거는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증언하게 될 이들이 둘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직접 본 이들입니다.
 
<첫 번째>로 증언하게 될 이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직적 목격한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증언은 확실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증언하게 될 이는 제자들입니다.
 
“너희(제자들)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7)

그렇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직접 목격한 그들의 증언은 확실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당신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고 말씀에 대한 이유를 ‘우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요한 16,1)이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요한 16,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예고는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단지 박해를 예고만 할뿐, 박해를 피할 방도나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러한 때가 오면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고 너희에게 이렇게 미리 말해 두는 것이다”(요한 16,4)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기껏 “기억하라”고만 할 뿐입니다. 참으로 무력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예고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는 길에서, ‘고통’과 ‘박해’는 없어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당신이 구세주이심을 증거 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립 1,29)

그러니 고통과 박해는 없어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할 공간이고 배경이 됩니다. 그리스도께 보내신 성령께서 바로 그 고통과 박해를 통해서, 바로 그 속에서 우리의 증언을 동행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4)

주님!
미움과 박해가 닥치면 피할 방도를 찾기보다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안정과 편안을 찾기보다 당신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불가항력으로 닥칠 때,
도저히 용서될 수 없을 것 같은 죄와 끝내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를 당할 때,
바로 그때가 당신을 증거 해야 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바로 그것이 당신을 증언할 수 있는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선교의 본질적 두 요소

-환대와 보호자 진리의 영-

  

일기쓰듯 자유롭게 쓰는 강론입니다. 이미 예전에 모범적인 주옥같은 강론들은 너무 많이 써서 나눴기에 이젠 좀 자유롭고 싶습니다. 참 오랜만에 1박2일의 외출이었습니다. 왜관수도원에 5.14일 일찍 출발하여 왜관 수도원 피정집에 도착하여 종신허원 봉헌자 피정 강의하고 5.15일 늦게 귀원하여,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저녁식사는 못했지만 내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원장수사에겐 축하인사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예 저녁은 생략했고 잠시후 끝기도에 참석했습니다.

 

왜관은 교통이 불편한 곳입니다. 하행시 ktx로 동대구역에 갔다가 무궁화호로 바꿔타 역방향으로 왜관역에서 내렸고 상행시 무궁화호로 동대구역에 갔다가 ktx로 바꿔타 상경했습니다. 착오로 인해 고생도 했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고 어리석음을 자초하여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왜관 피정집에서 왜관역까지 걸어갔고, 또 착오로 ‘불암동’전 정류장 45번 종점에서 내려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수도원 집무실까지 오니 ‘참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생 무거운 캐리어를 가장 많이 끌었던 결코 잊지 못할 날이었습니다. 소득은 안셀모 신부의 두 권의 책을 구입했다는 것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어라’ 책의 후기는 정말 감동 깊게 읽었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미 제가 35년전 1988년 대학원 석사 논문(Thomas Merton에게 있어서의 그리스도교의 관상觀想-관상觀想에 대한 통전적統全的 이해-)에서 다루기도 했던 분으로 참 심취心醉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오늘 5월15일은 참 각별한 날입니다. 스승의 날이자 세종대왕의 탄생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주 이씨 영해군 자손인데 영해군은 세종대왕의 17남으로 화목한 것을 좋아하여 다투는 일이 없었다 하니 제가 영해군을 닮았나 봅니다. 참으로 위대한 세종대왕이요 그 평전을 보면 감동 자체입니다. 

 

또 오늘은 우리 수도원의 원장인 파코미오 신부의 영명축일이기도 합니다. 어제 참 기막힌 일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영명축일 축하에 늦어질 것 같아 왜관피정집 아름다운 장미꽃들 배경한 성모님 사진과 더불어 보낸 것이 오타로 ‘성모님’을 ‘장모님’으로 보낸 것입니다. 

 

“왜관 피정집 장모님께서도 기뻐 축하드립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성모님이 장모님으로 오타가 기막힙니다.” 메시지를 보냈고, “오늘의 화두입니다.” 재차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성모님의 사위’라면 이보다 더 큰 성모님의 사랑은 없을 것이라 속으로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본의 아니게 최고의 축일 선물을 보낸 것이니 이 또한 성령님의 은총입니다.

 

코아노니아(Koinonia)! 참 좋은 말마디입니다. 바로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은 오늘 이집트의 공주수도승의 아버지라 칭하는 성 파코미오 아빠스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바로 파코미오 수도 공동체의 뿌리가 되는 코이노니아, 형제들과의 일치를 뜻하는 말마디입니다. 바로 성 파코미오 아빠스의 수도공동체가 코이노니아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성 파코미오 아빠스가 임종할 즈음에는 그의 수하에 약3000명의 수도자들이 있었고, 2개의 수녀원도 있었지만 사제로 서품되지는 않았습니다. 성인은 전염병이 창궐하던 지역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전염되어 346년 또는 347년 9월5일에 세상을 떠나니 말그대로 사랑의 리더십을 지녔던 코이노니아의 사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일년 단위로 나오는 왜관수도원 잡지 이름도 코이노니아이고 요셉수도원을 사랑하여 모인 자매들의 모임 명칭도 코이노니아 자매회입니다. 세종대왕의 17남인 영해군도 코이노니아의 왕자였음을 봅니다.

 

요셉 수도원 역시 형제애가 넘치는 코이노니아 수도공동체입니다. 어제 귀원해 보니 휴가를 떠났던 세 수도형제가 원장 축일에 앞서 모두 귀원하여 축하해주는 것을 보고 새삼 깨달은 코이노니아 친교의 형제애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의 특징이 코이노니아입니다. 메타노이아(회개)-코이노니아(친교)-디아코니아(봉사)에서 보다시피 신자생활의 핵심 요소가 되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어제 왜관 수도원 수도형제들을 보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들 늙었고 흰머리들이 못알아 볼 정도였습니다. 순간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믿음의 눈으로 보니 ‘믿음 덩어리’로 보였습니다. 정말 믿음으로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주님 믿음의 전사에 손색이 없는 장한 분들입니다. 그래도 많이 웃으며 기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웃으면 꽃같은 사람의 얼굴인데 웃지 않으면 괴물같이 보이는 노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순수로 빛났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노욕老慾이 노추老醜가 되기 쉬운 이치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빛나는 젊은이들이 꼰대라 하여 노인들에게 거리를 두는지 모릅니다. 입을 닫고 지갑은 여는 노인이 되라는 말도 생각이 납니다.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합니다. 

 

나중에 남는 얼굴은 둘중 하나일 것입니다. 기도와 사랑으로 코이노니아의 삶을 통해 주님을 닮은 얼굴인가 그렇지 않은 얼굴인가, 참 한결같은 얼굴관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기 위해, 예닮의 여정을 위해 주님의 '영원한 현역'이 되어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애의 친교인 코이노니아가 선교에도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코이노니아의 사람이 바로 환대의 사람이요, 이런 환대의 사랑을 가능하게 해주는 보호자 진리의 영, 성령입니다. 선교활동에 있어 두 결정적 본질적 중요한 두 요소가 환대와 보호자 성령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고 바오로 일행을 환대하는 티아티라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가 환대의 인물이자 코이노니아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하고 청했을 때 분명 바오로 일행은 이에 응답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겸손한 보호자 성령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또 깨닫게 됩니다.

 

이런 환대의 사랑과 영성은 교회 자매님들을 통해 오늘날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환대의 사랑을, 정신을 실천하는 자매들이 있기에 유지되는 교회요 수도원같습니다. 봉헌금이나 미사예물을 내는 분들은 거의가 자매들이요, 자발적 사랑으로 수도원 봉사하는 분들도 거의가 자매들입니다. 

 

수도원을 방문할 때도 형제들은 거의 빈손이지만 자매들은 무엇인가 들고 옵니다. 부성애와 모성애의 차이가 천지차이입니다. 코이노니아 자매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과 얼굴이 꽃같이 예쁘다는 것이니 환대의 영성 덕분일 것입니다. 사실 세상 곳곳에 이런 환대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무소유의 선교사들의 선교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환대에 이어 보호자 성령입니다. 이 두 요소의 특징은 “겸손하여 표면에 나서지 않는다(self-effacement)”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환대의 영성이요 보호자 성령인지요! 환대의 영성과 보호자 성령이 교회와 선교에 얼마나 고마운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요! 겸손하여 표면에 나서지 않은 성령의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오늘 복음의 중심 말마디는 보호자 성령, 진리의 영입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살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진리의 영, 성령의 선물이 있어 비로소 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예수님도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 바로 무지에 대한 결정적 답도 보호자 진리의 영, 성령뿐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진리의 영, 성령의 인도따라 살아갈 때 겸손한 사랑의 환대에 주님을 증언하는, 지칠줄 모르는 선교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환대의 사람,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끝으로 “오소서 성령이여”(성가142,494)로 강론을 마칩니다. 성가494장을 수시로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믿는자의 위로여, 

 우리 마음 깊숙이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오소서 성령이여 세상을 비추사

 어두운 이 세계를 진리의 불로 밝히소서.

 

 영혼의 위로자여 괴로움없이하고

 병든자의 실의에 희망의 길을 비추소서.” 아멘.


[5/16(화)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재물이라는 사자가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명예라는 사자가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권력이라는 사자가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모상이었습니다. 재물이라는 사자는 가난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명예라는 사자는 비움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권력이라는 사자는 겸손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요르단에서 넘어오는 이스라엘 국경에서 저는 사자와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분들은 사자에게 물어뜯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감사와 기쁨이 많았던 분들은 사자를 온순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자리는 그분이 일하는 곳에서 그 일에 참여할 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떠나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하여 당신이 계신 곳에 오도록.(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4)

주님!
미움과 박해가 닥치면 피할 방도를 찾기보다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안정과 편안을 찾기보다 당신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불가항력으로 닥칠 때,
도저히 용서될 수 없을 것 같은 죄와 끝내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를 당할 때,
바로 그때가 당신을 증거 해야 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바로 그것이 당신을 증언할 수 있는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오늘 사도행전에서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고 바오로 일행을 환대하는 티아티라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가 환대의 인물이자 코이노니아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하고 청했을 때 분명 바오로 일행은 이에 응답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겸손한 보호자 성령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또 깨닫게 됩니다.(이수철 신부)

 

[5/16(화)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제 143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재산, 명예, 권력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다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5월16일(화) 7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