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13일 화요일[(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본기도
복된 안토니오를 뛰어난 설교자요 곤경 속의 전구자로 보내 주셨으니
저희가 그의 도움으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1,18-22
형제 여러분, 18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말하는데,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아니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20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합니다.
21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소서.
○ 당신의 법 하도 놀라워, 제 영혼 그 법을 따르나이다. ◎
○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
○ 당신 계명을 열망하기에, 저는 입을 벌리고 헐떡이나이다. ◎
○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에게 약속하신 대로, 저를 돌아보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
○ 당신 말씀대로 제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고, 어떠한 불의도 저를 짓누르지 못하게 하소서.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이사 61,1-3ㄹ)와 복음(루카 10,1-9)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거룩한 신비로 복된 안토니오를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그를 기억하여 주님의 제대에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에게 용서와 평화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또는>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복된 안토니오를 기리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럴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게 됩니다. 나의 허물과 잘못도 돌아보게 됩니다. 분노의 바람이 불다가도 마음이 평온해 집니다. ‘그럴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면 오해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이 눈에 들어옵니다. 평온해야 할 마음에 거센 파도가 생기게 됩니다. 신부님들과 캠핑을 갈 때였습니다. 같이 가기로 한 신부님이 10시 30분에 떠나면 좋겠는데 11시에 가자고 했습니다. 11시에 맞추어서 가니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합니다. 짐을 정리해서 차에 옮겨 실었습니다. 이번에는 허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짐을 옮기면서 조금씩 짜증이 났는데 허리가 아프다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왕 기다리는 것이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는 생각에 라면을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허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고 합니다. ‘그럴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허리가 삐끗했다는 말도 생각났습니다. 주일 미사에도 못 나갔다는 말도 생각났습니다. 예전에 저를 위해서 미사를 대신 해 준 것도 떠올랐습니다. 통증병원에 데려다 주면서 치료 잘 받으라고 했습니다. 캠핑장에 도착하니 다른 신부님들이 준비를 다 해 놓았습니다. ‘그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마음에 일어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합니다.” 아멘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순명’입니다. 성모님께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요셉 성인께서도 남모르게 파혼을 하기로 했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다짐입니다. 성인과 성녀들은 순명의 삶을 살았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결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가 되십시오.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세 번째 의미는 ‘청원’입니다. 내비게이션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서 길을 찾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은 비록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새로운 길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아픈 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멘입니다. 네 번째는 ‘찬양’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귀함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함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멘은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삶을 살아간다면, ‘아멘’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누구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2.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612.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오늘은 ‘참 행복’이 담고 있는 영성적 특징의 두 기둥에 대해 보고자 합니다. 곧 ‘존재론적 영성과 실천적 영성’, ‘됨’(being)의 영성과 ‘함’(doing)의 영성입니다. 전자는 우리를 ‘꼴 짓는 영성’이고, 후자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존재로서의 영성’은 우리의 존재의 틀을 만들고 내용을 채우며 존재를 존재답게 하는 영성이요, ‘실천적 영성’은 존재론적 영성에 살이 입혀진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영성이 내면의 성숙이나 상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행위와 실천으로 살을 입고 구체화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현실에서 육화 될 때 비로소 살게 되는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존재’가 변화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새로운 피조물로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요, 변화된 존재로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존재의 변화를 토대로 실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존재가 새로워졌다면, 그 새로워진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양식이 필요하게 됩니다. 곧 변화된 새로운 존재인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창조세계인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기운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론적 영성, 곧 ‘됨의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참 행복’에서는 어떤 윤리적 행위를 위한 실천덕목들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와 변화된 존재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의 외향적인 ‘행위’가 아닌, 내면의 ‘존재됨’을 선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존재와 행위가 이 둘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삶의 양식에서 있어서 둘은 구분됩니다. 그러니 ‘참 행복’은 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복이 주어진다는 논리가 아니라, 총체적 존재의 변화를 보여주며, 그것에 따른 영성생활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됨’의 영성은 존재의 변화를 일으키며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을 개선하거나 윤리적, 도덕적 행위를 촉발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전 존재에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행복’은 단지 여덟 가지 덕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의 여덟 가지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참 행복’은 존재론적 영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곧 존재 변화로서의 ‘참 행복’은 삶의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측면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됨’의 영성은 ‘함’의 영성으로 육화하게 됩니다. 곧 존재의 영성은 실천적 삶의 영성으로 이어지고, 또 실천적 영성은 존재의 영성으로 맺어지는 과정으로 계속 순환, 반복하게 됩니다.
이를 ‘참 행복’에서는 이렇게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됨’의 영성은 가난, 슬픔, 온유, 의로움, 자비, 깨끗한 마음, 평화, 박해(고난)로, ‘함’의 영성은 하느님께 예속(의탁), 치유, 섬김, 해방, 용서, 회개, 비폭력, 인내로, 그리고 그 복은 하늘나라, 위로, 땅, 채워짐, 자비, 하느님을 봄, 하느님의 자녀, 하늘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제 가슴이 찔리게 하소서.
온유해 지게 하소서.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지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게 하소서.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어지게 하소서.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게 하소서.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지게 하소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끌게 하소서.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제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복된 삶이 제게는 참된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3.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성덕(聖德)의 여정
-진복팔단(The Beatitudes)의 실천-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2.6)
화답송 시편이 참 좋습니다. 힘들고 험한 광야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성인들입니다. 1년간 휴간했던 <녹색평론> 계간지가 도착하니 참 반가웠습니다. 20년이상 고정 독자로서 정독하는 잡지입니다. 기후위기를 맞이하여 생태적 회개와 생태적 혁명을 위해 필히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요즘 쓰레기 나가는 것이 예전과 비교하면 너무 많습니다. 수도원 초창기때는 거의 없었는데 택배가 있고 부터는 쓰레기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어제만 해도 고마운 분의 선물로 자녁식사시 돼지 족발을 형제들이 잘 먹었는데 나오는 1회용 플라스틱, 아깝게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정말 많았고 마음이 내내 편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내니 먹는 것이 죄가 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전국적 현상이라면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성덕의 실천도 이런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하는데 모두가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참 대책이 묘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덜 내도록 정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가능한 내외적으로 쓰레기를 적게 내고 사는 삶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옛날 농촌에서는 쓰레기가 전무했습니다. 아직도 병원에 입원중인 교황님께서 노벨상 수상자들 30명 모임에 보낸 6월10일 메시지 내용에 공감했습니다.
“천국(The heaven above)이 서로 형제자매로서 새롭게 발견하고, 우리 순례 여정의 기초로서 형제애를 믿으면서 우리 함께 걷도록 초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천상을 향한 순례 여정의 동반자들인 도반들이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형제애요 영적우정입니다. 저는 이런분들을 만나면 참 반갑고 감격스러워 안아드리고 격려하기도 합니다. 이런 심정을 담은 다음 고백글입니다.
-“사랑합니다!”
감동에 벅차 당신을
안을 때마다
주님을 안 듯
주님의
살아 있는 보물을
살아 있는 소우주를
살아 있은 성경을
안 듯 당신을 안는다
가슴 벅차 오는 기쁨이요 행복이다.-
잘 살고 못살고 관계 없이 힘들고 험한 광야 세상 포기하지 끝까지 바르게 살아왔다는 자체가 구원이요 성인입니다. 제 주변에는 외롭고 힘들어도 이렇게 분투의 노력을, 책임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살아 있는 성인들이 곳곳에 많습니다. 한분한분이 살아 있는 성경책 같은 분들이라 마음 속으로 윗 시를 읽으며 안아 드리곤 합니다. 굿뉴스에 날마다 제 강론을 정성을 다해 올려주는 형제도 제가 볼 때는 성인입니다. 어제 나눈 카톡 대화입니다.
-“굿뉴스 강론 글자가 크고 시원해 읽기가 좋습니다. 정성껏 올리시노라 참 수고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최원석 요한 형제님! 수도원의 천국문 축복선물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마침 수도원 수도원 입구에 곱게 핀 덩굴장미꽃들로 장식된 아치형의 입구문이 아름다워 나눈 사진과 더불어 보낸 감사메시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늘 천국의 문 열어 주셔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저의 날마다의 강론이 정말 천국문을 열어주는 역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 사랑이 가득 담긴 메시지가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삶의 현장에서 이렇게 최선을 다해 치열히 살아가는 형제가 성인입니다.
오늘 복음도 제1독서도 성덕을 향한 여정에서 성인이 될 수 있는 구체적 지침을 주십니다. 십계명은 기본으로 하고 우리 삶의 중심에 담고 살아가야할 복음의 참행복, 진복팔단입니다. 부정적 금령의 닫혀있는 십계명과는 달리 늘 천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성덕의 지침들입니다.
늘 새롭게 살아가야할 성덕의 지침들입니다. 아무리 실행해도 영원한 초보자임을 깨닫게 하는, 참으로 겸손하게 하는 진복팔단의 가르침입니다. 종파를 초월해 대부분 영성가들이 격찬하는 산상설교의 참 행복, 진복팔단입니다. 간디는 물론이고 성철 스님도, 법정 스님도 감복하고 공감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이대로 살려 노력했습니다.
여러분의 성덕점수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도 했던 일입니다. 참으로 천상을 향한 순례 여정에서 성인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궁극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은 이미 지금 오늘 여기서부터 천상의 등정길에 오른 이들로 천국의 삶을 살기시작한 분들입니다.
1.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2.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3.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4.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5.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6.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7.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8.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바로 이렇게 사는 이들이 이미 오늘 지금 여기의 천국에서 성인의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결정적 말씀이 우리를 격려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친히 이들의 보상이 되어 주십니다. 모세의 십계명과 차원이 다른 십계명을 훨씬 능가하는 새모세 예수님께서 주시는 하느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진복팔단 가르침입니다.
주로 금령으로 이뤄진 닫힌 십계명대로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 현재와 미래로 활짝 열린 성덕의 여정에 진복팔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분발하여 실천을 시도하게 합니다. 해도해도 끝없이 해야 할 영원한 초보자임을 깨닫게 하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활짝 열린 진복팔단 지침들입니다. 한번 성덕점수를 계산해 보세요. 각항목당 10점 만점에 80점, 기본점수 20점, 도합 100점 만점에 내 성덕 점수는 몇점쯤 되는가 한 번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복팔단을 구체화한 성덕중 하나가 위로입니다. 제1독서 2코린토서에 무려 위로라는 말이 10회나 나옵니다. 정말 위로하고 격려하는 이들이 성인입니다. 많은 이들이 바라는 바도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참으로 슬퍼하는 연민의 사람들, 자비의 사람들은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진정 이웃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위로의 사도 바올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많습니다.”
날마다 한밤중 저절로 눈떠서 강론을 쓸 수 있는 것도 주님의 넘치는 위로 덕분입니다. 우리가 수행생활에 항구할 수 있음도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힘 덕분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진복팔단의 참행복을 살게 하시며 성덕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8-9). 아멘.
4.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6/13(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합니다.” 아멘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순명’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결심’입니다. 세 번째 의미는 ‘청원’입니다. 네 번째는 ‘찬양’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삶을 살아간다면, ‘아멘’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누구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조재형 신부)
2. ‘참 행복’에서는 이렇게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됨’의 영성은 가난, 슬픔, 온유, 의로움, 자비, 깨끗한 마음, 평화, 박해(고난)로, ‘함’의 영성은 하느님께 예속(의탁), 치유, 섬김, 해방, 용서, 회개, 비폭력, 인내로, 그리고 그 복은 하늘나라, 위로, 땅, 채워짐, 자비, 하느님을 봄, 하느님의 자녀, 하늘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제 가슴이 찔리게 하소서.
온유해 지게 하소서.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지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게 하소서.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어지게 하소서.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게 하소서.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지게 하소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끌게 하소서.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제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복된 삶이 제게는 참된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3. 진복팔단을 구체화한 성덕중 하나가 위로입니다. 제1독서 2코린토서에 무려 위로라는 말이 10회나 나옵니다. 정말 위로하고 격려하는 이들이 성인입니다. 많은 이들이 바라는 바도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참으로 슬퍼하는 연민의 사람들, 자비의 사람들은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진정 이웃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위로의 사도 바올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많습니다.”
(이수철 신부)
4. ‘존재 상승 욕구’...
[6/13(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제 171일 기도]
그리스도를 닮아 부활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그럴 수도 있지’ 삶, ‘아멘’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인자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위로로 행복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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