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15일 목요일[(녹) 연중 제10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5개
입당송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리라.
본기도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시니
성령께서 이끄시어 저희가 바르게 생각하고
옳은 일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3,15─4,1.3-6
형제 여러분,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15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4,1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이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3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4 그들의 경우,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영광 우리 땅에 머물리라.
○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시옵니다.
<또는>
1요한 4,16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 병을 고쳐 주시는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를 온갖 죄악에서 자비로이 지켜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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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2023년 06월 15일 목요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으로서 율법 안에 담긴 충만한 의미를 드러내려는 의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 의지는 이어지는 단락에서 곧바로 실현됩니다.
마태오 복음 5장 21-48절에는 ‘–라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는 식의 정형화된 문구(대당 명제)로 시작하는 여섯 가지 가르침이 나열됩니다.
기존의 규정을 새롭게 풀이하며 하느님께서 처음 의도하신 참뜻을 밝혀 주시는 예수님의 권위 있는 모습을 조명하는 단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그 첫 번째 가르침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 신명 5,17)는 계명을 다룹니다.
그리고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라는 표현은 사형으로 그 죄를 엄하게 다스리는 율법의 규정(탈출 21,12; 레위 24,17 참조)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계명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뿌리를 보게 하십니다.
살인에 이르게 하는 분노나 화를 원천적으로 잘 조절하고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욕설을 내뱉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들이 살인죄처럼 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지나친 풀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행위들이 근본적으로 살인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한 어조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내면의 상태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사람의 행동은 언제나 그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분노로 가득 찬 마음은 언제든지 악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그 마음을 잘 다스리고 형제와 화해하는 일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평온한 감정만 지니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형제나 이웃의 잘못에 화가 치밀기도 하고 분노가 끓어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감정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늘 그들과 화해하고 용서하기를 바라십니다.
‘불붙는 지옥’이란 어쩌면 화해(和解)의 여지를 전혀 두지 않는 사람의 고집스러운 마음 상태를 일컫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마음이 ‘화해’(火海), 곧 불바다의 마음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여야 하겠습니다.
2.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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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오늘은 6월 15일입니다. 23년 전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 후 ‘공동선언’을 선포한 날입니다. 저는 당시 접경지역인 ‘적성’ 성당의 본당신부로 있었습니다.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과 북은 ‘해빙기’를 가졌습니다. 남한의 예술인들이 북한에서 공연하였고, 북한의 예술인들이 남한에서 공연하였습니다.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으로 입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은 남북공동선언의 열매였습니다.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공로를 인정받아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4년 전에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하노이’에서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북한과 미국의 만남은 ‘공동선언’이 없이 결열 되었지만 북한과 미국의 ‘공동선언’이 있었다면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미국의 대사관이 입주하고, 미국에 북한의 대사관이 입주하였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전부 폐기하고, 미국이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하였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전의 기억입니다. 왼쪽 손목이 부어서 잘 가는 침술원엘 갔습니다. 원장님은 부은 손목을 치료하지 않으시고 오른손에 침을 놓으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반대편에 침을 놓는데도 왼쪽 손목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원장님은 얼음찜질하거나, 감자를 썰어서 손목에 붙여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부은 손목에 침을 놓으면 오히려 더 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왼쪽 손목은 시간이 지나 부은 것이 가라앉으면 침을 놓는 것이 좋다고 하십니다. 저는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감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화가 나 있을 때는 잠시 멈추는 것이 좋았습니다. 화가 나서 결정하는 것들 때문에 때로 일을 그르치기도 했습니다. 화가 나 있는 상대방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도 결과는 신통치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화가 난 감정을 추스르면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면 좋은 방법이 떠오를 때가 많았습니다. 화가 난 상대방도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할 때가 있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상대방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현명한 방법 같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요한복음 8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은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손에는 돌이 있었습니다.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은 율법에 따르면 돌로 쳐서 벌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떨고 있는 여인을 보셨습니다. 감정에 휩싸여 눈에는 핏발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셨습니다.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벌을 주어야 한다는 분노를 가졌던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습니다. 떨고 있던 여인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 그리고 여인에게도 이야기하십니다. ‘나도 그대의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우리는 내비게이션, 인공위성, 기상관측 기구를 통해서 원하는 곳을 쉽게 갈 수 있고, 1주일 혹은 한 달가량의 날씨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혜롭다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인공위성으로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파처럼 겉모습만 하느님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누며,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며칠 앞의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30614.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5,19)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과 다른 점을 하나를 들라면,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 하나를 들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그리스도인이 다른 이들과 구별 짓게 하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말해줍니다.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맨 먼저 성전에서 마귀 쫓아내는 일과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셨는데, 그것은 안식일 법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구마와 음식을 먹으면서는 정결례 법과 단식법을 어기셨고, 또 율법을 가르치시면서는 모세의 이름이 아닌 당신 자신의 이름으로 가르치셨고, 죄를 용서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겉으로는 ‘율법의 파괴자’처럼 비쳐졌지만, 오히려 ‘율법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문자적이고 형식적으로 지켜지던 율법을 본래의 정신으로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이는 복음을 예표하고 있던 구약의 율법이, 이제 복음 안에서 완성(실행, 성취, 채워짐)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온몸으로 율법과 예언을 실행하셨고, 결정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한 19,30)고 하시면서 모든 것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실행하는 이가 복됨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5,19)
이는 계명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알고 있는 것을 말로 선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킴’으로써 계명을 ‘실행’하고, 그 실행으로 가르치는 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 그레고리우스는 말합니다. “설교자에게는 법이 하나 있는데, 설교하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는 법이다.” 그리고 어제 우리가 기념했던, 유명한 설교가였던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가르치는 바를 행동으로 파괴시킨다면, 사람이 법을 안다고 자랑하는 것이 쓸모없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지켜질 때라야, 비로소 그 ‘행위 안’에서 실현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한다는 것은 ‘사랑의 원의’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계명을 주신 분을 사랑하기를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사랑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한 2,5)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하오니, 주님! 제가 말씀의 계명을 스스로 지킴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이가 되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행실로 사랑하고,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고, 비록 작은 것 하나라도 깊은 사랑을 담고 행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마태 5,19)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제가 행동으로 가르치게 하시고,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행실로 사랑하게 하시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게 하소서.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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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율법의 완성
-사랑이 답이다-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시편25;4.5)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만민의 공통언어가 사랑의 순수한 마음입니다. 공통적 좋은 반응을 일으키는 제 시詩들도 한결같이 사랑이 주제입니다. 미국에 있는 신심깊은 조카를 통해 조카 친구가 만들어 주는 시화詩畫들이 참 반갑고 마음에 듭니다. 어제도 수도원 입구 빨간 넝쿨장미 아치형 입구 공간에 위치한 시가 참 좋아 많은 이들과 나누었습니다.
-“사랑합니다!”
감동에 벅차 당신을
안을 때마다
주님을 안 듯
주님의
살아 있는 보물을
살아 있는 소우주를
살아 있는 성경을
살아 있는 성인을
안 듯 당신을 안는다
가슴 벅차오는 기쁨이요 행복이다-2023.6.11
사실 이 시는 제 체험적 고백입니다. 긴 면담성사후 감동에 젖어 형제자매님들이 너무 장하고 고맙고 사랑스러울 때 사죄경과 더불어 강복을 드린후 이 시의 마음으로 안아드립니다. 이 시화를 받은 다섯 분 도반의 감사 답신입니다.
1.“아, 멋진 말씀을! 넝쿨 장미 성전입구 사진을 편집까지, 너무 감동입니다. 말씀만 보아도 행복인데 정성들인 사진으로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액자로 만들어 간직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예수님 품인듯, 따뜻하고 힘차게 안아 주시는 신부님께서 갑자기 확 제 앞에 계신듯 하네요. 감사드려요. 신부님, 좋은 하루 되시길요."
3."사랑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신부님!"
4."아멘, 신부님, 멋지고 아름다운 예수님께 대한 사랑고백이십니다. 감동입니다."
5."어제 인용하신 이 시도 참으로 감동입니다."
또 “사랑합니다!” 시작되는 시 2편이 생각납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앙의 예수 성심상 앞을 지날 때 마다 바치는 행복기도(예닮기도)중 첫연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참회합니다
믿습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2018.10.16
다음 시를 쓸 때의 장면이 생생합니다. 저에게 시는 짜내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은총처럼 발견되어 줍는 선물입니다. 그때는 고풍의 돌집 성당 입구에 있었던 물앵두나무 빨간 열매들이었습니다.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는 빨간 앵두열매들입니다.
-“사랑합니다!”
마침내
빨간 열매로
사랑을 고백하는 앵두나무
초록빌 나뭇잎들
믿음 사이로
수줍게 살며시 얼굴들 내밀고
사랑을 고백하는
빨간 앵두 열매들
부끄러워 빨갛게 물들었네”-1996.5.30
어제 월모임을 하고 간 코이노니아 자매회 공동 카톡란에 제가 올린 격려글입니다.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랑의 압축인 성호경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사랑의 예수님과 일치됨으로 변질되지 않고 참소금으로 참빛으로 참행복의 진복팔단을 살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오늘 복음을 요약하는 성호경입니다. 사랑의 기도, 사랑의 회개입니다. 한결같은 끊임없는 기도, 끊임없는 회개가 평생 변질되지 않는 참소금, 참빛의 주님 사랑으로 살게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오늘 복음에 대한 답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말씀이 참 엄중합니다.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의 우리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율법의 어떠한 세부사항도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기에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여기서 진실로는 히브리말 “아멘!”을 음역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와 사랑을 고백하는 말마디 “아멘”입니다. 율법 하나하나가 하느님 사랑이 알알이 맺힌 빨간 앵두열매들과 같으니 어느 하나 작은 것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으니 모든 율법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참으로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질 때 이런 사랑은 그대로 율법의 완성이 됩니다. 어느 율법하나 다치지 않고 사랑의 완성을 이룹니다. “완성하다”로 옮긴 그리스말 동사 “플레로오”는 “충만하게 채우다”는 뜻으로 마태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예언성취 도식에 즐겨 사용하는 말마디입니다.
텅빈 충만, 바로 하느님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바로 산상설교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가 구체적으로 율법의 완성이 사랑임을 입증합니다. 바로 이런 진리를 깊이 깨달은 사랑의 사도, 성령의 사도 바오로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고백입니다. 성령이 사랑입니다. 성령충만, 사랑충만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입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성령의 직분은 얼마다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의로움으로 이끄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성령의 직분을 지닌 새 계약의 일꾼으로, 사랑의 성령의 일꾼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인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 때 어느 하나 율법도 다치지 않고 완성하여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 불릴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분별의 잣대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령충만한 삶에, 날로 주님 사랑을 닮아 가게 합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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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목)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늘 그들과 화해하고 용서하기를 바라십니다.
‘불붙는 지옥’이란 어쩌면 화해(和解)의 여지를 전혀 두지 않는 사람의 고집스러운 마음 상태를 일컫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마음이 ‘화해’(火海), 곧 불바다의 마음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여야 하겠습니다.(정천 신부)
2.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지녔습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믿음만이 진정 우리를 분노에서, 그리고 이웃에게 악한 일을 벌이지 않게 되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맙시다.(전삼용 신부)
3. 참된 지혜는 며칠 앞의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조재형 신부)
4.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마태 5,19)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제가 행동으로 가르치게 하시고,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행실로 사랑하게 하시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게 하소서.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5.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아멘.(이수철 신부)
[6/15(목)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제 173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분노하지 않게 하소서.
분노의 제2화살을 맞지 않게 하소서.
침묵하고 겸손하게 하소서.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15일(목) 7시4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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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묵]2023년 6월 16일 금요일[(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신부님 강론 4개 (0) | 2023.06.16 |
[매묵]2023년 6월 14일 수요일[(녹) 연중 제10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3개 (1) | 2023.06.14 |
[매묵]2023년 6월 13일 화요일[(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3.06.13 |
[매묵]2023년 6월 12일 월요일[(녹) 연중 제10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3개 (1) | 2023.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