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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6월 20일 화요일[(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6월 20일 화요일[(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27(26),7.9 참조
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8,1-9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총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2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3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4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5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티토에게, 여러분에게서 이미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마저 끝내라고 권하였습니다.
7 이제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8 나는 이 말을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의 열성에 견주어 여러분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
확인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6(145),2.5-6ㄱㄴ.6ㄷ-7.8-9ㄱ(◎ 1ㄴ)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내 한평생, 나는 주님을 찬양하리라. 사는 동안, 나의 하느님 찬송하리라. ◎
○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 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네. ◎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네.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3,3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이 예물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살리는 양식이 되고
사람을 새롭게 하는 성사가 되게 하시니
이 제사가 저희 육신과 영혼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27(26),4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또는>
요한 17,1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잔치에서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저희가 주님의 사랑으로 친교를 이루어
주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06월 20일 화요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마지막(여섯 번째대당 명제에 해당하는 오늘 복음은 사랑에 관한 계명을 언급하면서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단락 전체를(5,21-48 참조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풀이를 꿰뚫는 핵심이 바로 사랑임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과 원수를 구분하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모든 이가 사랑의 실천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이 명령은 어떤 면에서 가혹하게 들립니다.

정말 악의적이고 잔인한 행동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백번 양보하여서 그 원수를 용서하는 일까지는 어떻게든 노력하여 본다고 하더라도 그를 과연 사랑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까지 하여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다시 그 근거와 동기를 찾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오른뺨을 때린 자에게 왼뺨마저 내주는 것으로 모자라 그 원수를 사랑까지 하여야 하는 이유,

그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바로 그러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등을 돌리고 온갖 불의를 일삼는 자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푸시고 같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편협한 사랑이 아닌 완전한 사랑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러하다면 자녀들의 사랑도 그러한 완전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루카의 병행 구절은 이를 자비로 바꾸어 표현합니다.

곧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

우리가 감히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완전함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의지를 가지는 것과 가지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함에 가까워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꽃동네 오웅진 신부님의 팔순 감사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신부님과는 23년 전에 인연이 있었습니다. 수녀님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본당의 여건상 수녀님을 모시기 어려웠습니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님께 꽃동네의 수녀님을 파견해 주실 수 있는지 청하였고, 오웅진 신부님은 기꺼이 2명의 수녀님을 파견해 주었습니다. 수녀님들은 꽃동네 수도회의 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늘 겸손한 자세로 신자들을 대하였고, 본당의 어려운 일들은 솔선해서 하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주일미사가 끝나면 성당에서 남은 주보를 정리하였고, 화장실 청소를 하였습니다. 예비자 교리, 가정방문, 봉성체에 함께 해 주었습니다. 제가 휴가를 가면 공소예절을 해 주었습니다. 수녀님은 김수환 추기경님께 예쁜 손 편지를 보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기꺼이 대림특강을 해 주셨습니다. 수녀님의 예쁜 손 편지가 한 몫을 했습니다. 당시 서울대교구에서 가장 규모가 작았던 성당에 대한 김수환 추기경님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제생활 32년 중에 가장 행복했고, 보람 있었던 시간을 수녀님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웅진 신부님께서 뉴욕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팔순 감사미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인연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신부님의 팔순 감사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23년이 지났지만 신부님은 여전히 건강하였습니다. 3시간 미사에 2시간 넘는 강론을 하였는데 하나도 지친 모습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면, 내어주면 나머지는 하느님께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신부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충실하게 하는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제 막 서품을 받은 새 사제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평생 성무일도를 하였습니다. 나는 매일미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신부님도 그렇게 하세요.” 신부님은 새 사제에게 강복을 청하였고 새 사제는 신부님에게 첫 강복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과 함께 했기에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21세기는 융합의 시대, 영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늘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에게 모든 권한을 주셨고, 성자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고,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은사를 주시는 것처럼 신앙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를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독사, 저출산, 유산과 같은 문제는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다고 하였습니다. 꽃동네가 추구하는 영성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관계의 회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60세가 되는 생일에는 노숙자 60명을 모시고 식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70세가 되는 생일에는 노숙자 700명을 모시고 소풍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80회 생일에는 한국에서 멀리 미국까지 와서 영성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모든 것들을 채워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인간에게 있는 3가지 욕구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소유욕, 지배욕, 사랑의 욕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구는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가지면 가실수록 더욱 큰 욕망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지배에 대한 욕구는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에 대한 욕구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소유와 지배는 문화와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지만, 소유와 지배는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후위기, 자연파괴, 생물의 멸종은 지배와 소유의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욕구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온전히 내어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와 성혈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랑에서 희망의 꽃이 핀다고 하였습니다.

 

3시간의 미사와 2시간이 넘는 강론이 자칫 힘들 수도 있었지만 제게는 가뭄 끝에 내린 단비와 같았습니다. 신부님은 정의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강론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정의는 사랑을 포용할 수 없지만 사랑은 정의를 포용합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는 억울하고, 분노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정의를 실현하였을 때라도 불안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억울함도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면 불안감도 사라지게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웅진 신부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 따르고 있었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619.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오늘 <복음>은 다섯 번째의 ‘새로운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구약의 복수동태법의 율법에 대하여, 새로운 의로움을 제시하십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이는 ‘악인에게 무관심 하라’, ‘악인을 피하라’, ‘악인에게 대처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곧 악에 대한 무저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단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도피요, 자기기만이요, 비겁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맞서다”는 말의 원어의 뜻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든,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응수이든, 일일이 맞대응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 ‘맞서지 말라’기보다 ‘맞대응하지 말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곧 ‘똑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하지 말라’, ‘폭력으로 맞대응하지 말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악과 맞대응 하다보면, 자신도 악에 물들어버리기 일수 입니다. 그런다고 피한다고 해서 치유되거나 보복심이 사라지거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억울하고 원망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악을 진정한 방법으로 맞서는 일, 곧 하느님의 방식으로 맞서 대응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악을 진정으로 맞서는 그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악을 도피하거나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사실, 악을 악으로 맞서는 것은 악을 이기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불을 불로 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불은 불이 아니라 물로 꺼야하듯, 악을 이기는 현명한 방법은 오히려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을 돌려 대는’(마태 5,39) 것은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복수심을 몰아내는 길이 됩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진정 이기게 되는 길입니다. 사랑이 악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이는 악이나 악인에게 맞서기보다, 악 가운데서도 주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고 의탁하라는 말씀입니다. 악을 오히려 선의 통로로 대처하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비폭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에 사랑을 담으라.’는 말씀입니다. 곧 사랑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말씀하십니다.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0-42)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주님!
맞서지 않게 하소서!
대적하거나 앙갚음하지 않게 하소서.
한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뺌을 돌려 대게 하소서.
당신께서 처벌할 권한이 아니라, 사랑할 권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이기는 길인 까닭입니다.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하닮의 여정

-주님의 일꾼, 주님의 전사, 자비의 전사-

 

계속되는 마태복음 5장의 산상설교입니다. 오늘은 6개 대당명제중 5번째 대당명제로 폭력을 “포기하여라(보복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짧지만 강력합니다. 예수님의 힘찬 말씀을 들어보세요.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빰마져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어 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이런이야 말로, 하느님의 일꾼의 자격이 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자비와 지혜의 하느님을 닮은, 예수님을 닮은 성인입니다. 천하무적의 주님의 전사, 사랑의 전사입니다. 이런 이들 앞에서 악은 저절로 무장해제되어 무력해집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악은 선의 결핍이란 말도 있습니다. 치유를 필요로하는 상처받은 선이 악일수 있습니다. 또 내눈에 악인이지 타인이나 하느님 눈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이라 단정짓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피치 못할 사연이나 원인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악인에 맞서지 않는 것은 악에 대한 비굴하거나 비겁한 무저항이 아닙니다. 악인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거룩한 사랑을 지녔기에 두려움의 어둠이 걷힌 내면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악인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습니다. 결코 악을 이길수 없습니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보복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으며 악마가 쾌재를 부릅니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미풍을 미풍으로 끝내는 참으로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참으로 자비에 저절로 따라오는 지혜와 용기입니다. 이런 거룩한 행위는 무저항이 아니라 거룩한 사랑의 저항입니다. 이의 전형적 인물이 누구보다 예수님을 닮았다는 힌두의 성자 간디입니다. 이런 이들이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들이요 자비와 지혜의 내공이 깊은 내적힘을 지닌 자들입니다. 참된 자기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는 자들이요 상대방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켜주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악에 대한 처방은 거룩한 사랑의 저항뿐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보복의 악순환을, 폭력의 악순환을 단(斷), 끊을 수 있습니다. 이런이들은 결코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를 낸다면 사감이 걷힌 의노일 것이나 이는 일종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지극한 인내의 대가요 달인들입니다. 참으로 자비롭고 지혜롭기가 하느님을 닮은 이들입니다. 

 

참으로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들이요 내적 부요의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아갈 때, 즉 하닮의 여정에 충실할 때 가능하겠습니다. 이런 거룩한 사랑을 지니려는 거룩한 청정욕은 너무 좋습니다. 욕심이 다 나쁜 것이 아니니 이런 거룩한 사랑의 성인이 되려는 청정욕은 정말 좋습니다.

 

역시 제가 늘 강조하는 영적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지칠줄 모르는 성인이 되려는 좋은 열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영적승리의 삶에, 평생 영적전투의 삶에 지칠줄 모르는 샘솟는 좋은 열정은 필수전제조건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좋은 열정에 있습니다. 역시 정신건강, 영혼건강, 마음건강에도 필수 전제조건이 이런 지칠줄 모르는 샘솟는 순수한, 좋은 열정입니다. 이런 이들이야 말로 매력적인, 아름다운 영혼들입니다.

 

모든 수행이 이런 열정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성인의 되려는 선택이요 이에 따른 한결같은 훈련이요 습관화입니다. 이렇게 선택-훈련-습관의 시스템안에서 하닮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이런 거룩한 사랑의 저항이 가능합니다. 악에 대한 궁극의 영적승리가 가능합니다. 이의 결정적 표지와 답이 십자가의 예수님,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파스카 주님의 은총이 이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구체적 수행으로 끊임없는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요 회개의 선택과 훈련, 습관화로 늘 맑게 깨어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밖으로는 인내의 정주의 산으로, 안으로는 늘 하느님 바다 향해 맑게 깨어 흐르는 찬미의 강, 사랑의 강, 용서의 강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산과 강의 영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결코 값싼 은총은, 값싼 구원은 없습니다. 은총과 더불어 분투의 노력을 다해 비폭력의 삶을 사는 이들, 거룩한 사랑의 실천으로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버려 악을 무력화하는 이들이야 말로 탁월한 의로움의 사람들이요 이미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사는 이들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참으로 자랑스런 영적승리의 표상, 인간승리의 표상이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라며, 또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이 날이라며 다음과 같이 하느님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강조합니다.

 

즉 주님의 전사, 자비의 전사, 지혜의 전사로 살아 온, 초지일관, 시종여일의 삶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요 부단한 자극이 되고 더욱 분투의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그리스문장은 하나랍니다. 폭포수같이, 또 단숨에 읽히는 내용 전부를 인용합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늘 그렇게 한결같이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아 온 바오로 사도입니다. 불가사의입니다. 도대체 이런 백절불굴의 성인을 본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철갑으로 완전무장한 바오로, 천하무적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구구절절 감동입니다. 영적 삶의 대원칙으로 삼아 끊임없이 이렇게 살도록 분투의 노력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의 본질적 깊이의 영적 삶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비워갈 때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1.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진실합니다.

2.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3.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4.벌을 받은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5.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6.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7.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이런 바오로 사도의 일곱의 역설적 진리의 삶을 통해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는 것"이란 사도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그대로 주님의 빛나는 현존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참으로 진리가, 하느님의 은총이 바오로를 자유롭게, 백절불굴의 주님의 전사로 살게 했음을 봅니다. 

 

여기에 한 분 추가하고 싶습니다. 오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의무기념으로 미사봉헌하는 10-11세기 성 로무알도 아빠스입니다. 가말돌리회 창립자로 베네딕도 규칙을 근간으로 하여 공주생활과 은거생활의 두 공동체를 동시에 하나로 품은 수도생활을 시작한 분입니다. 이 수도성인도 지칠줄 모르는 좋은 열정으로  하닮의 여정에 주님의 전사, 사랑의 전사로 시종여일한 삶을,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닮의 여정중인 우리 모두를 날로 당신 자비의 전사, 지혜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6/20(화)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

우리가 감히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완전함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의지를 가지는 것과 가지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함에 가까워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정천 신부)

 

2. 오웅진 신부님은 인간에게 있는 3가지 욕구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소유욕, 지배욕, 사랑의 욕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구는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가지면 가실수록 더욱 큰 욕망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지배에 대한 욕구는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에 대한 욕구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주님!
맞서지 않게 하소서!
대적하거나 앙갚음하지 않게 하소서.
한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뺌을 돌려 대게 하소서.
당신께서 처벌할 권한이 아니라, 사랑할 권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이기는 길인 까닭입니다. 아멘.

(이영근 신부)

 

4. 1.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진실합니다.

2.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3.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4.벌을 받은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5.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6.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7.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이런 바오로 사도의 일곱의 역설적 진리의 삶을 통해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는 것"이란 사도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이수철 신부)

 

[6/20(화)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제 178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완전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는 여정을 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20일(화) 9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