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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0월 1일 주일[(녹) 연중 제26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0월 1일 주일[(녹) 연중 제26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26주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하느님의 법을 따라 공정과 정의의 길을 걸으라고 촉구합니다. 죄인에게도 회개를 통하여 이러한 길이 열려 있으나,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는 이는 오히려 유혹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미사에서 우리가 주님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청합시다.

입당송

다니 3,29.30.31.43.42 참조
주님,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짓고 당신 계명을 따르지 않았기에, 당신은 진실한 판결에 따라 저희에게 그 모든 것을 하셨나이다.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저희에게 크신 자비를 베푸소서.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크신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약속하신 그곳으로 저희가 달려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악인이라도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면,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8,25-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5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5(24),4-5.6-7.8-9(◎ 6ㄴ 참조)
◎ 주님, 당신의 자비 기억하소서.
○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 날마다 당신께 바라나이다. ◎
○ 주님, 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 제 젊은 날의 죄악과 잘못은 잊어 주소서. 주님, 당신의 자애에 따라, 당신의 어지심으로 저를 기억하소서. ◎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

제2독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2,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1-5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자이신 주님,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에 가난의 정신을 되새겨 주시어,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신 성자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정의의 주님,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저희를 이끌어 주시어, 인종과 성별, 장애와 나이, 신분과 외모 등으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이를 존중하며 참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3.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사회에서 소외되어 비인간적 생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그들이 제도 안에서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으며 결코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지도 않게 하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와 함께하시어, 피조물 보호의 날에 한 다짐들을 기억하며 유한한 지구 자원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보호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소서.

예물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드리는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이 제사로 저희에게 온갖 복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6 : 영원한 파스카의 보증>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주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오니
이 세상에서 날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할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고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니
성령의 첫 열매를 지닌 저희에게도
파스카 신비가 영원히 이어지리라 희망하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19(118),49-50 참조
주님, 당신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저는 그 말씀에 희망을 두었나이다. 당신 말씀 고통 속에서도 위로가 되나이다.
<또는>
1요한 3,16 참조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시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주님 때문에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을 받지만 말씀을 선포하여야 한다고 예레미야 예언자는 고백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신비로 저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저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하며 그 수난에 참여하고
그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사진설명: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26주일

 

- 신앙은 ‘자기부정’부터; 지옥은 자기를 긍정하는 이들의 것

 

오늘 복음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어째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지 알려줍니다. 구원은 ‘아버지의 뜻’을 따름으로 성취됩니다. 아기들은 누구의 뜻을 따를까요? 부모의 뜻을 따름으로써 두 발로 걷게도 되고 말도 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하여 세상에 살 수 있는 수준의 인간으로 자라납니다. 하느님 나라도 성체를 통한 당신의 사랑을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믿고 그리스도처럼 살려고 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세리와 창녀들까지 그리스도를 통해 회개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도 그리스도께로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32) 

    예수님께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그들을 나무라십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틀렸음을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긍정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긍정은 자기 부정의 결과입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긍정하려는 이들은 하느님을 금송아지로 만듭니다. 하느님까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좌신부를 할 때 세례식을 통하여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70대 할머니셨습니다. 그분은 전직 산부인과 의사셨습니다. 처음엔 낙태도 많이 하시고 그렇게 돈도 많이 버셨습니다. 그러나 벌을 받은 것인지 얼굴 반쪽이 마비되어 비뚤어지는 병에 걸리셨고 창피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 저절로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지내던 중, 아래층 한 교우 자매님이 위층 집에 전교를 왔고, 이런저런 모든 사정을 들은 그 신자분은 “하느님은 모든 것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세례식 때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분만 찾았는데 그분은 다른 세례자들과 마찬가지로 걸어 나와서 모든 세례 예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건강하게 잘 살던 당신의 외아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남기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입니다. 저는 아들 생각을 덜 하게 만들기 위해 성경 필사를 하도록 권하였습니다. 오래 앉아 계시지도 못하고 눈도 안 좋으신 그 분은 18개월 만에 신구약 성경을 모두 필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하느님께 원망을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빨리 하느님 나라에 가서 아드님을 만나고 싶다고만 하였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래된 신자 부부가 똑같은 일로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고 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찾아가서 달래봤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아드님을 잃은 아픔을 극복한 자매님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당신들이 옳은 것입니다. 

이렇듯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갑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왔던 고통을 알기 때문에 부정도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뱀이라는 자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라”는 단어는 “적극적으로 거절하고 부인하다”라는 뜻입니다. 좋은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뱀과 같아서 깜짝 놀라 혐오스럽게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긍정하면 하느님을 바라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자기 긍정이 지옥의 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반면 자기를 부정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께 가까이 갑니다. 그 사랑만이 자기를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주님께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주시는 분 앞에서 무언가 드리고 있다는 파렴치한 나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벽이 있었습니다. 책을 판 돈을 마약과 술, 도박에 탕진하였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사람은 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도박 자금으로 줄 것이 없다며, 마지막으로 시집올 때 가져온 반지와 보석을 내어주었습니다. 원망한 적도 없습니다. 이러한 착한 아내를 위해 새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고 자기 자신과 싸우기 시작하여 결국엔 도벽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로 알아봅니다. 교회에서 많은 회개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보고라도 핑계 대지 말고 믿읍시다. 신앙은 사랑을 받음이기에 자기 부정부터 시작합니다.


  • 2. 조재형 가브라엘신부 강론

연중 제26주일

 

2019 8 21일에 서울에서 뉴욕으로 왔습니다. 어느덧 4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제게도, 우리가 머무는 세상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2020 9 10일 어머니가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이 심했기에 저는 뉴욕에서 연도와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신문 홍보를 다닐 수 없을 때입니다. 브루클린 한인성당에서 미사를 부탁하였고, 저는 기꺼이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코로나는 끝났지만 한인성당을 위한 미사는 3년이 넘게 다니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동료사제들과 진한 우정을 쌓았습니다. 함께 자전거도 타고, 캠핑도 가고, 여행도 다녔습니다. 동료사제들과의 대화는 코로나를 견디는데 위로가 되었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올해는 지난 3년 동안 가지 못했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스라엘, 요르단,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으로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덕분에 4면 만에 한국으로 가게 되었고, 어머니가 있는 추모관엘 다녀오려고 합니다. 지나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들입니다.

 

지난 4년 세상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역시 코로나 팬데믹입니다. 코로나는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인류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깊은 성찰을 하였습니다. 인류의 지성과 과학적인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허망하게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박해의 엄중함 속에서도 계속되었던 미사가 멈추었습니다. 코로나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인류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시 멈추자 자연은 을 쉬게 되었습니다. 오염되었던 대기가 정화되었습니다. 중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폭염, 가뭄, 산불의 삼종세트가 지구촌 곳곳을 찾아왔습니다. 학자들은 이제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를 이야기 합니다. 지구가 끓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지구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촉구하였습니다. 일본의 오염수 해양 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 말라고 촉구하였습니다. 바다는 생명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지구열대화는 회개를 촉구하는 표징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는 방법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업적을 보고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를 보고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비록 잘못했다 해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과 죄의식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을 포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돌아와서 뉘우치면 상을 주십니다. ‘난 안 돼!’ 이 생각과 말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악의 큰 유혹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아픈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든 별 볼일 없는 사람이든 하느님께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부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비를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맏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둘째 아들은 말은 따르겠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실천입니다. 신앙은 생각이 아니고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좀 더 극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비록 죄인으로 여겨지지만 세리와 창녀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하느님께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많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대림과 사순시기에 특강이 있습니다. 성령기도회에서 피정을 준비합니다. 각 구역과 레지오에게 성당 청소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우리가 조금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께로부터 상을 받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우리의 몫입니다.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십시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930.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루카 9,45 참조).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이루신 다음, 산에서 내려와 더러운 영에 들린 아이를 고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루카 9,44)
 
그러나 제자들은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루카 9,45 참조). 이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믿음의 순명과 사랑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따를 수가 없나 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하느님이 너에게 바라시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사실, <성경>을 읽다 보면, 때로는 성경본문이 아무 말씀도 안 할 때도 있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불투명한 말이나 난해할 때도 있습니다. 곧 말씀이 뜻을 감추고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의 침묵은 우리의 대화가 단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바로 그것을 통하여 성경 본문에 철저히 복종해야 함을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또한 성경을 읽는 동안 그분을 기다리도록 도와주고, 우리 힘만으로는 이해할 수도 기도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며,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분 앞에 서 있다는 의식과 함께 사랑의 자세를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채로도 사랑의 마음, 순명과 믿음으로 응답하고 따르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알아듣기 어려운 성경본문을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신앙’이라고 이렇게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장애라고 여겼던 대목들이 실로 크고 거룩한 유익이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필로칼리아)

또한 사막의 마카리오는 역시 믿음으로 먼저 ‘실천’할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는 분량에 만족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애쓰시오. 그리하면 이해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바가 여러분의 영에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들은 말씀을 비록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한 채로 말씀하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실천’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곧 신비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인생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성으로 이해하는 바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비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삶은 풀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당신께 오라고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말씀, 혹은 삶은 품고 살아야 하는 선물이요, 그것을 통하여 그것을 주신 분을 만나야 하는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우리가 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바로 그분과의 만남의 신비를 사는 일입니다. 곧 우리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죽음으로서 만나게 되는 신비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의 손에 넘겨져 죽음으로써 되살아나셨듯이, 오늘 우리도 형제들의 손에 넘겨져 죽음으로써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의 삶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루카 9,45)

주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 이해하지 못해도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죽음에 넘겨져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죽어 사라져 되살아나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새벽 교황님 홈페이지에서 읽은 베트남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낸 교황님 편지 한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사랑은 믿음의 척도이다. 그리고 믿음은 사랑의 영혼이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같은 동전의 양면임을 결코 잊지 말기 바란다(Love is the measure of faith, and faith is the soul of love, never forgetting that love for God and neighbor are two sides of the same coin.)”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런 주옥같은 말씀도 믿는 이들에게 희망의 표징이,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만세육창으로 시작하는 오늘 하루 기분이 나를 듯 상쾌합니다. 위 만세육창의 대상이야말로 저에게는 ‘감사의 대상’이자 빛나는 ‘희망의 표징’이 됩니다. 그러니 저절로 만세육창입니다. 만세육창후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의 전사, 희망의 전사다.” 고백도 빼놓지 않습니다. 눈만 열리면 희망의 여정중인 우리에게 희망의 표징이 되는 것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어제 도반이 보내준 강론 댓글도 저에겐 참 고마운 희망의 표징이 됐습니다.

 

“신부님, 수십년 동안 매일 강론 쓰시고 다른 신자분들과 나누는 것이 매일 하늘에 보물을 쌓으시는 것 같습니다.”

 

순수한 사랑의 행위들은 모두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요, 이렇게 희망의 표징이 되어 살아가는 사랑의 사람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만납니다. 희망의 표징이 되는 분들, 이보다 이웃에게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오랜만에 어제 수도원 주일미사에 참석한 반가운 분이 빈손으로 왔다 미안해 하길래 즉시 답했고 만족했습니다. 

 

“자매님 자체가 최고의 선물이자 희망의 표징입니다. 다른 무슨 선물이 필요하겠습니까? 참 성실히 아름답게 살아가는 좋은 분들은 그 자체가 참 좋은 선물이요 빈손으로와도 반갑고 기쁩니다.”

 

참으로 희망과 기쁨을 주는 분들 자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이런면에서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는 성인보다 더 좋은 하느님의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은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과 더불어 서방의 4대교부인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 예로니모 역시 우리에게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자 희망의 표징이 됩니다. 기념, 기억할뿐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성화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주님의 소망입니다. 희망의 표징이, 성인이 되라 불림받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성 예로니모! 그의 만 73세 동안 삶의 궤적을 보면 얼마나 치열하고 열정적인, 역동적인 삶을 살았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교회 학자 성인으로 고고학자, 기록 보관인, 성경 학자, 도서관 사서, 도서관, 학생, 번역가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어 “히에로뉘모스” 이름 뜻은 ‘신성한 사람’이라 합니다. 성인은 오늘의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는데 사람들은 농담삼아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다”하니 그 비범한 면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어 성인은 로마에 가서 학업에 전념했고 다양한 지역을 여행했으며 열병을 앓다가 치유되자 은수자들과 4년동안 사막에서 기도와 고행, 공부에만 전념하며 은수생활을 합니다. 꿈속에서 예수님께 “너는 키케로의 추종자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꾸중을 들은후 회개합니다.

 

성인은 394년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연대하여 펠라기우스 파를 축출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으며 사막의 은수자인 테베의 성 바오로 전기를 썼습니다. 은수자들과의 불화로 사막을 떠나 379년 안티오키아로 가서 사목직을 맡지 않는다는 전제로 바울리노스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고 사실 평생 미사도 드리지 않았고 일체의 사목직도 갖지 않았습니다. 성인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와 교류를 가지면서 오리게네스의 수많은 저서들을 라틴어로 번역합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성인들과의 활발한 교류입니다.

 

성인은 교황 성 다마수스 1세로부터 신구약 성경 모두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대업을 맡아 391년부터 406년까지 무려 15년에 걸쳐 완성하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불가타 성경입니다. 한편 성인은 로마에서 성녀 마르첼라와 성녀 바울라등이 주축이 된 상류층의 미망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수도생활의 열정을 고취시켰고, 이어 이들과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본격적 수도생활을 합니다.

 

성녀 바울라와 함께 한 개의 여자 수도원과 세개의 남자수도원을 세웠고 성녀 바울라는 여자 수도원의 원장이 되고 성인은 남자 수도원의 원장을 하면서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수도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직접 강의도 합니다. 406년부터 419년 9월 30일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임종할 때까지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수많은 성경주석서를 남겼습니다. 

 

말 그대로 성서의 사람이요 “성서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열렬한 사랑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동분서주(東奔西走) 정말 치열했고 가열찼던 성인의 구도여정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었고 우리에게는 부단히 분발케 하는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 즈카르야서의 즈카르야 예언자가 전하는 세 번째 환시가 우리에게는 희망의 표징이 됩니다. 그대로 파스카 주님의 은총을 미리 앞당겨 보여줍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 머무르리라.”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 옛날 환시를 통한 즈카르야의 예언을 파스카의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시켜 주시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이런 주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과 부활 예고를 알아듣지 못했으니 그 뜻이 그들에게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고 묻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당시의 복음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어도 우리는 그 감추어진 뜻을 확연히 깨닫고 이해하니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어 당신이 바로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임을 깨우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빛나는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이 되어 살게 하시니 이웃에 이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새벽성무일도시 성인에 관한 아름다운 찬미가 두연을 나눕니다.

 

“성경의 하늘나라 푸른목장을

 땀흘려 정성다해 가꾸신당신

 여기서 모두에게 공급하셨네

 백배의 풍요로운 영혼양식을

 

 사막의 고요함을 갈망하면서

 하느님 면전에서 늘깨어있고

 육신을 괴롭히고 극기하면서

 자신을 주성부께 바치셨도다.” 아멘.


10/1(일) 연중 제26주일, 되새김 구절

 

1. 주님께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주시는 분 앞에서 무언가 드리고 있다는 파렴치한 나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

 

2.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우리가 조금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께로부터 상을 받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우리의 몫입니다.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십시오.” (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루카 9,45)

주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 이해하지 못해도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죽음에 넘겨져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죽어 사라져 되살아나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예로니모  성인은 교황 성 다마수스 1세로부터 신구약 성경 모두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대업을 맡아 391년부터 406년까지 무려 15년에 걸쳐 완성하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불가타 성경입니다.(이수철 신부)

 

10/1(일) 연중 제26주일, 제281일 기도

 

복음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하느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이해하지 못해도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죽음에 넘겨져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죽어 사라져 되살아나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 2023년 10월1일(일) 6시10분... 수산나-

 

10월1일 소화 데레사 Therese de Lisieux

묵상기도 중, 저는 무엇보다도 복음에서 필요로 하던 모든 것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서 언제나 새로운 빛과 감춰졌던 신비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소화 데레사 사랑의 엘리베이터」 중에서


프랑스 알랑송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과 젤리 게랭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성모 신심이 돈독했습니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때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후 예수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합니다.
24세에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수도 생활을 하며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살았습니다.   

 

글씨 :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수원교구)

그림 : 홍승례 아스테리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