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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0월 24일 화요일[(녹) 연중 제29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0월 24일 화요일[(녹) 연중 제29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입당송

시편 17(16),6.8 참조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한 사람의 범죄로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5,12.15ㄴ.17-19.20ㄴ-21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5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7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0(39),7-8ㄱㄴ.8ㄷ-9.10.17(◎ 8ㄴ과 9ㄱ 참조)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 당신을 찾는 이는 모두, 당신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리이다. 당신 구원을 열망하는 이는 언제나 외치게 하소서. “주님은 위대하시다.” ◎

복음 환호송

루카 21,36 참조
◎ 알렐루야.
○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5-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3(32),18-19 참조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
<또는>
마르 10,45 참조
사람의 아들은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상 잔치에 자주 참여하여
현세에서 도움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오늘의 묵상

1.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정진만 안젤로)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늘도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준비 깨어 있음입니다.

이야기 상황에 대한 묘사나 제자들의 질문과 같은 도입 문단 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시작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가르침을 시작하는 이 말씀은  등불로 오늘 복음의 주제를 요약하여 전달하고 있습니다.

먼저 허리에 띠를 매다.’는 표현은 신속하게 출발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을 입었고편안한 활동을 위해서 허리띠로 길이를 조절하였습니다.

두 번째 은유적 표현인 등불을 켜다.’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탈출 27,20; 레위 24,2도 참조).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두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시어제자들에게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고 권고하십니다.

제자들도 주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종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돌아왔을 때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들에게 상을 내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깨어 있는 종의 모습은 모든 이가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비유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곧 우리 모두 깨어 있는 종이 되도록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들은 행복합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지난 10 1일에 퀸즈성당에서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성인 성가대에서 음악회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날 제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고향의 봄과 아리랑이었습니다. 고향의 봄과 아리랑은 멀리 타국에서 들으니 더욱 가슴이 찡하였습니다.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아리랑 랩소디를 연주하였는데 그동안 들었던 아리랑과는 달리 역동적이었고, 경쾌하였습니다. 청소년들은 같은 아리랑이지만 한과 우수에 젖은 아리랑이 아니라 한류의 힘과 발랄함을 표현하였습니다. 성인 성가대는 나는 천주교인이요와 아베 마리아를 들려주었습니다. 웅장하고, 장엄한 노래도 좋았지만 더욱 좋았던 것은 제가 성가대원들을 잘 아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합창단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들이기에 감동이 더 컸습니다. 그분들은 미국 뉴욕으로 이민 와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세탁소를 하는 분, 차량 정비소를 하는 분, 음식점을 하는 분,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분, 핸드폰 대리점을 하는 분, 통증 병원을 하는 분, 변호사를 하는 분, 학생을 가르치는 분도 있었지만 모두가 성가를 통해서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음악회를 다 감상하지 못하고 저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한국 성지순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뉴욕에서 새벽 0 50분 비행기를 탔고, 시차가 있기에 다음날 새벽 5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천에서 다시 김포공항으로 갔고, 거기서 제주도로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뉴욕, 인천, 김포, 제주로 가는 여정이었고, 길은 멀었지만 4년 만에 가는 한국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주의 첫날 황사평 순교자 묘지와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자 기념관을 순례하였습니다. 황사평 순교자 묘지에는 무명 순교자 27명과 4명의 유명 순교자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제게 감동은 준 것은 순교자의 무덤도 있지만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복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김기량은 제주도 첫 번째 신자이고, 제주도의 첫 번째 순교자이고, 제주도의 첫 번째 복자입니다. 그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다가 2번이나 난파되었습니다. 한번은 40일에 걸쳐 홍콩까지 갔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는 영국의 상선에 의해 발견되었고, 홍콩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의 신학생을 만나 교리를 배우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세례명은 행운의 사나이라는 의미의 펠릭스와 제주도의 사도가 되라는 의미의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제주도의 사도가 된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가족들과 이웃들을 선교하여 세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난파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일본 나가사키까지 흘러갔습니다. 그곳에서도 교회의 도움을 받아 다시 제주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김기량의 삶에 2번의 난파가 있었지만 모두 하느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도의 교우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육지로 나갔다가 이번에는 포졸들에게 잡혔습니다. 포졸들은 배교하면 살려준다고 하였지만 그는 기꺼이 순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삶에 3번째 난파가 있었습니다. 그는 포졸들에게 죽으면 다시 부활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포졸들은 그를 곤장으로 때려서 죽은 것 같았는데 보통은 그 정도 맞으면 죽었습니다. 그런데 김기량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포졸들은 김기량이 말한 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포졸들은 곤장을 때리는 대신에 목을 매달아 죽였고,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복자는 3번의 난파 끝에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지 안내를 해 주시는 형제님은 교구장이셨던 김창렬 바오로 주교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바티칸 교황청에 가서 교황님께 자랑했지. 한국에서 개신교회 신자보다 천주교회 신자가 많은 곳은 제주교구 밖에 없습니다.” 형제님은 주교님께 그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는데 천주교 신자가 개신교 신자보다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제주도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을 수 있었던 것은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와 같은 순교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주도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을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 사람보다 제주도를 더욱 사랑하였던 임피제 신부님 같은 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교와 열정으로 깨어 있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023.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
 
 
오늘 <복음>에서, 군중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 12,1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루카 12,14)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러합니다. 형제들 사이에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 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중재해주기를 청합니다. 그러면서 사실은 자신의 옳음을 밝혀 주며, 자신을 지지해주고 상대의 부당함이 들추어지기를 도모하기 일수 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면,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하거나 중재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맡기고 의탁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응답하게 도와달라고 간청드려야 할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할 수 있도록 자비와 용서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이 아우는 겉으로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재판과 중재를 요청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며,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탐욕이 아닌 사랑에 가득 찬 아우였다면,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고, “스승님, 제 형더러 저의 유산을 가지라고 일러 주십시오.”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재물에 대한 탐욕에 걸려 있고, 탐욕을 채우고자 하는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
 
그렇습니다. 사람이 재물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사람에게 걸려 있듯, 사람의 생명 또한 자신에게 걸려 있지 않고 주인에게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이 재산의 주인이 아닐뿐만 아니라 자기 생명의 주인도 아님을 알고,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떠나야 할 일입니다. 진정, 주인께 달려 있는 이는 탐욕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그 탐욕의 온상지인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떠나야 할 일입니다. 사실, 탐욕은 자기 자신을 채우고 자신을 주인으로 중히 여기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정 주님께 소유당한 사람만이 탐욕으로부터 떠나게 되고, 탐욕을 채우는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탐욕으로부터 떠난 사람은 자신에게 소유당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입니다. 묘한 것은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의 소유가 되면서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결국, 하느님은 우리를 소유하기에 우리의 주인이 되시지만, 동시에 우리를 소유하기에 우리의 소유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지게 되면, 다른 모든 것들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데레사 성녀는 말합니다. “나에게는 하느님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안토니오 더블류도 말합니다. “예수님을 가지면 전부를 가진 것이 됩니다.”
 
하오니, 주님,
전부인 당신이 저를 차지하소서. 당신께 온전히 소유당한 자 되게 하소서!
제 마음의 곳간에 탐욕이 아니라 사랑을, 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채우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
 
주님,
제 마음의 곳간에 탐욕이 아니라 사랑을,
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채우게 하소서.
오직, 저의 전부이신 당신이 저를 차지하소서.
제 자신에게 부유한 자가 아니라 당신께 부유한 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께 온전히 소유당한 자 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탐욕”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두려움의 뿌리에는 “불신”이 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랑과 믿음의 삶을 삽시다- 

 

그동안 참 많이도 강조했던 무지입니다. 마음의 병중 무지가 으뜸입니다. 무지에서 기인하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질투, 폭력, 전쟁등 끝이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도 거의 대부분 결국은 무지의 탐욕에서 기인합니다. 무지의 악, 무지의 병, 무지의 죄입니다. 모든 불행의 근원이 무지입니다. 무지중 대표적인 것이 탐욕입니다. 

 

탐욕의 무지, 탐욕의 어리석음입니다. 끝없는 탐욕입니다. 탐욕에 눈멀면 누구나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무지의 인간, 인간의 정의같습니다. 참으로 대안이 없는 무지같습니다. 탐욕의 인간에 때로 절망할 때도 있는데 하느님 마음도 그러할 것입니다. 작금의 기후재난도 순전히 인간의 탐욕에 기인합니다. 예수님의 충고가 참 엄중합니다.

 

“모든 탐욕을 주의하고 조심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

 

200주년 공동번역은 더 실감이 납니다. “사실 제 아무리 부요하더라도 사람이 자기 소유로 자기 생명을 보장 받지는 못한다.” 그렇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 생명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바로 그 소유로, 재산으로 자기 생명을 보장 받으려한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둔후 어리석은 부자의 독백을 들어보세요.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자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바로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일부 현상이 아닌 보편적 무지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나 이제나 변함없는 무지의 탐욕스런 인간입니다. 탐욕이 그를 눈멀어 어리석게 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땅의 현실만 있었지 위로의 하늘은 없었습니다. 땅에 보물을 쌓을 줄만 알았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하늘의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도 없었고 이웃과의 나눔도 없었습니다. 위로 하느님과의 관계도, 옆으로 이웃과의 관계도 완전히 차단된 고립무원, 고립단절의 지옥같은 자기 감옥의 수인이 된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참으로 전격적 회개의 은총이 절박한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의 전환이 회개입니다. 

 

탐욕에 대한 궁극의 답은 하느님 믿음뿐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선과 선행의 나눔뿐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 또한 하느님 믿음의 표현입니다. 제가 이래서 평소 강조하는 하느님 믿음입니다.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한 우선순위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이라 극구 강조합니다. 노골적으로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라는 말도 합니다. 

 

돈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관계들입니다. 하느님 믿음 없이는 세상 그 무엇도 탐욕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궁극의 탐욕의 제동장치가 하느님 믿음입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하느님 믿음이라고 많이 강조합니다. 이어지는 부자의 독백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이 오늘의 탐욕의 인간들에게, 부자들에게 주는 전격적 회개의 촉구 말씀처럼 들립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아, 이게 어리석은 부자에게 주신 최후의 경고 같은 한밤중 꿈이었다면, 아마 부자는 잠깨는 즉시 전격적 회개로 하느님을 찾고 이웃과의 나눔 생활로 방향을 바꿨을 것이라는 유쾌한 상상도 해봅니다. 이어지는 말씀 역시 우리 모두에게 주는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이러하다.”

 

정말 진짜 부자는, 자유롭고 행복한 부자는, 자신을 위해 재화를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은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는 부단히 자선과 나눔의 선행을 실천하는 자비로운 믿음의 사람입니다. 

 

참으로 탐욕의 정체를 통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탐욕의 뿌리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주위 환경에서 오는 예측 못할 생명과 안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이 끝없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기인하는 자연적인 방어본능이, 보호본능이 탐욕으로 작동된 것입니다. 

 

그러나 탐욕이, 그 많은 재물이 생명을 보장하지 못함은 너무나 자명한 현실입니다. 그러니 궁극의 원인인 불신에서 기인하는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탐욕의 순서입니다. 탐욕의 가장 깊은 뿌리는 불신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믿음이 탐욕에 대한 궁극의 해답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믿음의 빛 앞에서 자취없이 사라지는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이요 이어 탐욕의 악이자 환상도 저절로 정체가 폭로되어 힘을 잃게 됩니다. 

 

이런 하느님 믿음의 뿌리를 깨달은 이들은 이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에 전념합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재미로, 기쁨으로, 맛으로 살아갑니다. 세상맛, 돈맛, 밥맛이 아닌 하느님 맛, 기도 맛, 말씀 맛, 사랑 맛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맛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이들이 진짜 자유롭고 행복한 부자들입니다. 정말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사랑만 있으면 욕심만 비워 마음의 눈만 열리면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는 일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바로 그 전형적 인물이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선망하는 하느님 믿음의 영웅,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불신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져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탐욕에 뿌리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두려움과 불안의 뿌리에는 불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탐욕의 궁극의 처방은 하느님 믿음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영원한 모범이 아브라함입니다. 바로 이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을 믿는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탐욕에 대한 최고의 처방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믿음과 파스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날로 튼튼하게 해 주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요, 하늘에 보물을 쌓아가는 믿음의 여정과 더불어 날로 힘을 잃어가는 무지의 탐욕입니다. 아멘.


10/24(화)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주인은 자신이 돌아왔을 때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들에게 상을 내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깨어 있는 종의 모습은 모든 이가 본받아야 합니다.(정진만 신부)

 

2. 제주도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을 수 있었던 것은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와 같은 순교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주도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을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 사람보다 제주도를 더욱 사랑하였던 임피제 신부님 같은 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교와 열정으로 깨어 있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
 
주님,
제 마음의 곳간에 탐욕이 아니라 사랑을,
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채우게 하소서.
오직, 저의 전부이신 당신이 저를 차지하소서.
제 자신에게 부유한 자가 아니라 당신께 부유한 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께 온전히 소유당한 자 되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4. 탐욕에 대한 궁극의 답은 하느님 믿음뿐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선과 선행의 나눔뿐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 또한 하느님 믿음의 표현입니다. 제가 이래서 평소 강조하는 하느님 믿음입니다.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한 우선순위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이라 극구 강조합니다.(이수철 신부)

 

10/24(화)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제304일 기도  

 

복음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게 하소서.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이 되어...

행복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10월24일(화) 7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