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2월 4일 월요일[(자) 대림 제1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민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땅끝까지 전하여라. 보라, 우리 구세주 오시리니, 이제 두려워하지 마라.
본기도
성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비오니
그분께서 저희를 찾아와 문을 두드리실 때
깨어 기도하고 찬미하며 그분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 예루살렘의 평화를 빌어라. “너를 사랑하는 이들은 평안하리라. 너의 성안에 평화가 있으리라. 너의 궁 안에 평안이 있으리라.” ◎)
○ 나의 형제와 벗들을 위하여 비노라.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 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 하느님, 어서 오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온갖 선물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 가운데에서 저희가 모아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고
현세에서 저희 믿음을 북돋아 주시어
후세에서 영원한 구원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오소서, 주님. 저희를 찾아오시어, 평화를 베푸소서. 저희가 주님 앞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나해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마태오 8,5-11
이 구조를 갖추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종인 중풍 병자를 고치십니다. 로마 백인대장은 종을 위해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시는데,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미사 때 성체를 바라보며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원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에 지배당하는 상황이었고, 일제 강점기로 보자면 일본군 높은 장교가
한 시골 선생에게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으니 한 말씀만 하시면 자신의 종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겸손해질 수 있었을까요?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교만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가끔 남자와 여자가 사귀다 보면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처음엔 ‘나 같이 자격 없는 사람을 사랑해주다니 정말 감사하네!’
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저 사람이 나에게 자격이 되나?’라는
교만한 생각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면 둘의 사랑은 실제적으로는 끝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겸손이 사라지면 사랑도 믿음도 희망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랑이 자기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사랑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예가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을 너무 사랑했지만,
그래서 많은 애정을 쏟았지만, 결국 아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아들의 아내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어머니에게 잘못이 무엇일까요? 사랑을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우리의 어머니가 되시기 위해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아버지께 순종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혼자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순종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은 큰 자아만 남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어머니가 자녀를 참으로 사랑한다면 남편과 자녀에게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를 상상해봅시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고 있을 때 교만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 덕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고도 배 위에 머무는 이들은 교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예수님인가? 물 위를 걸으려고 하게?”라며 베드로를 나무랄 것입니다.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신 분처럼 나도 그분을 사랑하고
나의 자녀들도 그분처럼 사랑할 수 있도록 순종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따라서 백인대장이 이미 종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압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원천을 쉽게 알아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도 맞겠지만, 믿기 때문에 겸손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예수님께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실 때
주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나는 일분일초도 생존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임을 믿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하여 주님께 합당하지 못한 존재임을 알게 합니다.
이때 심지어 저는 예수님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겸손함은 결국 하느님 앞에서는 너무 당연하고 이웃 앞에서도 상대를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다는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따라서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하지도, 믿지도, 그래서 희망할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마태오 8,5-11
백인대장을 칭찬하신 이유!
주변을 살펴보면 참으로 꼴불견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머릿속에 든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자기 잘난 맛에 여기저기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사람,
말로는 만리장성을 쌓지만, 딱 까놓고 보면 뒤가 엄청 구린 사람, 시궁창 냄새가 풀풀 나는 사람,
죄란 죄는 다 짓고 사는 악의 종합선물세트인데도 어깨 딱 힘을 주고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
더 슬픈 일이 있습니다.
정신 나간 정치인들과 중심을 잃은 매체 종사자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그들을 날개 없는 천사로,
세상 멋진 의인으로 둔갑시킵니다.
그 숱한 악행과 비리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는 뒷전이고, 물 좋은 자리로 보은 인사를 시킵니다.
수사와 처벌 대신 멋진 훈장을 수여합니다.
지나가던 개가 뒤집어져 배를 잡고 웃을 일입니다.
다행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다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이지 천사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나 몰라라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깊은 연민의 정과 측은지심으로 가득합니다.
본인도 힘들면서, 가진 돈을 나눕니다.
빠듯한 시간을 쪼갭니다.
하느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칭찬하실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이 그랬습니다.
그가 얼마나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그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었던지, 예수님께서 그를 칭찬하시는데,
수제자나 애제자에게도 하지 않으셨던 특별한 칭찬의 말씀을 그에게 던지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
칭찬의 이유를 묵상해봅니다.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청하는 바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아들이나 딸, 가족이 아니라
거느리고 있던 노예의 치유를 간곡히 청했습니다.
당시 사람들 머릿속에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가축처럼 시장에서 매매가 될 정도였으니 그들의 처지가 어떤 정도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자신의 노예를 살려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인대장이 예수님을 향해 지니고 있었던 겸손의 덕은 또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루카 8, 6~7)
거기다 예수님을 향한 강렬한 믿음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예수님께서 그토록 흡족해하셨던 것입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주십시오.”
참 신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 믿음, 사랑, 겸손의 덕을 완벽히 지니고 있었던
백인대장을 바라보며 그 무엇 한 가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을 부끄러워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깨어 있어라”>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입니다. 바야흐로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청색 대림환과 자색의 대림초가 기다림과 봉헌의 색동옷을 입었습니다.
새해 첫날, 먼저 양광모 시인 시 <기다림>을 들어봅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눈부신 일인가.
아침이 기다리는 태양처럼
밤이 기다리는 별처럼
그에게 한 줄기 밝은 빛이 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
그리하여
그날을 손꼽으며 내가 그를 기다리는 건
또 얼마나 가슴 뜨거운 일인가.
태양을 기다리는 아침처럼
별을 기다리는 밤처럼
그를 위해 아름다운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맑은 눈물같은 일인가.
우리는
태어나고 기다리고 죽나니
살아서 가장 햇살 같은 날은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촛불처럼
기다리는 날이라네.
(대림촛불처럼 기다리는 날이라네)
'대림'은 'Aventus'(도착)라는 단어의 번역입니다.
곧 ‘도착’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사실 모든 역사는 대림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모든 시간이 대림이었으며, 마찬가지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간도 모두 대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온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늘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림'은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감동적인 사건인 메시아의 도착을 알리는 성탄을 반향하고 있지만, 우리를 과거의 사건에만 머물게 하지는 않습니다. 대림은 항상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총괄하여 항상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히브 13,8)
이 대림시기의 제일 큰 주제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인생은 기다림이 있어 아름답습니다.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중함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열망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열망하고 기다립니다.
오늘도 우리는 사랑하는 임을, 소중한 임을, 주인이신 임을 열망하여 기다립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 기다림의 열망을 아주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다.”(이사 63,19)
참으로 강렬한 기다림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개입이 야기시킬 놀라움이요 경이로움입니다.
하느님은 역사를 그저 스쳐 지나서 통과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새롭게 변형시키기 위해 역사 안에 임하십니다.
곧 당신의 구원 계획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해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 개입하셔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이기 때문이요,
당신은 주님, 저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 64,7 참조)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기다림을 더 명백하게 삶의 모든 순간에 확대 적용합니다.
곧 '그분의 오심'을 '항상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순간순간이 그분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드리는 ‘만남의 시간’이 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우리의 삶 안에 임재한 주님을 열절하게 영접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깨어 지켜라.”(마르 13,33), “깨어 있어라.”(마르 13,35.36)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깨어났습니다.
주님의 오심과 더불어 깨어난 영혼들입니다.
곧 '깨어남'은 주님으로부터 선사되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깨어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선사받은 은총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있음'은 이미 오신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합니다.
곧 면전에서에서 깨어있는 것이요, 인격적인 대면입니다.
그런데 사실 깨어있기 위해서는 먼저 깨어나야 하고, 깨어나려면 먼저 깨부수어야만 합니다.
곧 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야 하고, 습관을 깨야 합니다.
이미 몸에 익은 타성을 깨야 하고, 안주와 편함을 깨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기 자신을 깨부수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보다 먼저 깨부수어져 쪼개지고 나누어져 우리를 기다리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깨어있음'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바로 그분을 만나는 일입니다.
진정 그분께서는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현전하신 그분의 면전에서 자신을 개방하고, 바로 그분이 주님이심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사랑과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깨어있음의 표시는 무엇일까?
또 무엇을 통해서 우리는 깨어있음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잠을 자든, 일을 하든, 기도를 하든, 대화를 하든, 주님께 지향을 두는 일입니다.
그 무엇을 하든 ‘주님을 향하여’ 하게 되면 깨어있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곧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야말로 깨어있음의 표시가 됩니다.
‘늘 기도하면, 늘 깨어있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병행 구절인 루카복음에서는 말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36)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깨어 있어라.”
(마르 13,35)
주님!
깨어 있게 하소서.
깨어 기다리게 하소서.
고대하고 희망하게 하소서.
희망하고 준비하게 하소서.
헛군데 눈 돌리지도 않고, 언제나 임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빛의 갑옷을 입고, 빛 속을 걷게 하소서.
동행하시는 당신께 깨어 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3.12.3.대림 제1주일 이사63,16ㄹ-17.19ㄷㄹ;64,2ㄴ-7 1코린1,3-9 마르13,33-37 대림의 희망과 기쁨 -깨어 있어라, 회개하라, 감사하라-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으로 오늘 12월3일은 새해의 첫날, 대림 제1주일입니다. 영롱하게 타오르기 시작한 대림촛불 하나가 주님의 오심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대림의 희망과 기쁨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가 산문(散文)같은 분위기라면, 따뜻하고 아늑한 대림 분위기는 시(詩)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방금 부른 애절한 화답송도 주님의 도래를 간청하는 듯 깊은 울림을 줍니다. “하느님 우리에게 힘을 도로 주시고 부드러운 얼굴을 보여주소서.” 매해 대림1주간 아침성무일도 두 번째 후렴도 제가 참 좋아하는 가사와 곡입니다. 대림주간 흥얼흥얼 자주 끊임없는 기도로 바치는 다음 노래입니다. “그날에 모든 산에서 단것이 방울져 내리고, 언덕 들에서 젖과 꿀이 흐르리라. 알렐루야.” 주님 성탄의 그날은 이미 오늘부터 시작됐음을 알립니다. 대림의 희망과 기쁨의 빛이 우리 마음을 환히 밝힙니다. 대림을 앞둔 대림 전날 저는 크리스마스의 꽃이라 불리는 포인세티아를 세레나 자매님에게 선물로 받았습니다. “축복, 행복, 제마음은 불타오르고 있어요.”라는 꽃말도 멋집니다. 빨갛게 불타오르는 잎들이 마치 환히 타오르는 불처럼 깨어 살라는 가르침을 주는 듯했습니다. 포인세티아를 보는 순간 25년전 성탄절에 카타리나 수녀님에게 선물로 받은 빨갛게 타오르던 칸나 꽃이 생각났고 더불어 즉시 썼던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 라는 시도 생각났습니다. 그대로 대림의 희망과 기쁨이신 주님께 바치는 헌시(獻詩)가 되겠습니다. 수차례 나눈 시이지만 나눌 때 마다 좋고 새롭습니다. 더욱 주님 향한 사랑이 불타오르게 하는 시입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지금도 여전히 늘 주님의 무엇이 되고 싶은 갈망이, 열망이 기쁘게 설레는 마음으로 깨어 살게 하니 참 축복입니다. 대림의 희망과 기쁨 자체가 주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인데 저는 포인세티아와 함께 참 좋은 도반으로부터 받은 또 다음 선물에 감사합니다.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뇌졸중으로 쓰러져 재활치료를 받던 자매님이, 25년동안 한결같이 제 매월 강론집을 편집 제본해다 준 자매님이, 바로 그 세실리아 자매님이 기적처럼 회복되어 불편한대로 최선을 다해 2학기 대학에서의 강의를 어제로써 끝냈다는 반갑고 기쁜 소식이 저에겐 대림을 앞둔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었고 감사하는 마음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우리를 깨어 살게 합니다. 또 하나의 대림 선물이니 도합 셋이 됩니다. 수도원 하늘길에서 십자가의 길을 통해 “부활의 집”, 일명 “천장암(天藏庵;하늘을 감춘 암자)”, “산천재(山天齋;산속에 하늘이 담긴 집)”라 불리는 제 집무실 사이 맨발걷기 순례운동기도한지도 한달이 넘었습니다. 어제 아침 식사후 맨발걷기기도중 “바다”란 동요를 부르고 있던 저를 대림특강차 외출하던 빠코미오 원장 수사가 뒤에서 찍은 동영상과 더불어 <태능 갈매기>란 제하에 곡의 가사를 전해 줬습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아침 산책 때 마다 늘 부르는 노래요, “희망의 여정”이란 피정 강의시 꼭 피정자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제도 대림을 앞두고 상계동 성당 미사해설단 피정팀 형제자매들과 열강중에 노래하니 얼마나 기운차게들 부르던지요! 60대 넘어 남녀 누구나 참 좋아하는 희망과 기쁨으로 얼굴들 환히 빛나게 하는 동요입니다. 이런 동요가 참으로 희망과 기쁨에 깨어 살게 합니다. 주님의 참 좋은 선물들은 이처럼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방금 예로 든 세 선물은 참 좋은 도반들을 통한 주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저절로 나오는 고백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의 선물중 최고의 선물이 바로 오늘부터 시작된 대림시기 희망과 기쁨의 하늘나라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응답은 셋입니다. 첫째, “깨어 있어라!” 대림시기 내내 이 말씀 마음에 담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희망이 기쁨의 샘입니다. 희망중에 기뻐하는 대림시기입니다. 막연한 기다림이, 희망이, 기쁨이 아니라, 사랑하는 임의 오심이 있어 희망이요 기쁨이요 기다림입니다. 깨어 기도하며, 깨어 준비하며, 깨어 책임을 다하며 살게 하는 대림시기의 주님입니다. 주인은 주님으로 바꿔읽어도 무방합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깨어 있어라.” 비단 신자들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할 그 대상입니다! 깨어 살아야 비로소 참사람입니다. 깨어 있음의 은총은 헤아릴 수 없이 무궁무진합니다. 도대체 기다릴 희망의 주님이 없다면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겠는지요! 깨어 있음은 참 좋은 은총이자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대림시기는 바로 깨어 있음의 집중적 훈련시간이기도합니다. 이번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 제목이 강렬했습니다. “Choose life, choose the future!(삶을 선택하라, 미래를 선택하라!)” 삶은 선택입니다. 기후도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미래도 선택입니다. 무엇보다 대림시기 주님을, 깨어 있음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희망의 주님을 늘 깨어 기다릴 때 저절로 참기쁨, 참행복입니다. 늘 주님의 무엇이 되고 싶은 열망이 우리를 늘 깨어 있게 합니다.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향기롭고 빛나는 영혼이 희망의 기쁨중에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영혼입니다. 깨어 있어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며 책임을 다할 때 저절로 영육의 건강이요 죄악의 유혹도 범접하지 못합니다. 둘째, “회개하라!” 바빌론 유배후 귀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선적으로 한 일은 하느님의 도우심이요 회개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무디어진 우리 마음을 감동에 휘말리게 합니다. 참으로 깨어 있을 때 저절로 마음은 주님을 향하게 되고 회개가 뒤따르게 됩니다.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예로부터 당신 이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갈 때 참나의 회복입니다. 광야인생 주님을 떠나 살다보면 세상 것들에 중독되어 십중팔구 괴물이 되거나 폐인이 되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대림시기 주님 안에서 깨어 사는 시기이자 주님께 돌아와 참나를 회복하는 회개의 시기, 성화(聖化)의 시기입니다. 덧없는 인생, 회개를 통해 주님 안에 날로 깊이 영혼의 뿌리를, 믿음의 뿌리, 희망의 뿌리, 사랑의 뿌리를 즉 신망애(信望愛)의 뿌리를, 진선미(眞善美)의 뿌리를 깊이 내리며 깨어 살 때 참기쁨, 참행복, 참나의 영원한 삶이겠습니다. 셋째, “감사하라!” 주님께 돌아와 회개로 눈이 열릴 때 저절로 감사입니다. 몰라서 불평불만이자 알면 알수록 감사와 찬미입니다. 살줄몰라 불행이요 살줄알면 행복이니 바로 감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정말 감사하는 이들은 살줄아는 이들이요 지혜롭고 겸손한 이들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한 이들이 진정 지혜로운 자들이요 이 또한 감사를 통해 이뤄집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대림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샘솟는 감사의 마음을 지니게 합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오로의 말씀이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존재인지 깨닫게 합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한, 끝이 없는 감사입니다. 감사할수록 풍성한 은혜입니다. 감사 또한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려주시니 감사할 수 뿐이 없습니다.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바로 대림의 희망과 기쁨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선물에 참 좋은 응답은 깨어 있음, 회개, 감사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은총의 대림시기,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시며 주님과의 친교를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아멘. |
12/4(월) 대림제1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백인대장이 이미 종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압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원천을 쉽게 알아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
2.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청하는 바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아들이나 딸, 가족이 아니라
거느리고 있던 노예의 치유를 간곡히 청했습니다.
당시 사람들 머릿속에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가축처럼 시장에서 매매가 될 정도였으니 그들의 처지가 어떤 정도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자신의 노예를 살려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였습니다.
참 신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 믿음, 사랑, 겸손의 덕을 완벽히 지니고 있었던
백인대장을 바라보며 그 무엇 한 가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을 부끄러워합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깨어 있어라.”
(마르 13,35)
주님!
깨어 있게 하소서.
깨어 기다리게 하소서.
고대하고 희망하게 하소서.
희망하고 준비하게 하소서.
헛군데 눈 돌리지도 않고, 언제나 임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빛의 갑옷을 입고, 빛 속을 걷게 하소서.
동행하시는 당신께 깨어 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바오로의 말씀이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존재인지 깨닫게 합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한, 끝이 없는 감사입니다.
감사할수록 풍성한 은혜입니다.
감사 또한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려주시니
감사할 수 뿐이 없습니다.(이수철 신부)
12/4(월) 대림제1주간 월요일, 제345일 기도
복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
백인대장은 노예의 치유를 간곡히 청했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가축처럼 시장에서 매매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자신의 노예를 살려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였습니다.
참 신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믿음, 사랑, 겸손'의 덕을 지닌
백인대장의 인격을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2023년 12월4일(월) 6시1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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