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2월 8일 금요일[(백)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이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네.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통하여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시고
성자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시어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으니
동정녀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1,3-6.11-12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예물기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저희가 드리는 구원의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주님의 은총으로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듯이
그분의 전구로 저희도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게 지켜 주시고
은총으로 가득 차게 하시어
성자의 맞갖은 어머니가 되게 하셨나이다.
또한 성모님을 통하여
티 없고 흠 없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의 시작을 알려 주셨나이다.
지극히 깨끗하신 동정 마리아에게서
저희 죄를 없애시는, 죄 없으신 어린양 성자께서 나셨으니
주님께서는 동정 마리아를 모든 피조물 위에 들어 높이시고
주님의 백성을 위하여
은총의 전구자요 거룩한 삶의 모범으로 미리 정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특별한 은총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받아 모신 성체로 저희 죄의 상처를 낫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외부로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면 꼭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노트북’입니다. 노트북으로 매일 강론을 준비하고, 복음묵상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음악을 듣기 때문입니다. 노트북이 충격에 약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노트북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8년 동안 노트북을 잘 보관하던 가방의 지퍼가 고장 났습니다. 가방 자체는 제가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트북을 위해서는 8년 동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노트북 가방을 정리하고, 새로이 노트북 가방을 마련했습니다. 넷플렉스에서 ‘신앙의 표징’이라는 다큐를 보았습니다. 유럽의 교회에는 예수님과 관련된 ‘성물(聖物)’을 보호하는 성당이 더러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예수님께서 쓰셨던 가시관’입니다. 예수님께서 쓰셨던 가시관은 아름답게 금으로 장식된 보관함에 있었습니다. 금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보관함이 필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쓰셨던 ‘가시관’을 위해서입니다. 교회의 ‘보물’인 가시관이 사라질 뻔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19년 4월 15일에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있었습니다. 이때 ‘가시관’도 화재로 사라질 뻔 했는데 소방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무사히 구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노트북 가방과 가시관 보관함은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이 노트북과 가시관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우리는 오늘의 본기도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기도는 이렇게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통하여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시고 성자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시어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으니 동정녀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성모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어린 아기 예수님을 기르셨기 때문입니다. 노트북을 위한 노트북 가방처럼, 가시관을 위한 보관함처럼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거처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깨끗한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모님이 신앙인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범일까요? 우리는 오늘 그것을 복음에서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것이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비록 그것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비록 그것 때문에 죽음에 이를지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 또한 성모님의 믿음을 본 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그래서 성모님을 자모이신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우리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전구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전구는 과달루페에서, 루르드에서, 파티마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주 단식하라는 것입니다. 자주 성체를 모시라는 것입니다. 고백성사를 정성껏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들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도록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었던 참된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참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티 없고 흠 없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의 시작을 알려 주셨나이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나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카 1,26-38
나를 세상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게 해 주는 원죄
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심은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인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에 다 들어있습니다.
은총은 죄로 끊깁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는 선악과를 바치지 않음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바치지 않으려 하는 이에게 은총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그래서 생명나무를 거절하셨습니다.
어떤 아들이 부모가 주는 돈으로 향락과 도박을 즐기는데 부모를 위해 감사의 선물을
할 수 있을까요? 이미 자아가 커져서 그것밖에 안 주는 부모를 원망합니다.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에게 부모가 준 돈은 은총이 아니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은총 중의 은총은 하느님 자신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주시려면 그에 합당한
그릇이 필요하였습니다. 이 신비로운 그릇이 성모 마리아셨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처럼 뱀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라야 그 은총이 독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죄에 물든 인간에게는 아드님을 주실 수 없으셨고 오직 성모 마리아께만
아드님이 인간이 되실 수 있으셨습니다.
이를 위해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 구원을 위해
미리 성모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러나 합당하지 않은 이에게 특은을 주는 경우가 있을까요? 하느님은 정의이십니다.
선물을 받을만한 이에게 그것을 주십니다. 그러니 성모 마리아께서 아무런 공로 없이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 또한 하느님을 공의롭지 못한 분으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
성모님은 절대 뱀과 대화하여 자신을 그의 비서가 되게 하실 분이 아니셨습니다.
성모님은 뱀을 밟고 하느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성모님을 닮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도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는 안드레아 ‘앤디’ 삭스를 중심으로 한 영화입니다.
앤디는 언론인이 되고자 최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권위 있는 패션 잡지 ‘런웨이’의
강력하고 까다로운 편집장인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보조 비서로 취직합니다.
미란다의 정식 비서는 에밀리입니다. 그녀는 촌스러운 앤디를 비웃습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앤디는 다소 순진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한 젊은 여성으로 묘사되며,
고급 패션 세계에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저널리즘 산업에서 그녀에게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미란다 프리스틀리 밑에서 일을 맡습니다.
처음에 앤디는 까다롭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미란다의 작업과
기대로 인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앤디는 자신의 역할에 적응합니다. 그녀는 더욱 멋지게 옷을 입기 시작하고
자신의 직업에서 겪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자신감을 얻습니다.
그녀의 헌신과 노력은 미란다의 존경을 얻지만 이러한 변화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앤디의 개인적인 관계는 특히 그녀의 직업이 그녀의 삶을 소모함에 따라
그녀의 남자친구, 친구, 가족과의 관계가 틀어집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파리 패션 위크에서 일어납니다. 비서 에밀리는 파리 패션 위크에서 미란다를
보조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란다는 에밀리 대신 보조 비서인 앤디를 선택합니다.
앤디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에밀리가 그렇게 소원하던 파리 패션 위크를 따라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앤디는 미란다를 편집장에서 교체하려는 음모에 대해 알게 됩니다.
긴장된 관계에도 불구하고 앤디는 미란다에게 경고합니다.
미란다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가장 가까운 동료인 나이젤을 희생시킵니다.
이러한 배신행위와 자신의 직업이 그녀를 미란다와 닮아가게 만들고 있다는 깨달음은
그녀가 자신의 가치와 야망을 재평가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미란다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앤디도 에밀리에게 그렇게 한 것을 들먹이며
그녀가 자신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앤디는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란다는 결국 누구나 다 자신과 같은
지위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앤디는 직장을 그만두고 미란다와 ‘런웨이’의 세계를 떠납니다.
그녀는 저널리즘의 뿌리로 돌아가 신문사에 지원하고 일자리를 얻습니다.
그리고 남자친구와 친구들, 가족들과의 관계가 다시 정상화됩니다.
아른힐 레우뱅은 자신의 책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비서’입니다. 자아거나 하느님입니다. 자아는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고
하느님은 이웃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 선택은 나에게 달렸습니다.
성모님은 단 한 번도 자아의 비서가 된 일이 없으시고 그러지도 않을 분이십니다.
이것을 아시고 처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누구의 비서가 되어 ‘순종’하느냐만이 원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알려주고 계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리를 마련하시기 위해 ‘의미 있는 일’을 시키십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돈을 내어줘야 하고, 육체를 절제해야 하며,
겸손해져야 합니다. 자아와 반대 일을 시키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원죄를 없애기 위해 의미 있는 일을 시키셨습니다(루카 5,1-11 참조).
베드로는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는 크게 반대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며 자기 뜻을
접었습니다. 자기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려는 생각을 버리고 스승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원죄가 사라지자 은총이 들어옵니다. 수많은 물고기가 잡히자 베드로는
겁을 집어먹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결국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라고 하실 때,
깊은 데는 바로 자아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에고(자아: ego)의 생각을 수장시키는 곳입니다.
자아는 하느님의 말씀, 곧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명할 때 수장당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느님께서 사시게 됩니다.
원죄를 없애는 방법은 이웃사랑의 계명에 순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207.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우리는 외형의 집인 가정 혹은 수도원을 ‘육신이 거처하는 집’으로,
그리고 하느님을 ‘마음이 거처하는 집’으로 삼아 살아갑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의 육신이 거주하는 “성읍”에 대한 이야기이고, <복음>은 마음의 “집”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 ‘성읍’과 ‘집’이 세워진 기초, 곧 “반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노래합니다.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이사 26,1-4)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고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마태 7,21)
<독서>에서는 “하느님이 영원한 반석”이라 하고, <복음>에서는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 하십니다. 그러니 ‘하느님 위에 집을 지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이란 영원한 반석’ 위에 집을 짓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실행’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하늘나라는 “아버지의 뜻”이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의 뜻”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분을 직접 보고 들은 분, ‘그분의 뜻’을 받들어 그분으로부터 오신 그분의 아드님 예수님이 아니고서야 누구이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을 배우고 그 실행방법도 배워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시고,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8) 라고 말씀시고, 온몸을 바쳐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내놓음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혹 어떤 것이 ‘아버지의 뜻’인지 잘 모를 때는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자신을 내어놓는 쪽, 곧 자신이 손해 보는 쪽을 택하면 될 일입니다. 곧 “십자가”가 있는 쪽을 택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어리석음과 무력함을 택하는 일, 곧 이해되지 않아도 먼저 용서하고, 오해 받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쓰고, 부당함을 당하고도 그를 감싸는 쪽을 택하는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하루 제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양식으로 삼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게 하소서!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마태 7,21)
주님!
오늘 하루 아버지의 뜻이 저희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제 머리 위에 ‘아버지의 뜻’ 말고는 그 어느 것도 두지 말게 하소서!
아무리 진실하게 여겨져도, 아무리 옳게 여겨져도,
‘아버지의 뜻’보다 앞세우지는 말게 하소서!
이해되지 않아도 인정하고, 어긋나도 침묵으로 감싸며,
잘했으면서도 먼저 용서할 줄을 알게 하소서!
알면서도 손해 볼 줄을, 옳으면서도 질 줄을,
곡해 받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쓸 줄을 알게 하소서!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31207.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한결같이 주님 말씀을 실행하는 삶-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이사26,4)
밤 일찍 눈뜨니 지난 밤 도착한 어느 자매의 메시지입니다.
“낼 제 생일이예요. 감사와 찬미로 봉헌해 주세요. 무릎, 심장, 눈 등.... 우울함,
이제 퇴임을 2년 앞두고 저를 바라보니 아픔이 가득하네요.”
어려운 중에도 최선을 다해 온 삶임을 알기에 즉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주님의 위로와 평화의 축복을 빕니다. 힘내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오늘은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생몰연대를 보니 만 57세를 살았던 성인입니다. 저는 성인보다 무려 17년을 더 살고 있는 중입니다. 기념하고 기억할뿐 아니라 모두가 성인이 되어 살라고 우리를 격려하는 성인들 축일입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그리스어로 “불멸”을 뜻하며 성공회에서는 성인의 축일을 그가 선종한 4월4일 지냅니다. 그가 397년 4월4일 성토요일 선종한 날 마지막 남긴 임종어가 얼마나 책임을 다하며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 또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신심깊은 사람인지 말해줍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어찌 이리 많이 남았단 말인가! 오 주여! 어서 빨리 오소서! 지체하시지 마시고 저를 거절하지 마옵소서.”
성 암브로시오는 정말 위대한 성인입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4권” 표지 제목은 “그리스도의 승리”이며 표지 사진은 최초로 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닌 인물,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성 암브로시오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을 삼켜버렸다!”라는 글귀도 나옵니다. 바로 여기 결정적 기여를 한 분이 바로 암브로시오 성인이요 신자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주교가 된 분으로 주교가 된 후에 세례를 받은 분입니다.
성인은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분으로, 세속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했던 탁월한 행정가이면서, 성경, 교의신학, 신비신학등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설교를 통해 설파한 위대한 신학자이자 영성가였습니다. 그는 387년 이단 사상에 빠져 있던 성 아우구스티노를 회두시켜 세례를 줍니다. 성 암브로시오(12.7)와 더불어 성 아우구스티노(8.28). 성 예로니모(9.30), 성 대 그레고리오(9.3) 네 분은 서방의 4대 교부로 추앙을 받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고백록”에서 묘사한 암브로시오의 구체적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그가 아주 짧은 시간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꼭 필요한 요기로 몸을 돌보거나 독서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가 책을 읽을 때에는 눈은 책갈피를 더듬어 나가고 마음은 터득한 바를 되씹고 있었지만 목소리와 혀는 쉬고 있었습니다. 가끔 저희가 그를 찾아갔는데 누구든지 들어가지 못하게 금하는 법도 없었고 또 누가 찾아왔다고 자기에게 알리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소리 없이 묵독하고 있음을 보았고, 그럴때면 저희도 하릴없이 소리내지 않고 한참동안 말없이 그냥 앉아 있다가 가만히 자리를 뜨곤 하였습니다. 그처럼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누가 번거로움을 끼칠 엄두가 나겠습니까?”
성 아우구스티노의 성 암브로시오에 대한 참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입니다. 중세기가 시작되기 전 그 옛날 고대 권위의 시대에 놀랍게도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늘 활짝 열려 있었던 성인의 집무실이었던 것이니, 감히 비교하건데 제 집무실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 암브로시오가 얼마나 말씀의 사람이자 관상의 사람인지, 또 얼마나 뛰어난 집중력을 지닌 분인지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특기할 사항은 그가 평생 “주님의 학인(學人)”이자 “말씀의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끊임없이 말씀의 훈련, 말씀의 실행을 통해 그가 주님의 말씀의 반석위에 얼마나 견고한 인생집을 지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오늘 복음의 다음 말씀을 평생 삶의 지침으로 삼아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또한 깊이 마음에 새겨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부터 계속된 산상설교중 가장 중요한 결론 부분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세워지기는 평생이지만 무너지기는 순간입니다. 밖에서 아무리 좋게 봐줘도 안으로부터 무너지면, 부패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주님 말씀의 반석위의 인생집 역시 평생 미완(未完)의 현재진행형중이니 죽을 때까지 말씀 실행의 수행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사상누각(沙上樓閣), 모래위의 인생집같지는 않은지 다음 묘사가 실감나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정말 이런 인생집이라면 위기를 맞았을 때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말씀 실행의 반석 위의 슬기로운 삶이나 사상누각의 어리석은 삶 역시 하루하루의 선택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주님의 평생 말씀의 학인이 되어, 수행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말씀 실행을 통해 주님 반석 위에 인생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한결같이 “말씀의 수행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평화의 축복입니다.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주님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이사26,3). 아멘.
12/8(금) [(백)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주 단식하라는 것입니다. 자주 성체를 모시라는 것입니다.
고백성사를 정성껏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들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도록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었던 참된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참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티 없고 흠 없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의 시작을 알려 주셨나이다.”(조재형 신부)
2. 아른힐 레우뱅은 자신의 책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비서’입니다. 자아거나 하느님입니다. 자아는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고
하느님은 이웃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 선택은 나에게 달렸습니다.
성모님은 단 한 번도 자아의 비서가 된 일이 없으시고 그러지도 않을 분이십니다.
이것을 아시고 처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원죄를 없애는 방법은 이웃사랑의 계명에 순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마태 7,21)
주님!
오늘 하루 아버지의 뜻이 저희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제 머리 위에 ‘아버지의 뜻’ 말고는 그 어느 것도 두지 말게 하소서!
아무리 진실하게 여겨져도, 아무리 옳게 여겨져도,
‘아버지의 뜻’보다 앞세우지는 말게 하소서!
이해되지 않아도 인정하고, 어긋나도 침묵으로 감싸며,
잘했으면서도 먼저 용서할 줄을 알게 하소서!
알면서도 손해 볼 줄을, 옳으면서도 질 줄을,
곡해 받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쓸 줄을 알게 하소서!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성 암브로시오는 오늘 복음의 다음 말씀을 평생 삶의 지침으로 삼아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또한 깊이 마음에 새겨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부터 계속된 산상설교중 가장 중요한 결론 부분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세워지기는 평생이지만 무너지기는 순간입니다. 밖에서 아무리 좋게 봐줘도 안으로부터 무너지면, 부패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주님 말씀의 반석위의 인생집 역시 평생 미완(未完)의 현재진행형중이니 죽을 때까지 말씀 실행의 수행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2/8(금) [(백)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제349일 기도
복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자아는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고
하느님은 이웃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성모님은 단 한 번도 자아의 비서가 된 일이 없으시므로...
처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잉태하여...
이웃사랑의 계명에 순명하게 하소서.
- 2023년 12월8일(금) 7시4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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