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2월 9일 토요일[(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님, 오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본기도
인류를 옛 죄의 굴레에서 해방하시려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으니
그분을 간절히 기다리는 저희에게 천상 은총을 자비로이 베푸시어
저희가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30,19-21.23-26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1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23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24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대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을 기다리는 이는 모두 행복하여라!
○ 우리 하느님을 찬송하니 좋기도 하여라. 마땅한 찬양을 드리니 즐겁기도 하여라.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네. ◎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네.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 지어 주시네. ◎
○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고 권능이 넘치시네. 그 지혜는 헤아릴 길 없네. 주님은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땅바닥까지 낮추시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은 우리의 통치자, 우리의 지도자, 우리의 임금님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예물을 정성껏 봉헌하며 비오니
주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신비의 거행으로
저희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곧 간다. 상도 가져가, 사람마다 제 행실대로 갚아 주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주님께서는 인자하시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어
다가오는 성탄 축제를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신문 홍보할 때입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문사의 어려운 형편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저도 ‘성냥팔이 소녀’처럼 약간은 측은한 모습으로 ‘신문팔이 소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저 자신도 측은한 생각이 들고, 어깨가 움츠려드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하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영화대사처럼 밝은 모습으로 홍보하는 것입니다. 저도 복음을 전하는 사도처럼 가슴에 뜨거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는 많은 보물이 묻혀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보물이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는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보물이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는 미주지역 한인 가톨릭 공동체의 소식이라는 보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는 등잔에 ‘기름’을 준비한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는 ‘겸손’이라는 기름이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는 ‘인내’라는 기름이 있습니다. 교우들이 가톨릭평화신문을 구독하는 것은 신문사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사명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번 LA ‘성 프란치스코 한인성당’에 홍보를 갔을 때입니다. 공지사항 시간에 본당신부님께서 가톨릭평화신문 홍보를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학술지를 보는데 어느 날 학술지가 폐간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좋은 논문과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는 학술지가 폐간된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학술지 대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폐간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학술지라고 해도 독자들이 정기적으로 구독하지 않으면 폐간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주지역에 교회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톨릭신문이고, 다른 하나는 가톨릭평화신문입니다. 안타깝게도 2년 전에 가톨릭신문은 본국으로 철수하였습니다. 팬데믹을 지내면서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주 지역에는 가톨릭평화신문 하나만 남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가톨릭평화신문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톨릭평화신문을 구독해 주어야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구독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미사 후에도 교우들에게 신문구독을 권하였습니다. 저보다 더 열심히 신문홍보를 위해서 앞장서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미국에 와서 5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떤 겨울은 팬데믹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졌지만 ‘봄’은 어김없이 왔습니다. 어떤 겨울은 무릎까지 눈이 쌓였지만 ‘봄’은 또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떤 겨울에는 지붕에 누수가 있었고, 어떤 겨울에는 눈 폭풍이 불었지만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섯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매년 겨울이 지나면 선물처럼 봄이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는 마치 겨울을 보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 한데 모은 듯하리라.” 얼마나 멋진 희망의 메시지입니까?
대림시기를 지내면서 박노해 시인의 시 “별은 너에게로”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대림 시기입니다. 주님께서는 빛의 속도로 우리에게 오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뜨거운 가슴으로 희망을 품고 빛나는 별을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나해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마태오 9,35-10,1.6-8
기쁘지 않게 주는 것 안에 기쁜 소식이 어떻게 섞이겠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뽑으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파견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면서 병자도 고쳐주고 더러운 영들도 쫓아내는 권한을 주십니다.
복음은 물질적인 축복 안에 넣어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밥은 안 주고 인간의 도리만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집을 뛰쳐나가고 말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있듯, 복음도 물질과 영의 결합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빵 하나 전해주는 것은 복음이 될 수 있지만,
배고픈 이들에게 공부만 시키는 것은 고문에 가깝습니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담기듯 우리가 내어주는 것 안에 복음이 담깁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준다고 다 복음(기쁜 소식)이 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내어주는 것이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주는 것이 나의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나의 것을 내어줄 때는 기쁘기보다는 아깝거나 짜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것을 나의 것에 넣어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내어주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고 그 안에 담기는 기쁜 소식도 주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내어줄 때 항상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거저 받은 것을 준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전에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란 프로그램에서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짜증만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체벌하고 야단쳤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선생님을 포기할까 생각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것을 내어주고 있다고 착각하면 내가 하는 고생만큼 상대에게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기에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나의 것을 준다고 생각하면 받는 사람도 짜증 나고 주는 사람도 짜증 납니다.
짜증 나는 일을 오래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영성 강의를 들으시는 분이 다시는 그 강의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강의하시는 분이 짜증을 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밤을 새우고 몇 번이고 연습해서 오는데
듣는 사람이 졸고 있으니 짜증을 냈던 것입니다.
그렇게 짜증을 내는 것은 ‘나의 것’, ‘내가 고생해서 얻은 것’을 준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엔 복음이 섞일 수 없습니다. 짜증과 기쁨이 어떻게 섞일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어줄 때는 그래서 나의 것이 아닌 받은 것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깝지 않고 짜증도 나지 않습니다.
어떤 신부님이 계셨는데 그분도 복음을 전하면서 짜증을 많이 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답답해하셨고 집중이 흐트러지는 신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1시간 강의하려면 10시간 준비해야 하는데 듣는 사람들 자세가 안 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뒤에 그분은 옷을 벗고 사제직을 포기하셨습니다.
기쁘게 주지 않은 것 안에 기쁜 소식이 섞일 수 없습니다.
기쁘게 주지 않으면 나도 상대도 기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사랑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쁘게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은 역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내가 가진 능력, 수입, 시간 등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입니다.
이런 신앙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그 사람이 내어줄 때는 기쁜 마음으로 내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복음전파의 효과도 배가됩니다. 기쁘게 주는 것 안에만 기쁜 소식이 섞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온전한 정신으로 실천하면 기쁘게 내어주고 그러면 나도 즐겁고 받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십일조를 통해 깊이 묵상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받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주고 싶은 마음조차 받은 것이라면 주는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의 ‘격리 원숭이’ 실험에서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떼어놓아
홀로 자라게 한 원숭이는 남에게 무언가 줄 줄 모르게 성장합니다. 자기만 압니다.
내어줄 줄 모르니 다른 원숭이 무리에도 섞일 수 없습니다.
억지로 자녀를 탄생하게 만들어도 자녀를 사랑할 줄 모릅니다.
자녀가 무서워서 어미에게 달려들면 어미는 발로 차버립니다.
격리 원숭이와 대비되는 것이 ‘치료자 원숭이’, 혹은 ‘구원자 원숭이’라고 불립니다.
태어난 지 약 4개월 정도 되었고 어미로부터 사랑만 받아서 온 세상이 사랑인 줄 아는
원숭이입니다. 이 원숭이는 격리 원숭이를 쫓아다니며 기쁘게 털을 골라줍니다.
결국, 격리 원숭이도 자꾸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치료자 원숭이의 털을 골라줍니다.
그리고 무리에 적응할 수 있는 원숭이로 바뀝니다.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 다 모기나 기생충처럼 남의 생명을 먹어서 자신을 생존시키려는
욕구만을 가집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관계에서 오는 행복의 맛을 알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관계의 기쁨을 알려주시기 위해 내어주고 싶은 마음과
내어주고 싶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내어주는 행복과 그것을 통해 얻는 관계의 행복도 다 거저 받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안다면 내어주면서 짜증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기쁘게 주는 것 안에만 기쁜 소식이 담긴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기쁘게 주려면 그 주려는 마음까지도 거저 받은 것임을 기억합시다.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십일조를 생활화합시다.
그러면 나도 기쁘고 받는 사람도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가 형성될 것이고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기쁘게 주는 것 안에서만 기쁜 관계가 형성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208.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한국교회의 수호자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엄청 기쁜 날입니다. 우리는 <입당송>에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나의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화답송>에서도,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 하여라, 찬미노래 불러라.” 하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 환호송>에서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하고, 기쁨을 노래하였습니다.
오늘 전례의 의미는 <본기도>에서 잘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동정녀를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시어,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셨으며, 성자의 죽음을 미리 보시고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19세기의 저명한 학자이며 교부전문가인 헨리 뉴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초기부터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그녀가 바로 두 번째 하와라는 것이다.”
사실, 마리아가 ‘두 번째(새) 하와’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마리아도 하와처럼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하신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라는 표현은 ‘의롭다’ 또는 도덕적으로 ‘선하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곧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그래서 죽지 않는 존재이며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초대교부들은 하와가 인류의 타락에 고유한 역할을 했듯이, 마리아도 인류의 구원에 고유한 역할을 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와는 뱀의 말에 속아서 불순종과 죽음을 가져왔다. 그러나 동정 마리아는 믿음과 기쁨을 가져왔다.”(유스티누스). “하와를 통해서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통해서 생명이 왔습니다.”(히에로니무스). “사람을 속이기 위해 여인을 통해서 독약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은총 속에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여인으로부터 구원이 쏟아졌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사실 <창세기>에 따르면, 원죄를 짓기 전에는 ‘여인’으로 불렸고 범죄 후에 ‘하와’로 불리어집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가나안의 혼인잔치’와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에게 요한을 맡기실 때’ 마리아를 “여인이여”라고 부르심은 마리아를 죄 없으신 ‘두 번째(새) 하와’로 부르심을 말해줍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마리아가 “새로운 하와”임을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창세기> 3장 15절의 ‘원복음’을 다루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 대목(창세 3,15)을 “새로운 아담”의 예고라고 본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필리 2,8) 아담의 불순종을 넘치게 보상한다. 한편, 많은 교부들과 교회학자들은 ‘원복음’에서 예고된 ‘여인’을 “새로운 하와”인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로 생각한다. 마리아는 최초로 그리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죄에 대한 승리의 은혜를 입은 분이다. 그분은 원죄에 전혀 물들지 않았고, 지상 생애 동안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그 어떤 죄도 범하지 않으셨다.”(411항)
이처럼, 예수님과 마리아를 ‘새 아담’과 ‘새 하와’로 여기는 것은 마리아가 죄 없이 잉태되셨고, 죄 없이 사셨다는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마리아의 부모님이 죄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며, 아들에게 죄스런 본성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죄를 씻은 것’도 아니며, 오직, 예수님께서 죄를 이기신 승리에서 흘러나온 ‘특별한 은총’으로 죄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를, 곧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교종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 믿을 교리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
이 선언은 세 가지 사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곧 첫째로, 이 특전의 성격이 ‘마리아는 원죄로부터의 면죄되었다는 것’이요, 둘째로, 특전의 이유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셋째로, 이 특전의 방법은 ‘예수님께서 갈바리아에서 얻은 구원의 선행된 효과라는 것’임을 밝혀줍니다. 그러기에, 이 “교의”의 선포는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보편적인 구원으로부터 예외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원을 미리 입으셨다는 뜻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 하와”인 마리아는 죄 없이 창조되어, 새 창조의 의로운 삶을 가리키는 ‘살아있는 표징’이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가정을 되돌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2코린 5,17)이 되게 하셨습니다. 곧 성모님으로 하여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 열리기 된 것입니다. 이 새로운 창조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여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단지 죄를 용서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본래의 죄 없는 에덴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죽음이 없는 상태로 건너감이며, 하느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죄를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을 가져다 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로마 15,21)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하늘에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히브12,23)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묵시록>에서는 말합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새로움으로 태어난 피조물로 축복을 입게 되었으니, 한없는 기쁨으로 “성모님의 노래”인 오늘 입당송의 다시 불러봅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나의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입당송)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
주님!
당신 말씀을 품고, 은총이 가득합니다.
당신 사랑을 품고, 은총이 가득합니다.
그 말씀에서 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 사랑에서 제 생명이 솟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당신 사랑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언제나 함께 계시는 당신이 진정, 저에게는 은총입니다.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31208.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지혜, 찬미, 순종-
“새로운 노래를 주께 불러드려라.
묘한 일들 당신이 하시었도다.“(시편98,1ㄱㄴ)
오늘 성모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화답송 후렴이 참 흥겹고 은혜롭습니다. 하루종일 끊임없이 부르고 싶습니다.
“알마 레뎀토리 마텔,
꽤 펠비아 챌리 폴타 마네스, 엩 스텔라 마리스.”
(구세주의 존귀하신 어머니. 영원으로 토인 하늘의 문, 바다의 별이시여.)
대림 제1주일부터 2월1일까지 잠자리에 들기전 끝기도후 부르는 라틴어로 시작되는 성모 찬송가로 마감하는 행복한 하루입니다. 이어 이른 밤 잠깨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후 집무실에 들어와 부르는 만세육창의 평화의 기도가 또 행복한 하루를 엽니다. 늘 외쳐도 늘 좋고 새로운 만세육창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오늘은 정말 반갑고 기쁜, 사랑하올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 대축일입니다. 어제 대축일을 앞둔 12월7일 성 암브로시오 기념일에 저희 수도형제 3명은 참 좋은 선물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오창선 고백신부님의 사제수품 50주년 행사에 영광스럽게 초대되어 지극한 환대와 선물도 가득 받았습니다. 정말 이런 환대와 선물은 생전 처음입니다.
말그대로 오창선 신부님을 통해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는 성모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참으로 치밀하고 섬세한 배려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이런 초대는 저희 수도승들에게는 생전 처음이고, 명동 파밀리아채플에서도 미사도 처음이요, 명동 프란치스코홀에서의 축하연도 처음이었습니다.
미사끝무렵에 참석한 내빈 사제들의 소개가 있었고 사제중 저는 연령상 위에 속한 까닭인즉 일찍 제 이름을 불렀고 좌석 뒤쪽에 두 수도형제와 함께 있던 저는 벌떡 일어나 “저, 여기 있습니다!”하여 우레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뒤늦게라도 “저와 함께 온 안마르꼬 수사님과 백요셉 수사님입니다!” 용기를 내어 소개하지 못했음이 내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떠날 무렵 오창선 시몬 신부님께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신부님, 잔치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삼 초대가 은총의 선물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오고 싶어도 초대해 주셨기에 올 수 있었지 초대받지 못했으면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연 초대받은 손님답게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사 전례에 참석하는지 반성했습니다. 며칠전 교황님은 주요 추기경 9인 회의에서 교회의 여성적 차원에 대한 나눔이 있었고 교황님의 모두 발언에서 크게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여자입니다(The Church is woman). 만일 우리가 여자가 무엇인지, ‘여성임의 신학(the theology of womanhood)’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교회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의 남성화는 해결되어야할 큰 죄입니다.
세계적 신학자 예수회원인 한스 우르스 폰 발다살 말처럼 교회는 베드로적 또는 성직자 차원과 마리아적 또는 신비적 차원으로 두 차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적인 요소가 베드로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합니다. 남성다움이 없는 신부인 교회, 여성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여자입니다.”
정말 교회에 대한 참 심오하고 아름다운 정의입니다. 여자가 없다면 교회도 수도원도 존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수도원만 봐도 봉사자들 미사봉헌자들 예물 봉헌자들 대부분 여자들이지 남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제 집무실을 찾는 경우도 남자들은 거의가 빈손이지만 여자들 손에는 꼭 선물이 있습니다. 새삼 수도원을 사랑하는 자매님들 얼굴에서 저는 성모님 얼굴을 봅니다.
제대보 레이스에 보면 십자가가 열넷입니다. 레이스를 봉헌한 루시아 자매님의 설명에 감동했습니다. “수사님들 현재 열셋이기에 한분 더 오라고 열넷 십자가를 수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는 수도성소를 지망하는 네레오 형제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이또한 대축일을 앞둔 성모님의 선물로 생각되었고 좋은 수도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 듬직해 보이네요!” 덕담도 했습니다. 참 성모님의 은혜가 고마워 자주 부르는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도 성모님 은혜로 바꿔 2절까지 만세육창후 불렀습니다.
“높고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높은 게 또 하나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성모님은혜, 푸른하늘 저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넓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넓은 게 또 하나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성모님은혜, 푸른바다 저보다도 넓은 것 같애.”
말그대로 성모님 대축일 불러 드리는 축가요 오늘 자주 부르려 합니다. 성모님 선물에 대한 자랑이,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본받고 싶은 성모님 덕을 나눕니다.
첫째, 지혜입니다.
지혜의 성모님, 동정 마리아입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참으로 주님을, 주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면 저절로 지혜도 따릅니다. 오늘 창세기 하와느 이점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분별의 지혜가 부족했기에 뱀의 유혹에 빠졌고 이어 아담도 죄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너 어디 있느냐?” 물었을 때 숨어버린 아담입니다. “왜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 책임을 추궁할 때 이들의 변명과 핑계가 가관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하느님과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아담이요 신뢰 관계는 무너졌습니다. 무지의 악이 정말 무섭고 두렵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과 지혜의 결핍이 이런 관계 파괴의 죄를 짓게 했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먹었습니다.”
하와 역시 똑같이 무책임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없으면 탐욕과 교만앞에 속수무책입니다.
하와의 무지를 일거에 만회한 새 하와인 성모님이 참 고맙습니다. 새삼 무지에 대한 답은 겸손과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이 지혜요, 끊임없는 참된 회개를 통해 주님을, 주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할수록 우리는 성모님처럼 겸손과 분별의 지혜도 선물로 받습니다.
둘째, 찬미입니다.
찬미의 성모님, 동정 마리아입니다. 제2독서 에페소서 찬미가는 얼마나 좋습니까! 그대로 성모님은 물론 초대교회 신자들, 그리고 우리의 심정을 반영하는, 참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또 우리의 복된 신원을 확인 하는, 그리하여 우리 수도자들이 매주 월요일 저녁기도때 마다 바치는 찬미감사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느 말마디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성모님 마음에 꼭 들으셨을 찬미감사가입니다. 아, 우리는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닌 이미 세상 창조이전에 하느님께 선택된, 불림 받은 성소자임을 깨닫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성인성녀들, 형제자매들과 함께 끊임없이 바쳐야 할 하느님 찬미찬양의 감사가입니다.
도대체 이런 찬미찬양의 기쁨과 행복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 찬미찬양의 기쁨으로,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여기서 샘솟는 사랑과 지혜요, 무지에 대한 궁극적 처방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평생 저녁성무일도 끝무렵에 성모님과 함께 “마리아의 노래”를 부릅니다.
셋째, 순종입니다.
순종의 성모님, 동정 마리아입니다. 순종에 앞서 거룩한 사랑의 침묵이요 경청이요 겸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대로 감지되는 성모님 모습입니다. 참으로 눈밝으신 하느님은 겸손히 당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시골 나자렛에 숨겨진 삶을 살고 있는 침묵과 경청, 겸손의 동정 마리아 성모님을 찾아나섭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얼마나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동정 마리아 성모님인지 하느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속내의 비밀을 다 털어놓습니다. 이런 성모님이 계시기에 하느님도 참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일방적으로는 일하시지 못합니다. 전능의 무능이라는 역설의 진리입니다. 어떻게? 묻는 마리아에게 소상히 설명하십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정말 거룩한 사랑의 침묵, 경청, 겸손의 동정 마리아를 선택하신 하느님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이어지는 동정 마리아 성모님의 응답에 하느님은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성모님의 믿음은 이런 순종을 통해 절정에 도달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응답이 나오기전 온 세상이 쥐죽은 듯 깊은 정적의 침묵에 싸여있었다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주석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비롯하여 모든 천사들, 지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참으로 조마조마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에 인류의 구원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리아를 떠나니 하느님은 기뻐 춤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지혜입니다.
사랑의 찬미입니다.
사랑의 순종입니다.
사랑밖에 답이, 길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동정 마리아 성모님을 닮아 날로 지혜와 찬미, 순종의 사람이 되어 성령충만, 사랑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12/9(토)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대림 시기입니다. 주님께서는 빛의 속도로 우리에게 오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뜨거운 가슴으로 희망을 품고 빛나는 별을 기다리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내가 내어주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고 그 안에 담기는 기쁜 소식도 주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내어줄 때 항상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거저 받은 것을 준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
주님!
당신 말씀을 품고, 은총이 가득합니다.
당신 사랑을 품고, 은총이 가득합니다.
그 말씀에서 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 사랑에서 제 생명이 솟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당신 사랑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언제나 함께 계시는 당신이 진정, 저에게는 은총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사랑의 지혜입니다.
사랑의 찬미입니다.
사랑의 순종입니다.
사랑밖에 답이, 길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동정 마리아 성모님을 닮아 날로 지혜와 찬미, 순종의 사람이 되어 성령충만, 사랑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이수철 신부)
12/9(토)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제350일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모든 것을 거저 받았으니 기쁜 마음으로 거저 주게 하소서.
- 2023년 12월9일(토) 7시3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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