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월 12일 금요일[(녹) 연중 제1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월 12일 금요일[(녹) 연중 제1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나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흠숭하며 함께 노래하네. 보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본기도

주님,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여러분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8,4-7.10-22ㄱ
그 무렵 4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5 청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6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
7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10 사무엘은 자기한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11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12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13 또한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14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15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16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17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18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19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20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1 사무엘은 백성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그대로 주님께 아뢰었다.
22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그들에게 임금을 세워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9(88),16-17.18-19(◎ 2ㄱ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 행복하여라, 축제의 기쁨을 아는 백성! 주님, 그들은 당신 얼굴 그 빛 속을 걷나이다. 그들은 날마다 당신 이름으로 기뻐하고, 당신 정의로 힘차게 일어서나이다. ◎
○ 정녕 당신은 그들 힘의 영광, 당신 호의로 저희 뿔을 들어 올리시나이다. 저희 방패는 주님의 것, 저희 임금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것이옵니다. ◎

복음 환호송

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6(35),10 참조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또는>
요한 10,1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지난 대림 때입니다. 저는 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대림시기에는 대림성가를 들으면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대림시기에 성탄성가를 듣는 것은 수고하지 않고 열매를 얻으려는 마음과 같습니다. 대림시기에 성탄성가를 듣는 것은 출산의 고통 없이 아이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대림시기에 성탄성가를 부르는 것은 상업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성탄시기에 찬양해도 좋습니다. 대림시기에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대림성가를 듣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글을 읽은 후에 대림시기 동안 대림성가를 들으면서 지냈습니다. 주위 분들에게도 저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대림성가를 들으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차분해졌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듣고 대림성가를 주로 들었던 분들도 같은 느낌이었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대림시기는 주님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 전에 우리에게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기다리는 않는 이들에게 성탄은 1년에 한 번씩 다가오는 축제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임금을 세워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임금이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을 외적의 침입을 막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임금이 있으면 이스라엘에 질서와 평화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임금이 있으면 갈등과 분쟁을 해결 해 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임금이 있으면 벌어질 일들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 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사무엘은 임금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임금은 큰 권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할 수 있다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금을 세워달라고 하였고,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금을 얻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또 다른 임금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권한이 있지만 권한을 내세우지 않고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의 모습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을 주고, 묶인 이를 풀어주고, 갇힌 이에게 자유를 주고, 아픈 이를 치유해 주고, 굶주린 이를 배부르게 하는 임금입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기꺼이 섬기는 임금입니다. 참새도 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머무를 곳도 제대로 없는 임금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유함 보다 가난함을 택하는 임금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건강함 보다 아픔을 택하는 임금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래 사는 것 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하는 임금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 임금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임금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새로운 임금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신앙은 선택입니다. 세상의 임금이 가지는 권한과 권력을 추구할 것인지, 하느님의 아들이 보여주신 겸손과 십자가를 추구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연중 제1주간 금요일

마르코 2,1-12  

 

오늘 우리에게는 호의와 친절을 겸비한 따뜻한 이웃이 필요합니다!

 

중증 중풍으로 인해 사람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예수님께로 온 환자를 바라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숨 쉬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갓난 아기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화장실 가는 것, 옷 갈아입는 것, 씻는 것, 밥숟가락 드는 것조차 스스로 할 수 없으니,

그 삶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이렇게 맨날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었지만,

그것조차도 불가능했습니다.

 

살다 보면 때로 우리 역시 중풍 병자 같은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깊은 수렁 속에서 한번 빠져나오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도무지 빠져나올 도리가 없습니다.

생각은 간절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과 자비로 충만하신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더불어 호의와 친절을 겸비한 따뜻한 이웃, 내 이 비참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줄 동료들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 병자에게는 바로 그런 이웃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치유자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네 사람은 중풍 병자를 들것에 실어 그분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거처에 도착해보니, 또 하나의 높은 벽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사도들로부터 대기 번호표를 받았는데, 500번이었습니다.

순번을 지키다가는 사흘을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고민 고민 끝에 그들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즉시 실천에 옮깁니다.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뚫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해서 아래로 한번 내려가 볼까요?

 

아래 거실에서는 예수님께서 치유 활동에 전념하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지붕 위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지붕이 열리더니 나뭇가지며, 잡동사니들이 우르르 떨어졌습니다.

 

잠시 후에 밧줄에 매단 환자가 내려왔습니다.

“자, 천천히. 조심조심! 수평을 맞추고, 지금 너무 왼쪽으로 기울었으니 오른쪽으로. 오케이!”

 

이윽고 예수님 바로 앞으로 내려온 중풍 병자! 너무나 특별한 광경에 많이 당황하셨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극정성을 크게 평가하십니다.

 

중풍 병자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에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쉼 없이 흘렸을 것입니다.

 

나를 들것에 싣고 그 먼길을 뛰어온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 나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에, 반드시 치유되어 백배 천배로 갚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일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흐른 어느 날,

우리도 오늘 중풍 병자처럼 하늘만 쳐다보고 누워있게 될 것입니다.

들것에 눕혀 어디론가 실려갈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들것이나 침대, 휠체어에 의지하고 계신 어르신들, 선배들, 부모님들,

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대해야겠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돌봐드려야겠습니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40111.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단순한 치유받은 한 나병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치유 받은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나를 치유하신 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는 일이고, 그분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사실, 구약의 율법규정(레위 13,45-46 참조)에 따르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공공장소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타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는 접촉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서, 혹시 누군가가 다가오면 ‘자신이 불결한 자’라고 외치면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의 ‘복음’의 차이를 극렬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곧 구약의 율법은 나병환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규정을 제시할 뿐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오늘 <복음>에서는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피해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고 불결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께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병들었고 죄인이기에, 감싸주시고 치료해주십니다. 예컨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 이야기에서도 이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한 여인이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이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용서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이처럼, 규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호의를 제시해줍니다.
 
한편, 나병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바람이 아니라, 스승님의 바람이 이루어지소서! 라는 의탁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바람에 대해 하느님께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바람에 우리가 응답하는 것에 대한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하신 것처럼,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는 주인께 속한 이로서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동시에, 당신의 치유의 능력, 곧 권능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의 행사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있기에, 주님의 처분에 온전히 의탁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주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탁하며, 주님의 원의에 순명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희망을 하느님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로 자신을 내어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주님!
당신께서 하시고자 한 바를 하소서.
당신께서 바라시는 것을 저도 바라게 하소서.
당신이 하시고자 한 바를 저도 하게 하소서.
주님, 저를 만지소서.
저의 바람과 하는 일을 깨끗하게 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저를 새롭게 하시고 당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40111. 연중 제1주간 목요일.

 

행복하여라, 교회의 성사(聖事)로 양육(養育)되는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우리 믿는 이들!”-

 

오늘 밤 꿈중에 묵상중 떠오른 강론 제목입니다. 연중시기 초반에 맞갖게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이 활발히 펼쳐집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의 공생애 첫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늘 새롭게 회개하여 임박한 하느님 나라를 살라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복음선포와 더불어 온갖 치유활동이 펼쳐집니다. 앞서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시몬의 장모와 많은 병자를 고쳐주신후 전도여행중 또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신 주님은 고맙게도 오늘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똑같은 주님께서 오늘 미사전례를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비단 전례가 아니더라도 참으로 간절히 주님을 찾는 이들을 만나 치유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어제 열심한 50대 자매들이 눈에 밟힙니다. 낮기도때부터 저녁 끝기도때까지 참 오랜시간 동안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몇 달전에 피정을 다녀간 인천쪽에 사는 분들인데 주님이 그리울 때 수도원 성전을 찾아 마냥 머물며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다 가는 분들입니다. 이중 한분의 며칠 전 보낸 메시지입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가도가도 또 가고 싶은 곳

 어제는 꾸르실료 분단 모임이 있었는데

 실컷 자랑했더니 다들 가자고 해서 6월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가도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 ‘주님의 집’ 성전이며,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분이, 만나고 또 만나도 만나고 싶은 분이 주님입니다. 날마다 주님 보고 싶은 설레는 마음에 한밤중 잠깨어 쓰는 강론입니다. ‘가도가도’란 말마디를 보니 떠오르는 제 가장 사랑하는 ‘하늘’이란 시입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호수하니 윤동주 시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정지용 프란치스코 시인의 '호수'란 시도 떠오릅니다.

 

“얼굴 하나야

 손가락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 밖에”

 

이래서 주님 그리울 때 묵상중 저절로 눈을 감게 되나 봅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는 바로 우리 믿는 이들 모두를 상징합니다. 나병이 상징하는 바, 각자 지닌 다양하면서도 고유한 병을 상징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건강한 이도 의인도 없습니다. 나름대로 모두가 병자요 죄인입니다. 

 

그러니 치유의 구원을 위해 찾을 분은 예수님 한분 뿐입니다. 왜 나병환자가 되었나? 물음 부질없는 답없는 질문입니다. 세상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원인은 몰라도 답은 압니다. 바로 답인 주님을 찾아 만나는 것이요, 이점에서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를 제대로 주님을 찾아 만났으니 그대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스승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 마음입니다. 바로 가엾이 여기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이런 마음을 지녀야 비로소 주님을 닮은 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가엾은 마음에 손을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는 깨끗하게 치유됩니다. 주님의 1.가엾이 여기는 마음, 2.따뜻한 스킨쉽, 3.능력의 말씀이 삼박자가 되어 나병환자의 믿음과 만나 일어난 치유의 기적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주님은 침묵을 당부했지만 치유받은 나병환자는 이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니 저절로 복음 선포자가 됩니다. 나병을 통해 주님을 만나 치유받았으니 나병 역시 전화위복의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나병이 없었다면 그 병자는 주님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며 삶도 깊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주님은 대중의 인기의 중심에 서기를 원치 않았기에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십니다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분께 모여들으니 새삼 예수님은 우리 모든 병든 이들의 삶의 중심임을 깨닫습니다. 눈만 열리면 바로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하늘이신 주님을 만나 치유받는 우리들이요 저절로 나오는 다음 감격의 고백일 것입니다.

 

“자리찾지도 

 자리탓하지도 않는다

 그 어디든 

 뿌리내려

 하늘 사랑 송이송이

 꽃피어내는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한

 바로 거기가 꽃자리 하늘나라이다.”

 

오늘 제1독서 사무엘상 이야기가 깊은 충격과 더불어 참 귀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줍니다. 필리스티아인들에 참패한 이스라엘은 보병 삼만이 쓰려졌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으니, 엘리 아들들의 죄로 인한 업보요 그대로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입니다. 탓할 것은 이스라엘 자신들이요 하느님이 아님을 처절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회개하여 내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하느님의 계약 궤도 무력함을 깨닫습니다. 안으로부터 부패하여 무너지면 하느님은 물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진리를 배웁니다.

 

아마도 이런 패전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하느님을 떠나 부패했던 삶에 깊은 회개가 뒤따랐을 것입니다. 주님의 참된 치유의 구원은 회개와 더불어 시작됨을 봅니다. 복음의 나병환자도 이미 주님을 찾았을 때 회개와 믿음으로 준비된 깨끗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어, 오늘 지금 여기서 꽃자리 하늘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교회의 성사(聖事)로 양육(養育)되는 우리 믿는 이들!” 아멘.


1/12(금) 연중 제1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임금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새로운 임금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신앙은 선택입니다. 세상의 임금이 가지는 권한과 권력을 추구할 것인지, 하느님의 아들이 보여주신 겸손과 십자가를 추구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극정성을 크게 평가하십니다.

 

중풍 병자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에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쉼 없이 흘렸을 것입니다.

 

나를 들것에 싣고 그 먼길을 뛰어온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 나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에, 반드시 치유되어 백배 천배로 갚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주님!
당신께서 하시고자 한 바를 하소서.
당신께서 바라시는 것을 저도 바라게 하소서.
당신이 하시고자 한 바를 저도 하게 하소서.
주님, 저를 만지소서.
저의 바람과 하는 일을 깨끗하게 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저를 새롭게 하시고 당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치유의 구원을 위해 찾을 분은 예수님 한분 뿐입니다. 왜 나병환자가 되었나? 물음 부질없는 답없는 질문입니다. 세상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원인은 몰라도 답은 압니다. 바로 답인 주님을 찾아 만나는 것이요, 이점에서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를 제대로 주님을 찾아 만났으니 그대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스승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 마음입니다. 바로 가엾이 여기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이런 마음을 지녀야 비로소 주님을 닮은 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가엾은 마음에 손을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이수철 신부)


 

1/12(금)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제384(제14)일 기도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신앙은 선택입니다. 

세상의 임금이 가지는 권한과 권력을 추구할 것인지, 

하느님의 아들이 보여주신 겸손과 십자가를 추구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세상이 아닌 하느님을 선택하며 살게 하소서.

 

- 2024년 1월12일(금) 9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