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2월 22일 목요일[(백)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대영광송>
본기도
베드로 사도의 신앙 고백을 반석으로 삼아 교회를 세우셨으니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교회가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5,1-4
사랑하는 여러분,
1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원로들에게 같은 원로로서,
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2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3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4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교회가 바치는 기도와 제물을 받아들이시어
목자인 베드로 사도의 인도로
저희가 신앙을 온전히 보존하고 영원한 상속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원한 목자이신 아버지께서는 양 떼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보호하며 지켜 주시려고
복된 사도들을 목자로 세우시어
성자를 대리하여 양 떼를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르셨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복된 베드로 사도의 축일을 지내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셨으니
이 구원의 잔치가 저희에게 일치와 평화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베드로사도좌 축일
댈러스에 오기 전에 저의 자리는 ‘가톨릭평화신문미주지사’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신문을 만들고, 신문사를 운영했습니다. 교구의 인사이동으로 이제 저의 자리는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주임신부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본당 사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리는 직책과 직무를 뜻합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별을 보고 방향을 정했습니다. 북극성은 방향을 잡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별자리는 기준과 원칙을 뜻합니다. 비슷한 의미로 신호등이 있습니다. 빨간 신호등에서는 멈추어야 합니다. 파란 신호등에서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나라는 이런 원칙과 기준이 잘 지켜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살던 명동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장소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리는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장소를 뜻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텍사스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기업들도 텍사스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타주에 비해서 세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리는 직무와 직책의 의미로, 원칙과 기준의 의미로, 생활하는 공간의 의미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댈러스 교구는 저의 직책과 직무에 맞게 권한을 주었습니다. 제가 본당 사목을 할 수 있도록 댈러스 교구에서 요구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교육에 참여했다는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저의 직책에 따른 권한은 제가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 받았던 권한과 비슷합니다.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 고백성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 병자성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 혼배성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 세례성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입니다. 본당 공동체와 함께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본당 공동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목자와 수도자가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미주지역에서 사목하는 사제들과 연대하여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중남부 지역의 사제들과 연대하여 신심단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뉴욕에서는 ME 대표신부를 맡았었고, 꾸르실료 지도신부를 맡았습니다. 이제 이곳 중남부에서는 꾸르실료 지도신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제의 직무는 복음을 전하는 예언직과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사목직과 성사를 통하여 공동체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제사직입니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자리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생전에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자리를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고, 동생 안드레아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을 만난 뒤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교회는 사도들의 으뜸이라고 생각하였고, 기꺼이 베드로에게 교회의 사도좌의 권위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죽기까지 예수님의 뒤를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3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라서 우리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고백을 합니다. 베드로 사도를 계승하는 교황은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지금 이곳에서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나누는 이곳이 이미 천국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조건으로 용서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위는 주장하고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권위는 유리와 같아서 쉽게 깨지고,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아낌없이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권위는 불의와 폭력 앞에서 위축되지 않으며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기 마련입니다. 나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나의 권위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권위가 아닙니다. 나의 체면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권위일 뿐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참된 권위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 나눔과 희생으로 사라지지 않는 우리들의 자리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마태오 16,1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아시다시피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함께 사는 형제가 제 성격에 딱 맞다며 별명을 하나 지어줬는데 ‘조급’ 양신부랍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천하태평같고
여유만만해 보이지만, 같이 살아보니 엄청 급하답니다.
미사 입 퇴장 할 때도 광속이라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답니다.
바깥 일도 천천히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아무 말도 않고 그냥 혼자서 다 해버린답니다.
따지고 보니 그런 구석이 없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 사도도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수제자답게 진중하게 생각도 해보고, 여유있게 움직이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님께서 질문을 던질 때면 다른 제자들에게 기회를 줘도 좋을텐데, 제일 먼저 나서서 대답하다가
늘 점수 왕창 깎아 먹기 일쑤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성격은 공으로 표현하자면 럭비공이었습니다.
축구공이나 농구공은 바닥에 튀면 대충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이 됩니다.
그러나 타원형인 럭비공은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천방지축, 티격 태격의 명수 베드로 사도였습니다.
수난 직전 적대자들과 대치 상태에서 예수님께서는 순순히 병사들에게 붙잡히십니다.
아버지의 때가 왔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신신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사도는 칼을 뽑아
대사제 종의 귀를 내리쳐 잘라버립니다.
피가 뚝뚝 흐르는 잘라진 귀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아프다고 울부짖는 대사제의 종의 모습을 상상해보셨습니까?
귀를 잘랐기 망정이지 목이라도 쳤으면 살인자가 될 뻔 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는 예측 불가능한 돌출행동으로 예수님을 비롯한 제자공동체 멤버들을 당혹스럽게 하는데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허물 이 너무 많아 부적격자로 보이는 베드로를 수제자요 반석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쉼 없이 흔들리던 그를 교회의 반석이 될 것이라고 명하셨습니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 인간 존재, 그래서 언제나 좌충우돌, 흔들리던 시몬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맡기시고,
천국의 열쇠까지 맡겨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얼마나 큰마음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치 오늘 우리들처럼 지상 생활 내내 쉼없이 흔들렸던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스승님으로부터 잦은 질타를 받던 ‘관심 사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정확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나약함, 죄, 인간적인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수시로 흔들렸지만 흔들릴 때 마다 겸손하게 외쳤습니다.
“주님 보시다시피 저는 보잘 것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저는 당신 제자로서 부당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아시다시피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시몬 베드로는 정확한 자기 인식의 기반 위에 각고의 노력을 더해,
마침내 그 어떤 세찬 비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교회의 반석으로 거듭났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존재 자체로 오늘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겸손함입니다.
그러한 겸손의 덕 위에 부단히 자신의 결핍, 나약함,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는 솔직한 자기 인식을 위한
노력이 또한 필요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성 베드로사도좌 축일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를 잘 드러내줍니다.
곧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베드로에게 부여되는 권한을 통해서는 ‘교회의 신비’를 드러내줍니다.
우선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성부 하느님에 대한 고백이요, 성자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요, 성부 하느님과 성자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고백입니다.
곧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절대적이고 유일한 관계를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신비를 드러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밝혀주신 이 계시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곧 교회는 바로 '하느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마태 16,18)
또한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9)
'열쇠'는 권한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매고 푸는' 특별한 권한을 베드로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곧 '매고 푸는' 권한을 하늘에서 보증하고 인정해주는 이 어마어마한 사실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땅에서 열린 것입니다.
곧 우리는 하늘을 땅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매인 것’을 푸는 일은 하늘에 가서 하는 일이 아니라, 땅에서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곧 우리가 땅에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할 때 하늘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늘이 이미 땅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사랑의 행위 안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땅에서 하늘을 열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형제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바로 지금 용서해야 할 일입니다.
바로 오늘이 용서의 축제일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교회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됩니다.
곧 교회 안에는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가 활동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권한'이 활동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오직 하늘에서 오는 그 '매고 푸는' 능력으로 모든 형제들에게 믿음을 굳게 해 주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과 신앙으로 일치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하오니, 주님!
묶인 것, 막힌 것을 풀게 하소서!
오늘,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9)
주님!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하오니, 묶인 것, 막힌 것을 풀고 사랑하게 하시어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2.21.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요나3,1-10 루카11,29-32 회개의 여정(旅程) -무지(無知)에 대한 답은 회개(悔改)뿐이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회개의 여정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회개의 여정을 통해 서서히 걷히는 무지의 어둠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회개할 때 비로소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입니다. 부패인생을 발효인생으로 바꾸는 것도 회개의 여정뿐입니다.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선물일 수 있음은 회개를 통한 깨달음입니다. 영성생활의 기초가 회개입니다. 우선적인 순서도 메타노니아(회개), 코이노니아(친교), 디아코니아(봉사)입니다. 사순시기는 회개의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를 열던 재의 수요일, 머리에 재를 얹을 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사제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사순시기의 삶을 요약합니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그의 규칙서 <제49장 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악습들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통회와 절제에 힘쓸 때,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성규49,3-4). 눈만 열리면 곳곳에 회개의 표징들로 가득합니다. 교황님 홈페이지를 열고 어제가 “사회정의의 세계의 날”(World Day of Social Justice)임을 알았습니다. “소비문화(Cultur of waste)”를 개탄한 교황님의 한말씀도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특별히, 교황은 끊임없이 기후변화에 의해 위협받는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의 보호를, 이민자들과 피난민들의 보호와 환영을 호소하면서, ‘무관심의 지구화(the globalization of indifference)’를 경고하면서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구체적 행동에 돌입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집은 여기다(Home is here)”, 시위자들의 팻말의 말마디도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의의 열매로 표현되는 회개임을 깨닫습니다. 마침 오래전 자작 고백시가 반가워 인용합니다. 18년전 2006년 제 나이 58세 이때쯤 쓴 “나 창밖을 볼 때마다”라는 장시입니다. 이 시또한 제게는 시공을 초월한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창밖 풍경은 살아있는 그림, 살아있는 성경 해마다 창밖을 통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고 날마다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이 지나간다. 때로는 구름도 흘러가고 새들도 날아간다. 창밖을 바라보며 배우는 인생 하루를 평생처럼, 평생을 하루처럼 살아야함을 또 매사 창밖 풍경을 바라보듯 거리를 두고 초연히 바라봐야 함을 배운다. 아, 계절을 볼 수 없어 철없는 부지기수의 사람들, 시간을 볼 수 없어 때를 분별 못하는 부지기수의 사람들, 오늘의 현실은 자연을 떠난 업보다. 저녁기도 시간 짙어가는 어둠, ‘어, 내 인생 몇시이지?’ 불현 듯 떠오른 생각 내 나이 58세, 1949년생 아마 오후 3시, 혹은 3시 30분? 점점 어둠도 고요도 깊어지겠지. 해맑은 아이라면 아침이슬 머금은 아침6시, 십대 사춘기 나이라면 오전 10시, 한창 청년의 나이라면 낮 12시, 삼십대의 무르익은 젊음이라면 오후 1시, 이러니 하루가 평생의 압축이 아닌가? 하루를 평생처럼, 평생을 하루처럼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맑고 밝기만 하고 깊이가 없는 오전의 나이들이라면 점심지나면서는 고요히 스며드는 어둠과 더불어 깊어지는 오후의 나이들이어야 맞는 거다. 그리고 밤 나이에는 풍요로운 고독과 침묵의 품안에 별빛, 달빛 그윽히 반짝이는 그분 밤의 품안에 머물다 잠같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거다. 이어 새벽 동터오는 아침과 더불어 주님과 함께 찬란한 부활을 맞이하는 거다. 궁극엔 햇빛 찬란한 부활의 아침을 향한 여정이기에 내 나이 시간에 구애됨 없이 아침에는 아침 나이의 순수로 점심에는 점심 나이의 열정으로 살 수 있기에 늘 희망 가득할 수 있는 우리들이다. ‘내 나이 지금 몇시인가?’ 나 창밖을 바라볼 때 마다 생각한다.”-2006.2. 18년전 집무실 그대로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이니 새삼 ‘정주의 축복’을 깨닫습니다. 지금부터 18년후라면? 아마도 살아있기 힘들 것입니다. 새삼 회개하라 주어지는, 연장되는 선물같은 날들임을 깨닫습니다. 말그대로 절박한 깨달음입니다. 회개의 여정은 동시에 깨달음의 여정이요 깨달음과 더불어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자비롭고 지혜로운 빛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온통 회개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요나의 회개의 선포에 즉각적인 거국적, 거족적 회개로 응답하는 니느베 사람들, 시공을 초월 전 인류가 자비로운 하느님의 눈에는 회개의 대상, 구원의 대상임을 깨닫습니다. 마지막 묘사를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악한 길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회개요, 이때 하느님께서도 마음을 돌리시어 우리를 당신 품 안에 맞아들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살아 있는 그날까지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무지의 악입니다. 무지에 눈먼 악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시공을 초월, 무지한 중생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이방의 니느베 사람들처럼,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솔로몬을 찾았던 이방의 남방 여왕처럼 신속하게 주님을 찾아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솔로몬 보다 더 큰, 지혜로운 현자가, 요나보다 더 큰, 예언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바로 오늘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입니다. 무지에 눈이 멀어, 표징들의 표징인 빛나는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 희망의 표징, 자비의 표징, 지혜의 표징인 예수님을 못보고 표징을 찾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지에 눈먼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보다 더 좋은, 은혜로운 회개의 표징도 없을 것입니다. 회개를 통한 주님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밝힙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사순시기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 주시고, 당신은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시편18,29). 아멘. |
2/22(목) 성 베드로사도좌 축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조건으로 용서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참된 권위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 나눔과 희생으로 사라지지 않는 우리들의 자리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조재형 신부)
2. 베드로 사도의 성격은 공으로 표현하자면 럭비공이었습니다.
축구공이나 농구공은 바닥에 튀면 대충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이 됩니다.
그러나 타원형인 럭비공은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천방지축, 티격 태격의 명수 베드로 사도였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정확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나약함, 죄, 인간적인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수시로 흔들렸지만 흔들릴 때 마다 겸손하게 외쳤습니다.
“주님 보시다시피 저는 보잘 것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저는 당신 제자로서 부당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아시다시피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존재 자체로 오늘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겸손함입니다.
그러한 겸손의 덕 위에 부단히 자신의 결핍, 나약함,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는 솔직한 자기 인식을 위한
노력이 또한 필요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9)
주님!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하오니, 묶인 것, 막힌 것을 풀고 사랑하게 하시어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사순시기는 회개의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를 열던 재의 수요일, 머리에 재를 얹을 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사제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사순시기의 삶을 요약합니다.(이수철 신부)
2/22(목) 성 베드로사도좌 축일, 425(제55)일 기도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천방지축, 티격태격의 명수 베드로 사도!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같은 베드로 사도!
결핍, 나약함, 부족함이 많은 베드로 사도이지만...
예수님께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음에 감사합니다.
나도 좌충우돌, 우왕좌왕, 천방지축, 티격태격의 명수이지만...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임에 감사합니다.
내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내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 하시니...
감사합니다.
- 2024년 2월22일(목) 8시2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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