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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40306 글/시]할아버지의 검은 봉지-따뜻한 하루[341]/실망을 기회로 여겨라(안셀름 그륀)

[2024년 3월6일(수) 글/시]

 

할아버지의 검은 봉지 / 따뜻한 하루[341]

  

 

평범한 가정주부인 저는 한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고, 기념으로 떡을 이웃과 나눴습니다.

이 중 할아버지 한 분이 고맙다면서 현관문에 호박과 잎이 담긴 검은 봉지를 답례하셨습니다.

이후에도 손수 만든 음식을 가지고 찾아가면, 얼마 후 집 현관에 검은 봉지가 걸려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봉지에는 김부각, 깻잎과 콩잎 등의 소박한 답례물과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저희 가족은 노부부와 소소한 인연으로, 더더욱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층에서 '' 소리가 들렸고 평소 거동이 불편하던 할머님이 생각나서,

급하게 올라가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어, 불안해진 저는 곧장 119에 신고했습니다.

 

구급대원과 함께 문을 뜯고 들어간 집에는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할머니는 빠른 발견과 신속한 대처로 위급 상황은 넘겼고,

뒤늦게 병원에 오신 할아버지는, 저의 손 꼭 잡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마다 저희 집 차를 몰래 세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알고는 차를 숨기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찾아내 깨끗이 세차해 두셨습니다.

남편이 할아버지를 설득해 세차는 멈추었지만, 문고리에는 검은 봉지가 더욱 자주 걸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가 세상을 뜨셨고 할아버지는 자식과 지내려고 이사를 하게 되셨는데,

그날 할아버지는 저희 집에 오셔서 옥가락지와 은가락지 하나를 내밀며 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들만 둘인데 막내딸 생긴 게 참 좋았지, 이것은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는데

아마도 먼저 간 그 할멈이 막내딸에게 주라고 남겨둔 것 같아서 이렇게 들고 내려 왔어.“

 

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주신 그 가락지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제법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할아버지와 그 검은 봉지가 떠오릅니다.

 

공자님도 인()에 앞서서, ‘서로 사랑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겨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요한 13,34-35).

 

그렇습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젊은 부부와 노인네의 사연은 참 다정다감합니다.

할아버지의 검은 봉지를 보면서, 아직도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것은 우리네 주위에는 여전히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

 

  


실망을 기회로 여겨라

 

실망은 삶의 한 요소다.
가족이 나를 실망시키고,
직업이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나 스스로에게 자신과 남들에 대한
실망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나를 속인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은 아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런 아픈
인식을 애써 피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지만 결코 안식을 얻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때,
직장이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과 화해할 수 있다.
실수와 약점이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나 자신을 꼭
만족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


약 30년 전에 감성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유년기에 이루지
못했던 욕망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무언가 손해 보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휴가를 맞아
혼자서 호숫가에 앉아 있던 중,
불현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아올랐다.
채워지지 않았던 욕망들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것이 나를 더욱 깨어
있게 하면서 마음을 열고
하느님에게 의지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평범한 일상 안에서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살았겠지만,
나만의 소명을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기 위해서
내 안의 동경을 깨어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나의 소명이다.


나의 마음 안에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고 나는 그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내 마음은
이미 실망과 좌절을 겪은 바
있지만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 나아가는 도약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동경이 점점 자라나면서
나의 마음도 더욱 넓어졌다.

 


Buch der Lebenskunst
「삶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안톤 리히테나우어 엮음
-이온화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