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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7일 목요일[(자) 사순 제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7일 목요일[(자) 사순 제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본기도

주님,
존엄하신 주님께 간절히 비오니
구원의 축제가 다가올수록
저희가 더욱 큰 열정으로 파스카 신비를 준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7,23-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25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26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5(94),1-2.6-7ㄱㄴㄷ.7ㄹ-9(◎ 7ㄹ과 8ㄴ)
◎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환성 올리세. 감사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세. 노래하며 그분께 환성 올리세. ◎
○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

복음 환호송

요엘 2,12-13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사를 기꺼이 받으시어
저희가 온갖 죄악에 물들지 않고 헛된 욕망을 멀리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상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19(118),4-5 참조
주님은 규정을 내리시어 어김없이 지키라 하셨나이다. 당신 법령을 지키도록 저의 길을 굳건하게 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를 인자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이 신비를 올바른 삶으로 드러내며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인자하신 주님을 믿고 자비를 청하오니
주님께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이 백성이
주님 은총으로 좋은 것을 바라고
바라는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예전에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이 들어오는 자리는 표가 나지 않지만, 사람이 나간 자리는 표가 나기 마련이다.” 3명이 여행을 하다가 1명이 본당 미사 때문에 먼저 돌아갔습니다. 3명이 함께 했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1명이 없으니 그 빈자리가 허전했습니다. 저는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1명이 없으니, 운전도 해야 했습니다. 아침이면 가방도 챙겨야 했습니다. 신부님은 1 3역을 했습니다. 모든 일정을 계획하였고,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물이며, 먹을 간식을 챙겼습니다. 신부님은 떠나면서 목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본당 주일 미사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온다고 했습니다. 저를 댈러스에 내려주고 혼자 뉴욕으로 가야 하는 동창 신부님을 위해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이 함께 다시 뉴욕으로 간다고 합니다. 동창을 위해서 기꺼이 다시 내려온다는 신부님의 진한 우정이 고마웠습니다. 저를 데려다주고 혼자서 뉴욕으로 가야 했던 신부님이 안쓰러웠는데, 친한 동창과 함께 돌아가게 되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렇게 10일간의 여행은 마무리되었고, 저는 댈러스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좋은 뜻으로 떠난 여행이 뜻하지 않은 갈등과 다툼으로 엉망이 되는 때도 있습니다. 심할 때는 같이 떠났지만, 따로 돌아오는 일도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헤아림이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이기적으로 내세울 때 그렇습니다. 자신의 큰 허물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작은 허물을 들추어낼 때 그렇습니다. 지나친 음주로 몸과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며,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 가는 성지순례에서도 간혹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입니다. 복도를 지나는데 누군가를 험담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임 시간에 늦게 나온다거나, 침묵해야 할 장소에서 떠든다거나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제들끼리 떠나는 순례에서도 간혹 갈등과 마찰이 생기기도 합니다. 순례를 여행처럼 생각할 때가 그렇습니다. 저는 순례를 떠날 때면 늘 들려 드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들레헴 성당 문 앞에 있는 글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행객으로 이곳에 왔다면 순례자가 되어서 가시길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이 순례자로 이곳에 왔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을 왜곡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베엘제불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선동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만일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믿고 따랐다면 그들 또한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행에 함께 했을 것입니다. 왜곡과 날조는 하느님한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왜곡과 날조는 악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권력의 편에 서서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사순시기는 거짓과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사순시기는 왜곡과 날조를 밝혀내고 진실과 자유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사순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1,14-23

 

우리 역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고민합시다!

 

웬만해서는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 성격이라 가끔 가뭄에 콩나듯 병원에 가면 과거와는 완전 딴판인

첨단 의료 시스템에 화들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진단과 치료를 위한 별의별 의료 기계들에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최첨단 의료 기술에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 계신 제 어머니를 진료해주시던 주치의 의사 선생님이 기억납니다.

명의로 소문이 자자해 몰려드는 환자로 늘 바쁘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환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해주시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번 해보자며 희망과 용기를 주시던 분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의사 선생님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병마를 쫓아내던 또 다른 예수님이셨습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가장 역점을 두셨던 사목활동이라면 단연코 치유와 구마 활동이었습니다.

의료 체계나 수준이 열악하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별것 아닌 병 앞에서도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방에 득실대던 마귀의 횡포에 죽을 고생하고 있던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당신 두눈으로 확인한 예수님께서는

발길 닿는 곳 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환자와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하느님 아버지의 손가락이 되어 썩어 문드러진 환부를 재생시키고,

길길이 날뛰며 횡포를 부리던 마귀들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당신의 손가락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소중한 손가락으로 어떻게 하느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한없는 자비를 드러낼 것인가,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사순 제3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의 완고한 마음에 경종을 울립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 고약하게 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전해주며,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에 오히려 적대하며 악담을 퍼붓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두 개의 중심이 되는 동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말을 들어라.” 라고 할 때 “들어라”라는 동사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을 온전히 걸어라.” 라고 할 때 “걸어라” 라는 동사입니다.

 

이 두 동사의 표본, 곧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걷는 것의 표본은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양 떼'입니다.

곧 양은 목자의 말을 알아듣고 그의 말을 따라 걷는 이의 표상입니다. 

한편, 그 반대의 표상에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벙어리 마귀'가 있습니다.

벙어리 마귀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여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말씀을 따라 걷지 못하게 하고, 말씀의 실현을 훼방하는 방해꾼입니다.

 

이 방해꾼은 제1독서에서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 목을 뻣뻣이 세우는 고약한 마음, 그리고 화답송에서의 '무딘 마음'의 표상입니다.

곧 이들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말, 곧 자신의 생각이라는 우상을 따라 걷는 이들의 표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곧 말씀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응은 놀라워하면서도,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예수님께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악담으로 대적하면서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순을 반박하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이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낸 사실이 단지 하나의 기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가락, 곧 하느님 권능의 임재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 하늘 나라의 실현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말씀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 안에서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아직 '하느님 나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 말씀을 듣고도 따라 걷지 못하게 하는 완고한 무딘 마음이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 목을 뻣뻣이 세우는 고약한 마음이 있어 주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말이나 생각을 듣고 따라 걷고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말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양 떼'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에서 시편 작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시편 95,7)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6.사순 제3주간 수요일                                                          신명4,1.5-9 마태5,17-19

 

                                                            사랑이 답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분별의 잣대-

 

"주님,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저에게 공부는 단 둘 뿐입니다.

하나는 “참사람되기위한”공부, 하나는 “잘 죽기위한” 공부입니다.

남은 동안의 평생공부도 둘 뿐입니다.

 

제가 매일 강론 쓰는 목적도 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자주 소개했던 기도이자 사랑의 표현이었던 만세육창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상하여 하루가 시작되기전 양손을 활짝 펴들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태극기 앞에서 날마다 부르는

“만세육창-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입니다.

 

그런데 어제 반가운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만세를 부르자’ 라는 글이었습니다.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만세를 부르자.

만세를 부르면 회색빛 심장이 뚝 떨어져 나간다.

어떤 치욕이 우리를 짓누를지라도 우리는 벌떡 일어서 만세를 부르자.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도 힘들다고 징징 울지 말자.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자.

몸에서 툭 소리를 내며 고통이 떨어져 나간다.

만세를 부르면 힘이 난다.

치욕도 살비듬처럼 가볍게 떨어져 나간다.

아무데서나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자”

-<10cm 예술> 김점선-

 

몸과 마음을 다한 만세보다 절박한 기도도,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호기심에 "김점선" 이름을 검색해 봤더니, 1946년 출생, 2009년 3월22일 별세. 홍익대 대학원 서양학과 졸업.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그림을 그리고 싶어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했던 화가로 소개되어있었습니다.

만63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참으로 치열하게, 가열차게 살았던 화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답이 없습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분별의 잣대입니다. 삶은 싸움이자 전쟁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공부와 싸우고, 중년에는 일과 싸우고 노년에는 병마와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의 싸움은 믿음의 싸움, 희망의 싸움, 사랑의 싸움, 인내의 싸움입니다.

특히 노년에 병고를 겪는 분들을 보면 고통의 삶자체가 “십자가의 길”임을 봅니다.

 

새삼 습관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영성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 습관입니다.

노년에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습관으로 삽니다.

몸에 밴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일찍부터 하느님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선택하고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노년의 병마와의 싸움에 승리도 이런 신망애(信望愛)의 훈련이 잘 되어 습관화되어 있을 때

가능함을 체험합니다.

 

제가 근래 참 많이 강조한 “선택-훈련-습관”의 도식입니다.

이런 면에서 수도공동체가 평생 날마다 마음을 담아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보다

더 좋은 신망애(信望愛)의 훈련은 없을 것입니다.

 

마침 오늘의 다산 어록과 공자의 말씀도 좋았습니다.

 

“공부는 사람을 깨닫고 사람을 사랑하는 과정이다.

그 시작은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다산

 

“번지가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知)에 대해 묻자 공자가 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논어

 

사랑과 앎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사랑할 때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이요 공부중의 평생공부가 사랑공부입니다.

 

인생은 사랑의 학교요, 우리는 죽어야 졸업인 영원한 현역의 평생학인(平生學人)입니다.

저는 이런 자세로 매일 강론을 씁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신망애(信望愛)에는 영원한 초보자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율법”과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율법 사랑은 얼마나 단호하고 결연한지요!

율법이나 예언서야 말로 하느님 사랑의 총화라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들의 완성은 사랑뿐임을 깨닫게 되며, 이어 예수님의 복음은 사랑의 구체적 실천을 알려주는

내용들이 소개됩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은 계명들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듯 계명들을 사랑한 예수님이요, 율법 하나하나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기에

그토록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의 어떠한 세부조항도 소홀히 다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추상적이 아니라 율법의 준수를 통해 구체성을 띄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본능적으로 표현을 찾습니다.

사실 모든 율법준수나 수행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기도를 사랑하고, 노동을 사랑하고,

공부를 사랑하고, 정결을 사랑하고, 성독을 사랑하고, 단식을 사랑하고, 순종을 사랑하고,

가난을 사랑하고, 수도생활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행과 더불어 마음의 순수에 내적자유요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분별의 잣대임을 깨닫게 됩니다.

제1독서 신명기 모세를 통한 주님 말씀은 이런 사랑의 수행에 한결같이 충실한 우리들에게 주는 말씀처럼

아주 고무적입니다.

 

“너희는 그 사랑의 율법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사람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우리가 부를 때 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

 

그대로 오늘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준행(遵行)하는 위대한 민족, 가톨릭교회 신자들인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처럼 들리니 용기백배, 사기충천해지는 느낌입니다.

 

주님은 하루하루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전례시 보고 들은 사랑을 우리 모두 마음 깊이 새기고

실천하고 전하라 명하십니다.

오늘날 교육의 결정적 취약점인 ‘신앙과 전통의 전수(傳受)’ 역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주어라.”(신명4,9).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시편16,11). 아멘.


3/7(목) 사순제3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을 왜곡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베엘제불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선동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곡과 날조는 악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권력의 편에 서서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사순시기는 거짓과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사순시기는 왜곡과 날조를 밝혀내고 진실과 자유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조재형 신부)

 

2.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가장 역점을 두셨던 사목활동이라면 단연코 치유와 구마 활동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당신 두눈으로 확인한 예수님께서는

발길 닿는 곳 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환자와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하느님 아버지의 손가락이 되어 썩어 문드러진 환부를 재생시키고,

길길이 날뛰며 횡포를 부리던 마귀들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당신의 손가락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소중한 손가락으로 어떻게 하느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한없는 자비를 드러낼 것인가,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주어라.”(신명4,9).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시편16,11). 아멘.(이수철 신부)

 

3/7(목) 사순제3주간 목요일, 439(제69)일 기도  

 

복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 2024년 3월7일(목) 8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