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5월 8일 수요일[(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신부님강론 4개
입당송
주님, 제가 민족들 앞에서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을 형제들에게 전하오리다. 알렐루야.
본기도
저희가 신비로운 이 예식으로 성자의 부활 축제를 지내며
다시 오시는 그분을 모든 성인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7,15.22─18,1
그 무렵 15 바오로를 안내하던 이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하고 나서,
자기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전하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32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33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34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8,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의 영광 하늘과 땅에 가득하네.
또는
◎ 알렐루야.
○ 하늘 위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데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군대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 세상 임금들과 모든 민족들,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아, 총각들과 처녀들도, 노인들과 아이들도, 주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 홀로 높으시다. ◎
○ 주님의 위엄 하늘과 땅에 가득하시다. 그분이 당신 백성 위하여 뿔을 높이셨네.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 그분께 가까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은 찬양하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는 다른 보호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한 분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저희를 하나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제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타락하였던 만물이 새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생명이 온전히 회복되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거룩한 신비의 은총으로 저희를 가득 채워 주셨으니
자비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알고 싶은 가톨릭 신학’을 읽고 있습니다. 조한규 신부님이 교우들을 위해서 집필하였습니다. 신앙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교리와 신학을 교리 교사가 학생에게 알려주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한번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교회’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 교회를 보게 됩니다. 교회의 건축도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모던, 현대에 이르면서 모습이 변하였습니다. 제가 있는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도 아름답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건축물’을 의미합니다. 박해의 시기에는 지하무덤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신앙인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고, 신심활동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사명을 주셨듯이, 교회에서 영적인 힘을 얻은 교우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얻습니다. 사목자와 수도자들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도록 공동체로부터 선발되었습니다. 사목자는 성사를 집전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교리를 가르칩니다. 수도자는 세상에서 하느님나라의 삶을 증거합니다. 수도자는 ‘가난, 정결, 순명’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 줍니다. 교회는 ‘제도’의 모습도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베드로로부터 이어오는 교황을 중심으로 제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신학을 수호합니다. 교황은 지역교회의 주교를 임명합니다. 지역교회의 주교들은 사제를 임명합니다. 사제들은 주교의 권한에 의해서 본당으로 파견됩니다. 수도회는 교회로부터 인준을 받습니다. 인준된 수도회는 각자의 영성과 은사에 따라서 복음을 전합니다. 교육, 나눔, 기도, 피정을 통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본당의 요청이 있으면 본당으로도 수도자를 파견합니다. 신부님은 이런 교회에 대한 이해는 일반적이지만 정확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교회를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는 성부의 사랑으로 계획되었고, 성자의 파견과 활동으로 세상에 설립되었으며,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통해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삼위일체로부터의 교회는 무슨 뜻일까요? 첫째, 교회는 삼위일체의 친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일체로 친교와 사랑을 나누시는데, 이는 교회의 원래 모습, 건립 이유와 목적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심을 의미합니다. 둘째, 성자와 성령의 파견을 통해 교회의 신비가 구현되고 완성됩니다. 파견된 이는 파견하신 분의 뜻을 실행하도록 노력합니다. 성부가 성자를 파견하셨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파견되었습니다. 여기서 파견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높낮이가 있는 종속적인 관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치와 사랑과 친교로 이루어진 파견입니다. 셋째, 인간과 친교를 나누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인격적인 친교 의지가 교회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교회는 하느님을 보다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만나고, 체험하고, 구원 은총을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창조 이전부터 계셨던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계획되었고, 시작되었고,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들 각자의 복음서를 가지면 어떨까? 가브리엘 복음서, 안드레아 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로사 복음서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한 복음사가처럼 깊은 영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처럼 성서에 대한 깊은 묵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루가 복음사가처럼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처럼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도전은 ‘그리스의 철학, 로마의 법, 페르시아의 문학’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기술은 신화와 종교의 틀을 벗겨버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블랙홀처럼 다른 모든 가치와 의미를 빨아드리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의 사고는 함께 살아야 하는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푸른 별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 위로의 성령, 굳셈의 성령, 지식의 성령, 지혜의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따뜻함과 온유함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전해 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생태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눔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오늘 막사랑에 빠진 것처럼, 내일은 없는 것처럼, 오직 지금이 유일한 것처럼 서로 사랑을 고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16,12-15
진리 중의 진리, 궁극의 진리, 불변의 진리는 또 무엇입니까?
가끔 우리는 진리가 아닌 거짓, 허위를 접합니다.
때로 유명인사들의 거취에 대한 허위사실들이 순식간에 유포되어 입장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저도 며칠 전 한 신자로부터 한 선교사 신부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럴 리가 없는 데’하며, 즉시 펙트 체크를 했습니다.
당사자께서는 이미 부활하셔서 삼시 세끼 밥 잘 드시고 계신답니다.
이런 일까지 있었으니, 당신 명줄이 길겠다고 좋아하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큰 혼란으로 몰고 가는 거짓, 허위, 헛소문들이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때로 이런 그릇된 정보가 부당한 공권력을 등에 업고, 진실인 양 공공연하게 유포되기도 합니다.
분명 거짓인데 그럴싸하게 포장되고 편집되어 일반화된 것을, 비판력을 상실한 관용 매체를 타고
진실인 양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우리 앞에 매일 펼쳐지는 세상만사, 다양한 사건 사고 들 앞에서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인지 파악할 수 있는 정확한 식별력과 정보력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보면 분명 거짓이요 악인데, 사탄의 우두머리인데,
그럴싸하게 스스로를 포장해서 진리처럼, 예언자처럼 행세합니다.
아직도 두꺼운 가면을 쓰고 다니며 선량한 사람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그릇된 지도자들과
사이비 교주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근원적, 태생적으로 나약한 우리 인간들입니다.
거짓과 헛소문 앞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늘 필요한 존재가 한분 계십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진리, 진리 중의 진리, 궁극의 진리, 불변의 진리는 또 무엇입니까?
그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자체이시며, 그분께서 공생활 기간 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신 생애 전체이며, 그분께서 선포하신 복음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죄로 물든 이 세상, 악이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 진흙탕 같은 세상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진리가 아닐까요?
때로 부담스럽고 때로 거추장스러운 내 이웃, 그래서 피하고 싶은 이웃이지만
그 사람 안에서도 엄연히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시고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의 회개와 성장,
그리고 성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계심이 진리가 아닐까요?
우리네 인생 여정에서 수시로 다가오는 갖은 고통과 시련, 유혹과 십자가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의 진리, 이 구질구질하고 때로 꼬질꼬질한 인간 현실 속에서도 하느님의 성령께서
활발히 역사하고 계신다는 깨달음의 진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무력하게도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 끝끝내 적대자의 폭력 앞에 저항 한번 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수동의 예수님이시지만, 그 예수님께서 고통과 죽음을 극복하고 물리치시고 승리하리라는
깨달음의 진리, 십자가 길의 여정에서 처참했던 몰골의 바로 그분께서 참된 하느님이시며
우리를 영원한 불멸의 삶으로 이끌어 주실 구원자임을 깨닫게 하는 진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 고별사 중에서도 마지막 말씀입니다.
곧 마지막 말씀 중에서도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만큼 귀중하고 소중한 말씀입니다.
이 다음 구절부터는 이제까지의 말씀을 다시 요약하시는 부분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성령의 개입은 크게 보면 세 시기에 걸쳐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 시기는 강생 때로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20)라고 표현됩니다.
둘째 시기는 세례 때로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마르 1,10), 또 '그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마르 1,12)고 표현됩니다.
셋째 시기는 부활과 승천하실 때로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루카 24,49)고 표현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고별사에서만도 ‘성령에 대한 약속’을 다섯 번이나 거듭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요한 14,16-17)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 15,26)
"보호자가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요한 16,8)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신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6,13-1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이끄시는 안내자라는 말씀입니다.
곧 성령의 이끄심이 없이는 진리를 깨달을 수도 진리를 행할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신다.” 라고 하심은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 속에 깊이 결속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성령의 일치 안에 있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 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1요한 2,20-27)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들을 때는 우선적으로 성령께 의탁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관상생활에 대해 쓴 편지>를 쓴 12세기의 카루투시오회의 권고는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성령을 청하라. 그러면 빛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도유, 곧 성령으로 기름 부어진 독서가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진리의 해석자이시고 동반자이심을 말해줍니다.
말씀의 뜻이 진리의 영으로 하여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웁살라에서 열린 WCC 세계교회협의회 총회(1968)에서 그리스정교회 이냐시오 대주교(1920-2012)가 한 말을 되새겨 봅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하느님은 멀리만 계시며 그리스도는 과거에만 머무십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복음은 죽은 문자이며 교회란 한낱 조직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권위란 한낱 지배하는 것일 뿐이며, 선교란 한낱 선전광고일 뿐이며, 전례란 한낱 과거의 회상일 뿐입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노예들의 윤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요한 16,13)
주님!
진리의 옷을 입고 당신 정원에 심어진 한 그루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하여, 당신의 정원에서 행함으로 꽃을 피우고 의로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당신의 모상에 따라 새로워지게 하시고,
진리의 영의 숨결 되어 흐르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7.부활 제6주간 화요일 사도16,22-34 요한16,5-11
성령께서 하시는 일
“아름다운 삶”
"주께서 오롯한 이들의 생명을 돌보시나니
그들의 유산이 영원히 남으리라."(시편37,18)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역시 오늘도 서서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만세칠창으로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답답하면 하루에도 벌떡 일어나 만세칠창을 합니다.
이 또한 기도입니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율로 '20년후에는 노동인구 1000만명 감소한다'는 불길한 뉴스도
정신 번쩍 들게 합니다.
이래서 대한민국,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위한 기도 역시 절실할 수 뿐이 없습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성령님 만세!’에 초점을 둡니다.
며칠전 읽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에 나오는 다음 대목도 잊지 못합니다.
“영혼을 가지고 짐승을 닮아서는 안된다.
신체의 직립으로도 우리는 짐승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제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할 지라도 물체들에다 영혼을 내던지라는 말이 아니다.
숭고한 사물이라 할지라도 의지의 안식을 거기서 찾는 다는 것은 결국 정신을 비하하는 것이다.
신체는 물체들 가운데서 숭고한 것을 향하도록, 즉 본성적으로 천체들을 향하도록 똑바로 세워져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신 역시 영적 실체로서 영적사물들 가운데서 숭고한 것으로 고양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오만불손으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고, 경건한 의덕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삼위일체론, 성염 역주;901-902쪽)
두발로 서있을 수 있는, 두발로 걸을 수 있는 축복에 감사해야 합니다.
직립인간답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존엄한 인간품위를 지키며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하늘의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요즘 세상 떠나는 분들을 대하며 화두처럼 저절로 나오는 말마디입니다.
“다들 때가 되니 떠나는 구나! 어디로 가나?”
이에 대한 답을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주십니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믿는 이들 역시 그들을 보내신 하느님께 간다는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떠나심이 우리에게 이로움이 됨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이미 주님께서 보내주신 보호자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주님을 닮아 무죄한 삶, 의로운 삶, 진실한 삶을,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립인간답게 품위있는 삶, 자유로운 삶, 아름다운 삶,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의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깨달음 역시 성령님의 은총입니다.
다음 다산의 말씀도 이런 깨달음의 소산이겠습니다.
“삶의 무게는 온전히 나의 것이지만, 죽음의 무게는 가족들이 함께 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잘 떠나는 죽음이 가족들에게 최고의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평안해지기 시작한다.”
구원은 가까이에서부터 시작됨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아주 예전에 민들레꽃 홀씨들 날려 보내며 써놨던 “영원한 삶”이라는 시도 생각납니다.
“꽃졌다하여 끝난 것은 아니다
떠날 채비는 끝났다
민들레 홀씨 형제들!
언제 떠나 어디에 닿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임만이 알뿐이다
몇날 동안 참 행복했고 화려했다
이제 샛노랗게 빛났던 하늘사랑 추억 가득 담고
임바람 불기만 기다릴뿐이다
꽃졌어도 계속되는 생명 바로 영원한 삶이구나
죽어 사라져도 끊임없이 사랑의 홀씨들 나눴던 삶
죽음은 없다
영원한 삶이다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생명이다
떠날 채비는 끝났다”-2001.5,4
무려 23년전 글이지만 지금도 새롭습니다.
예수님은 떠났지만 보호자 성령 덕분에 우리는 주님의 홀씨들이 되어 계속 주님 파스카의 꽃을 피어냅니다.
주님의 일을 계속합니다.
이런 시 또한 성령님께서 주신 깨달음이며 성령님의 은총이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끊임없이 폈다지는
주님 파스카의 꽃이 되어 영원한 삶을 살게 합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사도행전의 바오라와 실라스입니다.
두 제자들은 깊은 감방에 갇혀 있는 수인들이지만 영혼은 참 자유롭습니다.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이에 놀란 간수는 수인들이 달아난줄 알고 자결을 시도하자 즉시 바오로는 이를 만류하였고
상황을 깨닫고 마음을 추스린 간수와 두 제자간 주고받은 대화가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두 제자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입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 일화는 다시 한 번, ‘하느님께서는 굽은 선들에서도 똑바로
쓰실 수 있는(God can write straight with crooked lines)’ 분임을 가르쳐줍니다.
성령의 사람, 바오로와 실라스입니다.
복음선포자들과 간수에게 재앙같은 사건도 그들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이 여기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글자들(the most beautiful letters)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만일 우리 삶중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중심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이런 하느님 친히 쓰신 아름다운 글자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믿는 이들의 굽이굽이 굴곡진 인생길에도 주님은 똑바로 아름다운 글자를 써내려 가실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께 호응하여 어떤 환경중에도 반듯하게, 품위있게, 아름답게, 한결같이 살아야함을 깨닫습니다.
“세상도 가고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1요한2,17)
아침독서기도시 마음에 와닿은 성구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성령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며, 우리의 곡선 인생 여정중에도
주님은 계속 아름다운 글자를 써내려가심으로 우리 모두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하십니다.
"오롯한 사람을 보라, 의인을 살펴보라.
온화한 사람에게 후손이 있느니라."(시편37,37). 아멘.
5/8(수)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 위로의 성령, 굳셈의 성령, 지식의 성령, 지혜의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따뜻함과 온유함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전해 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생태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눔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오늘 막사랑에 빠진 것처럼, 내일은 없는 것처럼, 오직 지금이 유일한 것처럼 서로 사랑을 고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조재형 신부)
2. 무력하게도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 끝끝내 적대자의 폭력 앞에 저항 한번 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수동의 예수님이시지만, 그 예수님께서 고통과 죽음을 극복하고 물리치시고 승리하리라는
깨달음의 진리, 십자가 길의 여정에서 처참했던 몰골의 바로 그분께서 참된 하느님이시며
우리를 영원한 불멸의 삶으로 이끌어 주실 구원자임을 깨닫게 하는 진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요한 16,13)
주님!
진리의 옷을 입고 당신 정원에 심어진 한 그루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하여, 당신의 정원에서 행함으로 꽃을 피우고 의로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당신의 모상에 따라 새로워지게 하시고,
진리의 영의 숨결 되어 흐르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이미 주님께서 보내주신 보호자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주님을 닮아 무죄한 삶, 의로운 삶, 진실한 삶을,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립인간답게 품위있는 삶, 자유로운 삶, 아름다운 삶,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수철 신부)
5/8(수) 부활 제6주간 수요일, 500(130)일 기도
<오늘의 말·샘 기도>
복음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요한 16,13)
주님!
진리의 옷을 입고 당신 정원에 심어진 한 그루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하여, 당신의 정원에서 행함으로 꽃을 피우고 의로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당신의 모상에 따라 새로워지게 하시고,
진리의 영의 숨결 되어 흐르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5월8일(수) 10시3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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