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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5월 6일 월요일[(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5월 6일 월요일[(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로마 6,9 참조
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본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저희가
언제나 그 풍요로운 신비를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5,26.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시고 너희도 나를 증언하리라.
◎ 알렐루야.

복음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에게 이토록 큰 기쁨의 원천을 마련해 주셨으니
기쁨에 가득 찬 교회가 드리는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영원한 즐거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4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진 세상>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제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타락하였던 만물이 새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생명이 온전히 회복되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20,19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파스카 신비로 새롭게 하신 주님의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의 부활로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댈러스에 있으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서울대교구의 경조사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님은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님으로 있다가, 의정부교구 교구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난 4 4일에 송별미사가 있었는데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손 주교님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용산 성당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신부님은 본당신부였고, 저는 보좌신부였습니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신부님께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는 교구청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주교님은 사목국장 사제로 있다가, 2015년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가 되었고, 2024년에는 의정부교구 교구장이 되었습니다. 주교님은 제가 미주가톨릭평화신문 지사장과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주교님께서 의정부교구의 교구장으로서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드러내시리라 생각합니다. 송별미사에 함께 하면서 아쉬움을 나누고, 축하의 인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난 4 16일에는 이홍근 스테파노 신부님의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1983년 신학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2학년이었고, 신부님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5학년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자치회 간부를 맡았습니다. 후배들에게는 엄격하였지만, 성소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본당에서 지낸 경험은 없지만 사제의 맛과 멋을 아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사제의 맛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입니다. 교우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제입니다. 동료 사제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제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한 사제입니다. 이런 사제가 사제의 맛을 아는 것입니다. 사제의 멋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두 번이나 춘천교구의 공소사목을 지원하였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의 두메꽃이라는 시처럼 주님만 아신다면, 해님만 아신다면 시골의 공소에서도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사제가 사제의 멋을 아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장례미사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천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신자로서 맛과 멋을 아는 리디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리디아는 세례를 받기 전에도 하느님을 알았고, 세례를 받은 후에는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의 도시에서 공동체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신앙인으로서 맛과 멋을 아는 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본당에서 그런 교우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드러나지 않게 숨은 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번 성지순례 때도 그런 분들을 보았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힘들어 하는 분들의 짐을 들어주는 분이 있었습니다. 베로니카처럼 지친 분들의 땀을 닦아 드리는 분이 있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맛과 멋을 아는 분들이 함께 했기에 은혜로운 성지순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사제로서의 맛과 멋을 아는 사제들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맛과 멋을 아는 교우들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제 6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5,26-16,4

 

기쁨 속에 주님을 섬기고, 일상의 작은 일들을 지극정성으로 행했던 성 도미니코 사비오!

 

오늘은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의 애제자 도미니코 사비오 성인(1842~1857)의 축일입니다.

돈보스코만의 고유한 교육방식인 예방교육의 소중한 결실이 바로 사비오의 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보스코를 따라 사제가 되기 위해 오라토리오에 들어온 사비오는 안타깝게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오라토리오 생활 3년 만에, 불과 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비오의 짧은 생애는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큰 것 같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성인의 길은 결코 나이나 학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비오는 어린이들도, 청소년들도,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성덕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병고와 나약함,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도 성덕의 길로 나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잘 보여주고 떠났습니다.

 

사비오는 오라토리오에 들어오기 전 모리알도에도 살았고, 몬도니오에서도 살았는데,

그를 가르쳤던 사제들은 한결같이 그의 덕행의 찬란함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를 돈보스코에게 보내야겠다며 추천을 하게 되었습니다.

 

카스텔누오보 학교에서 사비오를 지도했던 알로라 알렉산드로 신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는 그를 처음 보자마자 즉시 그가 큰 제목이 될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존재 자체로 제 눈을 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그의 아버지같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글자 그대로 사비오, 슬기로운 아이였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돈보스코 오라토리오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자신의 생애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사비오는 결코 한눈을 팔지 않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께로 직진했습니다.

오라토리오의 다른 친구들은 그 나이 또래의 즐길 거리를 찾아다녔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들을

돌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비오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한 친구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너는 대체 그 눈을 어디에 써먹을 작정이길래, 이 재미있는 것 들도 안보고,

그렇게 줄창 성당에만 가있고, 맨날 예수님과 성모님만 바라보고 있냐?”

 

사비오의 대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나는 언젠가 하느님 나라에 가서 성모님을 만나뵐 때 써먹으려고 아끼고 있단다. 눈은 우리 영혼의 창문이란다. 이 창문을 통해 천사도 들어오고 마귀도 들어오지. 그러니 우리 눈과 마음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지.”

 

하루는 돈보스코가 오라토리오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요지로 강론을 했습니다.

내용인즉슨 이랬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인이 되고자 하는 생각과 어느 정도의 노력만 기울이면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는 사람에게는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돈보스코의 강론은 즉시 사비오의 마음속에 불씨 하나를 던졌습니다.

한번은 돈보스코가 매사에 모범생이었던 그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네가 선물로 제일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사비오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제가 신부님께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신부님께서 저를 성인이 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영혼을 구하게 해주시고 저를 성인으로 만들어 주세요.”

 

사비오가 현대 가톨릭 영성 생활에 끼친 영향이랄까 업적이 있다면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음을

일깨워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화의 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려준 것, 지극히 작은 것, 늘 반복되는 일상적인 것 안에

성화의 길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 큰 업적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비오는 기쁨 속에 주님을 섬기고, 일상의 작은 일들을 지극정성으로 행하고, 매일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내며, 가까운 이웃들을 사랑으로 도와주며, 그런 노력을 통해 하루하루 성인의 길로 나아갔으며,

마침내 교회는 그의 시복시성을 통해 만천하에 그 사실을 공포하였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너희(제자들)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박해가 오면, 제자들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증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증언의 확실성인데, 그 확실성의 근거는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증언하게 될 이들이 둘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직접 본 이들입니다. 

첫 번째로 증언하게 될 이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요한 15,26)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직적 목격한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증언은 확실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증언하게 될 이는 제자들입니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요한 15,27)

그렇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직접 목격한 그들의 증언은 확실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당신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고 말씀에 대한 이유를 ‘우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요한 16,1)이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요한 16,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예고는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단지 박해를 예고만 할 뿐, 박해를 피할 방도나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러한 때가 오면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고 너희에게 이렇게 미리 말해 두는 것이다.”(요한 16,4)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기껏 '기억하라'고만 할 뿐입니다.

참으로 무력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예고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는 길에서 ‘고통’과 ‘박해’는 없어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당신이 구세주이심을 증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필리피 1,29)

그러니 고통과 박해는 없어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할 공간이고 배경이 됩니다. 

그리스도께 보내신 성령께서 바로 그 고통과 박해를 통해서, 바로 그 속에서 우리의 증언을 동행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6,4)

주님!

미움과 박해가 닥치면 피할 방도를 찾기보다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안정과 편안을 찾기보다 당신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불가항력으로 닥칠 때,

도저히 용서될 수 없을 것 같은 죄와 끝내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를 당할 때,

바로 그때가 당신을 증거해야 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바로 그것이 당신을 증언할 수 있는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5.부활 제6주일(생명주일) 

                                                                                  사도10,25-26.34-35.44-48 1요한4,7-10 요한15,9-17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은 무엇인가?”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영어로 하면 “God is Love”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사람은 사랑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정의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본질은 사랑인 것입니다.

 

무지도 탐욕도 허무도 아닌 사랑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사랑뿐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사랑의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살아있을 때 사랑이요 죽으면 사랑도 못합니다.

사랑하라 주어진 인생이요, 세상 마칠 때의 마지막 아쉬움도 단 하나 더 사랑하지 못했음에 대한

아쉬움일 것입니다.

 

늦게서야 후회할 것이 아니라, 언젠가 사랑할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어느 자매가 들려준 남편의 임종어도 잊지 못합니다.

1.미안하다.

2.고맙다.

3.사랑한다.

 

우리가 마지막 임종시 주님께 고백할 말마디 셋도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일 것입니다.

만병통치약이 사랑이고 만병의 근원이 사랑결핍이요 만민의 공통보편언어가 사랑입니다.

 

도대체 우리 일상생활에서 사랑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을 숨쉬며 사랑 안에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사랑도 보고 배웁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나를 사랑하여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말씀하시며 당신의 사랑을 보고 배우라 하십니다.

 

참 황송하게도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 우리는 누구나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십니다.

그러니 서로간의 깊어지는 사랑과 더불어 친구인 주님과의 우정도 깊어짐을 깨닫습니다.

복음 말미에서도 주님은 못을 박듯이 강조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혼자서는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함께 사는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이에는 사랑의 갈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행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하는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내적자세가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라 다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말도 있듯이 다 아는 사랑같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평생 사랑한다 해도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무엇인가?”

참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함께 사랑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1.사랑은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은총의 선물이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바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사랑의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그 좋으신 분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미사의 힘, 주님의 힘, 사랑의 힘으로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2.사랑은 생명입니다.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할수록 예뻐지는 얼굴이요 사랑할수록 활기넘치는 삶이니 사랑은 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신록의 푸르른 생명으로,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있는 성모성월 5월입니다. 

 

또 오늘은 고맙게도 생명주일이자 5월5일 어린이날입니다.

대체 공휴일로 내일 쉬지만 오늘 어린이날,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은 어린이입니다.

또 하느님 앞에 우리는 모두 어린이입니다. 다함께 생명의 사랑으로 여러분 전 존재를 가득 채우는 마음으로

다음 어린이날 노래를 불러봅시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3.사랑은 선택입니다.

사랑뿐 아니라 모두가 선택입니다.

우리 인생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선택으로 이뤄진 우리의 평생 삶입니다.

행복도 선택이요 기쁨도 선택이요 믿음도 생명도 희망도 선택입니다.

참으로 좋은 선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타고난 부정적인 것들에 좌절하고 절망하면 불행합니다. 

 

그러나 날마다 좋은 선택할 기회는 무궁무진 활짝 열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사랑의 주님을 선택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선택하신 예수님 말씀을 들어 보세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은 것이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를 뽑아 선택하신 주님께 사랑의 열매로 응답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주님을 선택하는 사람, 정말 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랑의 주님을 선택하여 오늘 사랑의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오늘 참 좋은 선택을 하신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미사은총이 우리의 사랑의 열매가 참으로 잘 자라게 합니다. 

 

4.사랑은 배움입니다.

사랑도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배우지 않고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삶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배움입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배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우리는 사랑에 영원한 초보자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배워야 할 스승은 주변에 무궁무진 널려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보고 배워야 할 분은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말씀하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사랑은 이기적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 순수한 사랑, 아가페 사랑입니다.

집착없는 초연한 깨끗한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랑,

있는 그대로 예뻐하는 사랑, 주는 사랑, 돌보는 사랑, 나누는 사랑, 섬기는 사랑이 바로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주님을 닮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요즘 파스카의 계절이자 성모성월인 5월은 온통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합니다.

신록의 아름다움에 꽃도 많고 새도 많습니다.

예전 꽃을 들고 온 자매에게 준 덕담의 시를 생각하면 저절로 유쾌해집니다.

“꽃이 

 꽃을 가져 오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예쁨의 비결은 사랑뿐입니다.

사랑하여 웃는 얼굴은 꽃보다 더 예쁩니다.

사랑보다 더 좋은 부작용 없는 화장품도, 성형수술도 없습니다. 

 

5.사랑은 발견입니다.

사랑은 발견이자 깨달음입니다.

눈만 열리면 모두가 사랑의 선물인데 사랑을 옆에 놔두고 눈이 가려 보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만이 아닙니다.

행복도, 감사도, 기쁨도 옆에 놔두고 몰라서 보지 못해 참 어리석게도 어처구니 없게도 불행하게,

불평하며, 슬프게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서 마음의 눈이 열려 공평무사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한,

깨달은 베드로의 고백이 참 신선합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여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새삼 우리 삶은 부단히 눈이 열려 “아, 그렇구나!” 깨달아가는 깨달음의 여정, 발견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깨달음과 더불어 이해지평도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무지에서 벗어나 날로 자유롭고 순수한 사람이 됩니다.

 

6.사랑은 훈련입니다.

사랑의 선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 역시 부단한 영적훈련을 필요로합니다.

연주가들, 화가들, 운동선수들이 바로 훈련이 모범입니다.

 

사랑의 선택에 이어 마음을 담아 의식적 훈련에 이은 습관화입니다.

사랑의 훈련, 사랑의 습관입니다.

좋은 습관이 덕이 되고 좋은 인생을 이뤄줍니다.

 

나이 먹으면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습관으로 삽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합니다.

오죽하면 사람을 고쳐쓸 수 없다 말하는지요!

굳어진 습관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거의 대부분 살아온 대로 삽니다. 

 

그러니 좋은 습관의 형성은, 사랑의 훈련, 사랑의 습관화는 얼마나 중요한지요!

우리 수도자들이 평생 사랑의 훈련과 습관은 날마다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전례공동기도입니다.

날마다 침묵, 경청, 찬미, 감사, 기도, 노동, 겸손, 성독, 회개, 순종등 무수한 사랑의 수행도

참 좋은 영적훈련이 됩니다.

 

7.사랑은 능력입니다.

사랑은 개방입니다. 개방도 능력입니다.

다 똑같은 사랑의 능력이 아닙니다.

성인의 사랑과 범인의 사랑의 깊이와 능력은 다를 수 뿐이 없습니다.

 

시냇물 깊이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태평양 깊이의 사랑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 하셨으니 사랑의 정상입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듯 하느님이 보면 우리 사랑의 능력도 도토리 키재기 일 수 있다는 자각이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사랑의 능력은 천차만별입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능력이 못 미쳐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결코 똑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니 서로 이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희망할 수는 있어도 강요하거니 요구할 수 없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참으로 사랑의 능력 신장을 위해 은총과 더불어 꾸준하고 항구한 자발적 노력과 훈련이 필요함을 봅니다.

 

일곱 개의 사랑을 말했습니다만 끝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유입니다. 사랑할수록 자유로워집니다.

사랑은 행복입니다. 사랑할수록 행복해집니다.

사랑은 기쁨입니다. 사랑할수록 기뻐집니다.

사랑은 고백입니다. 사랑을 고백할수록 사랑은 증대됩니다.

사랑은 지혜입니다. 사랑할수록 지혜로운 삶입니다.

사랑은 빛입니다. 사랑할 수록 밝아지는 삶입니다.

 

끝없는 사랑입니다. 공부중의 공부가, 평생공부가 사랑입니다.

사랑의 학교 인생 공동체에서 주님의 평생 학인으로, 사랑의 평생 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날마다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5/6(월)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사제로서의 맛과 멋을 아는 사제들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맛과 멋을 아는 교우들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사비오가 현대 가톨릭 영성 생활에 끼친 영향이랄까 업적이 있다면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음을

일깨워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화의 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려준 것, 지극히 작은 것, 늘 반복되는 일상적인 것 안에

성화의 길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 큰 업적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비오는 기쁨 속에 주님을 섬기고, 일상의 작은 일들을 지극정성으로 행하고, 매일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내며, 가까운 이웃들을 사랑으로 도와주며, 그런 노력을 통해 하루하루 성인의 길로 나아갔으며,

마침내 교회는 그의 시복시성을 통해 만천하에 그 사실을 공포하였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6,4)

주님!

미움과 박해가 닥치면 피할 방도를 찾기보다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안정과 편안을 찾기보다 당신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불가항력으로 닥칠 때,

도저히 용서될 수 없을 것 같은 죄와 끝내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를 당할 때,

바로 그때가 당신을 증거해야 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바로 그것이 당신을 증언할 수 있는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영어로 하면 “God is Love”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사람은 사랑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정의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본질은 사랑인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5/6(월)  부활 제6주간 월요일, 498(128)일 기도

 

복음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6,4)

주님!

미움과 박해가 닥치면 피할 방도를 찾기보다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안정과 편안을 찾기보다 당신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불가항력으로 닥칠 때,

도저히 용서될 수 없을 것 같은 죄와 끝내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를 당할 때,

바로 그때가 당신을 증거해야 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바로 그것이 당신을 증언할 수 있는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5월6일(월) 4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