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7월 30일 화요일[(녹) 연중 제17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7월 30일 화요일[(녹) 연중 제17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 학자

입당송

시편 68(67),6-7.36 참조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본기도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4,17ㄴ-22
17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18 들에 나가면 칼에 맞아 죽은 자들뿐이요
성읍에 들어가면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뿐이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다닌다.
19 당신께서 완전히 유다를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시온을 지겨워하십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저희를 치셨습니까?
평화를 바랐으나 좋은 일 하나 없고
회복할 때를 바랐으나 두려운 일뿐입니다.
20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21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쫓지 마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지 마소서.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22 이민족들의 헛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비를 내려 줄 수 있습니까?
하늘이 스스로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런 분은 주 저희 하느님이신 바로 당신이 아니십니까?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9(78),8.9.11과 13(◎ 9ㄴㄹ 참조)
◎ 주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구하소서.
○ 선조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소서. 어서 빨리 당신 자비를 저희에게 내리소서. 저희는 너무나 불쌍하게 되었나이다. ◎
○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
○ 포로들의 탄식이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죽을 운명에 놓인 이들을 당신의 힘센 팔로 보호하소서. 저희는 당신의 백성, 당신 목장의 양 떼. 끝없이 당신을 찬송하고, 대대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6-43
그때에 36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예물을 바치오니
이 거룩한 제사를 받아들이시고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힘으로
저희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
마침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3(102),2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또는>
마태 5,7-8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으리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시며 언제나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오니
성자께서 극진한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이 선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뉴욕엘 며칠 다녀왔습니다. 신문사에 있는 계좌를 정리하려면 제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의 계좌는 닫았고, 다른 하나의 계좌는 결재권을 후임 신부님에게 넘겨 드렸습니다. 인수인계를 하면서 은행 업무도 같이 마무리해야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덕분에 뉴욕에서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후임 신부님과 호흡을 잘 맞추고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문사 홈페이지의 변화였습니다. 후임 신부님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돌아오니, 수녀님의 도움으로 청년들이 창고에 벽화를 그렸습니다. 지난번 창고를 만들면서 어른들이 매주 토요일에 만났습니다. 그렇게 4개월 만나면서 저는 본당 교우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고는 단순히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창고는 친교와 나눔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벽화를 그려보라고 하였습니다. 벽화는 청년들의 마음을 담은 그림이지만, 벽화를 통해서 청년들이 친교와 나눔을 가질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저의 뜻대로 청년들은 벽화를 그리기 위해서 자주 만났고, 재능과 끼를 모아서 아름다운 벽화를 만들어냈습니다.

 

身土不二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서양의 철학과 학문을 배우면서 분석하고 나누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어쩌면 통합과 통섭 속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원리와 기초를 생각하는데 자꾸만 죄가 떠오릅니다. 죄는 부끄럽고, 죄는 멀리해야 하겠지만 우리 삶의 발자국에 함께 따라오는 것입니다. 병은 우리 몸에 깊은 상처를 주지만 우리 마음은 그 병 때문에 오는 근심, 걱정, 두려움에 더욱 큰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완전하게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체는 음식을 섭취하고 나서 배설물을 남기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입니다. 배설물은 혐오스럽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배설물은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갖게 됩니다. 굳이 오래 간직할 필요가 없으므로 우리는 에너지로 사용되고 남은 배설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죄란 어쩌면 우리의 몸과 둘이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죄라는 배설물을 남기게 됩니다. 죄는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식은 우리 영혼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죄의식은 2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교만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약함을 거짓으로 감추는 행위입니다. 다른 하나는 열등감입니다. 이 또한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죄인은 회개를 만나면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죄인은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죄인은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주님을 만나서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주님의 길을 충실히 따라갔습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성인도 죄 중에 있었지만 회개하였고 신앙의 별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도 그랬습니다. 우리들 역시 그렇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밭은 우리의 몸과 같습니다. 밀은 건강한 지체입니다. 가라지는 병들어 아픈 지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양의학에서 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가라지를 제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동양의학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지켜보면서 몸의 기능을 강화해 나가라고 하십니다. 건강한 지체들이 활력을 얻으면 건강하지 않은 지체들이 치유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전에 감동적인 경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육상경기에서 1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넘어졌습니다. 그 뒤로 오던 선수가 넘어진 선수가 일어나기를 기다렸고 둘은 서로 선을 잡고 결승점에 도달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서 박수 쳤습니다. 넘어진 1등을 뒤로하고 2등으로 오던 선수가 1등이 되었다면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동체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 단체가 있습니다. 각 단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지체들입니다. 어떤 단체는 열심히 봉사 합니다. 어떤 단체는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지내야 합니다. 잘못이 있는 사람, 단체를 배제하고, 공동체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주변에 부족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잘못을 하는 사람들도 보일 것입니다. 그럴 때 오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2024년 나해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마태오 13,36-43  

 

밀이 될 것인지, 가라지가 될 것인지는 이것 하나로 결정된다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지막 때에 밀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늘에서 별처럼 빛날 것이지만, 가라지는 불붙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안타깝지만, 진리입니다.

 

지옥이 없다느니, 상태를 말한다느니 하며 진리를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지옥에 어떻게 가지 않아야 하는지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힌트가 있습니다. 가라지는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왜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을 죄짓게 할까요?

그들을 이용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란 소설은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인간이 평가하는 기준과는

다를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프랑스의 루앙시를 프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을 때

몇 명의 귀족, 정치인, 부자, 종교인이 함께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중에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창녀 한 명도 끼어 있었는데 조금 뚱뚱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눈을 가졌고 자신이 가진 음식을 일행과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도 지녔습니다.

무엇보다 프러시아의 시민이 될 수는 없다는 애국자 중 하나였습니다. 

 

일행은 토트 시에 잠깐 머물게 됐는데 그 젊은 창녀에게 눈독을 들인 프러시아군 장교가

그녀와 잠자리하지 않으면 그들을 통과시켜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러나 프러시아가 싫어 탈출한 애국자가 프러시아군 장교와 잠자리할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여관방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일행도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창녀 주제에. 한 번 자 주면 되지.’

 

그래서 그녀가 장교의 말을 들어줄 수 있도록 설득하였습니다. 심지어 함께 탈출하는

수녀들까지도 그녀를 설득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위대한 행동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창녀는 장교와 하룻밤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일행은 창녀를 벌레 보듯 합니다. 음식도 챙겨올 시간이 없었던 그녀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애국심에 가득 차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혁명가를 크게 부를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장 밀과 같았던 이들이 가라지로 드러났고 비곗덩어리로 불리며 쭉정이인 줄

알았던 창녀만이 밀로 드러났습니다. 창녀는 다른 이들을 이용하지 않았고 죄짓게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녀를 죄짓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창녀를 죄짓게 한 이유는 자기들 이익 때문입니다.

무슨 이익을 얻었을까요? 자신들은 몸 파는 사람이 아니라는 교만함과 육체의 자유와 자신들이

가진 소유를 잃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신이 되려고 하는 것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진짜 신이 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죄가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 아닌, 하느님 없이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한 상태에 있게 하시고, 영광 안에서 충만히 ‘신화’(神化)하기로 정하셨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으로 인간은 ‘하느님 없이, 하느님보다 앞서서,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서’

‘하느님처럼 되기를’ 원하였다.”(CCC 398)

 

하느님께서 주시는 살과 피, 곧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 없이 신이 되는 방법은 타인을 죄에 빠뜨리며 이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돈을 통해서 내가 주님이 되고, 육욕을 통해 내가 창조자가 되며,

교만을 통해 내가 심판자가 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 소설 ‘고양이’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개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의 생각]

인간이 이렇게 나에게 잘 해주니 나는 신이 분명하다.

 

개와 고양이의 생각은 다릅니다. 개는 주인을 통해 신이 되려 하고 고양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신이 되려 합니다. 누구나 신이 되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피조물로서 신을 통해

신이 되려고 하거나, 아니면 나를 본래 신으로 여겨 신 없이 신이 되려는 방향

두 개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름도 넣어졌고 액셀러레이터도 밟혔습니다. 이제 방향만 잡으면 됩니다.

밀이 될 것인지, 가라지가 될 것인지. 내가 신이 되려고 하거나, 신을 통해 신이 되려고 하거나!

‘착한 뜻’은 결국 나 스스로가 아니라

내가 ‘신을 통하여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2024년 나해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밀과 가라지에 대한 주권>

 

우리는 때로는 이 세상에 판치고 있는 폭력과 불의와 죄악을 보면서 곧잘 흥분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보고만 계시는 하느님이 실망스럽고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또 교회와 우리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부조리와 모순을 보면서 경악하고 환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미움과 무관심과 온갖 악한 생각들을 보면서 심히 좌절하기도 합니다.

 

사실, 공동체 안에도, 우리 자신 안에도,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참으로 당혹스럽고 망막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밀밭의 가라지 비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마태 13,36)라고 청합니다.

왜냐하면, 밭에 가라지가 있는 것을 발견한 종들이 집주인에게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마태 13,28)하고 묻자 주인은 말했습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마태 13,29-30)

이는 그 속에서 당신이 주님이심을 깨닫고, 주님이신 당신께 의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동행하시는 주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 속에서 주님 사랑하기를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에페 6,12: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이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끝날'(마태 13,40)이 되면, 밀과 가라지의 분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가라지와 밀을 거두어드릴 ‘때’가 따로 있으며, 또한 그것들을 거두어드리는 일을 맡은 ‘일꾼’이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밀과 가라지에 대한 주권이 바로 당신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세상의 끝날'이 될 때까지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허용되었다는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 속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앞의 파견 설교에서,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고 하시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악이 세상 안에 함께 자라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 악에 젖어 들거나 협조하거나 방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악을 피하고 선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라는 것만도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악을 뿌리 뽑을 수는 없다 할지라도 악이 번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오히려 악으로부터 선을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악이 더 이상 활개 치지 못하도록 싸워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 10,34)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밀밭의 가라지'

(마태 13,36)

 

주님!

이 세상에 폭력과 불의와 죄악이 판을 쳐도,

내 안에 미움과 무관심과 온갖 나쁜 생각들이 꿈틀거려도,

비록 가라지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어둠이 빛을 가리지 못하고 당신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 없게 하소서.

오늘도 꺼지지 않는 빛을 밝혀 사랑의 밀밭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7.29.월요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1요한4,7-16 요한11,19-27

                                                           환대의 사랑

                                                   “환대의 사람, 환대의 집”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시편34,2)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유익합니다.

“타인이 나의 거울이 되듯 나 또한 타인의 거울이 된다. ‘나는 얼마나 맑고 깨끗한 거울인가?'”<다산>

 

날마다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면서 사랑을 새로이 할수록 맑고 깨끗한 마음의 거울일 것입니다.

특히 오늘은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삼남매의 환대의 사랑, 환대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겠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좋은 점은 배워 본받고, 좋지 않은 점은 나 자신을 바로 잡는 거울로 삼는다”<논어>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제 자신을 비춰보고 배우는 공동체 형제들의 거울입니다.

사실 만나는 모든 이들 하나하나가 저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매일 주님의 거울인 미사얼굴에 자신을 비춰보는 우리들입니다.

 

또 어제 과학잡지 뉴톤 7월호에서 “지능이란 무엇인가?”에서 읽은 저명한 학자의 인텨뷰 결론을

꼭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실패에는 좋은 실패와 나쁜 실패가 있다. 나쁜 실패는 누군가가 이미 경험한 실패이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나쁜 실패를 할 확률이 낮아진다.

그런 다음 경험하는 실패는 좋은 실패다. 결국은 좋은 실패가 중요하다.”

 

매사 모두에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수행생활에 충실할수록 나쁜 실패는 줄어들고 있다하면 좋은 실패들일 것이며 이는 내적성장과 성숙에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제 주일 삼종기도후 교황님의 강론 주제가 멋졌습니다.

“음미하십시오, 날마다 하느님의 기적들을!(Savour, God’s everday miracles!”, 하루하루 날마다

하느님의 기적을 음미하며, 맛보며 사는 삶이 참 멋집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오늘 화답송 후렴도 잘 어울립니다.

우선 그 시작이 매일 미사때 주님을 맛보는 것입니다.

주님 맛으로 살아가는 믿는 이들입니다.

 

오늘은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입니다.

세남매의 이름을 따서 저희 요셉 수도원 피정집 하나는 마리아의 집이라 부르고 하나는

라자로의 집이라 부르며 봉사자 집은 마르타의 집이라 부릅니다.

 

오늘 세남매를 동시에 기념일로 지내기 올해로 4번째입니다.

그전에는 이 날은 마르타의 기념일로만 지냈습니다.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각별한 배려의 사랑을, 결단을 깨닫습니다.

 

2016년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을 축일로 격상시켰고, 어제는 제4회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지냈는데

역시 현임 교황님의 배려의 결단임을 봅니다.

당시 교황님의 가르침이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서 예수님은 순례자요 손님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여행중인 주님을 환대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대접했습니다.

그러나 두 대조되는 태도로 봐서는 안되고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깊은 일치와 조화에서

체득되는 태도로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봉사와 사랑의 활동은 주된 원천에서 결코 떼어낼수 없습니다.

주된 원천이란 주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형제,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향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끌지 않는 관상이라면 무익하고 불완전합니다.”

 

교황님의 환대, 그리고 관상과 활동에 대한 명쾌한 설명입니다.

환대의 사랑은 관상과 활동으로 표현되는 상호보완의 관계요 환대의 우선 순위는

말씀의 경청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타가 그러하듯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과 현임 프란치스코 교황님간의 관계도

두 성인처럼 상호보완관계임을 깨닫습니다.

결코 관상과 활동,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깨달음을 노래한 ‘산山과 강江’이란 제 자작시가 있습니다.

역시 이 시는 '성 베네딕도회 프란치스코 수도사제'인 저의 신원을 보여줍니다.

 

“밖으로는 한결같은 정주의 불암산山,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한결같이 맑게 흐르는 강江, 성 프란치스코”

 

전번 방문했던 한의원 아들이 둘있는데 큰 아들은 산山, 작은 아들은 강江이라 하기에

기막힌 이름이란 격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환대하는 미사의 구조도 말씀전례에 이은 성찬전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마르타의 주님 환대가 적극적이요 빛을 발합니다.

마르타 덕분에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참 기막힌 복음의 진리를 배웁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으로 평생 화두로 삼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설파하신후, 주님은 “너는 이것을 믿느냐?”물으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마르타는 참으로 멋진 신앙고백으로 주님을 환대함으로 주님을 기쁘게 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영원히 우리의 주님 고백으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환대의 우선순위는 말씀의 경청이자 신앙고백임을 깨닫습니다.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삼남매는 주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이들 삼남매가 살던 베타니아의 집은

주님이 피곤할 때 마다 수시로 마음 편히 머물렀던 ‘환대의 집’ 같습니다.

환대의 사랑에 환대의 사람들인 삼남매요, 환대의 집인 베타니아 집이요 이들을 닮은

우리 성베네딕회 요셉수도원입니다.

요셉 수도원뿐 아니라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에게 필수 덕목이 환대입니다.

 

정주와 환대의 영성은 한쌍을 이룹니다.

규칙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합당한 공경을 드러낼 것이며 특히 신앙의 가족들과 순례자들에게

그러할 것이다.”(성규53,1-2)

 

그러니 수도원을 방문하는 신앙의 가족들과 순례자들,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의 사랑,

환대의 영성은 베네딕도회 영성을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영성을 살아가는 환대의 사람들인 수도자들이요, 위로와 치유가 일어나는 환대의 집,

주님의 집, 평화의 집인 수도원은 흡사 세상 광야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제1독서 요한1서는 흡사 ‘사랑의 찬가’같습니다.

짧은 말씀 안에 무려 사랑이란 말마디가 18회 나옵니다.

새삼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존재이유이며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사랑예찬의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기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듯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의 요한 사도야 말로 주님을 가장 닮은 '사랑의 대가'이자 '사랑의 달인'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환대의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환대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환대하시며, 우리 역시 마음을 활짝 열어

말씀과 성체로 오시는 주님을 환대의 사랑으로 맞이하는, 주님의 환대와 우리의 환대가 만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아멘.


7/30(화) (녹)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밭은 우리의 몸과 같습니다. 밀은 건강한 지체입니다. 가라지는 병들어 아픈 지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양의학에서 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가라지를 제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동양의학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지켜보면서 몸의 기능을 강화해 나가라고 하십니다. 건강한 지체들이 활력을 얻으면 건강하지 않은 지체들이 치유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조재형 신부)

 

2.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죄가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 아닌, 하느님 없이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한 상태에 있게 하시고, 영광 안에서 충만히 ‘신화’(神化)하기로 정하셨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으로 인간은 ‘하느님 없이, 하느님보다 앞서서,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서’

‘하느님처럼 되기를’ 원하였다.”(CCC 398)(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밀밭의 가라지'

(마태 13,36)

 

주님!

이 세상에 폭력과 불의와 죄악이 판을 쳐도,

내 안에 미움과 무관심과 온갖 나쁜 생각들이 꿈틀거려도,

비록 가라지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어둠이 빛을 가리지 못하고 당신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 없게 하소서.

오늘도 꺼지지 않는 빛을 밝혀 사랑의 밀밭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듯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안에 머무르십니다.”

(이수철 신부)

 

7/30(화) (녹)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제39일차 기도

 

복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밀밭의 가라지'

(마태 13,36)

 

주님!

이 세상에 폭력과 불의와 죄악이 판을 쳐도,

내 안에 미움과 무관심과 온갖 나쁜 생각들이 꿈틀거려도,

비록 가라지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어둠이 빛을 가리지 못하고 당신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 없게 하소서.

오늘도 꺼지지 않는 빛을 밝혀 사랑의 밀밭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7월30일(화) 6시1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