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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7월 31일 수요일[(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7월 31일 수요일[(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1491년 에스파냐 칸타브리아의 로욜라에서 태어났다. 군인이 된 그는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받다가 현세의 허무함을 깨닫고 깊은 신앙 체험을 하였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한 이냐시오는 마흔여섯 살에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창설하여 오랫동안 총장직을 맡았다. 그는 『영신 수련』 등 많은 저술과 교육으로 사도직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개혁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1556년 로마에서 선종하였고, 162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이 그를 시성하였다.

입당송

필리 2,10-11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네.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널리 전하도록
복된 이냐시오를 교회에 보내 주셨으니
그의 도움으로 저희가 그를 본받아
이 세상에서 복음을 위하여 열심히 싸우고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그와 함께 승리의 월계관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습니까?”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5,10.16-21
10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16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7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18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19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20 그러므로 이 백성에게 맞서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 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 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1 내가 너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무도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9(58),2-3.4.10-11.17.18(◎ 17ㄹ 참조)
◎ 하느님은 곤경의 날에 저의 피신처가 되셨나이다.
○ 저의 하느님, 원수에게서 저를 구하소서. 적에게서 저를 보호하소서. 나쁜 짓 하는 자에게서 저를 구하시고, 피에 주린 자에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보소서, 그들이 제 목숨을 노리며, 힘센 자들은 저를 공격하나이다. 주님, 저는 잘못이 없고 죄가 없나이다. ◎
○ 저의 힘이시여, 당신만을 바라나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성채이시옵니다. 자애로우신 하느님은 나를 찾아오시리라. 하느님은 내가 원수들을 내려다보게 하시리라. ◎
○ 저는 당신의 힘을 노래하오리다. 아침이면 당신 자애에 환호하오리다. 당신은 저의 성채가 되시고, 곤경의 날에 피신처가 되셨나이다. ◎
○ 저의 힘이시여, 당신께 노래하오리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성채, 자애로우신 하느님이시옵니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5,1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으니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
◎ 알렐루야.

복음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10,31―11,1)와 복음(루카 14,25-33)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 하느님,
복된 이냐시오를 기리며 바치는 이 제물을 받으시어
모든 거룩함의 샘인 이 성사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로 이끄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루카 12,49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이냐시오를 기리며
이 찬미의 제사로 감사를 드리고 비오니
저희가 영원토록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어느덧 7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는 유명한 카지노가 있습니다.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공연을 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카지노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박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노다지가 묻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즐기면서, 공연을 보는 건 좋지만, 노다지를 찾겠다고 올인하면 자칫 몸도 상하고, 가진 재산도 모두 날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매일 복권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박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노다지가 묻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즐기면 좋지만 복권에 올인하면 역시 몸도 상하고, 영적으로 메마르게 됩니다.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박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노다지가 묻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처럼 투자는 분산해서 하면 좋다고 합니다. 적당한 투자는 좋지만, 주식에 올인하면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카지노, 복권, 주식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할 줄도 모르고, 일단 겁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은 카지노가 아닙니다. ‘복권도 아닙니다. ‘주식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은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부른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들어간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오늘은 이냐시오 성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이라는 보물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영신수련은 4주간에 걸쳐서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길잡이입니다. 준비기도, 구할 은총, 주어진 성서말씀 묵상, 마침기도, 묵상내용 정리의 순서로 30일 동안 하루에 5시간 정도 기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10년 동안 신학생들과 함께 30일 피정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미국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30일 피정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신수련은 그 내용이 모두 좋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원리와 기초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믿고 따름으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 세상 모든 걸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유익하면 그것을 사용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고, 부유함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도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단명함을 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삶의 기준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병환자가 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한 이가 되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교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손에 작은 가시가 박혀있으면 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많은 가시가 박혀있습니다. ‘분노와 원망, 시기와 질투, 욕심과 교만의 가시들입니다. 이런 가시가 박혀있으면 우리는 참된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내 영혼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신수련의 시작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마태오 13,44-46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한다면!

 

삼복더위에 70명, 80명의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주방 온도가 40도를 훨씬 넘어섭니다.

하는 일은 언제나 단순 작업의 반복입니다.

다듬고 썰고, 지지고 볶고, 삶고 끓이고...

 

때로 이 나이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다가도 아이들이 깔깔대며 맛있게 먹는 광경을 생각하면

얼굴에는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요즘, 자주 생각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하고,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로 생각하면, 그 작은 일들이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이끄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을.

 

스페인 로욜라에 있는 이냐시오 성인의 생가를 들렀을 때였습니다.

고풍스런 성채 안에는 그분께서 탐독했던 책들부터 시작해서 그의 가족들이 쓰던 식기, 가구,

입던 옷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성 이냐시오 대성당 중앙 제대 뒤편에는 그분의 청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의 손은 어떤 글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글귀는 예수회 회원들의 살아가는 이유이자 모토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

 

예수회 회원들은 창립자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과 정신에 따라 오직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릴 뿐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서원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창립자나 카리스마는 다르지만 ‘동종 업계 종사자’인

동료 수도자로서 생각할수록 멋진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오늘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혹시라도 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이 아니라 내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한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생애는 풍파 많고 우여곡절 투성이인 우리네 삶에 큰 위안과 위로를 건네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향해 걸어갔던 그의 여정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기사(騎士)로서의 큰 성공을 꿈꾸었습니다.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왕에 대한 대단한 충성심을 드러내며 목숨까지 걸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를 위한 하느님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1521년 침략해온 프랑스군과 맞서 싸우던 그는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날아온 포탄에 맞아 한쪽 다리는 부러졌고, 다른 쪽 다리마저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던지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병자성사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은혜롭게도 이냐시오는 그 시점에서 자신의 인생 여정 안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 하나를 마련합니다.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 그는 회복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열전’이란 영성서적을 손에 듭니다.

 

처음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읽기 시작했던 그 책들이 그를 천천히 주님께로 안내했습니다.

그는 조금씩 세상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보다 가치 있는 일, 보다 의미 있는 일, 보다 영양가 있는 인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세속적인 성공하기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에너지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충직한 기사를 꿈꾸었던 그는 이제 하느님의 충성스러운 군사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보물>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는 우선 그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마태 13,44)

이는 그 ‘보물’이 멀리 하늘 위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일터인 내 직장, 내 가정, 내 공동체가 바로 보물이 묻혀있는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보물'은 내가 있는 이곳에 ‘이미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루카 17,21)

그렇지만 그 보물은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꾸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마태 13,45)

 

우리의 머리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행동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발길 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사랑을 찾아나서는 우리의 행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여정, 신앙의 행위 그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진주는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니라 열심히 찾아다니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얻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마태 13,44.46)

이는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비록 보물을 발견하고 찾았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가진 것을 다 파는 일'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목숨까지 내놓으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비우지 않고는 채워지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그러나 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본질이지, 비우는 일이 본질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그 보물이 더 값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는' 일입니다.

비록 보물을 발견했다 해도, 또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기 전에는 아직 그 보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살 때라야 그것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보물이 없다면 결코 그것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그 보물이 '먼저' 주어졌다는 사실이요, 그 보물이 우리를 이끈 것입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있으면서(루카 17,21) 말입니다. 

그러니 그 이끄심에 응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그 보물을 차지하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우리 주님 그리스도요, 그분의 나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마태 13,44)

 

주님!

밭을 일구는 제 손길이 당신의 나라를 찾아 발견하게 하소서.

발견하고서 가진 것을 다 팔아 사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값지고,

그 모든 것을 합해도 그보다 나을 수 없는,

그것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기에,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바로 그것을 얻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7.30.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예레14,17ㄴ-22 마태13,36-43

 

                                                                    세상 종말

                                                            “구원이냐 멸망이냐?”

                                                더불어Together, 귀가歸家의 구원 여정

 

"주는 온유한 자 의를 따라 걷게 하시고,

 겸손한 자 당신 도를 배우게 하시나이다."

 

오늘 복음은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수님 친히 하신 설명이기보다는 초대교회의 우의적 해설이라함이 맞지만

예수님 역시 동의하리라 생각됩니다.

우의적 해설이라 더욱 현실감있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1.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2.밭은 세상입니다.

3.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입니다.

4.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입니다.

5.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입니다.

6.수확때는 세상 종말입니다.

7.일꾼들은 천사들입니다.

 

비유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가라지의 비유는 원래는 하느님의 ‘인내’에서, 우의적 해설에서는 그 초점이 ‘심판’으로 바뀝니다.

저는 세상 종말을 죽음으로 바꿔 이해합니다.

죽음을 통해 인생 모두는 끝나고 구원이냐 멸망이냐의 세상 종말과 같은 현실이겠기 때문입니다.

세상 종말시 두 부류로 나뉘는 모습이 그림처럼 선명히 드러납니다.

 

1.“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그들은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첨예하게 대비되는 구원과 멸망의 상태 인간들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선택하라면 누구든 둘째 번일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둘 중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미사도, 수행도, 회개도, 사랑도, 기도도, 공부도, 감사도, 희망도, 믿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더 기도하라고, 회개하라고, 사랑하라고, 공부하라고, 깨어 살라고, 찬미하라고, 감사하라고,

기뻐하라고, 믿으라고, 희망하라고 연장되는 우리의 생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회개한 이들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오직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의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로 힘껏 사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의 말씀처럼,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날마다 하루하루의 선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요즘 널리 깊이 회자되는 이름이 김민기입니다.

사후 이처럼 큰 울림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매스컴 모두가 다루고 있으며 일간신문에는 사설에서 칼럼에서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종교란을 보니 무종교라지만 종교인 이상으로 가난하고 겸손하고 순수했던 삶이었습니다.  

길다싶지만 여러 대목을 나눕니다.

 

“우리 모두는 김민기에게 빚을 지고 있다. 삶과 예술이 합일하는 드문 경지를 보여준 김민기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그의 노래 제목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늘 푸르렀던 사람, 그가 떠난 자리가 너무도 황량해 우린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이다. 명복을 빈다.”

 

“나직한 음성 하나하나가 마음으로 들어오는 ‘봉우리’. 맑고 슬픈 서사가 입에 감기면서 가슴을 감싸는 ‘백구’,

그리고 무던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한발한발 걸어가던 그분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

어눌하기는커녕 너무나 아름다운 그 노랫말들을 다시 천천히 되뇌며,

공자가 진정으로 추구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의견이 좋고 내용이 충실하여 잘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함) 을

감히 떠올린다.

‘잘 가시오, 친구여. 부디 안녕히.”

 

제가 볼 때 김민기는 익명의 크리스천이요 세상 속의 누구 못지 않은 구도자이자 수행자였습니다.

김민기님을 위한 전주교구 이병호 퇴임 주교의 장례미사시 추모 강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미 신화가 전설이 된 김민기입니다.

제가 한 개인을 이렇게 길게 강론에 인용하기는 난생 처음입니다.

혹자는 윤동주와 비교하는데 그 이상일 것이며, 아마 곧 평전도 나오리라 봅니다.

이분의 '아침이슬'과 '늙은 군인의 노래'는 제가 요즘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기도 합니다.

1951년 생이니 저보다 두 살 아래로 참 자신을 많이 성찰 분발하게 합니다.

 

그러니 결국 가라지의 비유가 의도하는 바는 회개와 더불어 현재의 삶이겠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좋은 도움이 됩니다.

 

“왔던 길을 돌아보는 까닭은,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헤매지 않고 바른길로 나아가고자 함이다.”<다산>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나쁜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억, 감사, 희망의 순서입니다.

과거의 기억에서 감사가 샘솟고 감사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꽃피어납니다.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주는 것은 똥이 싹을 북돋우는 것과 같다. 똥은 더러운 것이지만 싹을 북돋아

좋은 곡식으로 만든다.”<다산의 여유당 전서>

 

뉘우침은 기도와 성찰이 포함된 회개로 읽으면 됩니다.

회개와 더불어 새롭게 샘솟는 신망애信望愛의 삶입니다.

 

엊그제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이한 교황님의 담화문 한 대목을 나누고 싶습니다.

어떻게 노년을 맞이할까에 대해 좋은 도움이 되는, 우리를 각성하게 하는 조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능한한 독립적이고 다른 사람과 분리된 삶 안에서 개인적 성취를 추구합니다.

공동체의식은 위태로워지고 개인주의가 찬양받고 있습니다.

곧 ‘우리’에서 ‘나’로의 전환은 우리시대의 가장 명백한 징표입니다.

우리가 혼자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반박하는 가장 근본적인 논거가 되는 가정마저

이러한 개인주의 문화의 희생양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들고 쇠약해지기 시작하면, 우리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사회적 유대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개인주의의 환상은 그 본색을 드러냅니다.

실제로 우리는 삶에서 더 이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들이 옆에 없고 기댈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때에야 그 모든 것이 필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너무 늦은 시점에서 이를 깨닫습니다.”

 

교황님이 더불어의 공동체 삶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혼자와 더불어가 조화된 삶이요, 우리의 여정은 더불어의 여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불어의 여정중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내 삶을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로 압축할 때,

일년사계一年四季로 압축할 때,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는가에 대한 확인입니다.

이래야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서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선물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요셉수도원 공동체에 부임한 후 36년동안 정주하고 나니 하루로 하면 정오 12시에서

오후 4:30분쯤 된듯하고, 일년사계로 하면 늦여름에서 초겨울로 진입한 듯 이제 노인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각이 하루하루 절박한 심정으로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을 찾게 합니다.

제1독서 예레미야의 고백은 이런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를 대표한 예언자의 고백입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쫓지 마시고, 저희와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이민족들의 헛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비를 내릴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스스로 소나기를 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 분은 주 저희 하느님이신 바로 당신이 아니십니까?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궁극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하루하루 아버지의 집으로의 더불어, ‘귀가의 구원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과연 일일일생, 일년사계중 어느 시점에 있는지요?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종말론적 구원의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흐뭇이 즐거워하라.

 올바른 이라야 찬미가 어울리도다."(시편33,1). 아멘.


7/31(수) [(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우리의 손에 작은 가시가 박혀있으면 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많은 가시가 박혀있습니다. ‘분노와 원망, 시기와 질투, 욕심과 교만의 가시들입니다. 이런 가시가 박혀있으면 우리는 참된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내 영혼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신수련의 시작입니다.

(조재형 신부)

 

2. ‘하느님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

 

예수회 회원들은 창립자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과 정신에 따라 오직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릴 뿐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서원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마태 13,44)

 

주님!

밭을 일구는 제 손길이 당신의 나라를 찾아 발견하게 하소서.

발견하고서 가진 것을 다 팔아 사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값지고,

그 모든 것을 합해도 그보다 나을 수 없는,

그것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기에,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바로 그것을 얻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엊그제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이한 교황님의 담화문 한 대목을 나누고 싶습니다.

어떻게 노년을 맞이할까에 대해 좋은 도움이 되는, 우리를 각성하게 하는 조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능한한 독립적이고 다른 사람과 분리된 삶 안에서 개인적 성취를 추구합니다.

공동체의식은 위태로워지고 개인주의가 찬양받고 있습니다.

곧 ‘우리’에서 ‘나’로의 전환은 우리시대의 가장 명백한 징표입니다.

우리가 혼자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반박하는 가장 근본적인 논거가 되는 가정마저

이러한 개인주의 문화의 희생양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들고 쇠약해지기 시작하면, 우리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사회적 유대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개인주의의 환상은 그 본색을 드러냅니다.

실제로 우리는 삶에서 더 이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들이 옆에 없고 기댈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때에야 그 모든 것이 필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너무 늦은 시점에서 이를 깨닫습니다.”

 

교황님이 더불어의 공동체 삶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혼자와 더불어가 조화된 삶이요, 우리의 여정은 더불어의 여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수철 신부)

 

7/31(수) [(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제40일차 기도

 

복음<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마태 13,44)

 

주님!

밭을 일구는 제 손길이 당신의 나라를 찾아 발견하게 하소서.

발견하고서 가진 것을 다 팔아 사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값지고,

그 모든 것을 합해도 그보다 나을 수 없는,

그것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기에,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바로 그것을 얻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7월31일(수) 4시40분...수산나 -

 

7월 31일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Ignatius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이냐시오의 시대는 인문주의, 문예 부흥의 시대였고 종교 개혁의 시대였습니다. 전쟁에서 오른쪽 다리에 포탄을 맞아 부상을 당하여 로욜라 성에 돌아왔습니다. 성인은 병상에서 '성인들의 꽃'이란 책을 읽으며 과거의 영예로운 삶을 버립니다. 만레사에서 '영신수련'을 기록하고, 효과적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예수회'를 창립합니다. 글씨 :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수원교구) 그림 : 홍승례 아스테리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