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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15일 수요일[(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15일 수요일[(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나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흠숭하며 함께 노래하네. 보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본기도

주님,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자비로우신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1-2.3-4.6-7.8-9(◎ 8ㄴ 참조)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
○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 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6(35),10 참조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또는>
요한 10,1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 중 제1주간 수요일

 

성탄 미사를 드릴 때입니다. 성탄 밤 미사는 제가 주례와 강론을 했고, 낮 미사는 부주임 신부님이 미사와 강론을 했습니다. 부주임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탄 밤 미사의 주제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성탄 낮 미사의 주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 말씀이 하느님이셨고, 그 말씀이 태초부터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만들 때는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만드셨고, 하느님과 통할 수 있는 을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맨 처음에 사람은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람은 악의 유혹으로 하느님과 멀어졌고,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을 상실했습니다. 에덴동산에 불 칼로 벽이 생긴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장벽은 사람이 하느님과 말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제 말씀이 사람이 되셨으니, 예수님을 따르면 우리는 다시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으니,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우리는 다시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주임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좋았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축하하면서 이제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비난, 원망, 분노, 시기, 질투, 욕망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평화, 믿음, 희망, 사랑, 나눔, 희생을 드러내는 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말이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부님은 서품식 때 입었던 서품 제의를 입었습니다. 제의의 뒤에는 가시관과 쇠못이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지내다가 다시 한국으로 와서 사제가 된 신부님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충실하게 따르겠다고 다짐했고, 제의를 통해 드러냈다고 생각했습니다. 34년 전에 저도 서품 제의를 준비했습니다. 나름대로 의미를 두기보다는, 수녀님이 보여주는 견본 중에 하나를 선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포도나무와 가지가 있는 제의를 정했습니다.

 

동창 신부님이 쓴 글에서 구유, 십자가, 감실이 수놓아진 영대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프라도 신부님의 영대였는데, 신부님은 영대를 걸치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구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상징하며, 우아함과 동시에 겸손의 상징입니다. 구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겸손함을 상징합니다. 루카 복음 2 7절은 그분이 태어나셨으나 그를 위한 곳이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세상이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낮고 소외된 장소에서 인류의 구세주가 태어나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표징입니다. 우리들 또한 겸손함을 살아야 합니다. 사제로서 우리는 이러한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항상 높은 곳, 큰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낮은 곳에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겸손한 마음을 간직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구유의 정신은 우리에게 주님, 저는 당신의 사랑을 나누기 원하는 작은 도구입니다.”라는 기도처럼 겸손함을 일깨워줍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나타내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상기시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5 13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의 상징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제의 삶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내어주고,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며,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실은 구유와 십자가를 연결하며, 우리의 신앙생활에 깊은 의미를 제공합니다. 감실은 성체가 보관되는 특별한 장소로, 하느님이 우리의 삶 속에 얼마나 가까이 계신지를 보여줍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에서 주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사제로서 우리는 감실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그 권위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체 안에 현존하심을 믿고, 그분의 사랑과 은총을 전하는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살아가고, 기꺼이 희생하며, 성체 안에 계신 주님과 항상 함께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에 대해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마르 1,29-39

 

일상적 버리고 떠나기!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해보니, 이 시대 우리 사목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고 기도하고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히 들어있습니다.

 

① 가르침. 회당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은혜로웠던지, 듣고 있던 청중들은

    다들 한목소리로 그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신선한 가르침이라고 감탄했습니다.

 

말씀은 간결하고 쉽고 단순했지만, 명쾌하고 강렬했습니다. 말씀에 힘이 있고 살아있었습니다.

청중들은 말씀을 듣고 있는 그 자리에서 말씀이 이루어지고, 해방과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 말씀 선포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길고 장황할뿐더러 세상 고리타분하고 구립니다.

듣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가르침이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가르침으로 본인만 신나지 듣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연옥벌이라도 받도 있는 분위기입니다.

 

② 치유와 구마. 예수님의 가르침은 듣기 좋은 말씀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의 현실을 목격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겪고 있는 절박함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치유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동네방네 다니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을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거처는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갖가지 질병을 앓고 있던 이들, 마귀 들린 이들, 죽어가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그 자리에서 치유되고

해방되는 기적을 만끽했습니다.

 

수많은 군중, 특히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심연의 고통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예수님의 거처였습니다.

텅텅 비어가는 오늘 우리의 성전과 본당과 수도원을 바라보며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③ 기도.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활동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루셨습니다.

     거듭되는 치유와 구마 활동으로 하루 온종일 시달리셨던 예수님께서는 아직 캄캄할 때,

     제자들을 쿨쿨 코를 골며 잠들어 있던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홀로 외딴곳으로 가셔서 열심히 기도에 전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적극적인 치유와 구마 활동 그 배경에는 열렬한 기도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쉽게 극단적 활동 주의에 매몰되고 마는 우리들입니다.

일에 매몰되어 기본적인 기도도 소홀히 하는 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④ 떠남.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기도하고 계시던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달라고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떠나셨습니다.

지상에 머무시는 내내 예수님께서는 부단히 떠나고 또 떠나는 진정한 순례자로 살아가셨습니다.

 

나이 먹어갈수록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노력 한 가지가 있으니 일상적인 버리고 떠나기입니다.

그렇게 좋아 보이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부차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모든 세상 것들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거듭 떠남과 버림을 통해 우리 안에는 오직 하느님만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버리고 떠나는 훈련을 거듭할 때 우리는 어느 순간 순수성에 이르게 됩니다.

순수성에 도달하게 될 때, 단순성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단순성은 하느님의 영원성, 불변성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강론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예수님의 3중 직무 - 예언직과 사제직(성화직)과 봉사직(왕직)>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곧 ‘기도 생활’과 ‘활동 생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활동 생활’은 다시 말씀의 선포 활동과 치유 구마 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의 3중 직무’, 곧 예언직과 사제직(성화직)과 봉사직(왕직)으로 관련지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세 가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데, 첫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로 사람들에게 봉사하시는 장면이요, 둘째 장면은 새벽에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시며 아버지와 친교를 이루시는 기도하시는 장면이요, 셋째 장면은 이웃 고을로 가시어 복음을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첫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마르 1,31)고 전하는데, 이는 치유를 받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으켜지자 치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마치 산고의 아픔이 다해야 아기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탄생하면 산고의 아픔은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곧 치유가 믿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치유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34)라고 전하는데, 이는 ‘아는 것’과 ‘믿는 것’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결코 믿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도 마귀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라고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아는 것에 앞서 믿고 사랑해야 할 일입니다.

진정 믿을 때라야 진정 알게 되고, 아는 바를 믿고 사랑하며, 믿고 사랑하는 바를 실천할 때 진정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장면에서는 예수님의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곧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교와 일치’에 당신 삶의 중심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기도와 활동의 삶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곧 ‘기도’는 활동이 되고 활동은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셋째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곁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라고 알려줍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기쁜 소식', 곧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것을 선포하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나시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마르 16,15).

오늘 우리는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고, 먼저 외딴 곳에서 기도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은총과 사랑을 입은 이들로서, 예수님의 이 사랑을 우리의 소명으로 받은 이들임을 명심하고, 예수님 삶, 곧 이 3중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

(마르 1,38)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제 뼈 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14.연중 제1주간 화요일                                                            히브2,5-12 마르1,21ㄴ-28

 

                                                             참사람의 영원한 모범

                                                   “구원의 영도자, 예수 그리스도님”

 

본인보다도 주변인들의 평가가 객관적이고 정확합니다.

참으로 명망있는 여러분들이 모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겸손히 배우는 마음으로 들으며 자신을 비춰보았습니다.

 

참사람은 누구인가?

참사람이 되는 공부보다 더 중요하고 힘든 일도 없습니다.

평생공부가 참사람되는 공부요 참사람의 영원한 모델이 예수님입니다.

제 최고의 탐구대상이자 관심사는 인간입니다.

모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들어봅니다. 

 

“생존이다. 평생 생존을 위해 노력한 이다.”

“그의 삶에는 일상이 있고 서사가 있다.”

“누구와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다.”

“기적같은 삶을 살아 왔다.”

“어려운 환경중에 살아왔으나 잘 사는 이들에 대한 증오가 없다.”

“유능하고 유연하고 경청하는 사람이며 소통에 능하다.”

“치밀하고 명민하고 명료하다. 눈빛이 말해준다.”

“울컥하다. 짠하다.”

“똑똑하고 착하다. 총명하고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강단있는 체력이다. 열정과 간절함이 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며 학습능력이,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다.”

 

저보다 훨씬 나이가 적은 분이지만 모두가 배워 닮고 싶은 덕목들입니다.

나이가 많아 스승이 아니라 ‘지혜와 노력의 사람’이라면 모두가 스승입니다.

또 어느 분의 이분에 대한 평은 압권입니다. 

 

“개천에서 용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용이 되면 대부분 개천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는 개천을 잊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개천을 바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억강부약 대동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참사람의 모델 예수님에 가깝습니다.

타고난 좋은 품성에 역경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온 사람이라면

참사람의 영원한 모델인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방면에 걸친 주변분들의 객관적 평이니 믿을만 합니다.

김대중과 메르켈을 읽으며 감탄하는 것도 위와 같은 장점들입니다.

 

천재적인 품성에 천재적인 노력입니다.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에 속할 것입니다.

매사 어느 처지에서도 치열히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위대한 정치가들입니다.

“애덕의 최고 형태는 정치다” 진리를 입증한 세계적 정치가들입니다.

이런분들이야 말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자 희망의 표지이며 공동체의 보물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고 지도자는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는 말마디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분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디테일에 강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베네딕도 16세 전임 교황은 ‘크리스천은 다시 사람이 되기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정말 평생 사람이 되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다시 노력하는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기가 그토록 힘들고 평생과정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옛 현자의 지혜도 새롭게 마음에 새깁니다.

 

“새벽은 어른의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새로워진다.”<다산>

“평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명심보감>

 

그래서 진리를 추구했던 옛 사막 수도승들의 공통점은 새벽을 사랑했고, 예수님은 새벽마다 동트기전

외딴곳에서 기도했습니다.

늘 강조하는 것이 정신 건강, 마음 건강, 영혼 건강입니다. 길을, 희망을 잃을 때 영육도 병들기 마련입니다.

죄도 많은 세상이라 병도 많습니다.

궁극의 길이자 희망이신, 궁극의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이자 빛이신

주 예수님을 잃었을 때 스며드는 어둠의 세력, 악마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상징하는 바 이런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허약한 사람들인지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으니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권위주의는 배격해야겠지만 권위 실종의 시대 참된 권위는 공동생활에 필수입니다.

참된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이 그 좋은 증거입니다.

더러운 영이 하느님의 거룩함 자체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고백합니다.

문득 악(惡)에 대한 처방은 선(善)이 아니라 성(聖), 거룩함이란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하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지체없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꾸짖음에 축출되는 더러운 영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사람들은 모두 놀라 이구동성으로 고백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 구나.”

 

악마는 진공을 사랑합니다.

삶의 중심이 비어 있을 때 악마가 그 자리에 자리잡게 되고 마음은 악마의 놀이터가 됩니다.

정말 백약이 무효인 것이 이념이나 종교에 경도되어 중용을 잃고 극우나 극좌의 극단에 치우쳤을 때

광신, 맹신의 더러운 영들입니다.

양심도, 이성도, 양식도 마비되어 그 기능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광신이요

맹신으로 이런 이들이 바로 현대판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들입니다.

 

새삼 참 권위의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상식파로 사는 일이,

예수님의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을 배우는 일에 항구하는 일이, 참사람이 되는 공부에

얼마나 본질적 중요성을 지니는지 깨닫습니다.

 

이래야 주님을 닮아 존엄한 품위의 사람으로, 참 권위의 사람이 되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참사람의 모델인 파스카 예수님의 정체가 히브리서를 통해 환히 계시되니

참 고맙고 반갑습니다.

시편 8장을 그리스도화하여 렉시오디비나 한 결과 주옥같은 다음의 진리말씀입니다.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 강조점이 있으니, 모두가 파스카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부단히 그분을 닮아갈 때 참사람으로서 참나의 실현이자 완성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더러운 영들이 악마가 범접하지 못합니다.

온전한 정신, 마음, 영혼으로 살 수 있고 육신도 더불어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우리를 고무하며 ‘구원의 영도자’ 예수님과 일치의 여정에 항구할 원의를 더욱 북돋아 줍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 예수님을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살아있는 한 이런저런 시련과 고난은 계속될 것입니다.

구원의 영도자인 예수님께서도 고난으로 완전하게 되셨듯이 우리의 모든 시련과 고난을

구원의 영도자 예수님 안에서 끊임없이, 한결같이 ‘겸손의 계기’로, ‘완전에 이르는 영적성장의 계기’로 삼을 때,

더욱 파스카 예수님을 닮아 참사람, 참나의 실현이요 완성에 도달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1/15(수)[(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는 겸손하게 살아가고, 기꺼이 희생하며, 성체 안에 계신 주님과 항상 함께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에 대해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조재형 신부)

 

2. 모든 세상 것들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거듭 떠남과 버림을 통해 우리 안에는 오직 하느님만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버리고 떠나는 훈련을 거듭할 때 우리는 어느 순간 순수성에 이르게 됩니다.

순수성에 도달하게 될 때, 단순성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단순성은 하느님의 영원성, 불변성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

(마르 1,38)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제 뼈 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악마는 진공을 사랑합니다.

삶의 중심이 비어 있을 때 악마가 그 자리에 자리잡게 되고 마음은 악마의 놀이터가 됩니다.

정말 백약이 무효인 것이 이념이나 종교에 경도되어 중용을 잃고 극우나 극좌의 극단에 치우쳤을 때

광신, 맹신의 더러운 영들입니다.

양심도, 이성도, 양식도 마비되어 그 기능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광신이요

맹신으로 이런 이들이 바로 현대판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들입니다.

 

새삼 참 권위의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상식파로 사는 일이,

예수님의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을 배우는 일에 항구하는 일이, 참사람이 되는 공부에

얼마나 본질적 중요성을 지니는지 깨닫습니다.(이수철 신부)

 

1/15(수)[(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 15일차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

(마르 1,38)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제 뼈 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15일(수) 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