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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2월 27일 목요일[(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2월 27일 목요일[(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나렉의 성 그레고리오 아빠스 학자

입당송

시편 13(12),6 참조
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마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5,1-8
1 재산을 믿지 말고 “넉넉하다.”고 말하지 마라.
2 너 자신과 네 힘을 붙좇지 말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지 마라.
3 “누가 나를 억누르리오?” 하고 말하지 마라. 주님께서 기필코 징벌하시리라.
4 “죄를 지었어도 내게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기 때문이다.
5 속죄를 과신하지 마라. 죄에 죄를 쌓을 뿐이다.
6 “그분의 인자함이 크시니 수많은 내 죄악이 속죄받으리라.”고 말하지 마라.
정녕 자비도 분노도 다 그분께 있고 그분의 진노가 죄인들 위에 머무르리라.
7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늦추려 하지 마라.
정녕 주님의 분노가 갑자기 들이닥쳐 너는 징벌의 날에 완전히 망하리라.
8 부정한 재산을 믿지 마라. 정녕 재난의 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1테살 2,13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 알렐루야.

복음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41-5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4)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6)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제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9,2-3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또는>
요한 11,27 참조
주님, 저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저희가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오늘 성서 말씀에서 저는 두 가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입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라는 단순한 보장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라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 삶이 형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정의롭지 못하게 살거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형통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학생 때 배운 가정법이 생각납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예문이 있습니다.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는 일마다 잘 될 수 있으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조건을 잘 따르고 지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필요한 조건만 채워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충분한 조건까지 채워져야 합니다. 세례는 구원의 필요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받은 신앙인으로서 주어지는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우리가 작은 행동 하나라도 선택할 때 그것이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마실 물 한 잔의 의미는 단순한 물 한 잔을 넘어섭니다. 이는 작은 사랑의 실천, 작은 친절이 큰 축복을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마실 물 한 잔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작은 선행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미소 하나, 관심을 두는 태도도 우리의 삶을 형통하게 만드는 씨앗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부자는 좋은 옷과 큰 집에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지만, 집 앞에 있는 라자로라는 거지를 외면했습니다. 부자에게 라자로를 도와주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그걸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율법 학자에게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길에 강도당해서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레위는 강도당한 사람이 이방인이라면서 외면했습니다. 사제는 예배 시간이 급하다면서 외면했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해 주었고, 여관에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잘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고 했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의 친척도,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에게 묻습니다. ‘누가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입니까?’ 율법학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도 가서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구원은 사제나 레위라는 직책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현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지금 당장 작은 행동을 통해 미래의 축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형통이 따르고, 우리가 베푸는 선행 하나하나가 하늘에서 기록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최후의 심판을 들려주셨습니다.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외롭고,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예수님께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천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외롭고, 아픈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예수님께 해 주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천상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두 발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느니 한 발이라도 가지고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느니, 한 눈이라도 가지고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이웃에게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서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복음마르 9,41-50

 

죄의 유혹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투쟁하십시오!

 

평소 사랑과 자비, 용서와 인내를 목청껏 외쳐왔던 예수님께서 오늘은 왠지 말씀에 날이 서있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 발언의 강도나 수위가 꽤나 높습니다.

어떤 말씀은 너무나 섬뜩해서 듣기조차 거북스럽기까지 합니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마르 9,43-44)

 

너무나 강경한 예수님의 말씀,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참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마냥 오냐 오냐 하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칭찬과 격려도 아끼지 않습니다.

온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자녀를 위해 헌신합니다.

 

그러나 때로 자녀가 그릇된 길을 갈 때, 그 길이 정말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 할 때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길에서 되돌리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때로 타일러보기도 하고, 눈물로 호소도 하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면 준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강하게 외쳐보기도 하고 정신 번쩍 들게 혼도 낼 것입니다.

 

이런 극진한 자녀 사랑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는 손을 잘라버려라, 발을 잘라 버려라,

눈을 빼 던져버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에게 죄를 짓게 하는 죄를 중히 여기셨습니다.

일시적인 쾌락으로 지옥을 얻기보다는 불구가 됨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게 더 낫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죄를 짓게 되면 다른 무엇에 앞서 가장 가치 있고 고귀한 영혼의 구원, 하느님 나라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그토록 강조점을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이 한 가지 있습니다.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글자 그대로 손발을 잘라버리고

눈을 뽑아버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밥 먹듯이 일상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다들 불구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투쟁하라는 권고 말씀입니다.

죄 앞에서 목숨 걸고 맞서 싸우라는 격려 말씀입니다.

 

돈보스코의 제자 가운데 도미니코 사비오란 성덕이 출중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 들어와서 돈보스코가 제시한 성덕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고 있던 중

안타깝게도 중병을 얻어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오래가지 않아 교회는 도미니코 사비오를 성인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여기 그가 짧은 생애 동안이지만 생명처럼 지켜왔던 모토가 있었습니다.

 

“죄보다는 죽음을!”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소금>

 

오늘 복음은 앞 장면에서 보여주듯이,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서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가 하는 일을 막아 보려고 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마르 9,42)

우리가 자주 빠지는 일이기에 가슴이 섬찟합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을 죄짓게 하는 도구 세 가지, 곧 자신의 ‘손’과 ‘발’과 ‘눈’을 잘라버리고 빼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옥 구더기와 지옥 불과 지옥 불 소금을 피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손’과 ‘발’과 ‘눈’을 잘라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를 짓게 하는 그 단초가 되는 ‘죄의 뿌리’, 곧 ‘죄를 불러들인 마음의 뿌리를 절단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마르 9,50) 

곧 죄를 불러들이는 단초가 되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소금’으로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고 하십니다. 

사실 소금은 성경에서, 곡물(레위 2,13)이나 향료(탈출 30,35)에 뿌려져 성별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제물(민수 18,19)에 뿌려져 하느님과의 계약 관계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부패를 막고, 거룩하게 하며, 거룩한 관계 안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산상설교에서 보여주듯이, ‘소금’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세상의 소금'(마태 5,13) 입니다.

곧 ‘소금’은 ‘다른 이 속으로’ 혹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녹아서 자신이 사라지면서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새겨 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하느님에게 참여하는 모든 것, 곧 세상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타인과 함께’, ‘타인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이루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주시는 평화 안에서 사랑의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을 되새겨봅니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언제나 소금으로 맛을 낸 것과 같아야 합니다.”

(콜로 4,6)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마르 9,50)

주님!

제 마음을 사랑의 소금에 절이소서.

하여, 제 마음이 부패하지 말게 하소서!

제 마음이 깨끗해지고 당신 마음 되게 하소서!

사랑의 소금으로 형제들에게 녹여 들어가 당신의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26.연중 제7주간 수요일                                                                  집회4,11-19 마르9,38-40

                                                               사랑과 지혜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은 사랑의 지혜뿐이다”

 

“주님,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는 이에게 평화 넘치고,

 그들 앞에는 무엇하나 거칠 것이 없나이다.”(시편119,165)


얼마전 수도공동체가 선물로 받은 책들 제목이 언뜻 눈에 띠었습니다.

어느 영성심리 상담 사제가 쓴, “나로 사는 걸 깜박했어요-루카복음서에서 찾은 진짜 나로 살아가는 힘”이란

책이었습니다. 

 

진짜 나를, 바로 참나를 살아가는 이들이 지혜롭고 겸손한 자들이요 내적 부요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부단히 참나를 깨달아 발견해 갈 때 지혜롭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도 이런 지혜에 있음을 봅니다.

오늘 옛 현자의 가르침도 지혜 공부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를 뽐내기 위해 세상을 걱정하는 척하지 마라. 어른의 근심은 과시가 아니라 귀감이 되어야 한다.”<다산>

읽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진정 지혜로운 자는 과시하는 어른이 아니라, 귀감이 되는 어른임을 깨닫습니다.

 

“덕을 수양하지 못하고, 학문으로 사리를 밝히지 못하며, 의를 듣고도 전하지 못하고,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걱정이다.”<논어>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공자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즉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얼마전 써놓고 자족하며 나눴던 ‘바다와 산’이란 글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바다가

 바다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깊고 넓은 바다예요

 

 산이

 산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깊은 산이예요”

 

가만히 산같은 자세로 바다같은 마음으로 주님 안에 머무는 묵상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바다가 지혜를 상징한다면, 산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사랑에서 샘솟는 지혜요 분별의 지혜도 사랑에서 나옵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의 사람’은 바로 사랑과 지혜의 사람입니다.

산같이 어진 사람이 바다같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둘이자 하나인 참 좋은 상호보완관계에 있는 ‘바다와 산’입니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의 조건중 하나가 배산임수(背山臨水), 즉 집이 남쪽을 향하고 있을 때

북쪽에는 산이, 남쪽에는 강이 있는 것을 뜻하는데 역시 지혜와 사랑이 함께 함을 봅니다.

 

제 요셉수도원의 경우 배경의 불암산에 넓게 열린 전방의 푸른 하늘은 바다로 생각하며

자주 자족한 적도 생각납니다.

제 좋아하는 ‘산과 강’이라는 수도좌우명도 이를 노래합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임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임향해 흐르는 강”

 

사랑과 지혜를 추구하는 이상적 삶을 향한 갈망을 노래한 시입니다.

오늘 집회서 말씀도 지혜 찬가처럼 들립니다.

이 모두 역시 깊은 사랑에서 나온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

 지혜를 붙드는 이는 영광을 상속받으리니

 가는 곳마다 주님께서 복을 주시리라.

 지혜를 받드는 이들은 거룩하신 분을 섬기고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지혜를 사랑합니다.

지혜를 사랑할 때, 사랑의 지혜가 되어 갑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이런 사랑의 지혜뿐입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지혜를 사랑하는 어질고 관대한 자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께 그대로 해당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제자들의 옹졸하고 편협함과 예수님의 관대함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스승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이들이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다는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화를 내지 않고 온유하며 겸손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이 그러했습니다. 바다같이 깊고 넓은 마음이 정말 지혜로운 사랑입니다.

사랑이, 섬김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아무도 심지어는 교회도 하느님을, 하느님의 나라를, 진리를, 사랑을, 정의를 독점할 수 없습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하는, 누구나에게 차별없이 열려 있는 하느님의 나라요,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 평화와 지혜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날로 너그럽고 자비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 당신 구원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당신 가르침이 저의 즐거움이옵니다.”(시편119,174). 아멘.


2/27(목) [(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두 발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느니 한 발이라도 가지고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느니, 한 눈이라도 가지고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이웃에게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서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예수님께서는 글자 그대로 손발을 잘라버리고

눈을 뽑아버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밥 먹듯이 일상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다들 불구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투쟁하라는 권고 말씀입니다.

죄 앞에서 목숨 걸고 맞서 싸우라는 격려 말씀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마르 9,50)

주님!

제 마음을 사랑의 소금에 절이소서.

하여, 제 마음이 부패하지 말게 하소서!

제 마음이 깨끗해지고 당신 마음 되게 하소서!

사랑의 소금으로 형제들에게 녹여 들어가 당신의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화를 내지 않고 온유하며 겸손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이 그러했습니다. 바다같이 깊고 넓은 마음이 정말 지혜로운 사랑입니다.

사랑이, 섬김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아무도 심지어는 교회도 하느님을, 하느님의 나라를, 진리를, 사랑을, 정의를 독점할 수 없습니다.

(이수철 신부)

 

2/27(목) [(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마르 9,50)

주님!

제 마음을 사랑의 소금에 절이소서.

하여, 제 마음이 부패하지 말게 하소서!

제 마음이 깨끗해지고 당신 마음 되게 하소서!

사랑의 소금으로 형제들에게 녹여 들어가 당신의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2월27일(목) 6시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