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2월 28일 금요일[(녹) 연중 제7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본기도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6,5-17
우아한 말은 정중한 인사를 많이 받게 한다.
6 너와 화목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많이 만들되
조언자는 천 명 가운데 하나만을 골라라.
7 친구를 얻으려거든 시험해 보고 얻되 서둘러 그를 신뢰하지 마라.
8 제 좋을 때에만 친구가 되는 이가 있는데
그는 네 고난의 날에 함께 있어 주지 않으리라.
9 원수로 변하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너의 수치스러운 말다툼을 폭로하리라.
10 식탁의 친교나 즐기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네 고난의 날에 함께 있어 주지 않으리라.
11 그는 네가 잘될 때에는
너 자신인 양 행세하고 네 종들에게 마구 명령해 대리라.
12 그러나 네가 비천하게 되면 그는 너를 배반하고 네 앞에서 자취를 감추리라.
13 원수들을 멀리하고 친구들도 조심하여라.
14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15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16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
17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자신의 우정을 바르게 키워 나가니
이웃도 그의 본을 따라 그대로 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 주님,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
○ 당신 규범을 기꺼이 지키며, 당신 말씀을 잊지 않으리이다. ◎
○ 제 눈을 열어 주소서. 당신의 놀라운 가르침 바라보리이다. ◎
○ 당신 규정의 길을 깨우쳐 주소서. 당신의 기적을 묵상하오리다. ◎
○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
○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제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또는>
요한 11,27 참조
주님, 저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거룩한 제사에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저희가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7주간 금요일
한국에도 ‘비상계엄’으로 인한 태풍이 불고 있고, 미국에도 ‘서류 미비자’에 대한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한국의 태풍은 법원에 대한 테러가 있었지만,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누그러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광풍은 위력이 워낙 거세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태풍이 태평양 건너에서 살고 있는 제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미국의 광풍은 제 주변에서도 불고 있기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 서류 미비자로 지내고 있는 사람이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인 중에 서류 미비자로 지내고 있는 사람도 십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단속반이 한국인 식당에도 왔다고 하고, 교회에도 왔다고 합니다. 교우 중에는 일손이 모자란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무서워서 직장에 안 나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주변에도 이번 광풍 때문에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분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걱정 없어 보였는데, 남모르게 가슴 졸이던 분도 많았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물건을 사재기하는 예도 있다고 합니다.
서류 미비자를 위한 모임도 생긴다고 합니다. 50개 주에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항의하는 모임도 있다고 합니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합니다. 이왕에 미국 땅에서 살고 있는 서류 미비자들에 대한 관용과 구제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도 있습니다. 무서워서 바깥출입을 못 하는 이웃을 위해서 장을 봐주는 분도 있습니다. 무료로 서류 미비자들의 법률적인 도움을 주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김혜선 님의 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라네./ 하늘의 본향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는 모두/ 이 세상 덧없이 떠도는 나그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억누르고 부당하게 대우한다면/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분노를 터뜨리신다네.”
동창 신부님 중에 거동이 불편한 친구,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친구, 잠시 쉬는 친구가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에 친구들의 근황을 접하게 됩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바빠서인지 특별히 날을 잡지 않으면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기도 하고, 다들 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씨는 친구들을 많게 하고, 우아한 말은 정중한 인사를 많이 받게 한다. 원수로 변하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너의 수치스러운 말다툼을 폭로하리라. 식탁의 친교나 즐기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네 고난의 날에 함께 있어 주지 않으리라.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친한 친구들끼리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부부간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 한마디가 평생 살아가면서 계속 쫓아다닌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부부가 좀 더 사랑하고 아껴주려면 말부터 조심해야 합니다. 한 번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계속 생채기를 내고 싶지 않다면 부부 사이에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꼭 기억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이혼해!/ 내가? 그러는 당신은 어떤 줄 알아?/ 옆집 남편(아내)처럼 할 수 없어?/ 어린애처럼 굴지 좀 마!/ 당신, 예전이랑 똑같은 실수를 한 거잖아?/ 좀 더 이성적일 수 없어?/ 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난 지금 안 듣고 있어/ 모든 게 당신 잘못이야./ 당신이 먼저 시작했잖아/ 당신이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저 농담이라고”
부부 사이라도 이런 말은 꼭 해야 할 거로 생각합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감사해요./ 내가 할게요./ 다시 할게요.” 교우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사랑하며 지내야 하는데 때로 불신과 반목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의 시작도 사소한 말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년 다해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마르코 10,1-12
두 번째 결혼으로 두 배 더 멀어지는 행복
결혼은 우리 모두의 화두입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결혼을 할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5살까지는 결혼하고 싶었고, 그 이후에는 결혼에 대한 희망을 품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재혼을 반대하시는지를 살짝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결혼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명확히 하시며, 결혼이 단순한 인간의 합의가
아닌,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신성한 결합임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대화 중, 결혼의 파기 불가능성을 강조하시며,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이 맺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지 말라.”는 교훈을 주십니다.
물론 두 번째, 세 번째 결혼해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첫 번째 결혼을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두 번째도 그렇게 믿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짐 엘리엇과 그의 친구들의 순교’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짐 엘리엇과 그의 친구들은
1950년대 중반, 에콰도르에서 원주민 부족인 아우카 부족과의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짐 엘리엇은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어린 자녀가 있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결국 짐 엘리엇과 그의 네 명의 동료는 아우카 부족원들에 의해 순교하게 됩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남편이 순교한 후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명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며, 자신이 남편과 함께했던 사역을
이어가며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순교가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믿고, 그 뜻을 따라갔습니다.
그녀의 삶은 결혼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졌을 때, 그 결혼이 얼마나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예입니다.
짐 엘리엇과 그의 친구들이 순교한 뒤, 그들의 아내들은 고통을 겪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그 고난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고통과 희생은 단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속 계획의 일환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이루어졌을 때,
그 결합은 시간이 지나면서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남편의 순교 후에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큰 영적 열매를 맺은 인물입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찾은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분명 남편과 함께 자녀를 키워가며 느낄 수 있는 행복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같은 선교의 길을 감으로써 남편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은 하느님이 맺어주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었어도
더는 결혼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불행했을까요? 엘리사벳의 말을 들어봅시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짐 엘리엇의 순교 이후,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어가면서
“내 삶을 목적과 의미 있는 것으로 살아가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세속적인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선택한 결과임을 나타냅니다. 그녀는 자주 “행복은 세상적인 기준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서 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남편 짐의 순교 후에 겪은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슬픔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녀는 이 슬픔을 통해 고통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에서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삶이 전적으로 외적인 쾌락이나
행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추구했음을 보여 줍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짐 엘리엇의 순교 이후 “다시 이 길을 가야만 한다면, 그 길을 계속 걷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평생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통해 얻은 경험과 교훈들이 자신을 더욱 성숙시키고
하느님을 더 깊이 신뢰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으며,
고난과 아픔을 통해 그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실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다, 심지어 슬픔까지도.”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추구한 삶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저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결혼의 경험과 비교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경험이 사제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될까요?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묵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상대에게 잘못 했던 것, 상대가 나에게 잘못했던 것, 내가 상대에게 잘했던 것,
상대가 나에게 잘했던 것 등은 모두 내가 하느님께 가는 길에서 큰 묵상 거리였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귀중한 다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만큼이라도 예수님을 사랑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행복은 인간적인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행복해지면 인간적인 관계에서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행복을 위해 하느님께서 맺어주셨다는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면
그 하느님께 참아나가며 나아가야 하는 길을 외면하게 되고 다시 살게 되더라도 그 믿음을
쉽게 회복할 수 없게 됩니다. 첫 번째가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는데, 두 번째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결혼의 유대를 유지하며 참사랑을 알게 되고 그 참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했음을 깨달은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토비트서에서 토비아와 사라의 혼인은 이런 면에서 큰 의미를 줍니다.
토비트는 결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이를 위해 하느님 자비를 청합니다.
십자가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결혼의 참 의미는 하느님께 가는 길이라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아멘.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3. 이영근 신부님
2025년 다해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아름답고 고귀한, 거룩하고 놀라운 일>
예수님께서는 가파르나움을 떠나 유다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군중들이 다시 모여들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결혼에 대한 진정한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10,3)고 되물으시고, 그들이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마르 10,5)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이혼을 허락해준 이유가 이혼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모세가 그렇게 한 것은 여성이 이혼장이라는 서류도 없이 버림을 받게 될 경우, 여성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생활하다 붙잡히게 되면 간통죄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내의 사소한 일을 꼬투리로 잡아 이혼하는 일이 많아 사회적 문제꺼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혼이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10,9)는 창조 때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기에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이라고 번역한 '짝 지우다'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함께 멍에를 매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는 결혼이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일치를 향한 공동의 운명을 지니고 함께 협력하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결혼이란 ‘한 몸’, 곧 일치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일치를 이루기 위한 조건적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의 멍에를 매고’ ‘하나 됨’으로 나아가야 할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마르 10,7)는 말씀을 교부들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관계로,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로 해석해 왔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이사야서>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하여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하여 기뻐하시리라.”
(이사 62,5)
이처럼 ‘하느님’은 영원에서부터 ‘인간의 신랑’이시고, ‘인간’은 ‘하느님의 신부’라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과 인간은 한 몸을 이루어나가야 하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의 일원이 되는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는 혼인성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과의 이 깊은 관계가 우리를 가장 품위 있는 존재로 끌어올려줍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거룩하고 놀라운 일인지요.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마르 10,8)
주님!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은 제가 부족해서만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당신이 필요해서만 아니라 당신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과 더불어 한 곳을 함께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27.연중 제7주간 목요일 집회5,1-8 마르9,41-50
주님 중심의 지혜로운 삶
“재산을 믿지 마라, 자만하지 마라, 죄를 단호히 물리치라”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다시 한 번 불러보는 만세칠창중 하나에 애국가 1절입니다.
새삼 대한민국이 하느님의 각별한 보호속에, 강대국들의 무수한 침략중에도 이렇게 융성한 발전을
이루고 있음은 천운의 기적임을 감사로이 깨닫습니다.
<병자호란> 책을 독료하면서 조선이 참혹하게 멸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할수 있었음은
홍타이지의 호의와 더불어 마침 시작된 마마(천연두) 덕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의 난국도 은총과 더불어 슬기롭게 타개해 나가리라 믿습니다.
조선의 마마에 쫓기어 홍타이지가 삼전도 의례로 전쟁의 막을 내리고 서둘러 귀국했다는 사실을
어제의 독서를 통해 알았습니다.
조선의 천연두가 조선을 구한 것이니 이 또한 천운입니다.
만주의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는 중국의 한족에 흡수되어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유구한 역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 불후의 도움이 된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역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런 자각이 주님의 참된 제자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주님 중심의 겸손과 지혜, 감사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북돋웁니다.
재산을 믿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히, 또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며 살게 합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주님의 참된 제자들에게 해당된다 싶습니다.
“나무가 열매로 사람을 모으듯 어른은 성품으로 사람을 따르게 한다.”<다산>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무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맹자>
성령의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을 지칭한다 싶습니다.
봄의 꽃향기도 좋지만 가을의 둥글게 익어가는 원숙(圓熟)한 열매들의 깊고 그윽한 향기는 비교불가합니다.
이건 가을 열매 익어가는 배밭사이를 걸으며 매해 실감하는 진리입니다.
오늘 제1독서 집회서는 우리가 추구할바 지혜로운 삶의 방법을 알려줍니다.
주님 중심의 재산을 믿지 않는 초연한 이탈의 삶이,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삶이 참된 제자의 삶임을
가르쳐 줍니다.
가르침이 실제적이며 직접적이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 공부하는 자세로 마음에 새기며 전문 그대로 인용합니다.
“재산을 믿지 말고, ‘넉넉하다.’고 말하지 마라.
너 자신과 네 힘을 붙좇지 말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지 마라.
‘누가 나를 억누르리오?’ 말하지 마라.
주님께서 기필코 징벌하시리라.
‘죄를 지었어도 내게 아무 일도 없었지 않는가?’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기 때문이다.
속죄를 과신하지 마라.
죄에 죄를 쌓을 뿐이다.
‘그분의 인자하심이 크시니 수많은 내 죄악이 속죄받으리라.’고 말하지 마라.
정녕 자비도 분노도 다 그분께 있고, 그분의 진노가 죄인들 위에 머무르리라.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늦추지 마라.
정녕 주님의 분노가 갑자기 들이닥쳐 너는 징벌의 날에 완전히 망하리라.
부정한 재산을 믿지 마라.
정녕 재난의 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
모두가 재산을 믿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중심의 회개의 본질적 삶에, 주님을 경외하는 삶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무욕의 지혜요 무욕의 겸손입니다. 무욕의 다른 이름은 주님을 사랑하는 청정욕입니다.
청정욕을 발휘하여 순수와 열정, 희망과 기쁨, 감사와 평화, 온유와 겸손, 자비와 지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소금이 상징하는바 이런 청정욕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바로 청정욕의 내용을 이루는 참 좋은 덕목들이 마음의 소금입니다.
또 소금은 주님을 상징합니다.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 중심의 회개의 삶에 충실할 때 선물처럼 주어지는 청정욕에 참 좋은 덕목들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죄의 엄중함을 통감하고 죄의 유혹을 단호히 끊어버리라는 주님의 충격요법적 충고입니다.
죄도 보고 배웁니다.
주님을 믿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를 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낫다
하시니, 이웃을 죄짓게 하는 걸림돌이 되어선 결코 안된다는 것입니다.
손이 죄짓게 하거든 그 손을 잘라 버리고, 발이 죄짓게 하거든 그 발을 잘라 버리며,
눈이 죄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 던져 버리라는 격렬한 말씀은 바로 죄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결코 문자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니 그러하다면 천국은 온통, 한 손, 한 발, 한 눈의 애꾸눈 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결과는 치명적이니 철저한 회개를 통해 단호히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몸이나 사회에 암세포같은 죄의 암세포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로 암세포같은 죄가 번지지 않도록 차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개인이나 사회를 부패케 하는 죄입니다.
기도도 회개도 때가 있습니다.
너무 죄가 만연되어 죄의 암세포가 마음이나 사회에 퍼지면, 또 부패가 만연되어 마음이나,
사회가 너무 썩으면 기도도 회개도 소용없습니다.
과일도 조금 썩으면 발라내고 먹지만 많이 썩으면 통채로버려야 합니다.
이런 상태의 현대인들은, 나라나 사회는 아닌지 우려되는 총체적 난국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은 하느님 중심 방향을 향한 철저한 회개를 통해 초발심의 자세로
주님의 참된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 중심의 회개와 청정욕의 삶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시편40,5ㄱ). 아멘.
2/28(금) [(녹)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고마워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감사해요./ 내가 할게요./ 다시 할게요.” 교우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사랑하며 지내야 하는데 때로 불신과 반목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의 시작도 사소한 말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엘리자베스는 남편 짐의 순교 후에 겪은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슬픔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녀는 이 슬픔을 통해 고통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에서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삶이 전적으로 외적인 쾌락이나
행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추구했음을 보여 줍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마르 10,8)
주님!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은 제가 부족해서만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당신이 필요해서만 아니라 당신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과 더불어 한 곳을 함께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4.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바로 청정욕의 내용을 이루는 참 좋은 덕목들이 마음의 소금입니다.
또 소금은 주님을 상징합니다.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는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2/28(금) [(녹)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마르 10,8)
주님!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은 제가 부족해서만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당신이 필요해서만 아니라 당신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과 더불어 한 곳을 함께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2월28일(금)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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