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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50228 글/시] 인생이란 /봄이면 생각나는 김소월!

2025년 2월28일(금) 오늘의 글/시

 

[생각해보는 시간?]
 인생이란~♡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의 32층에 서울대 농대 학장을 역임한 오ㅇㅇ이란 교수님 이 살고 있었다.

19년 전 처음 신규 입주할 때 부터 함께 입주한 분이라 엘리베이터등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하며 간단한 대화도 나누곤 했다.
당시 나는 60대 초반을 갓 넘긴 초로였고 그분은 77세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항상 웃음끼가 가시지 않고 정정해 보였다.  마나님과 함께 단지내 산책을 자주하고 두분이 손잡고 외출하는 모습 자주 보였다.

나와 같은 교회에 다녔는 데 매주 주일날이면 어느 대학 교수라는 사위가 와서 픽업을 해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 한 7년 전 쯤에 마나님이 돌아 가셔서 비교적 넓은 집에서 홀로 사시는 것 같았다.

여전히 주일 날이면 사위와 딸이 픽업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갔다.  수원에 산다는 아들은 어쩌다 찾아와 함께 외출하는 모습을 한 번 본 것 같다.

그런데 언제 쯤인가 사위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그 사위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혼자서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거니는 쓸쓸한 모습을 보며 인생 마직막의 행로가 누구에게나 다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우리 인생의 말년은 다 저렇겠지!

그런데 
한 두어달 전부터 오학장 할아버지가 눈에 띄지가 않아 가벼운 궁금증이 들기는 했지만 남의 일이라 그냥 잊고 있었다.

근데 어제는 우리 라인의 주차장에  책이 가득 찬 왠 커다란 '탑'차가 보여 직감적으로 오교수님의 책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오전에 
집사람이 쓰레기를 버리려 내려 갔더니- 
아주 고급스런 책장들을 비롯한 꽤나 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한살림 한가득 나와 있더라는 거다.

값께나 나갈 만한 서양화와 액자들 그리고 오교수의 박사학위 학위모를 쓰고 찎은 사진과 가족 사진들이 널브러져 있더라는 거다.

가구들은 중고 가구점에 연락하면 헐 값에라도 얼씨구하고 가져 갈만한 고급품이고   
오교수 사진들과 가족 사진들은 다 태워버리지 않고- 왜 저리 내다버렸는지 자식들이 욕먹을 것 같더란다.

금년 95세로 서울 농대 학장까지 지내 분이라  세상을 아쉬움 없이 빛나게 살다가셨지만-
인생의 끝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다 저렇게 쓸쓸히 허망히 
다 버리고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내가 여기서 주제로 하고 싶은 말은 어느 노교수의 죽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 끝의 모습!

한 가정이 
자연스레 
解體되는 모습을 말하고 싶어서다.

젊은 시절 나도 그랬다!

우리도 그랬다!

한참 자식들이 태어나 자랄 때 식구들이 모여 웃고 울고 떠들고 먹으며 집안이 시끌쩍하게 
들썩거리던 기쁨! 그 사랑!

좀 더 고급스러운 가구들로 꾸며 놓고 만족해 하던 시절-
자식들 공부 잘해 가슴 뿌듯해 하고 공부 못해 가슴 조이던 시절-

세월따라 그런 오붓한 시절은 점차   사라지고  자식들은 제각기 자기 일, 자기 가정
을 찾아 뿔뿔 흩어지고 기둥  같던 엄마 아빠는 병들어 쇠잔해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세상을 떠나면 
그 가정은 허물어지 듯 해체 돼 버린다는 사실!

그 사실 그 사정이 지금 내 앞에도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비단 
내 이웃에 살던 오 교수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나의 현실로 내 코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회피할 수가  없다.

하나 하나 정리해야 하는데 아직도 붙들고 있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책이며 옷이며 가구들이며 
모든 것이 한낱 쓰레기가 될 것인데-

젊은 시절 읽던 책들 더러는 읽지도 않고 허영으로 모은 것도 있고 내가 아껴 입던 옷들 드라이 크리닝해 놓은 채 비닐 커버를 쓰고 있는 입지 않은 옷들-
필요 없이 찎은 사진들-
나름 욕심 내서 산 가구들-
이 "브라운 톤 오크 가구들"은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요즘 애들은 트랜드에 맞지 않으니 그냥 버리라고 한다.
넘 아깝지만-

아! 그런데 아까운 것이 어디 있냐.

내가 세상 떠나면 나의 물욕과 함께 다 버려질 텐데. 결국 쓰레기가 돼버리고 말 텐데.

한낱 
거품 같은, 
연기 같은, 물리적인 世物에 목을 걸고 살아온 인생이여!

인생들이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반듯하게 깔끔하게 
정리 정돈하자!

(받은글)

 

유채

*  봄이면 생각나는 분! 김소월! -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은 
평북 구성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정식(廷湜)입니다.

18세인 1920년 “창조(創造)”에
 ‘낭인(浪人)의 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登壇)했습니다. 
일본 유학 중 관동대지진으로 
도쿄 상과대학을 중단했습니다. 

고향에서 조부의 광산 경영을 도왔으나 망하고 동아일보 지국을 열었으나 당시 대중들의 무관심과 일제의 방해 등이 겹쳐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김소월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며
 술에 의지하였습니다. 
결국 1934년 12월 24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서나 유언은 없었으나 아내에게 죽기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라고 말하면서 우울해했다고 합니다. 
암울했던 일제 강압 통치 시절, 
32세의 짧은 생을 불꽃같이 살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겪은 '한(恨)'을 
여성적 감성으로 주옥같은 많은 
서정시를 남겼습니다. 
작품으로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개여울, ^강촌, ^왕십리, ^산유화, ^초혼 등이 있으며 대표작으로 전 국민의 애송시 "진달래꽃 1925", "산유화"가 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교과서에 실려 유명해졌던 "초혼(招魂)"이란 시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져 있습니다.

1904년, 김소월이 세살 때 
아버지 김성도가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해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이 후 광산을 운영하고 있었던 조부 집으로 이사하여 아픈 상처를 가진 채 성장합니다. 
남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오산학교 시절에 김소월은 
3살 많은 누나 '오순'을 알게 됩니다. 
둘은 서로 의지하고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오산학교 재학 중 14세 때 할아버지의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과 강제로 결혼합니다. 
당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오순이 19살이 됐을 때, 
그녀도 억지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됩니다. 이후 둘의 연락은 끊겼지만 
소월은 어려울 때 자신의 아픔을 보듬어주던 오순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가혹해서 얼마 되지 않아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합니다. 
3년 뒤에 오순이 그의 남편에게 맞아 
사망한 것입니다. 
그 남편이란 작자는 심한 의처증에 시달려 걸핏하면 폭력을 일삼는 포악한 자였습니다.

소월은 가슴 아픈 마음을 안고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사랑했던 그녀를 기리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편의 시(詩)를 헌사합니다. 
바로 교과서에 실렸던 "초혼( 招魂)"입니다.

    ● 초혼(招魂)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초혼(招魂)"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 혼을 소리쳐 부르는 것을 뜻합니다. 
소월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비탄과 
절망감을 격정적인 어조로 절절히 노래하여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김소월의 많은 작품 중 유명한 시들을 모아 올립니다! 
소월의 아름다운 정서를 공유하며 
주변 사람들과 친교 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길 빕니다...


■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오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어요.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뜨리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나겠지요?


 ■ 산유화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개여울 🌨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먼 후일 🎷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첫 치마  ☘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히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 가는 길 ⚘

그립다 말을 할까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번 그리워

저 산(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봄 바람 바람아🍂

봄에 부는 바람아,
산에, 들에, 불고 가는 바람아,
돌고 돌아 - 다시 이곳, 

조선 사람에
한 사람인
나의 염통을 불어준다.

오 - 바람아 봄바람아, 
봄에 봄에 불고 가는 바람아,

쨍쨍히 비치는 
햇볕을 따라,      
인제 얼마 있으면?      
인제 얼마 있으면오지 
꽃도 피겠지!
복숭아도 피겠지! 
살구꽃도 피겠지!


 ■ 무덤 🌱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 저기,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 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