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3월 4일 화요일[(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은 내 버팀목 되어 주셨네. 내가 그분 마음에 들었기에, 넓은 들로 이끄시어 나를 구하셨네.
본기도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35,1-15
1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2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3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4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5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속죄하는 것이다.
6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마라.
7 사실 이 모든 것은 계명에 따른 것이다.
8 의로운 이의 제물은 제단을 기름지게 하고
그 향기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올라간다.
9 의로운 사람의 제사는 받아들여지고 그 기억은 잊히지 않으리라.
10 기꺼운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네 손의 첫 열매를 바치는 데에 인색하지 마라.
11 제물을 바칠 때는 언제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
십일조를 기쁘게 봉헌하여라.
12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 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
13 주님께서는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
14 그분에게 뇌물을 바치지 마라. 받아 주지 않으신다.
15 불의한 제사에 기대를 갖지 마라.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내 앞에 모여라, 나에게 충실한 자들아, 제사로 나와 계약을 맺은 자들아!” 하늘이 그분의 의로움을 알리네. 하느님, 그분이 심판자이시네. ◎
○ 들어라, 내 백성아, 내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아, 나 너를 고발하노라. 나는 하느님, 너의 하느님이다. 제사 때문에 너를 벌하지는 않으리라. 너의 번제야 언제나 내 앞에 있다. ◎
○ 하느님에게 찬양 제물을 바치고, 지극히 높은 분에게 너의 서원을 채워라.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는 나를 공경하리라.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께 봉헌할 예물을 마련해 주시고
이 예물을 저희 정성으로 받아 주시니
자비를 베푸시어
이 제사를 저희 공로로 여기시고
더 많은 상급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이름 찬양하리이다.
<또는>
마태 28,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비를 간청하오니
현세에서 저희를 길러 주는 이 성사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 8주간 화요일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고하지 않고는 열매 맺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고, 자선을 베풀지 않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 신앙이 열매 맺기는 어렵습니다. 교우들과 ‘인공지능(AI) 시대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자매님이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에게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인공지능의 개발을 막거나, 규제를 강화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서 사라지는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우마차’는 사라졌습니다. 스마트 폰이 등장하면서 거리에 있던 공중전화가 사라졌습니다. 카세트테이프의 자리는 ‘CD’가 차지했습니다. ‘CD’의 자리는 ‘MP3’가 차지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유튜브’를 통해서 음악을 듣습니다. 검색의 시대가 열리면서 두꺼운 사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등장하면서 지도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독점하던 인공지능의 시대를 중국의 ‘딥 시크(Deep Seek)’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도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이고,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삶과 신앙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세상에서는 첫째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 애씁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과 섬김을 강조하시며, 세상의 기준과 정반대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속 이야기들을 떠올려 봅니다. 다윗은 형들보다 작고 힘없는 목동이었지만, 하느님께서 골리앗을 물리칠 용사로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마리아의 찬가에서 “권세 있는 자를 내치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셨다.”라고 노래하듯이,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논리와 다르게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절정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던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 주변의 작은 이들에게 눈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나 사회에서 ‘꼴찌’처럼 보이는 사람들, 가난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나요? 그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의 성공과 인정만을 좇으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은 섬김과 겸손의 길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높아지는 길은 다른 이들을 섬길 때 열립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과학과 자연의 원리에서도 발견됩니다. 물리학에서는 작은 미립자들이 거대한 물질의 근원이 되고, 생물학에서는 힘센 동물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 살아남습니다. 경제에서도 전통적인 대기업이 아니라, 작은 스타트업들이 혁신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도 결국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원리 안에서 ‘역전의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은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과 다릅니다. 우리가 높은 자리를 탐하기보다 낮아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때,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를 첫째로 세우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길을 따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 10,28-31
아마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록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순례 여정이지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난 수도자이지만, 오늘 복음 묵상할 때 마다 부끄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수제자 베드로 사도는 수시로 예수님께 이런 고백을 되풀이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비록 그 장엄한 고백이 며칠 가지 않는 선언이라 할지라도, 그의 순수한 마음과 타오르는 열정이 부럽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금강석보다 더 단단한 언약과 서원을 당신께 드리지만, 인간적 나약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우리의 그 열정과 순수성을 크게 평가하시고,
우리의 결핍과 헛된 맹세조차 기쁘게 받아주시리라 확신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모습을 묵상하며 제 개인적으로 참 부끄러웠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우리들이기에 나중에 지키지는 못할망정,
일단 그리도 열렬히 그리고 용기 있게 선언하는 베드로 사도의 고백이 부럽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저도 목청 높여 외치기는 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는 세례 때에 저를 당신께 봉헌하도록 하셨으니, 당신을 보다 가까이 따르도록
저를 부르시는 당신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빛과 힘이신 성령의 인도 아래,
저는 온전한 자유로 당신께 저를 바치나이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주님 외에 모든 것을 버리겠노라고, 그리고 남아있는 삶과 젊음과 에너지 모두를
그분께 남김없이 바치겠노라고 금강석보다 더 단단한 각오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니 버리고 바치기는커녕 끝도 없이 쌓아 올리느라 정신없었습니다.
교만과 허영의 탑이 이미 높이 쌓아 올려졌습니다.
쓸모없는 가지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그렇게 피곤한 인생을 허덕이며 살아왔습니다.
근사한 새집을 짓기 위해서는 낡고 오래된 집은 허물어야 마땅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새 성전을 건설하기 위해 높이 높이 쌓아 올린 거짓과 위선의 탑을
과감하게 허물어버려야겠습니다.
참 주님의 제자로 거듭나기 위해 아쉽지만 또다시 버리고 또 버려야겠습니다.
거짓말처럼 또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성령의 봄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합니다.
성령의 바람을 타기 위해서 몸집을 줄여야겠습니다.
홀씨처럼 가벼워져야겠습니다.
그래야 성령의 바람이 부는 대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홀연히 날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렸다고 하지만 아직도 멀었습니다. 좀 더 버려야겠습니다.
주님의 따뜻한 품에 온전히 안기기 위해 좀 더 과감히 버려야겠습니다.
쓸데없는 자존심도 버리고,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교만함도 버려야겠습니다.
오랜 세월 쓰고 있던 위선과 거짓의 가면도 벗어 버려야겠습니다.
부단히 버리고 버림을 반복하던 어느 날 가벼워진 우리는 그토록 고대해왔던 강렬한 주님 현존을
체험할 것입니다.
버리고 또 버린 우리,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주님 당신 밖에 없게 된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활짝 미소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 29-30)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년 다해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마르코 10,28-31
왜 가톨릭 신자는 부자가 되는 데 죄책감을 느낄까?
최근에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살 곳이 있는데도 그냥 넣어서 감사하게도
10억 초반에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그 아파트는 지금 30억이 넘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는 너무 돈에 집착해서는 안 되니 너무 욕심내지 않으려 그냥 1억 정도의
웃돈만 받고 분양권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아파트를 보며 후회합니다.
가톨릭 신자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부자가 되는 데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가난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어제 복음은 자기 재산을 다 팔 수 없었던 한 부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자였기에 우울했습니다.
그가 부자였기에 우울하였을까요? 그의 재산을 사랑을 위해 투자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돈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돈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돈의 액수이지 돈에 집착하는 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라자로와 그 가족은 수천만 원짜리 향수를 쓰는 매우 큰
부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재산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을 받으십니다. 그들은 그러나 그 재산 모두를 예수님을 위해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가난해지려는 마음으로 게으름을 합리화하지 말고,
100배의 축복을 얻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형제, 자매의 관계는 물론이요, 집과 토지 등의 축복도 100배를 약속하십니다.
당신을 위해 포기한다면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부자가 되고 그것이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을 따르면 집과 토지와 인맥까지도
백 배를 받는 방법을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가톨릭 신앙으로 100배의 축복을 얻은 이들이 있지만, 두 현대인만을 소개합니다.
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는 필리핀 남부의 극심한 가난 속에서 태어나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과 별거로 인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없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거리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필리핀에서 대중적인 스포츠인 복싱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꿔 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천부적인 재능과 강인한 투지를 발휘하여 점차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가 자신을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파퀴아오 선수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나를 여기까지 이끈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큽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재능과 기회를 주셨고, 저는 그것을 잘 활용하려고 애썼을 뿐입니다”
(ABS-CBN, 2013년 인터뷰)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경기 전후로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며, 대중 앞에서도
“제 모든 업적은 하느님께서 제 인생을 이끄시는 덕분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허락하신 길을
걷고 있을 뿐입니다”(GMA News, 2019년 방송)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때 폭음과 도박, 여성 편력 등으로 인해 많은 논란을 빚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는 잘못된 삶을 살았지만, 고해성사와 미사에 참례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신앙이 없었다면 그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ABS-CBN, 2012년 인터뷰)라고 고백하며,
가톨릭 신앙이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선수로서의 자세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극단적인 훈련 스케줄과 철저한 식단 관리, 팀원들과의 협력을 모두
“하느님께서 주신 몸과 재능을 더 잘 돌보려는 마음가짐”(동 인터뷰)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세계 복싱 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하며 거액의 재산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 재산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필리핀 빈민촌과 학교 설립,
장학금 지원 등에 사용하며 “이 모든 것은 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입니다”라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의 신앙은 정치 활동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필리핀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빈곤층 복지 정책을 최우선으로 삼았으며, “더 나은 필리핀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가톨릭 신앙이 가르쳐 주는 형제애와 봉사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말하며 신앙이 자신이 품은 이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처럼 매니 파퀴아오 선수의 삶은 가톨릭 신앙이 어떻게 한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톰 모나건(Tom Monaghan)은 미국 미시간주의 한 고아원에서 자라며 가난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톨릭 수녀회가 운영하는 시설과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자랐던 그는 “어릴 때는 무절제함과 반항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녀님들께서 제게 책임감과 절제를 강조하셨고, 미사와 기도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자서전 『Pizza Tiger』, 1986)라고 회고하였습니다.
그는 사관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실패하였고, 군 복무를 마친 후에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작은 피자 가게를 인수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저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지만,
곧 이 일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 번 돈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것이 매일의 동기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피자 배달 시스템을 혁신하며 도미노 피자를 미국 전역으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1980~90년대에는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때는 호화 요트와 고급 자동차를 사들이며 사치에 빠지기도 하였는데,
그는 같은 책에서 “제가 이룬 부가 하느님의 뜻과 어긋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재물은 하느님께서 제게 맡기신 것이지, 제 마음대로 휘두를 것이 아니었습니다.”(『Pizza Tiger』)라고
회고하였습니다. 이 깨달음 이후 그는 고가의 수집품을 처분하고 대학교와 수도회,
가톨릭 자선 단체에 재산을 기부하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또한 직접 ‘아베 마리아 대학교
(Ave Maria University)’를 설립하여 신앙에 기반한 교육을 확산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쓰이지 않는 돈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1986년 Forbes 인터뷰)라고 강조하면서, “가톨릭 신앙이야말로 제가 삶의 목적을
다시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결국 그의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소속감을 넘어, 자신이 가진 재능과 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나침반과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유해지는 것보다 그 부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실천하며 살아갔습니다.
이처럼 톰 모나건의 삶 역시 가톨릭 신앙이 한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신앙이 단순히 내면의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로잡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그의 이야기는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탈렌트의 비유를 생각해봅시다. 하느님으로부터 재능과 돈을 받은 세 하인 중 하나는
자기 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유일한 하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재물을 투자할 능력을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당신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됨으로써
이 세상에서부터 100배의 축복이 주어지는 법칙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3.연중 제8주간 월요일 집회17,24-29 마르10,17-27
회개의 여정
“회개와 하느님의 나라”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시편32,1-2)
참 빠르게 흐르는 세월입니다. 벌써 2025년도 3월 성요셉성월에 사순시기를 바로 앞두고 있습니다.
늘 거기 그 자리의 수도원에 정주해도 흐르는 세월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년이 지났습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 이후 강론에 가장 많이 사용한 주제가 ‘여정’이요 오늘 강론 역시 ‘회개의 여정’입니다.
피정중 여정에 관한 강론후 결론때 늘 제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러분 삶의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일년사계로 압축할 때, 아침 6시에 시작하여
오후 6시에 끝나는 하루중, 봄-여름-가을-겨울 1년중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겠는가?”
저의 경우 수도원에 부임할 때는 나이 40으로 하루중 정오쯤이고 일년중 늦여름쯤이었는데,
지금은 하루로 하면 오후 5시쯤, 일년계절로 하면 초겨울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이렇게 지금의 시점을 확인할 때 하루하루 날마다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있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사부 성 베네딕도의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을 자주 연상하게 됩니다.
오늘 옛 현자의 가르침도 회개의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진심을 다할 때, 상대에 대한 진심도 흘러나온다.”<다산>
“자로가 군주를 섬기는 자세를 묻자 공자가 답했다. ‘속이지도 숨기지도 말고,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논어>
이런 솔직한 자세야 말로 회개의 정신입니다.
어제 잠시 나눴던 금주 본기도 후반부,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내용을 보면서
‘섬김을 위한 자유’임을 깨닫습니다.
자유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섬김의 사랑과 책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런 섬김의 실천이 없는 자유는 길을 잃고 방종과 혼란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회개의 삶은 섬김의 삶으로 입증됩니다.
오늘 집회서도 강조하는 바 회입니다.
“회개하는 이들에게는 돌아올 기회를 주시고
인내심을 잃어버린 자들은 위로하신다.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
그분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줄여라.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
그분께서 너를 이끄시어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살았을 때 회개요, 기도요, 공부요, 사랑이지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회개하라고, 기도하라고, 공부하라고, 사랑하라고, 감사하라고, 찬미하라고 연장되는
선물같은 절박한 하루하루 날들임을 깨닫습니다.
“누가 저승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찬미를 드리겠느냐?
죽은 이에게서는 찬양이 그치지만,
건강하게 살아 있는 이는 주님께 찬미를 드리리라.
주님의 자비는 얼마나 크시며,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 대한 그분의 용서는 얼마나 크신가?”
바로 오늘 복음의 젊은 부자는 이런 회개와 겸손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음을 봅니다.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에 대해 제시한 그의 물음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실천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는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됨은 몰랐습니다.
젊은 부자가 지켰다는 6섯 계명들중 부모공경을 제외한 5섯개 “안된다”의 부정적 금령들은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말해 줍니다.
소극적이고 모범적 좋은 신자일지는 몰라도 적극적 진취의 성화의 여정을 걷는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회개는,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는 추상 명사가 아닌 구체적 실천의 동사입니다.
젊은 부자의 심중을 꿰뚫어 통찰한 주님의 직격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팔라-주라-따르라 실천적 동사의 연속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부자의 삶에서 나눔과 따름을 통해 하늘에 보물을 쌓는 회개의 삶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는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 나눔과 섬김, 주님을 따름이라는 회개의 삶을 통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슬퍼하며 떠났으니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대화를 통한 제자교육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부자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회개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가난하다 구원이 아니라 가난하든 부자든 전격적 방향의 전환인 은총의 회개 하나가 구원의 요건입니다.
나눔과 섬김과 따름을 통해 자기를 비워가는, 무욕과 이탈의 초연한 ‘가난한 부자’의 역설적 삶을 산다면
바로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영원한 생명의 실현입니다.
구원의 잣대는 가난도 부요도 아닌, 나눔과 섬김 그리고 따름으로 표현되는
구체적 회개의 실천에 있음을 봅니다.
바로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회개의 여정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의 구원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시편32,7). 아멘.
3/4(화) [(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은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과 다릅니다. 우리가 높은 자리를 탐하기보다 낮아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때,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를 첫째로 세우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길을 따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조재형 신부)
2. 부단히 버리고 버림을 반복하던 어느 날 가벼워진 우리는 그토록 고대해왔던 강렬한 주님 현존을
체험할 것입니다.
버리고 또 버린 우리,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주님 당신 밖에 없게 된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활짝 미소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 29-30)(양승국 신부)
3.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재물을 투자할 능력을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당신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됨으로써
이 세상에서부터 100배의 축복이 주어지는 법칙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전삼용 신부)
4.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팔라-주라-따르라 실천적 동사의 연속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부자의 삶에서 나눔과 따름을 통해 하늘에 보물을 쌓는 회개의 삶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이수철 신부)
3/4(화) [(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은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과 다릅니다.
우리가 높은 자리를 탐하기보다 낮아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때,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를 첫째로 세우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길을 따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 2025년 3월4일(화) 6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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