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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3월 3일 월요일[(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3월 3일 월요일[(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8(17),19-20
주님은 내 버팀목 되어 주셨네. 내가 그분 마음에 들었기에, 넓은 들로 이끄시어 나를 구하셨네.

본기도

주님,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와 하느님의 심판을 깨달아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17,24-29
하느님께서는 24 회개하는 이들에게는 돌아올 기회를 주시고
인내심을 잃어버린 자들은 위로하신다.
25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 그분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줄여라.
26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
그분께서 너를 이끄시어 어둠에서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또 너는 그분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을 혐오하여라.
27 살아서 감사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누가 저승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찬미를 드리겠느냐?
28 존재하지 않는 자처럼 죽은 이에게서는 찬양이 그치지만
건강하게 살아 있는 이는 주님께 찬미를 드리리라.
29 주님의 자비는 얼마나 크시며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 대한 그분의 용서는 얼마나 크신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2(31),1-2.5.6.7(◎ 11ㄱ)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 ◎
○ 제 잘못을 당신께 아뢰며, 제 허물을 감추지 않았나이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당신은 제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셨나이다. ◎
○ 당신께 충실한 모든 이들이, 곤궁할 때 기도드리나이다. 큰물이 닥친다 하여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
○ 당신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 ◎

복음 환호송

2코린 8,9 참조
◎ 알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7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봉헌할 예물을 마련해 주시고
이 예물을 저희 정성으로 받아 주시니
자비를 베푸시어
이 제사를 저희 공로로 여기시고
더 많은 상급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12),6 참조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이름 찬양하리이다.
<또는>
마태 28,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비를 간청하오니
현세에서 저희를 길러 주는 이 성사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다시 말한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비단 예수님의 제자들만의 걱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신앙인에게도 해당하는 걱정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건 나쁜 걸까?’, ‘그럼 우리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보면, 한 부유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선생님, 저는 계명을 잘 지켜왔는데,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마음이 재물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늘귀는 실제로 아주 작은 바늘구멍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당시 예루살렘 성벽에 있던 작은 문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문은 매우 좁아서, 낙타가 짐을 모두 내려놓고 무릎을 꿇어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겸손 내려놓음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동굴 안에 갇힌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현실은 동굴 밖에 있습니다. 우리의 재물과 소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지만, 사실 진정한 삶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문학적으로 보면, 톨스토이의 사람은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한 농부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하다가 결국 죽고, 그가 차지한 땅은 겨우 자신의 무덤 크기뿐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욕심을 부리며 사는 동안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심리학적으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돈이 많아진다고 해서 행복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면 더 불안해지고 걱정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소유에 집착할 때 불안해지고, ‘존재에 집중할 때 자유로워진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삶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기쁨과 자유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부유함 그 자체는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재물에 얽매여 하느님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유한 인물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나 욥은 큰 부를 가졌지만, 하느님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부유했던 리디아는 바오로 사도를 집으로 모셨고, 가진 것을, 교회를 위해서 내어놓았습니다. 반면, 오늘 복음 속의 부유한 청년은 재물에 얽매여 결국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차이는 바로 어디에 마음을 두었느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고 있는가, 아니면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눌 때, 우리는 더 큰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듯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려면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재물뿐만이 아닙니다. ‘교만, 욕심, 미움, 나만을 위한 삶의 태도와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신뢰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복음마르 10,17-27

 

재물은 선행과 공덕을 쌓아 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입니다!

 

재물과 관련해서 참으로 특별한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재물 운도 좋았겠지만, 백방으로 노력하고 노력해서 막대한 부를 축척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눈만 뜨면 돈돈! 입니다.

입만 열면 돈돈! 입니다.

돈 외에도 더 크고 의미 있는 가치들이 부지기수인데, 완전 무시합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엄청난 재물을 탑을 쌓아 올립니다.

 

그렇게 발버둥 치던 어느 순간, 그는 깨닫게 됩니다.

“이제 나는 곧 떠나가게 되는데, 그토록 애써 쌓아올린 저 재물들은 어떡하지?

재물이라는 것,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별것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목숨 걸었을까?

왜 좀 더 나누지 못했을까?”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흘러 이제 나이가 80, 90, 100입니다.

나이를 먹으니 돈이 있어도 즐길 방법도 없습니다. 어느 순간 정신도 흐려지고 기력도 흐려집니다.

이제는 그에게 통장 잔고에 찍혀있는 막대한 재산도 하나의 숫자일뿐,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후손들은 어서 빨리 그의 목숨이 끊어지기만을 간절히 학수고대합니다.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 돈이 최고라고 외치고 다녔기에,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도 돈을 최우선 가치로 여길 것입니다.

다들 유산 가운데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몫을 챙길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떠나가는 자신은 거들떠보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쇠락해가며 흐려져만 가는 자신을 내팽개쳐놓고 다들 떠나갈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요?

 

오늘 예수님께서 부자들을 향해 강력한 경고 말씀을 건네십니다.

“애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 24-25)

 

부자라고 해서 다 똑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부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나눌 줄 모르는 부자들입니다.

재물 좀 있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뻐기지만, 어려운 사람들과 단 한 푼 나눌 줄 모르는

수전노 같은 부자들을 향해 오늘 예수님께서 옐로우 카드를 내미신 것입니다.

 

재물이라는 것,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서 축척한 부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유분에 대한 적극적이고 관대한 나눔을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부자들을 향한 주님의 상급이 클 것입니다.

그들은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참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재물과 관련된 예수님의 경고 말씀 앞에 걱정을 넘어 기분이 나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내가 모은 이 재산, 거저 얻은 줄 알아?

평생 등뼈 휘어지게, 정직하게 일해 온 난데. 남들 보다 곱절로 일하고, 남들 먹을 때 안 먹고,

남들 놀러 다닐 때 더 일하고, 아끼고 아껴서 모아 겨우 이제 부자 소리 듣는데,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화내실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경고 말씀을 잘 새겨들어보시면 정답이 즉시 나옵니다.

이 텍스트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부자는 바로 이런 부자입니다.

‘재물을 하느님 보다 상위에 두는 부자’, ‘돈에 눈이 먼 나머지 세상에 다른 의미 있는 가치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부자’,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부자’, ‘오로지 돈에 목숨을 거는 부자’,

‘죽으라고 모을 줄만 알았지 조금도 나누지 않는 부자’...

 

손에 쥐었다 하면 어느새 빠져나가는 것이 돈입니다.

잔뜩 있다가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돈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임종의 순간이 오면 다 내려둬야 할 것이 돈입니다.

물론 인간다운 생활,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재물에 최상위 가치를 부여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물론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가고 싶은 곳 가게 만들고, 먹고 싶은 것 먹게 하고, 분위기 잡고, 사람노릇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돈으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이 모든 행복의 근원은 아닙니다.

돈이 최종적인 해결사는 아닙니다.

돈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재산이 악인의 손에 들어있으면 그것은 함정과 죽음으로 향하는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재산이 선인의 손에 들어있으면 그것은 선행과 공덕을 쌓아 올리는 수단이 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사진설명: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3.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년 다해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마르코 10,17-27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보는 법

 

가끔 어떤 사람들은 “사랑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하는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떤 엄마들은

개나 고양이들도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생명을 사랑하는 존재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보답받지 못하는 데 끝까지 무조건적 사랑이 가능할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은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콜키스의 공주이자 강력한 마법의 재능을 지닌 인물로, 황금 양피지를 찾으려는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하여 자신의 가문과 고향까지 등지면서까지 그를 도왔습니다.

 

이아손이 위험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온갖 마법과 책략을 제공하였고,

심지어 이아손이 양피지를 가지고 도망칠 수 있도록 본인의 오빠까지 해치며 뒤쫓는 이들을

따돌리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감수하겠다는 메데이아의 마음이

그만큼 절대적이었던 것입니다.

둘은 함께 도망쳐 코린토스에 정착하였고, 결혼하여 자녀도 낳으며 한때 평온한 삶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아손은 정치적 이익과 권력을 위해 코린토스 왕의 딸과 새 혼인을

계획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메데이아가 받았던 상처는 매우 깊었습니다.

그동안 본인이 요구받았던 일들은 죄책감까지 감수하며 전부 들어주었지만,

막상 자신은 이아손에게서 약속에 걸맞은 보답이나 책임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힌 메데이아는 이아손이 새로 맞으려던 신부와

그 아버지인 코린토스 왕에게 치명적인 독을 써서 죽게 만들고, 나아가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마저 해치는 극단적인 복수로 치달았습니다.

 

이처럼 한쪽이 모든 요구에 응하기만 하고 정작 상대는 거기에 걸맞은 보답을 하지 않을 때,

사랑은 커다란 비극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메데이아 이야기가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아기와 반려동물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할까요? 아무리 반려동물이 사랑스러워도

그것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면 아기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는 생존본능 우선이기 때문에 주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결국 주인을 버리고 다라납니다.

 

그러나 자기 반려동물이 은근히 자기를 구해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는 큰 실망을 합니다. 주면서 받으려 하지 않는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기는 동물과는 다르게 자기가 받은 것을 반드시

되갚을 것이란 믿음을 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사랑도 하나의

투자입니다. 절대 자신은 해 주는 게 없는데 상대는 자신을 더 사랑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계약입니다.

내가 주면 상대도 주어야 하고 사랑을 받으면 나도 주어야 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에게 돈이 필요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면 다 주어야 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체를 통해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저하다가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느꼈습니다. 

‘아! 내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따를 제자들을 뽑을 때 배추를 거꾸로 심고 오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자기를 버렸는지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은 계약입니다.

계약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얼마만큼 줄 수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다 주시는 예수님께 나는 무엇을 드리며

그분께 은총을 청하는지도 살펴봅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과 부자 청년 이야기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2.연중 제8주일                                                            집회27,4-7 1코린15,54-58 루카6,39-45

        

                                                        마음의 곳간을 잘 관리하기

                                                               “주님을 사랑하라”

 

“주님은 내 버팀목이 되어 주셨네.

 내가 그분의 마음에 들었기에.”(시편18,19)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우리의 영적 삶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사랑은 고차원의 덕목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다산>

“가엾이 여기는 마음,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맹자>

 

사람이라해서 다 사람이 아니라, 맹자의 사단칠정(四端七情)중 사단의 네가지 본성에서 나오는 마음이 있어

비로소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주님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맹목적이 아닌 사심없는 눈밝은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주님 말씀은 지혜의 눈을, 혜안(慧眼)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뜬 맹인도 많습니다.

마음따라 보기에 마음이 없으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눈먼이가 눈먼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혜안의 분별이 참 중요합니다.

겸손과 지혜로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릴 때 비로소 올바른 분별입니다.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아갈 때 이런 자기를 아는 겸손에 지혜의 눈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그대로 우리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쉬운 것이 남판단하는 것이요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눈의 들보를 모르기에 남눈의 티를 뽑아내겠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때로 “니가 뭔데?” 또는 “니나 잘해!” 같은 반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자기를 모를 때 남을 판단하지 정말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이는 절대로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선입견, 편견에 눈멀어 남 판단했다가 착각과 오해로 밝혀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복음의 나무 열매의 비유도 아주 적절합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듯이 말이나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압니다.

좋은나무는 나쁜열매를 맺지 않고 나쁜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합니다.

너무 자명한 사실입니다. 

 

사람의 경우도 그대로 통합니다. 글이나 말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좋아야 그 열매들인 말도 글도 행동도 생각도 좋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마음이 나쁘면 말도 글도 생각도 바르지 못하고 나쁩니다.

바로 이래서 부단한 회개와 사랑의 수행을 통해 마음의 정화와 성화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날마다 평생 정성을 다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전례 공동기도 수행의 은총이

날로 주님을 닮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 집회서도 “말”에 대한 좋은 가르침을 줍니다.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말을 듣기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유창해도 진정성이 없어 혐오감을 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어눌해도 진정성 가득해

감동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이래서 말한마디 천량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하지만 참 좋은 적절한 감동의 말은 금 이상입니다.

우선 사람이, 마음이 선해야, 좋아야 합니다. 쏟아내는 말의 열매는 정직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습니다.

선한 곳간에서 쏟아내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청담, 유모어, 적절한 칭찬과 격려, 위로의 말은

분위기를 밝게하고 힘을 북돋아 주지만, 악한 곳간에서 쏟아내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악담, 불평,

불만, 비난, 험담, 잡담, 단죄의 배설물같은 말은 분위기를 어둡고 무겁게 하며 공동체를 오염시킵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말의 정화에 앞서 사람의 정화가, 마음의 정화가 우선임을 절감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아갈수록 마음의 가난에, 마음의 순수입니다.

마음의 곳간 관리에 한결같은 주님 사랑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죄가 없어서 마음의 순수가 아니라 사랑할수록 마음의 순수요 마음 곳간은 사랑의 보물창고로 변합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이런 마음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이 궁극의 희망이 되어 우리의 희망을 더욱 북돋아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우리는 고백할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영적승리와 더불어 우리 마음의 곳간을 사랑의 보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의인은 늙어서도 열매 맺고,

 물이 올라 싱싱하리라.”(시편19,15). 아멘.


3/3(월) [(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소유에 집착할 때 불안해지고, ‘존재에 집중할 때 자유로워진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삶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기쁨과 자유를 찾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돈이 모든 행복의 근원은 아닙니다.

돈이 최종적인 해결사는 아닙니다.

돈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재산이 악인의 손에 들어있으면 그것은 함정과 죽음으로 향하는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재산이 선인의 손에 들어있으면 그것은 선행과 공덕을 쌓아 올리는 수단이 됩니다.(양승국 신부)

 

3. 어떤 의미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사랑도 하나의

투자입니다. 절대 자신은 해 주는 게 없는데 상대는 자신을 더 사랑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계약입니다.

내가 주면 상대도 주어야 하고 사랑을 받으면 나도 주어야 합니다.(전삼용 신부)

 

4.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쉬운 것이 남판단하는 것이요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3/3(월) [(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소유에 집착할 때 불안해지고,

존재에 집중할 때 자유로워진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삶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기쁨과 자유를 찾는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있는 그대로의 존재, 나와 너를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3월3일(월) 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