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4월 28일 월요일[(백) 부활 제2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사제
입당송
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본기도
파스카의 영약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가 이 땅의 부모에게 받은 모습을 벗어 버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23-31
그 무렵 23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에게 가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24 동료들은 그 말을 듣고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아뢰었다.
“주님,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25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주님의 종인 저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민족들이 술렁거리며 겨레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26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모였구나.’
27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분,
곧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없애려고,
다른 민족들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이 도성에 모여,
28 그렇게 되도록 주님의 손과 주님의 뜻으로 예정하신 일들을 다 실행하였습니다.
29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0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31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께 피신하는 이 모두 행복하옵니다.
또는
◎ 알렐루야.
○ 어찌하여 민족들은 술렁거리며, 겨레들은 헛된 일을 꾸며 대는가?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메시아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일어나며, 군주들이 모여 음모를 꾸미는구나. “저들의 오랏줄을 끊어 버리고, 저들의 사슬을 벗어 던지자.” ◎
○ 하늘에 앉아 계신 분이 웃으신다. 주님이 그들을 비웃으신다. 마침내 진노하시어 꾸짖으시고, 분노하시어 그들을 떨게 하시리라.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가 나의 임금을 세웠노라!” ◎
○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 너는 그들을 쇠지팡이로 부수고, 옹기그릇 바수듯 바수어 버리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여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8
1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2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이토록 큰 기쁨의 원천을 마련해 주셨으니
기쁨에 가득 찬 교회가 드리는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영원한 즐거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파스카 신비로 새롭게 하신 주님의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의 부활로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덴버에 사순 특강 갔을 때입니다. 신부님과 함께 성 시간, 십자가의 길, 성모 신심 미사를 같이 했습니다. 제가 강의하러 갔지만, 저도 신부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피정이 되었습니다. 공항에 내리니, 저를 반기듯이 4월에 눈이 내렸습니다. 일기예보를 보고 옷을 단단히 챙겨가서 그리 춥지는 않았습니다. 성 시간 강론에 신부님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어려움이 생기곤 합니다. 원인은 ‘마음’을 몰라 주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마음’을 몰라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는데, 마음을 몰라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내도 남편에게 ‘마음’을 몰라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아이들 키우느라 얼마나 애쓰고 있는데 ‘마음’을 몰라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보좌 신부님은 본당 신부님이 ‘마음’을 몰라 준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자네도 본당 신부님이 돼 보면 알 거야!’라고 말하면서 보좌 신부님이 ‘마음’을 몰라 준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들은 내 마음을 몰라 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3,00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고통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이 못내 서운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2,000년이 지났지만, 우리들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몰라주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자녀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경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마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강론이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사도들은 수동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들을 다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만 바라보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은 변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들이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였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고, 표징을 보여주었고, 박해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이제 빵만으로 사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고, 표징을 보인다면, 설사 죽임을 당하더라도 다시 살아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땅위를 기어다니는 배추 애벌레는 온몸이 굳어 죽은 것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애벌레의 삶과 나비의 삶은 차원이 다른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 기쁨,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낡은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 과정이 때로 고통이고, 아픔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차원이 아닙니다. 부활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추구하였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절망과 슬픔 속에 있었다면 희망과 기쁨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을 일어나게 하는 것,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함께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입니다.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3,1-8
유통기한이 없는 하느님 사랑!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당신의 신원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고, 고민과 성찰을 거듭하고 있는,
그나마 괜찮은 사람인 니코데모를 향해 한 마디 하십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은 바꿔 말하면 ‘하느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가끔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이 어떤 것일까?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인간적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아주 조금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깊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확연히 다릅니다.
얼굴 빛깔부터 차이가 납니다.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눈에 총기가 가득합니다. 얼굴 전체에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칩니다.
누군가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꾸준히 받는 사람은 삶도 역시 달라집니다.
사랑받는 사람의 인생길에는 짙게 드리웠던 먹장구름이 어느새 사라지고 새 하늘 새 땅이 펼쳐집니다.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던 일상이 아름다운 무늬와 색상으로 채색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하루가 색다릅니다.
그저 마지못해 맞이하던 그렇고 그런 날이 아니라 매일이 축제요 매 순간이 환희의 순간입니다.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사랑을 통한 변화도 이렇게 대단한데,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을 통한 변화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실 인간적 사랑이 지닌 큰 문제와 한계 중에 하나는 그 유한성, 지속성의 부족입니다.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사랑은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한때 활화산 같던 사랑이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식어버립니다.
한때 잠시라도 눈앞에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사랑이었는데, 이제 눈앞에 있으니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의 강점은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끝도 없이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사랑처럼 길고 짧음을 재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한없이 무상으로 베풀기만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또 다시 우리에게 한 가지 과제가 주어지는군요.
매일 밤 하느님 자비의 품 안에 죽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하느님 사랑 안에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결핍과 죄, 모순과 한계투성이었던 어제의 나를 하느님 사랑의 강물에 흘려 보내고,
아침이면 아침마다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매일 새벽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오는 일입니다.
매일 저녁기도를 드릴 때마다 어제와 나와 결별하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서철 바오로 신부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4,23-31 요한 3,1-8
가끔 신자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습니다. “신부님, 도대체 왜 그러세요?”
그러면 저는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변명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보고 배운 신부의 모습은 가부장적인 팔·구십년대 사회에서 사목하던
모습입니다. 눈으로 보고 배운 모습은 아주 가까이 있고, 말씀으로 배웠던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 목자의 모습은 아직도 머리에만 있어 몸으로 옮겨 오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여 변하고자 노력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다음 질문을 깊이 한번 생각해 보고 대답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이고, 가장 많이 본 모습은 무엇입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보고 배운 것은 무엇이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입니까?
방송이나 다른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 성당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것에서 어떤 영향을 받아 왔고,
그것들이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이루는 데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을 닮은 모습일까요?
오늘 본기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희가 이 땅의 부모에게 받은 모습은 벗어 버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으로
살고자 함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신앙의 완성이요 구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완성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세례의 삶으로 묵은 인간은 죽고 새로이 태어나도록,
사랑의 삶으로 태어나도록 노력합시다.
청주교구 서철 바오로 신부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4.27.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사도5,12-16 묵시1,9-11ㄴ.12-13.17-19 요한20,19-31
자비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
평화와 기쁨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118,240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주일입니다.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셨고, 교회는 다음해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시편136장은 26절까지 매구절 후렴은 주님의 자비를 노래합니다.
“주님은 어지시다 찬양들 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1절로 시작하여,
“하늘의 임금님을 찬양들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26절로 끝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얼굴을, 마음을 한글자로 요약하면 "자비"입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도 자비하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였습니다.
제 산책중 자주 노래 부르는 시편구절입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자비하신 주님의 선물하면 즉시 떠오르는 자주 나누는 제 행복기도 한연이 생각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계속되는 파스카 축제의 계절, 파스카의 기쁨, 신록의 기쁨으로 온세상이 환합니다.
주님과 만남의 기쁨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기쁨은 신앙인의 신분증’이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멋지고 기발한 말씀도 생각납니다.
여러분은 기쁨의 신분증을 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선물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쁨의 미소를 짓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섭리의 선물이 참 오묘합니다.
죽음도 슬픔이 아닌 기쁨의 선물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부활 제1주일 가톨릭 신문은 온통 축제와 같은 두봉주교님의 장례미사를 소개했는데,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주일인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축제와 같은 선종에 관한 기사를 읽는 순간
즉각적인 깨달음이었습니다.
“아, 거룩하게 사신 분들은 참 좋은, 회개와 일치, 평화와 기쁨의 축제같은 죽음의 선물을 남기고 떠나시는 구나!”
반면 아픔과 상처, 분열과 불화의 무거운 짐을 남기고 떠나는 죽음은 얼마나 많습니까?
산대로 살고 산대로 죽습니다.
새삼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진짜 삶을 살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오늘 가톨릭평화신문 1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하느님 닮은 자비로운 얼굴로
가득 채워졌고 큰 글자의 제목이 선명했습니다.
“평화의 사도, 지상 순례 마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제266대 프란치스쿄 교황(재위2013.3.13.-2025.4.21.)”
저는 ‘평화의 사도’에다 ‘자비의 사도’, ‘희망의 사도’, ‘기쁨의 사도’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새삼 영원한 지상 삶은 없음을 깨닫습니다. 삶의 여정을 끝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입니다.
과연 우리의 남은 생애는 얼마쯤일런지요?
자비하신 하느님의 선물에 찬미와 감사로 응답하며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 우리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을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을 통해 받습니다.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께는 벽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임재하실 때 마다 벽은 변하여 문이 됩니다.
세상에 문으로 바뀌어야할 마음의 벽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혐오의 벽, 증오의 벽, 불신의 벽, 원망의 벽, 불화의 벽, 분열의 벽, 탐욕의 벽,..끝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지의 벽입니다.
두려움에 문을 닫아걸고 있던 제자들의 방에 들어오신 주님의 참 좋은 평화의 선물입니다.
‘두려움의 벽’이 ‘평화의 문’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 무려 세차례 나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가 너희와 함께!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평화와 더불어 기쁨의 선물이요, 성령과 용서의 선물입니다.
주님의 기쁨과 행복은 우리에게 선물하는데 있음을 봅니다.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비하신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마침내 의심많은 토마에게 나타나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에 대한 토마의 응답 덕분에 우리는 참 좋고 깊은 깨달음의 고백을 배웁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평생 화두로 담아두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서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둘째, 치유의 선물입니다.
제2독서 사도행전의 신바람 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사도들은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기적이 일어납니다.
백성은 사도들을 존경하니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는 더욱더 늘어납니다.
이어 온갖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이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만나 치유되니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똑같은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우리에게 평화와 더불어 치유의 은총을 선물하십니다.
셋째, 깨달음의 은총 선물입니다.
주님을 찾는 끝없는 갈망만 있으면 부활하신 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그들을 찾아 오십니다.
주님께는 거리와 벽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과 당신에 대한 증언 때문에 절해 고도 파트모스섬에 유배되어
고독속에 지내는 요한에게 나타나 격려와 더불어 당신의 신원을 알리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이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요한 덕분에 우리도 주님의 신원에 대한 귀한 진리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어떤 역경중에도 파스카의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깨달음을 선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시어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필요한 것은 시시때때로 선물하시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살맛나는 인생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늘 바쳐도, 늘 좋고 늘 새로운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4/28(월) [(백)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자녀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경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마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당신의 신원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고, 고민과 성찰을 거듭하고 있는,
그나마 괜찮은 사람인 니코데모를 향해 한 마디 하십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은 바꿔 말하면 ‘하느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양승국 신부)
3.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세례의 삶으로 묵은 인간은 죽고 새로이 태어나도록,
사랑의 삶으로 태어나도록 노력합시다.(서철 신부)
4.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에 대한 토마의 응답 덕분에 우리는 참 좋고 깊은 깨달음의 고백을 배웁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평생 화두로 담아두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서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수철 신부)
4/28(월) [(백)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마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날마다 세례의 삶으로 묵은 인간은 죽고 새로이 태어나게 하소서.
사랑의 삶으로 태어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4월28일(월) 11시3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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