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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4월 29일 화요일[(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4월 29일 화요일[(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가타리나 성녀는 1347년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완덕의 길을 걷고자 일찍이 도미니코 제3회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지역들 간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특히 교황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가타리나 성녀는 1380년에 선종하였고, 1461년에 시성되었으며, 1970년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입당송

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동정녀는 등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갔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복된 가타리나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교회에 봉사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여
세상에 드러난 그분의 영광을 보고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한마음 한뜻>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32-3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3(92),1ㄱㄴ.1ㄷ-2.5(◎ 1ㄱ)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이 차려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네. ◎
○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네. 예로부터 주님 어좌는 굳게 세워지고, 영원으로부터 주님은 계시네. ◎
○ 당신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 집에는 거룩함이 서리나이다. 주님, 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

요한 3,14-15 참조
◎ 알렐루야.
○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지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1,5―2,2)와 복음(마태 11,25-30)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가타리나를 기리며 봉헌하는 이 제사를 받으시고
저희가 그의 삶을 보고 배워
참하느님이신 주님께 더욱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1요한 1,7 참조
하느님이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가타리나가 천상 양식으로 힘을 얻어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셨으니
저희도 이 양식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학자 기념일

 

마음을 이야기하였던 신부님이 다음날 강론에서는 이해인 수녀님의 봄 편지를 읽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수녀님의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숲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 오셨는데,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징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봄을 맞이하면서도 봄이 온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때로 너무 익숙하기에 소중한 것을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함께 있었음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익숙함이 때로는 진실을 가리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사는 곳을 청와대라고 불렀습니다. 지붕의 기와가 푸른색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대부분은 청와대에서 생활했습니다. 청와대에서 임기를 잘 마친 대통령도 있고, 청와대에 있으면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도 있습니다. 청와대에 있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한 대통령도 있고, 청와대에 있으면서 탄핵당하여 자리를 떠나야 했던 대통령도 있었습니다. 청와대라는 공간과 자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청와대에서 살았던 대통령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2022 5월 당선된 대통령은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겼습니다. 청와대는 국민 속으로, 대통령은 국민 속으로 들어간다면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용산으로 관저를 옮긴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였고, 탄핵당하여 용산을 떠났습니다. 용산이라는 공간과 자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서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했던 대통령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봄은 이미 왔지만, 봄을 맞이하려는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아직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복음에서 예수님과 니코데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니코데모는 관습과 율법의 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스승으로 존경도 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니코데모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과 계명들은 창고에 쌓인 지 오래된 물건처럼, 유효기간이 지난 물건처럼 니코데모가 영적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계명을 지키면서 재물을 모으고, 자녀들을 잘 키우면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애벌레가 땅을 기어다니지만, 누에고치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는 니코데모에게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율법과 계명의 틀을 초월하는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굴레에 갇히는 것이 아닌, 생각의 틀에 갇히는 것이 아닌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재물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제1독서에서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공동체는 바로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들과 공동체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요한 3,7-15

 

고통스러운 현실의 도피처요 마취제로 신앙생활을 선택하신다면...

 

조금은 우려스러운 신심을 추구하는 교우들을 가끔 만납니다.

너무 약한 신심도 문제지만, 너무 과도한 신심도 심각합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의 도피처요 마취제로 신앙생활을 선택합니다.

 

하루 온종일 기도 생활이요 신심 생활이지만, 이웃 사랑의 실천이나 공동선 실천은 뒷전입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 현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신심입니다.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성숙한 기도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참된 신심은 마치 우리 심장이

반복해서 뛰는 것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수축과 이완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축은 하느님과의 일치, 곧 기도 생활이요 신심 생활입니다.

이완은 이웃 사랑의 실천이요, 공동선과 사회정의의 실천입니다.

 

우리 모두 이제야 겨우 길고 어두운 터널 하나를 빠져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준비되지 않는 미성숙한 지도자와 그를 철저하게 이용한 끄나풀들의 탓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활개를 칠 때, 그저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겠지, 하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면, 그 다음 단계, 행동을 통한 결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1347-1380)의 신심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25명이나 되는 대가족에서 태어나, 많은 형제자매들 틈에서 성장한 가타리나였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빛나는 덕행과 탁월한 신심, 뛰어난 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개의 논문을 구술하였고,

교회는 그녀를 교회 박사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녀의 탁월한 신심생활과 하느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 이웃사랑의 실천, 거룩함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녀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녀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은 사람들, 깊은 감화를 받은 사람들은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가타리나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찾았고 만났으며 사랑의 합일로서 주님과 일치되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가타리나의 고백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하느님 사랑에 깊이 빠져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벌거벗음을 덮어주시는 의복이십니다. 당신은 쓴맛이 조금도 없는 감미이시므로,

그 감미로움으로 배고픈 우리를 먹이십니다. 오, 영원한 삼위일체이시여!”

 

가타리나의 하느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은 자주 그녀를 깊은 탈혼의 경지에 이르게 했습니다.

열렬한 기도 안에서 구세주의 형상을 뵙고 난 그녀는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웃으시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이 가라앉았고, 나도 예수님을 향해 웃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향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은 모든 종이 한꺼번에 울려 퍼지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던 부활절보다 더 기뻤습니다.

성탄절 날 구유에 깔린 밀짚 위에 작은 아기 예수 인형을 놓을 때보다도 더 기뻤습니다.

우리 엄마를 끌어안을 때보다도 더 기뻤고, 정말이지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가타리나는 결코 감미롭고 신비로운 신심에만 머물러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바탕으로 한 가타리나의 이웃을 향한 사랑 역시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도의 결실로 매일 충실한 이웃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성 라자로 병원을 찾아가 전문 의료진들도

감당하지 못해 혀를 내두르는 진상 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봤습니다.

의료 수준이 형편없던 시대, 별다른 처방도 없이 죽음을 향해 가던 환자들은 틈만 나면 소란을 피우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가타리나에게 퍼붓곤 했습니다.

 

그러나 가타리나는 마치 자상한 엄마가 까칠한 사춘기 소녀 딸을 대하듯 한결같이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으며, 주체못하는 환자들을 꼭 끌어안고 토닥토닥 들을 두드리며 진정시켰습니다.

그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는 진상 환자들만 골라 임종 순간까지 극진히 돌보았습니다.

 

살아생전 언제나 생생하게 예수님을 눈앞에 뵙듯이 살았던 가타리나는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극진히도

눈에 보이는 예수님인 환자들을 극진히 섬겼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였는지,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몸에 오상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이영근 신부님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눈’으로 봅니다>
 
부활과 관련된 성경의 용어들은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살다, 다시 살다'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서다, 다시 일어서다' 입니다.
곧 ‘부활’과 ‘들어 높여짐’입니다. 

지난 부활 8부 동안의 말씀전례에서는 첫 번째 뜻, 곧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내용을 드러내주었습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두 번째 뜻인 '들어 높여지다, 영광스럽게 되다'라는 뜻을 드러내줍니다.


이는 놀라운 사실, 아니 억지스럽고 당혹스런 사건을 전합니다.
곧 분명 누명을 쓰고 죽은 실패인데도 오히려 승리라 하고, 분명 죽었는데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도 놀라운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그리하여 드높여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아래’로 내려갔으나 ‘위’로 올라가는 역전의 대전환이라는 ‘놀라운 변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요한 3,7)



여기서, ‘위’(ano) 혹은 ‘아래’(kato)라는 말은 '위'란 산을 오른다든지, 로켓을 타고 우주 위로 올라가는, 물리적인 위치나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위’와 ‘아래’라는 말을 쓸 때, 이는 ‘두 가지 질서(방식)’을 가리킵니다.
곧 ‘아래’는 자기 중심적인 ‘나’의 통치 방식에 따르는 질서요, ‘위’의 질서는 사랑의 ‘성령’의 통치 방식에 따르는 질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지상에 묶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한 자임을 말해줍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요한 3,9)
이는 어디선가 이미 들은 낯익은 질문입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천사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그러니 마리아처럼, 이 질문은 우리가 전 인격으로 응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곧 성모님처럼 ‘피앗(fiat)’으로 응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하물며 어찌 믿겠느냐?”
(요한 3,12)

이는 우리가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이유가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에 대한 고집 때문에 새로 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영으로부터 곧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곧 믿음(피앗)으로 응답하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바로 여기에 역전의 대전환이 있고,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모든 것을 새롭게 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눈’으로 봅니다. 
곧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자신이 새로워져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당신 눈으로 새롭게 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한 3,13)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고,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추락할 줄을 알게 하소서.
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하여,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4.28.부활 제2주간 월요일                                                                  

 사도4,23-31 요한3,1-8

 

위로부터 또는, 영에서 태어난 사람들

“주님의 참 제자들”

 

“주님, 파스카의 영약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소서.”(본기도)

 

‘영적일수록 현실적이다(the more spiritual...the more real)’라는 지극히 공감하는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하늘 높이 가지들 뻗은 나무들이 땅속 깊이 뿌리내린 이치와 똑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위로부터 또는 영에서 태어난 이들도 이와같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옛 현자가 지칭하는 삶 역시 그 좋은 증거가 됩니다.

 

“그 어떤 특별한 순간도 일상만큼 반복하지는 못한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일만큼 비범한 것은 없다.”<다산>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하는 거룩한 반복의 영적훈련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거룩한 전례주기가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나는 삶의 일상화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평소에는 공손하고, 일을 할 때에는 경건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해야 한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지켜야 한다.”<논어>

공자의 이런 평범하나 비범한, 한결같은 삶이 바로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난 이들의 모습입니다. 

 

어제 제 강론을 읽은 지금은 60대 초반, 반세기 전 옛 초등학교 제자가 보내준 메시지입니다.

“벽이 문으로 바뀌는 삶 역시 제가 간절히 바라는 삶입니다.

육신은 땅을 딛고 살지만 마음과 영혼은 언제나 하늘을 딛고 사는 하느님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구도자의 모범인 니코데모가 그러합니다.

바리사이이자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지만 여전히 진리에 목말랐던 참된 구도자 니코데모입니다.

어둔 밤 빛이신 주님을 찾아나선 모습이 바로 니코데모의 어둔 내면을 상징합니다.

남들의 이목을 생각하여 밤을 택한 것이라 생각되니 아직 담대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누구나 마음 깊이에서는 빛이신 주님을 찾는 구도자임을 깨닫습니다.

다음 니코데모에게 주신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빛으로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닙니다.

부단한 자아초월의 노력이 없으면 욕망이 주도하는 자연물로, 짐승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날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삶의 여정을 살라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공동전례기도 수행이자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삶을 거듭 또 새롭게 강조하는 주님이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영이다.”

 

바로 영적 탄생을 시스템화 한 것이 가톨릭교회의 칠성사입니다.

물과 성령의 세례성사로 시작된 영적탄생은 평생성사인 성체성사 미사은총을 통해 계속됨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이 궁극으로 목표하는바 거듭된 자아초월에 따른 영적탄생이요 내적변모입니다.

이어 주님의 영적 삶의 최정상으로, 참으로 성령따라 살아가는 참 자유인의 경지를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내가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였다고 놀라워하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이와 같다.”

 

바로 성령따라, 사랑따라 살아가는 참 자유인의 경지를 보여 줍니다.

모든 영적수행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경지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제1독서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공동체입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의 공동체를 찾아 있었던 사실을 알립니다. 

 

새삼 두 사도들이 맹활약을 할 수 있었음은 파스카의 사도들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봅니다.

위로부터, 영에서의 탄생에 공동체의 기도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다음 기도가 입증합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결국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일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그들이 모여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합니다.

공동체의 기도 은총이 성령에 따라 자유롭고 담대한 말씀 선포의 삶을 가능하게 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공동미사전례기도 은총이 우리를 위로부터, 영에서 거듭 새로 나게하시며

담대한 복음 선포의 삶에로 이끌어 주십니다.

요즘 계속되는 파스카의 축제시기 한국 어디나 신록과 꽃들로 지상천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입니다.

며칠전 써놓은 <파스카의 봄철, 마음 수칙>을 염두에 두시고 생활하시기 바라는 마음에서 나눕니다. 

 

“절제하라

파스카의 축제가 계속되는

봄철에 

더욱 절실한 절제의 미덕이다

 

봄의 유혹에 빠져

말 많이하지 않기

감탄사 연발하지 않기

두리번 거리지 않기

감상에 젖지 않기

화내지 않기

흥분하지 않기

반응하지 않기

 

관광에 순례 더하기

몸자세 바로 갖기

침묵과 고독 사랑하기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삶 추구하기

마음 들뜨지 않고 평온 유지하기

마음 단속하기

눈길 단속하기

잘 보고 듣기

잘 버티고 견디기

불필요한 관심 접기

일상의 규칙 잘 지키기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기

매사 담담하고 초연하기

늘 주님 안에 머물고 주님께 눈길 두기<2025.4.25.>.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4/29(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재물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조재형 신부)

 

2.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성숙한 기도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참된 신심은 마치 우리 심장이

반복해서 뛰는 것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수축과 이완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축은 하느님과의 일치, 곧 기도 생활이요 신심 생활입니다.

이완은 이웃 사랑의 실천이요, 공동선과 사회정의의 실천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한 3,13)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고,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추락할 줄을 알게 하소서.
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하여,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날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삶의 여정을 살라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공동전례기도 수행이자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삶을 거듭 또 새롭게 강조하는 주님이십니다.(이수철 신부)

 

4/29(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오늘의 기도

 

복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한 3,13)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고,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추락할 줄을 알게 하소서.
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하여,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4월29일(화) 7시50분-